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38화
나대용이 눈을 감고 두 손을 앞으로 척 뻗었다. 나는 데바의 눈으로 그의 몸에 두르고 있는 서클을 확인했다.
'서클이 두 개?'
"하아아압!"
그의 손바닥 앞으로 펼쳐진 마법진에서 조그마한 불씨가 튀어 올랐다.
틀림없는 파이어 캐논이었다.
"해냈군요. 대용 씨!"
"하하하하! 전부 스승님 덕분임다!"
결국 4층팀 다섯 명중 처음으로 2서클에 도달한 건 나대용이었다.
그 말은 즉, 이 4층팀의 관리자는 나대용으로 결정된 것이다.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대용 씨!"
다들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었다.
나대용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껄껄 웃었다.
-탑주.
'왜 그래? 에아.'
-서기관이 도착했습니다. 4층팀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와 주시겠습니까?
'응. 그럴게.'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모두에게 말했다.
"에아가 부르네요. 같이 1층에 내려 가 보죠."
"네!"
마법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자, 모두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정서진과 진보라가 아이스박스에서 막걸리를 꺼내고 있었고, 테이블에 펼쳐져 있는 건 피자박스 같은 케이스에 담긴 초대형 해물파전이었다.
"와! 서진아, 이게 다 뭐야?"
"파전 드시고 싶다 하셔서 파전 전문점에서 포장해 왔습니다. 다들 아직 퇴근 안 했다고 해서 좀 많이 사 왔죠."
"오오오오오!"
"서기관님 최고!"
역시 정서진! 이런 사소한 일 처리도 최고다.
"접시 가져 올게요!"
"잔도 가져와. 컵은 없나?"
"여기 봉투에 종이컵 있어요! 사장님 센스 있네."
우리는 빠르게 세팅을 마쳤다. 다들 종이컵에 막걸리를 붓고 접시를 하나씩 앞에 놓았다.
"자, 그럼 마시기 전에 중요한 행사 하나만 진행할게요."
"……?"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대용 씨. 앞으로."
"아!"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모두가 환호를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나대용은 머쓱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나는 영지창을 열었다.
<에렌델의 마탑>
영주 : 김유신.
발전도 : 중.
총인원 : 9명.
보유 마력 : 13, 705, 604.
제1층 : 포션조제국 / [포션조제관: 진보라]
제2층 : 대서재 / [서기관 : 정서진]
제3층 : 골렘 공방 / [수석 엔지니어 : 은솔]
제4층 : 기상설계국 / [설계국장 :없음] - 직위를 부여해 주십시오.
제5층 : 차원관 / [차원지기 : 없음]-직위를 부여해 주십시오.
제6층 : ???
제7층 : ???
제8층 : ???
제9층 : 마탑주의 방 / [마탑주 :김유신]
나는 4층 옆에 '직위를 부여해 주십시오.' 라는 문장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설계국장으로 임명할 대상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특권 : 설계국장 Lv.10, 마나설계학 Lv.10, 필드 구축 Lv.10.]
그러곤 이번에도 털이 수북한 나대용의 다리에 관리자의 인장을 새겼다. 관리자의 문장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4층 관리자가 등록되었습니다.]
"저, 정말이다……!"
나대용이 눈을 부릅뜨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정말로 Lv10 특성이 생겼슴다! 그것도 세 개나……!"
"와아!"
"축하해요!"
나대용이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또 막 달려 올까 봐 나는 슬쩍 뒤로 떨어져서 말했다.
"앞으로 4층을 잘 부탁합니다. 대용 씨."
"흐으윽! 이 하해와 같은 은혜를 대체 어찌 갚아야……! 이 사나이 나대용!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바쳐 분골쇄신하……!"
"자, 박수!"
진보라가 적절한 타이밍에 끊으며 호응을 유도했다.
짝짝짝!
"와아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온다. 내가 잔을 들어 올리자 다른 사람들도 잔을 들었다.
"자, 새로운 관리자를 위해 건배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건……"
띠링!
갑자기 주머니에서 착신음이 들렸다. 나는 무안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얼른 등을 돌려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낸 사람은 홍연. 부재중 전화도 몇 개나 떠 있었다.
[선배! 대체 지금 어디예요! 반군이 도시를 급습했어요!]
* * *
워프 마법진을 타고 탄자니아로 돌아온 나는 다급히 테라스로 뛰어갔다.
"……미친!"
무트와라가 불타고 있다.
