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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32화 (132/337)

나 혼자만 마탑주 132화

다음 날. 작전 당일.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나는 수송 헬기 안에 앉아 있다.

이 헬기를 포함해 총 다섯 대의 헬기가 함께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내 옆에는 홍연이 앉아서 장비를 점검 중이다. 우리 말고도 약 스무명 가까이 되는 특수부대원들이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도 전투 전에 간단히 입고 있는 장비들을 체크해 보았다.

가람에서 준비했고, 사비까지 추가로 털어서 제작한 '내 전용 헌터 슈트'. 색감은 짙은 네이비 계통에 겉에 걸치는 로브 형태의 보호구다.

겉보기엔 방호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역장 계열이라서 흰 티에 이거 하나만 걸쳐도 어중간한 헌터들의 장갑형 슈트보다 더 튼튼하다고 한다.

신나라의 말을 빌리자면 입이 떡벌어질 만큼 비싸다. 스크래치라도 나면 스포츠카 몇 대값이 휙 날아간단다.

가볍게 옷소매를 잡아 당겨보았다.

묘한 질감. 미세한 플라스틱 블록같은 것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파손당해도 너무 큰 데미지만 아니라면 형태복원도 가능했다.

'이래서 헌터들이 템빨, 템빨하는구나.'

이어서 손목에 장착한 골렘볼 투척장비와 등 뒤의 윙 골렘까지 점검을 마쳤다.

-잘 들려요?

귀에 끼고 있는 이어마이크에서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홍연이 통신체크를 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어마이크 위에 살포시한 손을 올린 채 '아. 아.' 를 중얼거리고 있다.

……얘는 뭔 짓을 해도 자기 혼자 화보 찍는 것 같냐.

"뭘 그렇게 봐요?"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너 오늘 아침에 빵에 딸기잼 발라먹었지?"

"아!"

토끼 눈이 된 그녀는 다급히 내게서 고개를 돌리며 얼굴 주위를 슥슥 닦았다. 나는 숨죽여 웃었다. 이 녀석 놀리는 거 은근히 중독성 있다.

"이제 없어요?"

"그냥 뭐 먹었냐고 물어본 건데."

"……윽!"

속았다는 사실이 분했는지, 그녀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차마내 몸을 건드리지는 못하고 한숨을 푹 쉬며 무릎 위에 가지런히 손을 포개어 올렸다.

"선배는 이런 상황에 긴장감도 없어요?"

"농담으로 릴렉스 하는 거지."

눈을 흘기며 째려보던 그녀는 다시 이어마이크 위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 채널. 기억해 주세요. 저랑 선배 둘이서만 말할 수 있는 채널입니다.

"좋네."

나는 이어마이크에 채널 저장기능을 눌러놓았다.

그때 마침, 이 수송기의 침투팀을 이끄는 스콜 대위가 걸어왔다. 스콜대위는 30대 초반에 다부진 인상의 미국인이었다.

"이제 곧 현장으로 돌입한다! 전원하강 준비!"

철컥! 철컥!

특공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하강 준비를 마쳤다. 엄격하게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스골은 우리에게는 경례를 올려붙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두 헌터분은 세 번째 하강에서 준비하시면 됩니다. 때가 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해군기지에서부터,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연맹군들이 우리에게 친절했다.

한국에서는 헌터들을 '괴물 잡는 자본주의 괴물들'이라고 보는 인식도 간혹 있는데, 밖에 나와보니 정말로 색다른 느낌이다. 모두가 헌터를 인류의 영웅으로서 제대로 대우해 주고 있다.

나는 데바의 눈을 발동해 헬기 밖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내내 푸른 바다밖에 안 보였는데 드디어 육지가 나타났다.

도시가 보인다. 불타는 건물과 무너지는 철골 구조물들.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시가지에서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곳이 바로 항구 요충지 키소와.

