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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41화 (141/337)

나 혼자만 마탑주 141화

나는 홀로 윙 골렘을 타고 반군의 주둔지인 '탄바힘바'로 이동했다.

윙 골렘의 엔진으로 사용되는 정제마정석이 전부 소모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근처까지 도착했다.

지상에 내려와서 천천히 걸어가니 얼마 안가 반군의 주둔지가 보인다.

도시는 키소와 때처럼 튼튼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로는 흉흉한 포문들이 뻗어 있다.

나는 데바의 눈을 확장시켜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역시 경비가 막 삼엄하진 않네.'

-그래 보입니다. 하지만 경계병들이 군데군데 마력소총을 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입하시겠습니까? 탑주.

'방법이 있지.'

나는 제자리에서 오른팔을 뻗었다.

<물의 장막>

대기의 수분이 찰랑거리며 모여들더니 내 앞을 가리는 커다란 거울같은 것을 형성했다.

안톤의 오리지널 마법인 수속성 환영계. 앞에서 보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처럼 보인다.

'가자. 에아.'

-네, 탑주.

데바의 눈으로 주위를 한 번 더 꼼꼼히 살핀 후, 최대한 경계가 느슨한 장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이렇게 보니까 장벽 앞으로 뻗어 있는 흉흉한 포대들이 무척 위협적이다.

그냥 규칙성 없이 앞으로 배치됐을 뿐이지만, 마치 내가 다가오는 걸 알고 이쪽을 조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장에라도 저 포문에서 포탄이 날아올 것 같은 상상을 하니 식은 땀이 흐른다.

철컥.

그때 한 근무자가 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는 식겁해서 걸음을 멈췄다.

"……."

숨까지 참으며 제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기다렸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내가 있는 곳을 포함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내 다시 경계루트를 따라 걸어갔다.

'휴우우.'

역시 암살자니 스파이니 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심장에 너무 나쁘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힘겹게 장벽앞으로 도착했다. 잘 써먹은 물의 장막을 거두고 장벽을 올려다본다.

'생각보다 높네.'

마음 같아선 데바스타나 리프 부츠로 확 뛰어넘고 싶지만, 그러면 큰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차선으로 양손과 발에 '부착의 룬'을 베이스로 간이 마법진을 착용한 다음, 천천히 벽을 타고 올라갔다.

벽에 붙어야 할 때는 마법진을 활성화하고, 발을 떼거나 팔을 뻗을 때는 비활성화하면 된다. 다리 힘을 사용하니 쭉쭉 잘 올라가진다.

'없지?'

-예. 없습니다.

경계병들이 다른 쪽으로 걷고 있는 사이, 얼른 장벽을 뛰어넘어 주둔지에 진입했다.

'일단은 잠입 성공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냈다.

정규군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둔지의 첩보 지도. 여기에 정규군 인사들을 가둬놓은 감옥의 위치가 추정되어 있다.

내 목표는 주둔지에 잠입해 있다가 홍연의 정규군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반군의 시선을 끌고 혼란에 빠뜨리는 거지만, 일찍 온 김에 중요한 미션 하나를 수행할까 한다.

타깃을 탈옥시키면 이번 작전에도 도움이 될 테고.

'여기가 북쪽이니까…… 이쪽이네.'

기척을 죽이고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벽 너머로 두 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잡담을 나누며 지나가고 있었다.

코어 통역기를 작동시키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들었어? 백익 님이 훌리안을 암살했다는데."

"흐흐! 정규군 놈들, 식겁했겠군!"

나는 낄낄거리며 지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빠르게 반대편 건물로 내달렸다.

-탑주. 지도에 나온 위치까지 앞으로 300m 입니다.

'오케이.'

새벽이라 그런지 인적이 전혀 없었다. 좁은 건물 사이를 신속하게 가로질러 어렵지 않게 목표 지역에 도착했다.

평범한 식당처럼 보이는 2층 건물.

그러나 이 아래는 지하 4층까지의 대규모 지하 감옥이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다른 곳과는 달리 마력소총을 든 경계병 둘이 지키고 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윈드포트>

한 줄기의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를 휘감아 채며 꾸욱 달라붙는다.

"끄웁!"

그대로 입을 막고 경동맥을 강하게 자극해 두 사람을 기절시켰다.

이후 소리 없이 달려가서 쓰러진 두 사람을 잘 보이지 않도록 건물 안쪽에 밀어놓고는 수색을 계속 했다.

'찾았다!'

건물 안에 지하로 향하는 듯한 철문을 발견했다.

마침 감옥의 위치도 주둔지의 딱 중앙쯤 되는 곳이니, 여기서 반군의 시선을 끌어보기로 했다.

나는 헌터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은밀한 곳에 4공정 마법진을 깔아두는 사전 작업을 했다.

'좋아, 가자.'

-조심하십시오, 탑주.

아까 두 간수의 품에서 챙긴 열쇠로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나는 데바의 눈 기능을 최대한 확장시키며 걸음을 옮겼다.

-탑주. 지하에서 다수의 생명 반응이 느껴집니다.

'간수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따로 구분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괜찮아. 여기까지 내려왔으면 이제 내 마음대로 깽판 쳐도 돼.'

나는 남들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계단을 내려왔다.

"음? 누, 누구냐!"

계단을 모두 내려와 복도 쪽으로 들어서자, 앞에 보이는 간수가 기겁하며 총을 겨누었다.

"여긴 어떻게……!"

나는 웃는 얼굴로 위를 가리켰다.

파박!

천장에서 내려온 레피드 에로우가 간수를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주위에 있던 다른 간수들이 부산스럽게 뛰쳐나오며 총을 겨눈다.

"움직이지 마! 손들어!"

