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39화
반군들은 그냥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특공대팀만 보낸 게 아니라 공인헌터 같은 중요 전력까지 보냈다.
그리고 헌터를 잃으면 몬스터전에서 데미지가 클 터, 진짜 몬스터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는 건가?
타아앙!
탕!
타당!
위층에서 총성이다. 전투가 벌어진 모양.
나는 지체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탑주! 4층입니다.
'오케이!'
바로 4층으로 올라와 달렸다. 총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복도를 내달리는 와중에 정규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총에 맞아 죽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달려서 복도를 돌아가는 순간, 뒤에서 유령 같은 인기척이 느껴진다. 눈동자를 굴리니 총구가 내 뒤통수로 다가오는 게 보인다.
타앙!
총구가 서슴없이 불을 뿜는다. 쉴드를 펼쳐 막고 총을 쥔 손을 붙잡는다.
그대로 손아귀에 마나를 끌어모아 힘을 주자, 비명 비슷한 것이 튀어나오며 총이 바닥에 떨어진다.
스릉!
이번에는 반대쪽 손에 블레이드 디바이스가 형광빛 섬광을 뿜어낸다.
나는 빠르게 상대의 뒤로 돌아가 붙잡은 상대 손목을 뒤로 고정시키고 그대로 강하게 벽으로 밀쳤다.
쾅!
벽이 흔들리며 '컥!' 하는 신음이 튀어나온다. 그 와중에도 검을 놓치지 않고 뒤쪽의 나를 노리려는 의지는 좋았지만, 손목을 잡아채는 것으로 무력화시킨다.
<마나 드레인>
이 상태로 굳히기에 들어간다. 상대의 몸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상대의 두 손목을 뒤로 돌려 붙잡고 바닥에 거칠게 무릎 꿇렸다.
"반군의 헌터, 여기 잠입한 목적이 뭐지?"
"……."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
"기, 김유신 헌터님?"
뭐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살폈다. 쓰고 있는 마스크를 벗겨보자 내가 아는 얼굴이다.
"……카림 씨?"
상황 파악을 위해 두뇌가 불똥을 튀기며 돌아간다. 분명히 그녀 쪽에서 먼저 날 쐈다. 순전히 날 적군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반군의 끄나풀일 가능성도 있으니 섣불리 손을 놔줄 수는 없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시뻘게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으며 사과하는 그녀의 반응은 뭐랄까…… 알기 쉬웠다.
"말해봐요."
"추격 중이던 반군을 뒤쫓아서 막사에 들어왔습니다. 아군 복장을 입은 반군과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또 다른 상대가 튀어나와서 그만……. 반군의 공인 헌터인 줄 알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의 개연성은 있다. 나는 일단 그녀의 손목을 놔주며 손가락을 세웠다.
"자, 두 손 위로 번쩍."
그녀도 잘못했다는 걸 아는지, 순순히 두 팔을 귀에 착 붙였다.
"허락 없이 내리면 안돼요."
그녀의 팔을 세워놓고, 나는 총에 맞아 쓰러져 있던 시체에 다가가 신분을 확인했다. 이름은 마수카.
'에아. 탄자니아 정규군 데이터 정도는 간단히 훔쳐볼 수 있지?'
-긍정. 이미 루트를 확보해뒀습니다. 언제든 데이터망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정규군 목록에 이 사람 찾아 줘.'
-Yes. 마수카라는 이름으로 검색중. 검색 완료. 화면을 출력합니다.
에아가 마수카라는 사람의 얼굴 화면을 띄웠다. 눈매부터 골격까지, 여기 죽어 있는 사람과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이 녀석은 옷만 훔쳐 입은 반군이 맞다.
나는 이번엔 이어마이크를 붙잡고 탄자니아 정규군 무전기 채널로 돌렸다.
"여기는 김유신 3급. 카림 5급의 가장 최근 보고를 알려주기 바람. 이상."
치직. 치직.
잠시 후 무전이 돌아왔다.
-여기는 본부, 카림 5급은 반군 병사들을 뒤쫓아 중앙 막사 건물로 침투했다고 알림. 이상.
그녀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나는 허탈한 미소를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카림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제 팔 내려도 좋아요."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팔을 내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됐어요. 정신없는 와중에 그럴 수도 있지. 설 수 있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
그러다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자세히 보니까 허리 쪽에 총상이 있었다. 나는 슈트 포켓에서 포션을 골라 적색과 청색 두 병을 꺼냈다.
"이거 쓰세요."
"이건……"
"포션이라고 해요. 빨간 거는 상처부위에 바르시고 파란 거는 바로 드시면 돼요. 아니다, 내가 부어줄 테니까 잠시 누워봐요."
그녀는 시키는 대로 옆으로 돌아누웠다. 나는 그녀의 상처에 중급 엘릭서를 부었다. 상처에 닿자 치이익 소리가 나며 그녀가 '윽!' 하고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요?"
"괜, 괜찮습니다!"
점점 상처가 아물어간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힐링?"
"비슷해요. 병에 담아 뿌리는 회복 능력 같은 거죠. 자, 이제 일어나셔서 파란 것도 마시세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블루 엘릭서를 들이켰다.
"……와, 체내에 마나가 쌓이고 있어요! 한국 헌터들은 신기한 헌터장비를 쓰는군요!"
"언젠가 탄자니아에도 보급될 날이 올 거예요. 자, 갑시다."
우리는 신속히 건물을 돌아다녔다.
