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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36화 (136/337)

나 혼자만 마탑주 136화

"정말이죠?"

"그, 그래."

"진짜 진짜 진짜죠?"

"응. 진짜로."

"꼭! 꼭 해주셔야 해요! 꼭이요!"

안 해줬다간 바퀴벌레 대신 나를 죽일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안심할 때까지 결계를 깔아주겠다는 약속을 재차 밝혔다.

그제야 홍연은 캐리어를 끌고 와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혹시 두 분……"

뒤에서 우리 둘을 묘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카림이 입을 열었다. 대충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되는데.

"그냥 같은 방을 쓰시……"

"사양합니다!"

아차. 목소리가 너무 컸나?

캐리어를 풀던 홍연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카림을 바라보며 설명조로 이야기했다.

"한국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죠."

"됐어요. 저도 싫어요."

실수다.

그녀와 절대로 같은 방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어서 너무 단호하게 말해버렸다.

이유가 뭐냐면, 나는 내 방에 한국으로 넘어가는 마법진을 그려놓을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 평소처럼 편안한 마탑에서 누워 잘 수 있다.

가서 한식도 먹고. 마탑 식구들도 보고. 홍연은 출장이겠지만 나는 그냥 출퇴근이다.

'아, 빨리 한식 먹으러 가고 싶다.'

사실 홍연도 데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녀가 마탑에 대서 알게 되면 협회장도 알게 된다.

협회장이 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 마탑은 철저한 대외비지침이고, 마탑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에아. 있어?'

-네, 탑주.

'역시 저녁은 김치찌개로 부탁해.'

-파전에 막걸리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것도 같이 먹지 뭐!'

-서기관에게 재료를 사서 귀환하라 지시하겠습니다.

마탑 최고다. 마탑주라서 행복해요.

그때였다. 다른 쪽 방이 벌컥 열리며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카림."

나는 빠르게 그의 차림과 계급장을 훑었다. 이 사람도 헌터다. 동양인이고, 우리와 같이 탄자니아에 파견나온 것 같다.

카림이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이분들이 한국에서 온 김유신 헌터님과 홍연 헌터님이십니다."

"아, 그래?"

남자가 다가왔다.

"장웨이라고 해요. 요즘 시끄러운 그 소문의 한국 공인 3급들이시군."

"김유신입니다."

홍연도 나와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별 관심 없는 지 다시 짐을 풀러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본 장웨이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젊고 미래도 창창해 보이는데,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왔어요?"

짙은 그늘이 묻어나오는 물음이었다.

"지원했습니다."

"지원했다고? 탄자니아를?"

장웨이가 헛웃음을 흘렸다.

"죽으려고 오셨수?"

"탄자니아가 상황이 안 좋다길래 도우러 왔을 뿐입니다."

"아니 무슨…… 하이고. 세상 물정 몰라도 정도가 있지."

장웨이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여긴 윗선에 찍힌 헌터들, 경쟁에 밀려난 헌터들, 쓰레기 처리된 헌터들이 파견당하는 곳이요. 유배지란 소리지."

"……."

"나야 어떻게든 목숨 보전하면서 버티고 있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야. 군단장 셀레그마의 공세는 집요하고, 무트와라마저 뚫리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어. 그냥 다 개죽음이지."

나는 슬쩍 시선을 움직여 카림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더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회의장에서 봅시다. 김유신 헌터님."

장웨이가 카림의 어깨를 툭 치며 걸어갔다. 그녀가 휘청거리며 밀려났지만,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내가 왜 이딴 곳에서 뒈져야 하냐고!'

계단 아래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림 헌터. 괜찮아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한 분이네."

"……장웨이 헌터가 하는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진실에 가깝겠네요."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김유신 헌터님은 왜…… 이런 나라에 자원해서 오신 건가요?"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기러 왔습니다. 진심으로."

* * *

두 시간의 휴식 뒤, 우리는 카림의 안내를 받아 회의장으로 향했다.

가끔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병사들은 우리를 죽은 눈으로 바라볼 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연맹군 해군기지에서 병사들의 반응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다들 정신적으로 지치고 병들어서,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상황이 많이 나쁜가 보네.'

우리는 지휘부 건물로 들어왔다.

숙소보다는 좋은 건물이었지만, 군용으로 개조했을 뿐 낡고 허름한 건 매한가지였다.

계단을 걸을 때마다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물 복도로 들어오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카림도 그들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헤이, 한국의 헌터 여러분!"

한 손에 커피를 든 남자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떡 진 금발에 선글라스를 꼈고, 커피를 든 팔은 알고 보니 의수였다.

"공인 4급 웨인 존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유신입니다."

"홍연이에요."

"키소와 소식은 들었습니다! 파견첫날부터 제대로 한 건 해내셨다면서요? 하하하하! 여러분이 우리 전선에 큰 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뭐야, 정상적인 사람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웨인의 오른쪽 의수가 커피잔을 거꾸로 들었다. 당연히 커피는 쏟아져서 그의 바지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어이쿠 실례!"

