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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49화 (149/337)

나 혼자만 마탑주 149화

마탑 밖으로 나왔다.

진보라가 말한 대로 날씨 하난 좋았다. 푸르른 하늘, 선선한 바람,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과 수풀들이 쏴아아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우리는 적당한 풀밭을 골라 돗자리를 깔고 줄로 고정했다. 진보라가 3단 도시락을 두 개를 차차착 세팅했다.

"와, 언제 이렇게 만들었대?"

"이 정도야 금방이죠!"

도시락을 열자 모두의 눈이 커졌다. 다채로운 메뉴였다.

참치김밥, 유부초밥, 소시지, 스팸주먹밥, 베이컨말이롤밥 등등, 어릴때 그렇게 먹고 싶었던 반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언니야 고마워!"

"잘 먹을게."

나는 유부초밥부터 하나 집어보았다. 인스턴트가 아니라 수제 유부초밥은 얼마 만에 먹어보는 걸까.

유부 안 밥에 잘게 썬 스크램블, 참치, 당근, 우엉 등등 재료들이 워낙 많이 들어가서 색깔이 다채롭다.

나는 더 감상하지 않고 입 안으로 넣었다.

"선배님 어때요? 어때요?"

"근 5년 만에 먹는 유부초밥 중에 최고야!"

"오예!"

"5년 만에 처음 먹는 거거든."

"아, 진짜아!"

정서진은 아이스박스를 열어서 맥주캔 하나를 건넸다. 만져 보니까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바로 뚜껑 따서 입으로 직행, 어마어마한 탄산 맛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청량감으로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서진도 은솔을 식기를 챙겨준 후 맥주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주위의 경치를 담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때요? 서진 씨!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군요."

"어휴, 우리 식구 남자들은 왜 이렇게 리액션이 심심해!"

나는 낄낄 웃으며 김에 싸인 스팸주먹밥을 이쑤시개에 꽂아서 한입베어 먹었다.

맛있다. 스팸과 계란, 김 그리고 밥이라니, 실패할 리가 없는 정석적인 조합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나는 불러온 배를 통통 치면서 돗자리에 드러누웠다. 맥주로 기분도 살짝 좋아진 상태에서 선선한 바람을 만끽한다.

은솔이 바로 나를 따라하듯 누워서 내 품으로 파고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앞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구름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탄자니아에 갔다 오니 더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가!"

진보라가 쿡쿡 웃었다.

"아프리카 전선에 있더니 아저씨다 돼서 오셨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살갗을 만져 보았다.

"어우, 피부 탔잖아요! 선크림 꾸준히 바르시라니까요."

"바르고 있어."

"대충 바르지 마시고 온몸에 꼼꼼히 바르세요! 제가 선물로 드린 그거 비싼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앉아서 흔들리는 숲을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던 정서진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탄자니아 전선은 어땠습니까?"

"글쎄. 환경도 열약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다녀올 만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곤 덧붙였다.

"두 번은 절대 아니야."

"하하하하!"

"군대 같네요."

그때였다. 숲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결계를 뚫고 여기 올 수 있는 사람이야 뻔했다.

"스승님!"

"돌아오셨군요!"

4층 팀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진보라가 깜짝 놀라서 그들을 보았다.

"벌써 던전 끝났어요? 오신다고 연락하셨으면 더 만들어 놓는 건데!"

"말씀만이라도 괜찮습니다! 근데 저 김밥 남은 거 좀 먹어도 됩니까?"

4층팀이 피크닉에 합류하자 느긋했던 분위기가 한층 떠들썩해졌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공인 헌터로서 첫 인스턴스 던전. 어땠어요?"

그들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슬쩍 시선을 주고 받는 모습도 보였다. 팀장인 나대용이 대표로 대답했다.

"조, 좋았습니다! 하하하!"

"솔직히 털어놔 봐요. 뭔가 문제있었던 눈친데."

그 말에 다섯 명은 던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세 개의 공인 5급 팀이 동시에 던전을 들어가는 경쟁 레이드, 하지만 이번 던전에서 4층팀은 가장 낮은 성과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거였다.

파티플레이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크지만, 다섯 명 모두 기술이 똑같다는 점.

