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43화
정규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사실상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반군 주둔지까지 도착한 이들은 기동성 좋은 마력 전차들을 앞세워 장벽을 무너뜨리고 특공팀과 헌터들을 투입시켰다.
적진 한복판에서 유신이 <가이아>마법으로 전차 대다수를 무력화시킨 상황.
거기에 사미아의 텔레포트로 옮긴 EMP폭탄으로 주둔지를 어둠 속에 몰아넣고 모든 통신체제와 전자기기까지 망가뜨렸다. 정규군은 사실상 무혈입성했다.
지휘자와의 연락도 끊기고 어둠 속에서 혼란에 빠진 반군은 정규군 정예들의 공세를 한몸에 받게 됐다.
전황은 한 번에 뒤집혔다.
"……허억! 허억! 제기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어둠 속의 시가지에서 홀로 빠져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탄자니아 반군 사령관 '음리쇼'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정규군이 공격하고 있는 반대쪽 장벽에 와 있었다. 이제 여기만 넘으면…….
"어딜 그리 급하게 가요?"
음리쇼가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 그늘로 드리워진 짙은 어둠 속에서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리쇼는 지하 감옥에 침입했던 바로 그 헌터라는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다.
"가까이 오지 마!"
철컥!
음리쇼가 권총을 꺼내며 위협했지만, 유신은 별로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대신 그는 묘한 표정으로 음리쇼를 관찰하고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오른쪽 눈과 마주치자, 음리쇼는 마치 속 마음을 읽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재밌네."
다음 순간.
유신은 아무런 반동이나 움직임도 없이 음리쇼의 코앞까지 나타났다.
그가 몸을 제자리에서 회전시키며 말했다.
"못 막으면 죽어요."
"……!"
유신의 다리가 머리를 노리며 움직였고, 음리쇼는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가드 자세를 취했다.
퍼억!
음리쇼가 입고 있던 옷소매가 찢어지며, 울퉁불퉁한 적색의 근육질 팔이 튀어나왔다. 유신은 '역시 '라고 생각하며 데바스타를 발동했다.
투콰악!
검은 충격파가 터지며 음리쇼의 몸이 바닥에 긴 자국을 그리며 저만치 밀려난다. 자세를 바로 한 유신은 그의 팔을 살폈다.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팔이 천천히 다시 붙기 시작했다. 마인이라면 흔히 가지고 있는 기술인 초재생이다.
"왜 반군만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유신이 다리를 내리며 말을 이었다.
"수장인 당신부터가 마인이었구나?"
지면을 딛고 있는 다리 쪽도 바지가 찢어지며, 울퉁불퉁한 적색 근육질의 다리로 바뀌었다. 음리쇼는 지면에 기는 자세를 취했다.
퍼억
꼬리가 튀어나오고.
까득!
주둥이가 길어지며 짐승의 형태로 변했다. 근육이 구성되고 피부가 뒤덮였다. 피부위로는 합금으로 이루어진 듯한 껍질 장갑이 신체 전반에 형성된다.
눈구덩이가 있는 부분까지 장갑으로 덮이고 징그러운 보랏빛 잇몸 아래로는 길쭉한 이빨들이 형성된다.
-끼에에에에에에!
마력의 중압감도 그렇고, 강해 보인다. 음리쇼는 공인 4급 헌터, 마인화 됐으니 원래의 힘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쉽지 않겠네.'
다 좋은데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다. 키소와 때에는 마지막에 혼절해버렸고, 다 회복되기도 전에 작전에 투입되어 이 모양 이 꼴이다.
'컨디션을 고려하면 빨리 끝내야해.'
마인이 다시 한번 제자리에서 포효한다. 유신은 자세를 낮추고 오른발에 데바스타를 켠다.
-탑주! 아래입니다!
'아래?'
유신은 돌진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퍼석! 그가 있던 자리에 몬스터의 팔이 불쑥 올라온다.
퍼석! 퍼석!
유신의 뒤쪽으로, 음리쇼와 비슷한 형태의 몬스터들이 다섯이나 지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의 자국이 보니 마인화다. 이 정도면 반군이 아니라 그냥 마인 소굴인 수준이었다.
'포위당했나.'
유신이 눈동자를 굴리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슈콰아아아아악!
밤하늘에서 시뻘건 혜성이 기다란 꼬리를 이끌며 나타났다. 그것에서 방출된 반달형의 검기가 지상으로 떨어져 마인과 반군의 전차들을 베어 넘긴다.
'홍연!'