저 시가지로 가는 길목을 방호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위에서 탄자니아아 정규군과 시민군들이 악착같이 기관총을 쏘고 날붙이를 휘두르며 버티는 중이다. 그리고 방호벽 너머에는…….

'징그럽다, 징그러워.'

새까맣게 몰려든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브리핑에서 봤던 것그대로 끔찍한 외형이다.

질척질척 흘러내리는 괴수들이 방호벽에 막혀 몸부림치며, 인간들을 향해 긴 혓바닥을 내미는 모습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것 같다.

현재는 3차 방어선까지 다 뚫렸고, 도심지 내에 설치된 최후의 방호벽마저 위험한 상황이다. 탄자니아군과 시민군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지만 벅차 보인다.

몬스터들의 행동 영역을 넓혀주는 '리빙필드' 또한 방호벽 너머 도시 깊숙한 곳까지 퍼져 있었다. 해군기지에서 브리핑받았던 것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나는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다.

-G-l, H-2, 1-1 포인트에 폭격을 개시한다.

-여기는 탄자니아 본부! 1-1의 핵심 지역이 뚫렸다. 1-1에서 1-3으로 폭격 위치를 바꿔주길 요망한다. 우리가 유도하겠다.

-카피.

부우우우우우웅!

우리와 다른 방향에서 대형 폭격기 두 대가 선회해 왔다. 몸체의 하단부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폭탄이 우수수 떨어진다.

넓은 면적을 골고루 타격하는 융단폭격. 폭격기가 지나간 자리로 폭발구름이 순차적으로 솟구치며 몬스터들의 육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몬스터들의 비명이 몰아쳤다. 지켜 보는 내가 폭발에 휘말린 것처럼 오싹오싹했다.

폭격의 효과는 확실히 대단했는데,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았던 방호벽에 여유가 생겼다.

-여기는 톰캣-1, 주요 포인트에 병력 수송을 완료했다.

-타이푼-2는 다음 플랜트를 폭격하겠다.

무전을 듣던 스콜이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톰캣-2는 카모플라쥬 모드 상태로 우회.

우리가 탄 수송 헬기는 시가지로 가지 않았다. 바다에서 바로 방향을 선회해 숲으로 직행한다. 카모플라쥬 모드가 적용된 모델인지 몬스터들도 공격해 오지 않았다.

"특공 1팀은 여기서 내린다."

"예!"

"움직여! 움직여!"

운송 헬기 문이 내려가고, 하강 디바이스를 착용한 일곱 명의 특공대원들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다.

잠시 후 또한 팀이 뛰어내렸다.

이제는 나와 홍연, 그리고 여섯 명 정도의 인원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바로 A플랜트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숲과 나무뿐이었던 지형을 지나서, 조금씩 아프리카 특유의 황무지와 나무가 드문드문 보이는 지점이 나타났다. 그 너머로 목표물이 보인다.

꿈틀거리는 리빙 필드위에 우뚝 솟아 있는 몬스터의 건축물 '플랜트'.

타베스계 몬스터들을 무한히 뽑아내는 생체 시설이다.

간단히 폭격으로 쓸어버리는 게 편하겠지만, 폭격기의 수는 한계가 있고 최근에는 저 바베스 몬스터들도 폭격기에 대응하는 종류의 몬스터들을 만들어 사전에 격추당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침투는 특공대의 몫이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몬스터가 많네.'

다른 지역에서 침투조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플랜트를 비우지 않고 굳건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지능이 있는 개체라더니, 정말 인 것 같다.

"자, 그럼 하강 준비를……"

쿠웅!

기체가 급격히 흔들린다. 우리는 다급히 손잡이를 붙잡으며 버텼다.

"무슨 일이야!"

스콜이 헬기 조종사를 보며 소리쳤다.

"몬스터들이 헬기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카모플라쥬 모드잖아! 어떻게?"

"잘 모르겠습니다! 아, 아마도 카모플라쥬를 감지하는 몬스터 종류를 또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뭐어? 저것들은 허구한 날 진화하고 지랄이야!"

