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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30화 (130/337)

나 혼자만 마탑주 130화

다음 날 아침.

나는 시래기 해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뭐, 내가 요리를 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E-마켓에서 구매한 해장국 팩으로 요리하고 있다.

시래기 블록을 넣고, 물 끓이고, 어제 남은 야채를 썰어서 넣고 기다리면 된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자 멤버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테이블로 다가왔다.

"우와아…… 김 대표님 최고오……."

"주, 죽을 것 같아. 세 번 토했어."

다들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물이 끓으며 해장국의 색깔이 완연해지자 한 국자씩 떠서 그릇에 옮겨담았다.

에아가 바로바로 테이블로 세팅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감사히 먹겠습니다. 대표님."

그들은 정신없이 해장국을 먹어치웠다. 김사랑 이 '아, 이건 엄마 손맛이야!'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사실 그거 인스턴스다.

"대표님도 얼른 드세요!"

"네,네."

나도 적당히 한 그릇 떠서 자리를 잡자 옆에 있는 진보라가 조용히 물어왔다.

"서, 선배님."

"왜?"

"어제 필름이…… 끊겨서 그런데 저 무슨 일 있었나요?"

"별일 없었어."

"아, 다행이다!"

진보라가 손뼉을 짝 치고는 그제야 안심하고 해장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무슨 일이 있긴 했지. 나더러게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나대용에게 질투심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4층팀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저는 기억은 없는데 자꾸 이상한 꿈이 떠올라요."

김사랑이 말했다.

"꿈이요? 무슨 꿈?"

"나무를 심는 꿈이요."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 노력했다.

"흐드러지게 잎이 많고 열매도 많은 근사한 나무였어요. 아! 근데 좀 이상했어요. 보통 나무는 가지에서 잎이 나잖아요? 근데 제가 심은 나무는 막 줄기부터 엄청 잎이 많은 거 예요."

"개꿈이네, 개꿈이야."

"나무가 나오는 꿈이면 약간 태몽같은 꿈 아니에요?"

차도연의 지적에 김사랑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태, 태몽이라뇨! 저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예요!"

"흐응."

진보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귓속말로 조그맣게 말했다.

"어제 일 기억 안 나시죠?"

"……네."

"사실이 중에 누군가 애 아빠가 있는 건?"

"으악! 으아아아악! 무서우니까 그런 말하지 마세요!"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해장국을 먹고 있을 때, 가장 늦게 정서진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들어왔다.

4층팀 모두가 정서진에게 깍듯이 인사했고 그는 퀭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넌 괜찮아?"

"예, 숙취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가 뒤통수를 슬슬 어루만졌다.

"아프네요, 누군가에게 폭행당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폭행은 무슨 폭행이야? 취해서 어디 잘못 박았겠지."

내가 삐질 식은 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협회장님은 아니겠죠?"

진보라가 물었다. 수신자를 확인한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냐, 신 대표님이네."

드디어 올 게 왔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 받고 올게."

"우오오오! 역시 스승님! 밤에는 헌터 협회장! 낮에는 가람 매니지먼트 대표! 클라스가 다르십니다!"

"부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있어요. 대용 씨."

나는 9층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네, 신 대표님. 김유신입니다."

-아, 음. 김 헌터님. 잘 계셨죠?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같은 발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징조다.

-호, 혹시 오늘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 갈게요!

"아,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많이 바빠서요. 전화로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대용 씨."

나는 9층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네, 신 대표님. 김유신입니다."

-아, 음. 김 헌터님. 잘 계셨죠?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같은 발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징조다.

-호, 혹시 오늘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 갈게요!

"아,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많이 바빠서요. 전화로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저, 저어…….

"무슨 일 있나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 네. 정말 죄송하지만…… 김유신 헌터님께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어서요.

"대표님이 제게 부탁을요?"

-네. 좀 갑작스럽지만… 협회에서 가람에 출장 파견을 요구했거든요.

"아하."

-다른 쪽은 상관없지만 하필이면 공인 3급 파견 요청이라서…….

가람은 국내 최상위 매니지먼트답게 세 명의 공인 3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다.

저번 힐러연합 사건 때 협조해 준가람의 에이스 '유하영'.

탱커 포지션에 특화된 방어 능력자 '강창범'.

그리고 나.

하지만 유하영은 호주에가 있고, 강창범은 던전 공략팀에 들어가 있다.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뿐.

-염치없고 죄송스럽지만, 혹시 김유신 헌터님이 가주실 수 없을까 해서 전화 드렸어요.

협회장에게 가람을 통해 오더를 내려 달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왕 파견을 가는 거라면, 가람에 빚을 만들고 갈 생각이었다.

내게는 명령 거부권 조항이 있다.

내가 파견을 거절하면 신나라는 유하영과 강창범의 일정을 캔슬하거나, 천문한적인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공인 3급 용병을 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스케쥴을 직접 관리하는 신나라는, 내가 얼마나 바쁜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일정들이 밀려 있는 지도 알고 있다.

즉 그녀는.

-죄, 죄송해요!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내게 엄청난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 역시 힘드시겠죠? 가람의 헌터뿐만 아니라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중이니까……. 저희 사정만 밀어붙일 수도 없고…….

나는 고심하는 척 뜸을 들이거나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마다 스피커 너머로 신나라 대표의 침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외 파견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장소는요?"

-저, 저도 몰라요.

"네?"

-비공개 파견이라서…….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뜸을 들여준다.