그가 다시 의수를 돌렸다. 끼릭끼릭거리며 팔이 돌아간다.

요즘 헌터들에게 지원되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헌팅 디바이스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녹슬고 엉망이었다.

"……이놈의 팔이 또 말을 안 들어! 이놈의 팔이! 이놈의 파알!"

끼릭! 끼릭! 끼리릭!

이제는 아예 쪼그려 앉아 신경질적으로 팔을 돌리기 시작한다.

눈에 흰자가 드러나며 숨을 거칠게 헐떡인다.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다.

우리가 뻘쭘하게 서 있을 때, 카림은 조그맣게 '가죠.' 하고 속삭였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웨인은 우리가 떠난 것도 잊었는지 열심히 의수를 돌릴 뿐이었다.

왜 저러는 건지 이유를 딱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마약 같은 걸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뛰는 헌터들 중에선 정상이 없다더니.

그렇게 우리는 회의실로 가는 도중, 웨인 존스 외에도 여러 헌터들을 만났다.

"스콜피온이라고 불러주시오."

한쪽 눈을 잃어 안대를 쓴 4급 헌터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찰리라고 해요! 지옥 같은 천국에 온걸 환영합니다!"

얼굴과 혓바닥, 신체 곳곳에 징그러울 정도로 은색 피어싱을 박은 헌터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오늘 밤 좋은 곳 데려다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어쩐지 옆에서 눈총이 따가워서 거절했다.

"젊은 아이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안타깝네요. 마르타라고 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요."

목에 흰 뱀을 휘감고 있는 짙은 화장의 40대 여성 헌터가 반갑게 손짓 했다.

뱀이 워낙 얌전하게 있어서 잠시 패션인가도 생각했지만, 내 생각을 읽었는지 뱀이 혓바닥을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마르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뱀은 다시 진정했다.

"지휘부 회의 시작 5분 전입니다! 헌터 여러분은 회의실로 와주십시오!"

군 참모가 복도로 뛰어와서 회의 시작을 알렸지만, 헌터들은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딴짓하기 바빴다.

"가죠."

"그래."

우리가 제일 먼저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의 테이블 중앙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대들이 한국에서 온 젊은 헌터들이군! 반갑네."

저 사람이 바로 탄자니아 헌터팀의 대장인 훌리안 카바예로.

공인 3급 헌터다. 50대 초반의 나이라고 들었지만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카림의 말에 따르면, 오버레이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몬스터를 사냥해 온 아르헨티나의 전설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대선배쯤 되는 사람이다.

'은퇴할 나이에 이런 최전선이라니.'

훌리안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우리를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 준 건 물론이고, 앞으로의 파견 생활에 대해 경험이 녹아 있는 조언을 들려주었다.

'자네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다네."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군단장 셀레그마는 탄자니아 북부에 자리하고 있다.

셀레그마의 부하들은 계속해서 남진해서 이 나라의 수도인 '도도마'와, 제1도시 '다르에스살람'을 손에 넣었고, 탄자니아의 모든 영토를 리빙필드화 하려는 야망을 보이고 있다.

탄자니아 정규군과 피난민들은 남부 최남단 도시인 무트와라까지 밀린 상태다.

탄자니아 정규군과 세계 연맹이 힘을 합쳐 영토를 지키고는 있지만, 플랜트에서 만들어진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일방적인 소모전만 계속 되는 상황. 식량도, 물자도 부족해서 힘든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탄자니아 전선이 상대하는 적은 셀레그마가 이끄는 몬스터들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네."

"네? 그게 뭐죠?

"반란군이라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몬스터들한테 다 죽게 생겼는데, 내전 중이라고요? 정규군과 반란군으로 나뉘어서?"

"부끄럽지만 그렇다네. 반군은 무트와라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탄바힘바에 위치하고 있지. 그들은 당장에라도 무트와라를 공략할 태세를 갖추고 있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몬스터 만으로도 벅차 죽겠는데 반군은 또 뭐란 말인가.

"사령관님. 질문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고 있던 홍연이 말했다.

"지도를 보니 반군의 거점이라는 '탄바힘바'의 바로 근처에 타베스 주둔지가 있습니다. 왜 아직도 반군이 멀쩡히 살아 있는 거죠? 그리고 무트와라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이상해요. 그들이 떠나면 몬스터들이 100% 비어 있는 거점을 노릴 텐데……"

"영리한 질문이군."

훌리안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반군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몬스터들에게 공격받은 적이 없네."

"……네?"

"어째서인지 이유는 모르네. 하지만 우리가 몬스터에 묶여 있는 사이, 몬스터들의 주둔지와 더 가까운 반군이 자유롭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

홍연은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 말은 즉, 군단장 셀레그마가 정규군과 적대적인 반군을 내버려 두고 있다. 몬스터들이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반군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네."

"혹은."

나는 반군의 거점, 탄바힘바를 가리켰다.

"반군 중에 마인이 있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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