시커먼 밤하늘 아래로 도시 전체가 화마에 휩싸여 불길이 치솟고 역한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야습인가.'
나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슈트를 입고 장비를 챙긴 다음, 테라스에서 뛰어내렸다. 쿠션 쉴드를 몇 장 깔아서 충격 없이 지면에 안착했다.
"저쪽에 반군이다!"
"불! 불부터 꺼!"
"으아아앙! 아아앙!"
살벌한 표정의 병사들이 현장으로 뛰어가는 모습과 한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안고 맨발로 도망치는 모습이 교차된다.
'반군이 이런 타이밍에 야습을 감행한 이유는 뭐지?'
반군이 전 병력을 이끌고 무트와라를 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런 규모의 병력이 왔다면 이쪽에서 모를 리가 없고.
그렇다면 소수 정예 야습. 그리고, 야습을 통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을 것이다. 무기고 파괴, 요인 암살같은 거 말이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작동시키고 홍연의 채널에 맞췄다.
"나야, 홍연! 들려?"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홍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이 잔뜩 차 있었다.
-선배! 전화도 안 받고 대체 어디있었어요?
"미안! 미안! 너 지금 어디야?"
-습격자들 중 한 명을 발견해서 쫓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주거지까지 불을 지르고 소란을 낸 건 분명 목적이 있을 거야! 무기고나 군사 정보가 보관된 곳을 살펴봐!"
-네!
통화를 마치고 나는 윙 골렘을 작동시켰다. 내 몸이 빠르게 하늘로 치솟았다.
투다다다다다다!
"……!"
공중으로 올라오니 어딘지 모를 방향에서 총탄들이 마구 쏟아진다. 아슬아슬하게 에아가 내 주위로 쉴드를 펼쳐 막아낸다. 쉴드가 빠르게 금이 가는 걸 보니 마력소총이다.
'진득하게도 퍼부어대네.'
하늘로 올라가면 사방에서 화력이 집중되기에 나는 다시 윙 골렘의 고도를 낮춰 지면으로 내려왔다.
텅!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내 관자놀이 쪽으로 총알이 날아와 부딪힌다. 쉴드에 막혀 제자리에서 회전하던 총알이 힘을 잃고 바닥에 투툭 떨어진다.
내가 시선을 움직이자 3층 주거지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놈이 휙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라이트 데바스타>
바로 데바스타를 밟고 날아올라 3층으로 넘어갔다. 커튼을 걷고 집 안으로 들어오자 놈의 마나 소총이불을 뿜는다.
쉴드를 펼치고, 정밀한 컨트롤의 레피드 에로우 한 발을 꺼내 녀석의 다리에 박아 넣는다.
"끄아아아악!"
바닥을 뒹굴며 쓰러진 녀석이 허우적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저벅저벅 다가가는데 수류탄 하나가 데구루루 복도로 굴러온다.
하, 이 미친 새끼. 막 나가네. 다같이 죽을 작정이야?
<윈드 포트>
<라운드 쉴드>
허공에 손가락을 휙휙 움직였다. 3공정 바람의 장막으로 감싸고, 라운드 쉴드로 겹겹이 수류탄을 쌓은 상태에서 팔을 창가로 뻗는다.
쉴드에 쌓인 수류탄이 그대로 밖으로 날아간다. 이어서 쉴드를 해제하자 가시거리 밖에서 맹렬한 폭음이 터진다.
회심의 자살특공도 이걸로 무용지물이다.
"이런 괴물이! 가까이 오지 마!"
그런데 놈이 장롱 안에 숨어 있던 민간인을 발견했다. 여인을 붙잡아서 앞세우고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그녀는 달달 떨면서 눈물을 흘렸고 뛰쳐나온 아이들이 '엄마'를 외치며 달려들지만 발길질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소, 손 들어!"
인질 잡은 쪽이 저렇게 떨면 무슨 가오가 있나.
"예이, 예이."
나는 순순히 두 팔을 올렸다. 의외로 말을 따라주자 녀석은 뒤늦게 안도한 듯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대로 뒤로 돌아서 바닥에 엎……."
쨍!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날아온 가이드 에로우가 녀석의 뒤통수에 꽂힌다. 놈은 그대로 눈이 풀리며 바닥에 털썩 쓰러진다.
"괜찮아요?"
발로 총을 치우며 여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에겐 나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의 대상인 모양이다. 빨리 나가줘야겠네.
'이 녀석은 심문할까 했는데 기절해 버렸네.'