가로질러오는 적색 섬광은 이내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홍연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가 공중에서 가속하며 검을 휘둘렀다. 음리쇼도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쩌엉
이어지는 중돌. 후폭풍으로 나무와 돌 따위들이 하늘로 비산한다. 불똥을 튀기며 힘 싸움을 하던 홍연이 뒤로 물러나 유신을 바라본다.
"선배!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응. 딱 맞게 와줬어."
유신은 그렇게 말하며 음리쇼의 팔쪽을 바라본다. 홍연의 검과 부딪혔던 그 튼튼해 보이던 합금 장갑이 충격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보스는 제가 맡겠습니다. 선배는 물러나 계세요."
홍연이 음리쇼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지금 이런 압도적인 전황을 이끌어낸 성과의 90%는 유신 혼자서 해낸 일. 더 이상 그를 무리하게 둘수는 없었다.
"하아아아앗!"
홍연과 음리쇼가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꽝!
천지가 뒤흔들리는 울림과 함께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그럼 보스는 홍연에게 맡기고.'
유신은 다섯 마리 정도 되는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음리쇼와 같은 타입의 마인, 합금 장갑을 신체 전반에 두르고 있다.
'공략 대상은 장갑이 보호하지 못하는 관절 부위.'
-키이이이이!
가까이 있는 두 마리의 마인이 먼저 달려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들의 위로 커다란 전차 두 대가 통째로 떨어진다.
-키에에에에엑!
-캬아악!
두 마인이 전차에 깔리며 피를 토했다.
"수고 많았다. 김유신 3급."
유신은 고개를 돌렸다. 왕좌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 보였다.
"사미아 헌터님!"
"감옥에서는 추한 꼴을 보여서 미안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짙은 그늘이져 있었지만, 처음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에 비하면 나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고맙다. 타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가만 있을 순 없지."
"다시 싸울 생각이 드신 겁니까?"
"조금은."
왕좌에 앉아 있던 그녀가 품에서 총을 꺼냈다.
"감옥에서의 고문으로 내 능력의 사양은 크게 변했다. 주특기였던 장거리 운송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녀가 합금 장갑으로 무장한 마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뇌의 다른 부분이 깨어나 새로운 응용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총을 쐈다. 아니, 정확히는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키에에에에에엑!
두 몬스터들이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유신은 데바의 눈으로 보고 경악했다. 총알이, 몬스터의 뇌에 파고 들어가 있었다.
"원래 텔레포트의 '좌표 겹치기'는 플레이어나 몬스터의 체내엔 사용이 불가능했다."
텔레포트 또한 마나를 기반으로 한 능력. 체내를 노리면 텔레포트 조준점이 상대의 체내에 있는 마나에 의해 흩어져 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의 변화로, 상대의 마나 한복판에 있어도 좌표 조준을 짧은 시간 유지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대단한데요!"
"흠. 물론 이전의 내 능력이 훨씬 더 좋다만…… 이렇게라도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지."
-끼에에에에에!
다른 마인이 두 사람에게 달려 들었다. 유신은 가볍게 리프 부츠를 밟아 멀찍이 물러섰고, 뒤이어 사미아도 의자째로 유신의 옆으로 텔레포트했다.
애꿎은 허공을 때린 마인이 그들을 보며 으르렁거린다.
"저쪽은 거의 마무리된 모양이군."
그녀의 말에 유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초대형 백색 뱀이 한 무리의 군인들을 하늘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마르타의 능력이다.
광장에서는 장웨이가 활약하고 있다. 반군들이 몸의 온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털썩털썩 쓰러지고 있다.
반대쪽 건물에는 체술계의 스콜피온이 대형 가위검을 휘두르며 반군헌터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세 좋네. 우리 쪽 4급들도 할 때는 하잖아.'
-끼에에에에에에!
세 마리의 마인이 유신과 사미아를 보며 달려든다. 유신이 앞으로 나온다.
"제가 붙잡아서 좌표를 고정할 테니 마무리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유신은 두 팔을 뻗었다. 소매에서 골렘볼들이 튀어나와 바닥에 박히고, 유신이 마법을 발동시킨다.
<가이아>
지면이 출렁거리며 일어선다. 유신은 대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컨트롤계 마법으로 자신의 앞에 장벽을 세웠다.
마인들은 그것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장벽으로 돌진했다.
쿠쿠쿠쿵!
한 번의 몸통 박치기에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정확히는 녹아내려서 마인들의 몸을 감쌌다.