기체가 계속 공격당하고 있다.

쾅! 쾅!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흔들림이 심해진다. 대원 한 명은 손잡이를 놓치고 벽에 부딪혔다.

"하강 준비!"

스콜이 시뻘게진 눈으로 결단을 내렸다.

"우리 팀이 먼저 내려가 놈들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두 분은 조금 더 헬기 안에서 버티다가 안전히 확보되면 내려가 주십시오!"

"……그건!"

홍연이 반박하려 하자 나는 팔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스콜이 내 눈을 보며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등 뒤에 멘 하강 디바이스를 작동 준비 상태로 만들었다.

덜컹!

헬기 뒤편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스콜이 뛰어내렸고, 다른 대원들도 뒤따랐다.

후우우우웅!

그들은 날다람쥐처럼 팔다리를 벌려서 안정적인 낙하자세를 취했다.

뒤이어 허리춤과 가슴 포켓에서 마나 수류탄, 연막탄과 섬광탄, 조명탄등 시선을 끌 수 있는 거라면 모조리 꺼내서 공중에 던졌다.

장비들이 일제히 허공에 폭발하자, 플랜트를 지키는 몬스터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원거리 공격을 쏟아붓는다. 온갖 종류의 점액 포탄, 마력투사체들이 날아왔다.

모든 투척 장비를 소모한 스콜은 초월한 표정으로 팔을 벌리며 눈을 감았다. 마치 헌터 두 사람을 보낸 것으로 몫은 다 했다는 듯.

<아이올로스>

물론, 나는 그런 결말 따위 바라지 않는다.

후우우우우우웅!

여섯 명의 몸이 돌풍에 의해 방향이 급격히 꺾여 날아간다. 몬스터들이 발사한 투사체가 이들이 있던 자리에 맹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바람의 장막이 후폭발을 연이어 막아낸다.

"하강 디바이스 켜요!"

"……!"

내 외침에 스콜과 특공대원들이 뒤늦게 장비를 작동시킨다. 나는 윙골렘을 작동시키고 그들의 몸을 돌풍으로 휘감았다.

스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전과 다르지 않습니까! 이러면 헌터님도 위험해지는 게……!"

"괜찮아요."

우리는 멀쩡히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후속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콰콰콰콰콰콰콰!

산더미만 한 붉은 참격이 플랜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몬스터들의 신경이 플랜트에 쏠렸다. 플랜트 주위의 몬스터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신속히 장벽을 쌓아 올렸다.

뒤이어 적색의 참격이 그 생체 장벽에 부딪히자, 살점이 끔찍한 모습으로 터져 나온다.

아마도 뒤쪽의 플랜트가 파괴되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저건 홍연의 전력도 아니었고, 시선을 끄는 용도에 불과했으니까.

우리는 그사이 안전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선배! 스콜 대위님! 다들 괜찮으세요?"

먼저 내려가 있던 홍연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나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의 공격에 헬기가 숲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뒤이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살벌했다.

이게 진짜 전장이구나.

그동안 나는 발 뻗고 집에 누워만 있었지만, 지구 어딘가에서는 누군가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구나.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헌터 여러분."

철컥!

스콜과 특공대원들이 마력 소총을 꺼냈다. 주위에서 몬스터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몰려들고 있다.

"A플랜트의 경비병력이 예상보다 많습니다. 일단 후퇴해서 공중 지원을……"

"아, 괜찮아요."

나는 어깨를 풀며 앞으로 걸어갔고, 홍연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목숨 걸고 데려다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일할 차롑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를 보았다.

"누가 갈래?"

"당연히, 제가 갑니다."

그녀가 검을 휘둘러 정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1등. 선두. 최고가 아니면 의미없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녀는 열의가 불타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흙바닥에 손을 짚는다. 4종 보조 마법진이 똑딱거리며 작동을 시작한다.

"보조할게."

"부탁드립니다."

나와 홍연은 동시에 이어마이크를 개인 채널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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