"시키는 대로 할게."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순순히 두 팔을 들었다. 기껏 시키는 대로 해줬는데, 간수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겁먹은 듯 덜덜 떨고 있었다.

<스핀 가이드 에로우>

그도 그럴 게 내 뒤에는 마법진과 함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화살들이 떠올라 있었다.

-타깃 지정 완료. 사격 개시.

에아가 화살들을 발사했다.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타격음들이 들리기를 잠시, 간수 전원이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생각보다 감옥이 넓네.'

주위를 둘러보니 복도의 좌우편 모두가 감옥이었다. 창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며 뛰어왔다.

"누, 누구야? 정규군인가?"

"나 좀 구해줘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아이가 있어요!"

단번에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나는 에아에게 물었다.

'여기 있어?'

-여기엔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 갇힌 대부분이 범죄자라기보다는 탄자니아 정규군이거나 민간인 인질이다.

구해주는 거야 문제없지만, 괜히 이 사람들이 흩어져 출구로 뛰어 올라가는 등 통제가 안 되면 곤란하다. 나는 아래층에 먼저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이동했다.

나머지 층의 경과도 비슷했다. 각층마다 대기하고 있던 간수들이 덤벼들었고, 나한테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2층 격파.

3층 격파.

'가장 위험한 죄수는 보통 최하층에 있던데. 이번에도 그렇겠지?'

-그랬으면 좋겠군요.

마지막 4층으로 내려왔다. 다른 층에 비해 갇혀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었다.

곳곳에서는 말라붙은 핏물과, 고문도구들이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감옥이 아닌 고문실로 쓰고 있는 칸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지키고 있는 간수는 단 한 명 뿐이었다.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는 나무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남자가 말했다.

"간도 크게 홀로 탄바힘바에 들어오다니, 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한국의 3급 헌터로군."

"맞아."

"우리 측 경비가 느슨한 시점에 들이닥친 건 제법이지만."

그가 무전기를 흔들어 보였다.

"이미 상부에 침입자가 들어왔다고 보고 했네. 반군의 모든 전력이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지."

"아하."

"물론 나를 쓰러뜨리고 흑익을 탈옥시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겠지? 미안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네. 흑익은 더 이상 '그 능력'을 쓸 수 없어. 우리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분질러놨으니까."

"유감이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기대어둔 헌팅 디바이스를 손에 쥐었다.

"자네는 나 압둘 모하데드 5급을 이길 수 없을……!"

쾅!

나는 데바스타를 박차고 날아가 삼류 악당 대사를 나불거리는 놈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 넣었다.

지하 감옥이 들썩거렸다. 압둘의 머리는 벽을 박살 내며 그대로 박혔고, 그의 엉덩이는 경련하듯 떨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어후, 웬만하면 끝까지 들어주려 했는데 못 참았다.

압둘인가 뭔가 하는 놈을 쓰러뜨리고 고개를 돌려본다.

감옥에는 한 여인이 양팔을 사슬에 결박당한 채 매달려 있다. 여기 와서 흔히 보던 탄자니아인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조금 혼혈 같다는 느낌이 든다.

-탑주. 이 사람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누구……"

눈을 뜬 그녀가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곳곳에 고문의 흔적이 가득했다.

"연맹군 파견 헌터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잠시 물러서세요."

나는 오른발을 들어 데바스타를 켠 다음, 그대로 창살에 닿게 했다. 검은 파장이 폭발하며 창살이 수수깡처럼 구겨지거나 박살 났다. 그러고는 감옥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팔을 묶고 있던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털썩.

구속구를 풀자마자, 그녀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 사람이 바로 탄자니아의 둘뿐인 공인 3급이자, 흑익이라는 이명을 가진 헌터. 사미아다.

"목마르시죠?"

상처 회복도 겸해서 나는 레드 엘릭서를 한 병 꺼내 내밀었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곧 흐리멍덩했던 눈에 조금은 생기가 돌아왔다.

"아까 그 간수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능력은 '텔레포트'.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유 능력 중 하나다.

다만 같은 텔레포트 능력이라도 개인에 따라 그 세부 효과나 특성, 성향 등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한때 곁에서 그녀를 보조했었던 카림의 말에 따르면, 사미아는 다중 이동과 물체의 장거리 운반에 특화된 텔레포터라고 했다.

"……작전은 뭐지?"

그녀가 물었다.

"당신을 감옥에서 구한 뒤, 당신이 제 동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겁니다."

홍연이 이곳 탄바힘바 한복판에 떡하니 강림해 주면, 전황은 두말할 것 없이 바뀐다.

"미안하지만 내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던 기이한 선이 달린 헬멧을 내려놓았다.

"이건 특수파장으로 사람의 뇌를 흔들어 놓는 장치다."

"……아."

들어본 적 있다. 가끔 끔찍한 죄를 저지른 헌터들의 고유 능력을 말소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장치.

어떤 연구소에서는 비전투 능력자에게 이걸 씌워서 능력 변이를 유도하기도 한다는데, 능력자는 커녕 백치가 됐다고 들었다.

"나도 내 능력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군."

그녀는 빈 포션 병을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그러고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빈 병이 사라지고 복도 한쪽에 툭 떨어졌다.

"……음."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뭔가 안 좋나? 그녀가 연달아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5분간,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진단했고.

"나는 끝났다."

스스로 결론 내렸다.

"물체의 텔레포트 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내 몸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늘어났지만, 이 출력으로는 타인과의 동시 이동도 불가능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좌절감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나는 다리를 잃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에는 나도 심장이 철렁했다.

능력의 출력 약화에,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까지.

눈을 꾹 감은 그녀는 좌절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헌터로서 내 수명은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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