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40화
"……."
탄자니아에 와서 첫 발언.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스콜피온이 대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시지요."
"처벌도, 수습도, 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 암담한 상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럼 김유신 3급은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을 알고 있단 말입니까?"
"예."
나는 깍지를 끼며 말했다.
"지금 당장 반군을 치는 겁니다."
"……!"
모두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군은 이번 야습에 꽤 큰 전력을 쏟아부었습니다. 특공대 병력은 물론 공인 헌터까지. 심지어 그들의 에이스인 백익이라는 3급 헌터도 여기 온 것으로 추정되더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놈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반군은 우리가 피해를 수습하느라 바쁘다고 생각하겠지, 설마 이 타이밍에 공격이 들어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겁니다. 그 허를 찌르는 거죠."
그냥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수동적인지를.
반군은 주적인 정규군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우리가 빠르게 움직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활을 멘 헌터가 입을 열었다.
"놈들이 이 타이밍의 반격을 예상하지 못할 거라는 건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예상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죠. 그냥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고, 부상자도 많고, 도시가 불타는 상황에서 공격이라니! 확실히 기습 공격 효과는 있겠습니다만, 딱 그것뿐. 놈들은 30분 이내에 방어 채비를 마치고 반격해 올 겁니다."
"반격 못하게 만들면 되죠."
내가 간단히 대꾸했다.
"제가 단독으로 반군의 주둔지에 잠입하겠습니다."
"……뭐, 뭐?"
"키소와에서 제가 했던 일은 아시죠? 뭐, 민간인도 있어서 그때처럼 화산을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반군의 시선을 끌면서 전차 같은 차량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있을 겁니다. 그 후에 여러분이 기갑부대를 이끌고 들이닥쳐서 맛있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그냥 예상치 못한 기습을 거는 정도가 아니다. 저쪽도 헌터들이 지쳐 잠든 사이에, 내가 들어가서 깔끔하게 무력화 상태로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하이고, 무슨 제갈량 나셨습니다 그려."
장웨이가 뺀질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고 철없어도 급수 때문에 대우해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좀 너무 한 거 아니유?"
"뭐가 말입니까?"
"이건 놀이가 아니라 전쟁이야. 이제 파견 이틀 차가 현장에 대해 뭘 알아요? 헌터님 내키는 대로 휙휙 한다고 모든 사태가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성이 없잖습니까. 현실성이!"
장웨이가 팔걸이를 쾅쾅 치며 말했다.
"방금 야습으로 우린 사령관을 잃었어! 최고 대장을! 게다 가 봤잖아요. 지금 밖에 불타고 난리 난 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군대를 일으켜?"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턱을 괬다.
"왜 못 일으키죠? 총 병력이 수만 인데, 지금 사상자 서른 명 남짓 된다고 군대를 못 일으킬 이유 있습니까?"
"이래서 현장을 너무 모른다고 하는 겁니다! 군을 일으킬 분위기 가……"
"못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안 하는 거겠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장웨이가 발끈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자, 잠깐잠깐."
마르타가 중재를 위해 나섰다.
"김유신 헌터님의 의견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좋다고 쳐도 몬스터들이 걱정이에요. 우리가 반군을 치려고 무트와라를 비웠다간 몬스터들이……"
나는 말 없이 서류 한 장을 툭 내밀었다. 에아가 조사한 자료를 정서진이 메일로 보내고, 여기 오기 전에 인쇄해둔 것이다.
"이건……"
"리빙필드 분포돕니다. 군 지휘부에서 가져왔어요."
리빙필드가 도시 근방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최근에 제거팀이 움직여 근방으로 뻗어오는 리빙필드를 모두 제거한 것으로 안다. 몬스터가 어쩌고 하는 건 다 변명에 불과하다.
"됐죠? 리빙필드의 분포속도를 고려해도, 우리가 잠시 여길 비우는 그 반나절 사이에 놈들이 도심지 안으로 쳐들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신 정말로……"
네, 정말로 칠 생각 만만입니다.
그때 장웨이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무리수야!"
"그럼 X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래?"
슬슬 짜증이 났다.
"우리는 구심점인 훌리안을 잃었어! 어제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더 상황이 나빠! 사기도 최악이고, 의지도 희망도 전무해! 선례가 생겨버렸으니 사람들은 밤마다 두려움에 떨거고, 도시를 지킨다는 명목에 갇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해 우리 모두 여기서 죽겠지."
"……."
