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45화
홍연은 유신을 지휘관으로 낙점했다. 그동안 무트와라에 묵히고 있었던 대규모 정규군 병력이 모조리 투입된다.
탄자니아의 운명을 건 작전.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수송형 마력헬기 두 대가 바다를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다.
"탄창과 휴대 디바이스 확실히 챙겨라!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른다!"
"예!"
연맹 특수 부대장 스콜은 병사들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했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에게 경례했다.
"다시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유신 헌터."
"무슨 말씀을, 저야말로 영광이죠."
유신도 반갑게 경계를 받아주었다.
그의 옆에는 부관으로 따라온 5급 카림도 있었다. 유신은 이어마이크를 작동시키며 작전 지도를 펼쳤다.
"자, 전군 준비하십쇼! 이제 들어갑니다!"
세 대의 마력헬기는 리빙필드로 뒤덮인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전투는 치열했다.
전차들이 리빙필드를 짓밟으며 연신 화포를 쏘아대고 있었고, 지상군 특공대가 건물 옥상을 장악해 몬스터들을 화력으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압도적인 광경.
키가 20미터를 넘는, 특수장갑을 입은 거인이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며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건가요?"
카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아덴만 전선에 와 있는 공인 3급 '자이언트'의 협조를 끌어내시다니……"
유신은 끌끌 웃었다.
"인맥이죠, 뭐."
치직. 이어마이크에서 잡음이 들리더니 연결됐다.
-여기는 자이언트. 약속대로 다르에스살람을 점거했다.
유신은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지휘관.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이언트."
-대마도사인가, 아크 비숍 님이 그대의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
마침 자이언트가 몰려오는 한 무리의 몬스터를 향해 팔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신성력 파장이 투콰악! 하는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가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증발시켜 버렸다.
-아크 비숍께서 그대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이번 파견에 무운을 빌지.
자이언트는 쑥대밭으로 만든 도시를 걸어갔다.
사실 그를 데리고 온건 순전히 도박이었다. 소말리아에 바티칸의 헌터가 와 있다길래 슬쩍 마르첼로를 찔러봤고, 그는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며 자이언트와 접촉했다.
마침 목표 장소였던 던전을 격파하고 쉬고 있는 상태, 자이언트는 흔쾌히 협조에 응하며 바다를 건너와 다르에스살람을 함락시켜주었다.
상당한 이득이다. 사실 유신은 다르에스살람 탈환에서 체력의 50%를 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도 풀린다.
이게 바로 외교의 중요성이란 말인가.
"바티칸과의 인맥이라니…… 얼이 빠지네요."
카림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도움을 준 적이 있었거든요."
"저랑은 다른 세계에 사시는 분 같아요."
다르에스살람은 다시 인류의 손에 들어왔다. 연맹군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리빙필드를 제거하고 있다. 유신은 지도를 보며 이어마이크를 들었다.
"사령관님. 그쪽은 어떻습니까?"
-이쪽은 사령관. '송기아'에 도착했고, 준비 만전입니다.
홍연은 직접 전차부대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송기아' 전장에서 내렸다.
송기아는 탄자니아 남부 전선에서도 네 개의 플랜트가 존재하는 핵심지역. 이미 군단장의 명령을 받은 백부장과 천부장들이 핵심지역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고 있었다.
홍연은 유신과 수신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뒤에서 걷고 있던 장웨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어후우, 하필이면 제일 빡센 곳 당첨이냐……. 싫다 싫어."
유신과 수신하고 있던 홍연이 향기 로운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장웨이 헌터님의 혈류계 능력은 다수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투는 탄자니아의 4급들 중에서 당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 등을 맡기는 겁니다."
그 말에 장웨이가 멈칫하더니 흠흠하고 머쓱한 헛기침을 했다.
"그럼, 그럼. 그래도 사령관이 뭘 좀 아시는구만! 하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장웨이가 요란하게 웃고 있는 사이, 홍연은 고개를 휙 돌려 유신 전용 채널로 접속했다.
"……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죠?"
-응, 잘 했어.
"마음에도 없는 말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실력은 좋아 보이더라.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으니까 잘 구슬려서 써먹어.
"……윽, 너무 싫어요."
-화이팅!
유신은 다음 지시를 내리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여기서도 몬스터들이 보인다. 나무그늘에 몸을 가리고 자세를 낮추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정규군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열을 맞추었고, 전차들은 포대를 세우며 진군 준비를 했다.
"그럼, 가죠."
홍연이 홀로 최전선에 걸어 나왔다.
스릉!
검집에서 청명한 울림과 함께 그녀의 애검이 눈부신 빛을 반사하며 뽑혀 나왔다.
그녀는 검을 얼굴 앞으로 세우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눈을 감고 호흡했다.
"……."
일순간 완벽한 정적이 전장을 휘감았다.
정글에 도사리고 있는 수 많은 몬스터들 앞에서, 홀로 당당히 앞으로 나와 검을 뽑아든 여인.
묘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병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등을 바라본다.
공상적인 모습이지만 지금 이 장소에 있는 누구나, 이 그림이 더 없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사람이 우리의 대장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박히는 순간,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종류의 고양감에 사로잡힌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다.