나대용과 차도연이 건틀릿으로 근접해서 싸우고 나머지는 마나 에로우를 날리는 식이지만 포지션이 너무 단조로워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써줬나.'

해외 파견이라 바쁘긴 했어도, 공인 5급 달성시킨 이후로는 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뭔가를 해준 적이 없긴 했다.

"다들 2서클은 완성했죠?"

"네!"

나대용이 처음으로 2서클을 개방한 뒤로, 나머지 네 사람도 2서클을 만들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럼 2서클 마법의 완전 발동에 성공한 사람?"

조용했다.

2서클은 만들었는데 2서클 마법은 실패라. 이들의 마법 재능은 국내 최고다. 뭔가 이유가 있을 공산이 크다.

"읏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바빠서 못 해준 케어, 지금 해드리겠습니다."

* * *

우리는 마탑으로 돌아왔다.

나와 에아는 마법의 정석을 비롯한 마법 문서들을 쭉 펼쳐놓고 4층팀을 앞에 세워두었다.

"실은 제가 5층 시련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법들을 가져왔거든요."

에렌델의 고서를 보면, 마법사 중에서 나처럼 4속성 마법을 전부 운용하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한쪽 계열에 올인하는 전공 마법사. 심지어 그 재능 충만한 전대 마탑주 안톤도 전공 마법사였다.

마법사는 개인마다 적합한 속성이 있다. 에렌델의 마법사들은 2공정에 도달하면, 그 적성을 알아내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바로 이 정석 의식을 지구에서 서클마법으로 재현할 생각이다.

나는 허공에 서클 마법으로 해석한 열 개의 마법진을 펼쳤다. 가장 기본적인 4원소 마법진에 더 해, 다른 계열의 마법진 2서클 마법까지 준비했다.

"자, 그럼 우리 관리자님부터 앞으로."

"옙!"

나대용은 나처럼 마나에 극단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과몰입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고유 능력은 오버로드.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마나를 쏟아부을 수 있다. 물론 오버로드를 사용한 뒤에는 잠시 마나를 제대로 못 쓰게 된다.

"자, 마법진은 제가 펼쳐뒀습니다. 하나씩 손을 올려본 다음에, 중앙에 있는 룬어에 마나를 흘려서 마법을 일으켜 보세요."

"예? 제 마법진이 아닌데요?"

"제가 되도록 했으니까 한번 해보세요."

나대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마법진 위에 손을 올렸다. 불똥이 살짝 튀었다. 이어지는 얼음, 바람, 땅 속성 마법진에는 모두 대단한 반응은 없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최고의 재능인 나대용이 2서클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사실은 4원소마법 중에서는 적성이 없었던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납득이 된다.

"자, 자, 긴장하지 말고 나머지 마법진도 모두 만져 보세요."

"옙!"

다섯 번째 마법진도 이상 무, 여섯번째, 일곱 번째 마법진까지 반응없음이다.

마지막 마법진을 향해 갈수록 나대용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설계국장."

에아가 말했다. 나대용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움츠리고 있으면 될 마법도 안 될 겁니다."

"아, 죄송함다!"

나대용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자기 뺨을 두어 번 짝짝 때렸다. 그러고는 여덟 번째 마법진에 손을 올린다.

파지직!

"우와아아앗!"

마법진에서 전류가 지직거리며 튀어나온다. 나대용은 자리에서 쓰러지고 지켜보던 4층 팀원들은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다.

에아가 수치 계산을 위해 눈을 감았다.

"에아. 어때?"

"감도 88%, 호응도 97%. 순간 계수 150, 311, 790 PPP."

그녀가 눈을 뜨고 나대용을 바라보았다.

"총합 96%의 전격 마법 적합률입니다."

얼떨떨해하는 나대용을 보며 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축하합니다. 대용 씨. 전격 마법사가 될 재능이셨네요."

"아……!"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 다시 그가 주장하는 사나이의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다른 4층팀 멤버들도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다.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전격 마법사! 전격 마법사라니! 하하하! 딱 제 취향입니다 스승님!"

"진정하세요."