"정확히 오늘 밤이 분기점이야. 반군을 없애고 다음 단계로 갈 건지, 아니면 그냥 여기서 다 뒈지든지. 미루지 말고 결정해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다들 내 말을 한 번 정도는 머릿속에 굴려보는 듯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병력을 일으키는 것도 그렇고! 당신 혼자서 삼엄한 반군 주둔지에 침투하는 것도 그렇고! 전부 실현 불가능한 소리뿐이야!"
"외부인이 탄자니아 전선에 대해 뭘 안다고!"
웅성웅성.
웅성웅성.
역시나. 사람이란 동물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뭐, 처음부터 말 한마디로 어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럴 땐 한번 뒤집어엎어야 하는…
콰아앙!
갑자 기회의실 문짝이 날아와 벽에 부딪혔다. 방에 있는 창문이 전부 박살 났다. 모두가 기겁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습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이 차박차박 회의실로 들이닥쳤다. 온몸이 폭발로 인한 그을음과 흙더미로 가득했다.
얼마나 거친 전투를 겪었는지는 지금 그녀의 모습만 미루어봐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그렇게 현실만 늘어놓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죠?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 다 하고 자위나 하는 건가요?"
"……."
그녀가 고개를 들자 살벌하기 그지 없는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좌중을 완전히 압도한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 모두의 앞에 섰다.
"훌리안 사령관은 죽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탄자니아 전선 지휘부의 사령관입니다."
"뭐, 뭐라고?"
"불만 있는 사람이 있다면."
스릉.
그녀의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검이 서슬 퍼런빛을 발했다. 붉은 마력이 섞이며 검신이 불타듯 끓어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요."
"……."
지독한 정적이 일었다.
역시 그 언니의 동생. 평소엔 얌전해 보여도 그 성깔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어이구 잠깐만! 아가씨.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장웨이가 손을 휘휘 저으며 다가왔다.
"조금만 진정하고……"
스릉!
붉은 섬광이 일직선으로 내려오자 장웨이는 경악한 표정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경험을 했겠지만, 갈라지는 건 옆에 있는 탁자뿐이었다.
"장웨이 4급. 다음부터는 공적인 자리에서 저를 부를 때 격을 갖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옙!"
다들 당황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차기 사령관은 스콜피온이나 장웨이로 생각하고 있었지 않나?'
'아무리 3급이라도 파견 이틀 차에게 맡기긴 좀.'
그들의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얼어붙은 상태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웨이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이, 이봐요! 어거스틴 장군!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이건 쿠데타라고!"
"……."
탄자니아 정규군을 이끄는 어거스틴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가 팔짱을 꼈다.
"헌터들 문제에 우리가 끼는 것도 좀 그렇지만, 홍연 헌터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소."
"뭐라고?"
묘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헌터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홍연 헌터는 저번 7랭크 던전사태에서 우리 탄자니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소. 병사들도, 국민들도 그녀가 새로운 총사령관이라면 납득할거요."
홍연은 탄자니아의 영웅이다. 여기서 타베스계 몬스터들과 싸웠던 헌터들은 잘 몰랐겠지만, 그때 그 7랭크 던전이 공략되지 않고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왔더라면 무트와라가 이렇게 멀쩡하지도 못했으리라.
굳이 어거스틴에게 의견을 구한 건 한심한 선택이다. 장웨이.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어거스틴 장군."
홍연이 가볍게 목례하고는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구질구질하게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저를 제치고 사령관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굳이 제 서열을 넘어서서, 스스로 사령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가게 이야기해 보시죠."
"……."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저도 새로운 사령관에게 복종하겠습니다."
주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역시 홍연. 흥분한 상태로 회의실에 들어왔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은 패배감에 찌들어 남들 의견에 비난만 퍼부을 줄 알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 잠자코 있던 스콜피온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동의합니다."
스콜피온이 홍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기 사령관은 홍연 3급이 되어야 합니다. 실력과 인망을 모두 갖춘 젊은 헌터. 그녀보다 우리를 이끌기에 적합한 사람은 없소."
웅성웅성.
가장 유력한 차기 사령관이었던 스콜피온이 홍연의 편을 들어줬다. 장웨이가 이를 악물며 스콜피온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대세는 넘어왔다.
"그럼 결정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 순간부터 제가 여러분을 지휘합니다."
검을 집어넣은 그녀가 상석을 차지 해 앉았다. 모두의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분위는 또 다른 느낌을 냈다.
"김유신 3급."
홍연이 나를 보았다.
"아까 하던 말씀, 계속해 보시죠."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수가 있긴 했지만 큰 틀은 계획대로 됐다. 홍연은 내 말에 따르고, 내 움직임에 딴지를 걸 사람도 없다. 그것이 밝히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작전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탄자니아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