그녀의 등을 지켜주고 싶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개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단 하나뿐인 목숨. 그것을 바쳐 싸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그저 모두의 앞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사기를 끌어올리는 사령관도 분명히 존재했다.
사람들을 이끌며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숙명인 자. 사람들은 그저 그녀의 고고한 모습에 순수히 감화된다.
"……."
잠시 넋을 놓고 홍연의 등을 바라보던 한 참모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통신했다.
"사, 사령관님! 전군 준비가 끝났습니다!"
-네.
전투를 앞두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더 없이 평온했다.
복잡한 수사나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그녀는 검 끝을 몬스터에게 향하고는 말했다.
-인류를 위해.
가슴이 터질 듯이 끓어오른다. 병사들은 들끓는 마음을 터뜨리듯, 폭발과도 같은 목소리로 화답한다.
"인류를 위해!"
홍연이 이끄는 주력군이 몬스터들의 주둔지로 진군한다.
* * *
-지휘관님. 홍연 총사령관님이 교전에 돌입했습니다.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유신이 바로 이어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전 기체 발진합니다."
-라져.
홍연이 남부에서 시선을 끌어주고 있을 때, 유신이 이끄는 마력헬기 부대는 다르에스살람에서 시작해 일직선으로 비행한다.
"마력헬기의 카모플라쥬 모드를 감지하는 개체가 있다고 하니 각별히 주의하길 바랍니다."
"좌측 언덕으로 우회해서 가겠습니다. 호넷-1부터."
"호넷-6은 지시까지 포인트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신의 지시는 현란 했다. 이내 계획했던 네 개의 길목 모두에 병사들이 배치됐다. 유신도 헬기에서 내려카림, 스콜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저, 정말 길처럼 있네요."
카림이 말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리빙필드가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지도로 볼 때는 일자에 가까웠지만, 현장에 직접 와서 보니 생각보다는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대군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미아 헌터님 계십니까."
슈슉!
유신이 무전치기 무섭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바퀴가 달린 훨체어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빠르네요. 공주님."
"공주님이라 부르지 말거라! 그냥 사미아라고 해줬으면 좋겠군."
말투가 왜 저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사미아는 왕족이었다.
오버레이 사태 이후, 세계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화제보다는 한 명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는 군주제, 왕조의 부활이 세계적으로 유행이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32대에서 끝난 파라오 왕조를 다시 신 파라오 체제로 부활시켜 1대부터 시작한 이집트가 있다.
탄자니아도 마찬가지, 정식명칭을 탄자니아 공화국에서 탄자니아 왕국(Kingdom of Tanzania)으로 베꾸고 철혈의 왕정체제를 시작한다.
그러나 왕국 한복판에 떨어진 재앙에 의해 왕궁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고, 당시 반군 수장에 의해 다시 임시 공화정이 수립된다.
사미아는 20명이 넘는 왕가의 공주중 하나로, 서열은 조금 낮지만 'Princess'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양. 공주보다는 헌터에 관심이 있어 탄자니아를 대표하는 헌터가 됐다.
"이번 전투는 사미아 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음. 알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대답하며 자켓을 벌렸다. 수 많은 블루 엘릭서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대가 준 포션도 충분하고, 컨디션도 좋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사미아 님만 믿겠습니다."
유신은 다시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작전 회의 때 말씀드렸다시피 리빙필드의 제거가 1순위 목표입니다. 물론 몬스터의 방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4랭크 이하는 마력소총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만, 5랭크의 백부장부터는 절대 혼자 맞서려고 하지 마시고 사미아 헌터를 호출하십시오. 바로 텔레포트로 달려가 주실 겁니다. 다들 입감하셨습니까?"
알겠다는 대답이 연달아 들려온다.
유신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다음, 말했다.
그럼 이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신의 신호와 함께, 전 침투조 병력이 움직였다.
"몬스터다! 쏴라!"
스콜의 특수부대가 리빙필드 위를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들을 마력소총을 쏴서 제거했다. 다른 인원들은 고엽제를 리빙필드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4랭크의 뿔 달린 놈들이 온다!"
변이된 타베스 몬스터들이 소란을 눈치채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유신이 팔을 뻗었다.
<파이어 캐논>
화염구들이 하늘이 떨어져 길목에 불길을 일으켰다. 불에 닿은 부분의 리빙필드가 빠르게 수축하여길이 끊어지고 허연 땅이 드러난다.
몬스터들이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리빙필드를 넘어 달려오지는 못한다.
"지금 입니다, 스콜! 몬스터들은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 계속 남하하면서 리빙필드를 제거하세요. 저는 위로 올라가면서 태우겠습니다."
"예!"
"카림 헌터는 스콜 대위님과 동행하면서 고랭크 몬스터 위주로 제거하세요. 이거 장기전입니다. 최대한 힘을 아끼면서 싸우세요."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카림이 유신에게 척 경례를 하고는 스콜과 함께 떠났다.
치직!
-여기는 호넷-4! 리빙필드 위에 백부장이 있다!
유신은 사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댔다.
"내가 간다. 최대한 뒤로 빠져 있도록."
그녀의 몸이 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유신은 다시 고개를 되돌려 끊긴 리빙필드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몬스터들과 대면했다.
"그럼 나도 일해볼까."
햇볕보다 더 뜨겁게 이글거리는 화염구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