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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35화 (135/337)

나 혼자만 마탑주 135화

쿠르르르르릉!

융기된 지반이 분화한다. 꼭대기에서 시뻘건 용암 덩어리들이 포탄을 쏘아내듯 대폭발을 일으킨다.

하늘로 비산한 용암 덩어리들이 그대로 몬스터들을 덮친다. 화산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은 공포스러운 마그마 쓰나미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캬아아아아악!

-키에에엑!

세기말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저 끔찍한 괴수들이 수백, 수천 단위로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다.

'하하, 하하하.'

나는 공중에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마법이라고, 화산 쇄설물에 하늘이 뒤덮이거나 하는 그런 재해는 없었다.

마법진의 반경에 있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마그마로 집어삼킬 뿐이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마법사지.

역시 마법사의 상징이라고 하면 대량 학살 마법 아닌가. 적진 한복판에 난데 없이 인공 화산을 일으켜 버리는 '볼케이노 그라운드'는 어떻게 보면 가장 그 콘셉트에 충실한 마법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

아래에서도,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 넋이 나간 얼굴로 화산을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이것도 저 헌터의 능력이야?"

"인간의 영역이 아닌데."

바로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홍연의 거대한 검격이 하늘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는 홍연 3급, 천부장을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헐떡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나이스.'

홍연도 해냈다.

대장을 잃고 화산까지 마주한 몬스터들은 일제히 도주한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환호하거나 부둥켜안으며 승리를 부르짖었다.

건물에 있던 민간인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는지 펄쩍펄쩍 뛰며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다.

긴장감이 풀리며, 서서히 내 몸이 지상으로 가라앉는다.

"어어, 저 사람 떨어진다!"

"받아!"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덜컹! 덜컹!

이제 흔들리는 건 지긋지긋하다-라고 생각하다 보니 정신이 들었다.

'눈 뜨자마자 또 흔들리는 곳이라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차에 타고 있었다. 좌석에 누워 발을 편안히 뻗은 자세였다.

"일어나셨습니까? 선배."

머리카락이 스르륵 내려오며 웬 아름다운 미소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놀랐다.

이 위험한 각도도 그녀의 미모를 어쩌진 못했다.

'그런데 왜 이 각도지?'

"선배?"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잠이 깬다.

그래, 이제 알았다. 나는 홍연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 다거나 하는 아마추어 짓은 하지 않았다. 다양한 자세에서 이 은혜를 누려보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눕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갑주형 슈트가 아닌 편한 반바지 차림이었고, 나는 그녀의 맨다리를 베고 있다. 막 샤워를 마친 향긋한 비누 냄새와 살 냄새가 났다.

"정신이 드셨으면 일어나시죠."

……쩝, 쪼잔하긴.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잘 때 입으려고 챙겨왔던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다.

우리 말고도 연합군 병사들이 맞은 편에 앉아 있었는데, 몇몇은 이쪽으로 묘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얼마나 잔 거야?"

"12시간 정도입니다."

"전투는 어떻게 됐어?"

홍연은 차분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키소와는 해방됐고, 연맹군의 선박이 무사히 들어와 물자를 보급했습니다. 타베스는 천부장과 5기의 플랜트,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을 잃었죠."

와우. 두말할 필요도 없는 대승이었다.

"이번 전투는 탄자니아 사람들로부터 '화산 전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선배는 최고 공헌자이자 화산의 영웅이라며 칭송받고 있고요. 아프리카 토착 신의 환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근데 왜 내가 최고 공헌자야?"

"……?"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보았다.

"화산의 임팩트는 어쩔 수 없지만, 수만 마리 몬스터 속에 혼자 뛰어들어 천부장을 잡은 네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흠흠. 선배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녀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여간, 이 녀석은 은근히 나한테 경쟁심리가 있다니까. 나는 또 그런 점을 교묘하게 써먹을 수 있어서 좋고.

그녀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틈을 타서,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그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렸다.

몇몇 연맹군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거나 부러운 눈으로 이쪽을 응시했다. 하아. 냄새 좋…

"법정에서 제 변호사를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면 일어나시죠."

"……."

나는 다소곳하게 자세를 바로 했다.

"너무하네. 고생한 선배를 위한 포상 같은 거 없냐?"

"그걸 왜 저한테 찾으시나요? 돌아가면 협회와 연맹에서 주는 포상금이 쏟아질 거예요."

철벽 성채 그 자체군.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볼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낄낄 웃었다. 그녀가 홱 돌아보며 말했다.

"왜 웃어요!"

"그냥.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프레드릭 대령님이 말씀하신 대로, 키소와를 해방했으니 탄자니아 정규군 본부가 있는 '무트와라'로 갑니다."

"아하."

"거기 가면 우리보다 먼저 파견 나온 공인 헌터분들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홍연과 수다를 떨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나를 부담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군인이 있었다.

그는 동료에게 뭐라 뭐라 하더니 귀에 낀 코어 통역기를 작동시켰다.

"Sir. 연맹군 일병 헤렐드 로셀입니다! 이번 전투, 무척 인상 깊게 봤습니다!"

"네? 아하하. 별말씀을."

"저도 비전투계 플레이어입니다만, 마법을 익히면 저도 김유신 헌터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나는 미국식 제스처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이죠. 저 정도는 금방 능가하실 겁니다. 헤렐드 일병."

비록 립서비스일지라도, 젊은 군인의 입꼬리가 화악 올라갔다. 그는 통역기를 벗고 동료 병사들과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 모습을 왠지 모르게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홍연이 중얼거렸다.