<머드 세일>
장벽은 점성이 있는 것처럼 마인들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마인들은 힘으로 진흙을 헤쳐나오려 했지만.
덥석! 덥석!
진흙에서 빠져나온 골렘들의 튼튼한 팔이 마인의 허리와 팔다리를 붙들었다.
가이아로 만든 지면 안에 아까 박아 두었던 골렘볼을 섞어둔 것이다.
유신은 그대로 키워드를 발동했다.
<동상화>
우드드드득!
머드 골렘들이 형태와 움직임을 포기하고 그대로 동상처럼 굳어졌다.
유신은 가이아를 이용해 지면을 둥글게 빚은 채로 마인의 머리만 빼꼼 내밀게 했다.
"경이로운 컨트롤이다."
사미아가 감탄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딱 마무리만 하면 됐다. 그녀는 권총을 들고 마인들의 뇌 안으로 총탄을 직접 박아넣었다.
고통에 울부짖으며 버둥거리던 마인들이 이내 축 늘어졌다. 유신은 가이아를 해제하고는 남은 마나를 갈무리했다.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신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홍연이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는 검집에 넣고 있었다.
"음리쇼 사령관은?"
그녀는 말없이 턱짓 했다.
'세상에.'
음리쇼였던 것이 조각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흘러나온 피가 주위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를 보니 그리 고전하지도 않은 모양. 음리쇼가 생각보다 약했던 걸까, 이 녀석이 너무 강한걸까.
"흑익 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홍연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흑익은 무슨, 그냥 사미아라고 불러다오."
"네."
"그럼 나는 지하 감옥에 다녀오겠다. 그쪽 사람들이 걱정되는군."
사미아는 그렇게 말하곤 의자째로 사라졌다. 이제는 유신과 홍연 둘만 남게 됐다.
"슬슬 사태도 마무리되는 것 같네."
유신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홍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여기는 홍연 3급. 반군 사령관 음리쇼를 사살했습니다. 음리쇼는 마인이었으며 그의 부하들 또한 정체를 숨기고 있던 마인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저항세력의 항복을 유도하십시오."
-카피.
-수신 양호.
진지한 얼굴로 수신을 마치고 이어마이크를 끈 그녀는 재빨리 유신에게 뛰어갔다.
"상처는? 다친 곳은 없어요?"
유신의 몸은 정글에서 며칠 살다온 사람처럼 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홍연은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유신의 상처를 확인했다.
사령관 노릇을 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신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멀쩡해."
"정말이죠?"
"응. 사실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 이 컨디션으로 마인으로 변한 음리쇼에, 저 부하들까지 나 혼자 잡았으면 아프리카 파견 2기절째 적립했을 걸?"
"……."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2기절째라니,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뭐, 그런 경험이 많거든. 멘탈로 싸우는 마법사는 은근히 극한 직업이라서."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막겠습니다."
홍연이 말했다.
"더 이상 선배가 무리해서 기절하지 않도록, 제가 더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그거 고맙네."
그때 이어마이크로 본부에서 사령관의 지시 사항에 대한 질문이 추가로 왔다.
-사령관님, 반군 주요 간부들을 다수 붙잡았습니다. 항복한 반군의 처우는 어떻게 할까요?
그녀는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려 두고 막힘없이 대답했다.
"사령관입니다. 처분은 지휘부 회의에서 결정할 겁니다. 항복한 반군들은 인도적으로 차량에 실어 무트와라로 운송하십시오. 마인이 섞여있을지도 모르니 방심은 안 됩니다. 반군 중에 싸울 수 있는 헌터가 있는 지도 파악하세요."
그녀가 무전을 끄고 고개를 돌리자 유신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뭐, 뭐예요."
"아니. 생각 이상으로 잘 한다 싶어서."
"그건 그렇고 우리 작전,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판을 까신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깔려고 했는데 갑자기 훌리안이 죽고 판이 깔아져 버렸다고."
그래서 유신은 이어마이크로 그녀의 채널을 연결한 채로 회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마디로, 이거 네가 와서 다 조져놓으라는 소리였다.
그가 의도 했던 대로, 홍연이 격분해서 나타나 회의장을 싹 엎어버리고 훌리안의 뒤를 이어 사령관이 됐다.
이후 그녀는 유신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그의 전략을 강행시킨다. 그렇게 지금과 같은 대승을 끌어냈다.
이제 탄자니아는 유신과 홍연, 한국에서 온 두 헌터가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빨리 뒷마무리하고 쉬러 가자."
"네!"
두 사람은 다시 시가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