하필 또 고유 능력이 오버로드(과부하)다. 그가 전격에 적성이 있는 게 우연이든 아니든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럼 바로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다음 차례는 김사랑이다. 그녀는 여섯 번째 만에 바로 반응이 왔는데, 마법진에서 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에아가 수치를 읽고 말했다.

"총합 92%의 물의 마법 적합률입니다."

"축하합니다. 수계 마법사 적성의 김사랑 씨!"

김사랑은 일단 크게 한도의 한숨을 쉰 다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긴 한데 잘 감이 안 오네요! 물마법은 좋은가요?"

"으음."

나는 삐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스승, 그러니까 전대 마탑주님도 물을 다루는 마법사셨죠."

"와!"

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듯했다. 김사랑은 행복에 겨운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차도연 씨."

차도연은 4대 원소 마법을 건너가서 다섯 번째 만에 바로 성공이었다. 마법진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총합 88%. 빛 속성 마법 적합률입니다."

"빛의 마법사 차도연 씨! 축하드려요."

그녀도 자신의 적성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얼른 자리로 돌아와서 나대용과 김사랑과 하이파이브했다.

"다음은 조용희 씨."

"넵!"

"조용희 씨는 일단 이것부터 해볼래요?"

나는 새로운 서클 마법진을 띄워서 그의 앞에 내밀었다.

조용희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마법진을 만져 보았다.

우웅!

마법진이 작동하며 그 아래에서 녹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종합 99%의 독성 마법 적합률입니다."

"99%……"

모두가 입을 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역시나, 왠지 모르게 조용희는 이쪽 계열일 것 같았다.

"독성계 마법사 조용희 씨! 축하드립니다."

"네, 넵!"

그가 언제나 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스마트폰 노트 앱을 켜서 모두의 속성을 체크했다.

나대용 - 전기.

김사랑 - 물.

차도연 - 빛.

조용희 - 독.

'이것도 웃기네. 어쩜 이 중에서 한 명도 4대 원소가 없을 수가 있냐.'

그들이 2서클 마법을 못 쓴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최고 성장 기대주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은 소심희 씨네요."

"아, 네!"

그녀가 달달 떨며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마지막 차례인 그녀를 응원했다.

"자, 시작하죠."

"넵!"

소심희는 첫 마법진 터치부터 후끈거리는 열기가 피어올랐다. 불꽃이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적성은 있다.

"총합 21% 화염 마법 적합률입니다."

"좀 낮네. 다음으로 가시죠."

"네!"

그녀는 아이스 자벨린을 비롯해 나머지 두 개의 원소 마법도 20%대의 마법 적합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90%대가 대부분인 다른 동기들에 비해 제대로 된 적성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4대 원소마법 다음의 마법진들은 대부분 무반응이었다. 물과 빛에서 반응이 있었지만 모두 10%대의 적합률이었다.

"자, 마지막이네요. 힘내요!"

"네."

어느새 울상이 된 그녀가 간절한 표정으로 마지막 마법진에 손바닥을 올렸다. 물방울 같은 것이 뚝 하고 떨어졌다.

"총합 22%, 독성 마법 적합률입니다."

주위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마법진도 그녀와 맞지 않았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소심희 씨. 분명히 딱 맞는 적성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추가로 네 개의 마이너한 마법진을 펼쳐보았지만 전부 무반응이었다. 결국 소심희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고, 차도연과 김사랑이 달려와 그녀를 달래주었다.

'무(無) 적성일 수도 있겠는데.'

한 가지 적성에 맞는 속성이 없는 타입. 나처럼 4원소 모두를 잘 다루는 엘리멘탈 마스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아직은 애매하다.

"저는 훌륭한 마법사가 못 되는 걸까요……"

소심희가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동료들에게 혼자 뒤처진다는 건 상당히 큰 충격이리라.

스스로도 본인에게 많이 실망했을테고.

"괜찮아요. 소심희 씨."

내가 나서서 그녀를 달랬다.

"적성이 제가 가진 2서클 마법 중에 없었을 수도 있어요. 메이저한 것들만 했으니까요."

"그럼요! 힘내세요!"

동료들의 위로를 받는 소심희를 보며,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그녀에 대해 놓친 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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