윈드포트를 일으켜 녀석의 몸을 띄운 다음 테라스로 다가갔다. 마침지나가는 정규군들이 있어서 그들의 앞으로 놈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
"그거 반란군이에요! 잡았으니까 심문해 봐요!"
병사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주위의 간부들도 내가 붙잡은 반군에게 우르르 뛰어오고 있었다.
심문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겠지. 나도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데.
"고마워요 형!"
아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응? 어, 그래."
"형! 이름! 이름을 알려주세요!"
아니, 잠깐. 이 장면은? 영화에서나 보던 바로 그 영웅적인 상황이다. 내가 목숨을 구해준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나를 본받아 훌륭한 헌터가 되는…….
-탑주.
'미안.'
이놈의 과몰입. 나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김유신이라고 해."
"응, 고마워! 김유신 형! 절대 안잊을게!"
나도 손을 흔들어 주며 테라스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예상보다 적의 수가 많아. 에아, 여기서 가장 가까운 군 시설이 어디야?'
-전에 회의를 했던 그 막사 건물입니다.
'데이터가 목적이라면 막사를 털수도 있지. 오케이, 그쪽으로 가자.'
우리는 신속히 아군 막사로 이동했다. 이미 폭탄이라도 맞은 듯 건물 중간에서 역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다다닥!
마침 병사 두 명이 막사 건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벽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차림을 살폈다.
탄자니아 정규군 옷차림이었지만, 방금 들어온 무전에 의하면 몇몇 반군들은 정규군 복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들 본진으로 들어가는 것 치고는, 좀 수상쩍은 움직임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 뒤에, 나도 슬금슬금 뒤따라 건물에 들어갔다.
복도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건물 곳곳에 총탄 흔적이 보였다. 여기서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타다다다다! 타다당! 타당!
들켰다. 에아가 내 앞에 쉴드를 펼쳐 총알을 막아냈다.
"막아! 못 가게 해!"
"계속 쏴!"
오, 그래. 이 길목을 지켜야 하는 모양이지?
놈들은 계속해서 소총을 난사하며 내 접근을 막고 있다. 총알 떨어지기 기다리는 것도 귀찮으니까.
나는 쉴드의 보호를 받으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마법진이 열리고 회전하는 화살이 만들어졌다.
<스핀 가이드 에로우>
내 손에서 벗어난 가이드 에로우들이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기겁한 놈들이 총구를 화살쪽으로 돌리는 사이.
"……허억!"
내 몸이 놈들의 코앞까지 들이닥친다. 양손으로 두 놈의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부딪치게 했다.
쾅!
두 병사들의 몸이 충격으로 주르륵 쓰러진다.
'뭐야, 쉽……'
데바의 눈이 부릅떠진다. 어둠 속에서 단검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침착하게 팔을 들어 단검을 쥔 손을 쳐올리고, 오른 다리로 습격자의 무릎을 찬다. 녀석의 무릎이 꺾이지만 왼손의 총구가 나를 향한다.
타앙!
이어지는 총성. 기습적으로 날아온 총알이 내 가슴 앞에 펼쳐진 푸른막에 부딪혔고 나는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빠악!
그대로 돌려차기. 얼굴을 차인 녀석이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다리에 제대로 들어갔다는 감각이 없다. 놈이 입고 있는 슈트의 역장이 보호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슈트의 빛이 꺼졌다.
역장 보호기능은 다 했다.
'저런 슈트를 입었다면 틀림없이 헌터네.'
몸을 일으킨 습격자가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놈이 단검을 내질러오자 나는 물 흐르듯 몸의 중심을 옮기며 왼쪽 어깨를 젖혔다.
놈의 단검이 허공을 갈랐고, 나는 느긋하게 녀석의 주먹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팔꿈치로 찍었다.
까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팔이 반대로 꺾인다. 녀석이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다른 손으로 내 얼굴을 후려친다.
퍼억!
한 대 맞고 고개가 돌아갔지만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되돌려 습격자를 바라보았다.
놈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다. 그런 자세로 억지로 주먹 휘둘러 봐야 힘이 안 실린다.
"죽빵은 이렇게 쳐야지."
그대로 왼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며 완벽한 자세로 스트레이트!
뻐어어억!
주먹에 부딪힌 놈의 얼굴이 괴이하게 출렁이며 이빨이 뭉텅 터져 나와 하늘로 비산한다.
놈은 피를 뿌리며 공중에서 삼 회전하다가 복도 한복판에 떨어져 쓰러졌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팔을 털털 털었다.
'이것들 막 나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