"마법의 선한 영향력은 대단하네요."

"그럼 그럼."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스스로의 능력을 전 세계에 공개한 건, 네. 존경스럽네요. 인정해드릴게요."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 능력이 아니야."

"그래도 선배가 마음만 먹으면 마법을 독차지할 수 있었잖아요. 그 누구도 서클과 마법 수식이라는 체계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니까요."

"실은 독차지가 과점이 된 것뿐이지."

"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시 후, 운송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항구도시 무트와라.

탄자니아 정부와 육군본부, 헌터협회가 모두 모여 있는 현 탄자니아의 핵심도시. 시큼한 바다 향기와 모래냄새가 섞여서 났다.

나는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누리끼리 한 얼룩이 낀 흙벽 건물들과 큰 규모의 판자촌이 보인다.

헐벗은 아이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 너머로, 피로에 찌든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시 곳곳에 탱크와 군막사가 가득하다.

차량이 멈추고 시동이 꺼지자 우리는 연맹군 병사들과 차에서 내렸다.

연맹군 병사들은 다른 임무가 있는지 우리에게 눈인사하고는 신속히 다른 차량에 탑승해 떠났다.

우리는 몸이랑 캐리어만 든 채 우두커니 남겨졌다.

"이제 어쩌죠?"

홍연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란 들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태워다 주고 끝인 거야?

"Hujambo!"

그때 마침,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걸어오는 군복 차림의 여자가 있었다.

"한국의 김유신, 홍연 헌터님 되시죠?"

우리는 동시에 안도했다.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네. 맞습니다."

"카림이라고 불러주세요. 탄자니아의 공인 5급 헌터입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먼저 숙소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짐을 푸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신 다음 세 시간 뒤에 있을 탄자니아 지휘부 회의에 참석해 주세요. 다른 파견 헌터분들도 두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군용으로 쓰고 있는 낡고 오래된 숙소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었고, 많은 군인들이 바쁘게 계단을 오가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감성도 나쁘지 않지.'

나는 상황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매사에 깔끔 떠는 이 아가씨는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직 그녀가 느끼는 공포의 원인을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는 4층까지 올라왔다.

"두 분이 쓰실 방은 이쪽입니다."

나는 방을 보고 놀랐다. 아무리 아프리카라고 해도 요즘 숙박 시설은 웬만해선 다 서양식으로 갖춰져 있고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벗겨져서 누렇게 된 벽지, 덜렁거리는 창문, 물이 새는지 곳곳에 테이프로 보수한 천장. 침대는 없었고 웬 군용 매트릭스와 간이식 의자가 보였다.

내 뒤에 뻘쭘하게 서 있던 카림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 건물에서 가장 좋은 방인데……"

이게 가장 좋은 방이라니……. 전쟁 중이라는 실감이 들긴 한다. 나는 캐리어를 구석에 놓고는 매트릭스에 쓰러지듯 누워 보았다. 약간 쉰내가 나긴 했지만 푹신했다.

"잘 만하네요."

"……아. 다행입니다."

그때 옆방에서 '꺄아아아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홍연의 목소리였다.

"제가 가볼게요."

나는 빠르게 홍연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홍연이 벽에 찰싹 붙어서 달달 떨고 있었고 바닥에는 바퀴벌레 두 마리가 주르륵 지나가고 있었다.

"쯧."

그럴 수도 있지. 숙녀의 방에 바퀴벌레는 치명적이긴 하다. 나는 데바의 눈으로 바퀴벌레의 도주 방향을 계산한 다음, 손가락을 튕겼다.

가속 시전과 정밀한 컨트롤로 1공정 발화의 룬을 넣은 초소형 마법진을 바퀴벌레의 아래에 일으켰다.

화륵!

바퀴벌레들이 제자리에서 불에 타 장렬히 산화했다. 완전히 얼어붙은 표정의 홍연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내가 몇 장 티슈를 뽑아서 잔해를 치우며 말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카림이 달려왔다.

"무, 무슨 일인가요?"

"아, 그냥 바퀴벌레가 좀 있어서요."

"아……"

카림이 씁쓸하게 웃었다.

"카운터에 가서 벌레 약을 좀 뿌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오래돼서 좀…… 몇 마리 나올수는 있어요."

그 말을 들은 홍연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넌 징그러운 몬스터도 잘 잡으면서 바퀴벌레는 왜 이렇게 질색해?"

"……바퀴, 바퀴벌레는 좀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싫어요. 소름 끼쳐. 어쩜 이름마저 징그럽게 '바퀴벌레'일 수가 있죠? 진짜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나는 머릿속으로 '바퀴벌레는 40개의 알을 포함하는 난낭을 가지고 있으며 암컷은 평생 난낭을 8개까지 낳으니까 이 방에 얼마나 바퀴벌레가 있을지 계산은 네가 직접 해보라'는 대사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홍연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참았다.

저 유리멘탈이 박살 나면 같이 움직이는 이쪽도 힘들어진다.

나는 카림을 돌아보았다.

"바퀴벌레약, 이 층 전체에 뿌려주세요."

"아, 네. 그런데 그러려면……"

"부탁드립니다. 탄자니아 최대 전력이 바퀴벌레에 자멸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내가 사뭇 진지하게 말하자 그녀도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트와라 전체를 뒤져서라도 찾아 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연을 바라보았다.

"야, 그만 일어나."

"……."

"회의 갈 준비해야지."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하여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나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회의 갔다 와서 네 방에 차단 결계 빈틈없이 깔아줄게. 됐지?"

그 말에 홍연이 빛의 속도로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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