숨어 있던 쥐새끼 두 명을 처리했지만, 딱 그뿐. 전투의 흔적은 이곳저곳에 많았지만 정작 반군은 도망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6층은 전투의 흔적이 유독 많았다.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사방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몸이 조각조각 나 있고 단면이 깔끔한 걸 보니 총알이 아니라 헌팅디바이스에 당했다. 나와 카림은 시체를 피하며 걸음을 옮겼다.
전투의 흔적은 한 방에서 끝나 있었다. 수신호를 보내자 카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들어 올렸다. 나는 한 번에 문고리를 당기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
끔찍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침음이 튀어나왔다. 뒤따라온 카림은 작게 비명까지 질렀다.
사람의 시신이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팔다리는 말뚝 같은 것에 박힌 채 대자로 벌어져 있었고 심장에는 훌리안이 쓰던 커다란 검 한 자루가 박혀 있다.
카림은 입을 가리며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침통한 심정으로 이어마이크를 작동시키고 말했다.
"여기는 김유신 3급. 훌리안 사령관의 시신을 발견했다."
* * *
무트와라는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정규군의 모든 병사들이 동원되어서 도시 전역에 난 불을 껐다. 간신히 화재는 진압되어 갔지만, 무기고는 불탔고, 자료는 소실되었으며 무엇보다 총사령관 훌리안이 끔찍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거기에 인명과 자산 피해와는 별개로 이번 야습은 병사들과 민간인 모두에게 심적으로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한밤중에 긴급 헌터 지휘부회의가 소집되었다. 나와 카림도 참여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소."
애꾸눈의 4급 헌터, 스콜피온이 고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 무트와라가 야습 따위에 뚫렸고, 심지어 훌리안 사령관이 전사하셨소. 우리는 숫자로 추산된 것 이상의 치명적인 피해를 받았소. 무엇보다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오."
가만히 있던 한 헌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장 해당 시간에 근무를 섰던 병사들을 엄벌해 처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병사들은 물론, 무트와라 방어진을 담당했던 헌터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의수 팔을 끼릭끼릭 돌리고 있던 웨인 존스가 갑자기 고개를 퍼뜩 들었다.
"응? 아니, 잠깐!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 수비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처사요! 하긴, 허구한 날 마약이나 하고 해롱해롱하는 자가 어떻게 경계근무를 지휘합니까? 눈앞에 오는 놈도 못 보겠다."
"이게 지금 뒈질라고!"
우당탕탕!
쾅!
두 헌터가 멱살을 붙잡고 헌팅 디바이스를 꺼내려 하자 주위에서 기겁하며 뜯어말렸다.
"워어, 워어, 그만 그만!"
장웨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가슴을 밀어냈다.
"벌도 좋지만, 일단 사태 수습이 더 중요하지, 안 그래요들?"
"어떻게 수습하겠다는 건가?"
스콜피온이 물었다.
"그냥 해온 대로 하는 거죠. 붙잡은 반군 놈들 고문하고 있다며? 그런 거 백날 해봐야 소용없어요. 중요 사항은 위에서 안 알려주거든. 걔들은 훌리안을 공격하는지도 모르고 집에 불 질러라 해서 지른 놈들이야."
"그래서?"
"고문은 쓸데 없으니까 날이 밝는 대로 광장에서 처형합시다. 처형쇼를 대대적으로 한번 거창하게 벌여보자고. 처형하기 한 삼십 분 전에 돌팔매질 타임으로 국민 참여 유도하고, 이후엔 모두가 볼 수 있는 광장에서 고문하고, 욕보이고, 울부짖도록 하는 거야. 그러면 민중들의 분노도 가라앉히고, 볼거리도 제공하고, 또 그 사람들에게 묘한 공포감도 줘서 통제력을 강화하는 거지."
"이봐요, 장웨이."
목에 뱀을 휘감은 4급 헌터 마르타가 말했다.
"우리가 세계 헌터 연맹군 소속이라는 걸 잊었어요? 그런 야만적인 짓이 허용될 것 같아?"
"에이, 마담.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연맹군 소속이 뭔 소용입니까? 연맹군이면 몬스터가 우릴 안 죽이기라도 하나? 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죠? 그냥 당신의 저급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 아닌가?"
"오, 그것도 정답."
장웨이가 고개를 돌려 카림을 바라보았다.
"이봐, 카림 5급."
"네!"
"포로 중에 여자들도 있겠지?"
"그렇습니다만……"
"그거 좋네! 처형쇼는 내가 직접 지휘하겠어! 다들 그거 알지? 좀 옛날 방식인데 꼬챙이에 꿰어 죽이는……"
"지금 그딴 소리를 할 때가 아니오! 사태를 수습해야 할 거 아니오! 수습!"
"일단 무트와라 야간 근무조와 그 지휘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우선이에요!"
"아 씨! 왜 자꾸 지휘자를 들먹여!"
장웨이는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옆에서는 여전히 두 헌터가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의견이 충돌하며, 다들 삿대질을 하고 언성을 높이기 바빴다. 회의에 참여한 두 정규군 장군도 말릴 생각이 없는 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군요. 탑주.
'그러게.'
이런 사람들이 윗대가리랍시고 앉아 있는데, 지금까지 탄자니아가 버틴 게 용할 지경이다.
유일하게 이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훌리안마저 사라졌으니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리라.
나는 제자리에 마법진을 띄우고 1공정 '윈드커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제하면서 바람을 주위로 퍼뜨렸다.
"우왓!"
"뭐야?"
갑자기 실내에 바람이 몰아치자 모두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조용히 오른팔을 들었다.
"제가 한 말씀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더 이상 못 봐주겠다.
지금 당장 판을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