아아, 비공개 파견!

구질구질한 뭔가가 있다는 뜻이지.

대중에게 밝힐 수 없는 어떤 일을 하러 간다는 뜻이지!

임무 중에 전사해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은 사실조차, 공식적사망으로 집계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비공개 파견!

신나라는 그것을 내게 요구해야만 하는 입장이 됐다.

-거, 거절하셔도 돼요! 정말이에요!

"그럼 가람에서는 어떻게 하려구요?"

-3급 용병을…… 한번 구해봐야겠죠? 네! 어떻게든 될 거예요!

가람 같은 업계 탑 매니지먼트에서도 세 명밖에 없는 그 귀하디귀한 3급을 용병으로? 그것도 비공개 파견에 대신 뛰어줄 용병을?

머리에 총 맞은 놈 아닌 이상 내어줄 회사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 그게 안 되면 협회에 기간이라도 늘려달라고 공식으로 항의 넣어볼 거예요! 우리도 사정이란게 있는데 이렇게 다짜고짜 3급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냐고요! 아, 물론 저희가 협회일 맡은 지도 오래돼서 거절할 명분도 적지만……아, 아! 아니에요! 저희 사정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진짜예요!

멘탈 붕괴가 온 신나라였다.

……근데 듣다 보니 좀 불쌍하긴 하네. 아무리 내가 철면피고 양심없는 놈이라지만 슬슬 양심이 찔리기 시작한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김유신 헌터님께는 도움만 드리고 싶은데 자꾸 이런…….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비공개 출장. 제가 가겠습니다."

-아…….

잠시 그녀의 입에서 탄성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 무리해서 그러실 필요 없는데. 그, 그런데 정말로 가주실 건가요?

"아시잖아요. 저 한 입으로 두말안 해요. 저번 클래식 게이트 사태때도 도와드리지 못했으니까, 적어도 이번엔 가람, 아니 신 대표님의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내 옆에서 에아가 '네가 사람이냐'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고, 인터넷으로 세상을 배운 에아야. 사업가의 비즈니스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란다.

-김유신 헌터님! 아아, 정말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러지 마요. 그러면 설계고 뭐고 진짜 나만 나쁜 놈 같잖아.

-실은…… 훌쩍! 명령 거부조항은 유례가 없는 조항이니까 대외비로 했는데……. 협회에서는 3급 헌터 비는 거 아는데 왜 안 되냐고 막 그러니까. 훌쩍!

"……하하하."

잠시 후, 진정된 듯한 신나라와 나는 세부 일정을 조율했다. 그러다 그녀가 문득 말했다.

-아, 몰라! 말해버릴래요!

"네?"

-아직 확정된 건 아니라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저, 김유신 헌터님을 위해서 새로운 길드를 만들려고 해요.

"네에?"

간단히 말해 이런 거였다.

가람에서 자회사를 만든다. 헌터매니지먼트가 아닌 길드 형식에, 내가 주식 51%를 취득해 실질적인 경영권과 소유권을 쥐는 형태로 말이다.

게다가 가람의 인력을 직접 파견하고, 모든 경영과 육성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길드를 차리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린다.

이 업계에서 어지간한 신생길드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게 일쑤.

당장 내가 길드를 차린다고 해도 인맥과 인지도가 없기 때문에 당장 '던전 캐칭' 경쟁에서 밀릴 것이고, 우리 소속 헌터들은 일이 없어서 백수처럼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하우가 쌓이는 그 10년의 세월, 아니 그 이상을 그녀는 커버해 주겠다고 제안해 온 것이다.

"그건 자회사가 아니라 그냥 계열사 아닌가요?"

좀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내 회사를 가람에서 대신 차려주는 느낌이다.

"저한테 왜 그렇게까지……"

-김유신 헌터님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가람은 전투계 플레이어와 헌터를 취급하는 매니지먼트고, 김유신 헌터님의 길드는 비전투계와 마법사를 취급하는 길드가 될 거잖아요?

시장이나 고객층이 겹치는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협력관계를 유지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고 해도, 너무 저만 이득을 보는 것 같은데요……"

-아뇨, 가람에게도 이득이 있죠!

그녀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회사 하나 차려주는 대가로, 김유신 헌터님과 계속 이어질 수 있잖아요? 그 대가면 싼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이번엔 내가 울 차롄가.

-단기적으로 끝나는 비즈니스 관계는 싫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김유신 헌터님의 파트너로 남고 싶습니다!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온다.

이런 천사 같은 사람에게 빚이니 어쩌니 하면서 맘고생을 시켰다니!

매우 깊은 자괴감이 밀려든다.

음, 아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나쁘지 않은 판단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4층팀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고 해도, 가람 내부에서는 틀림없이 격렬한 반대가 진행되고 있을 터.

그녀가 '확정'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파견 건은 신나라 대표가 아닌, 가람 매니지먼트 전체가 내게 큰 빚을 지게 된다.

나를 다시 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반대파의 기세도 한풀 죽겠지.

-그러니까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해요.

신나라가 말했다.

-김유신 헌터님 본인의 길드를 직접 보게 될 그때를 위해서라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신나라와의 통화도 끝났다.

협회장의 보상에 신 대표의 보상까지 걸렸다. 이번 파견에 얽히는 부분이 여러모로 많아졌다.

이건 미션을 성공만 시킨다면야, 공인 헌터로서 나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마탑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냥 마법사 육성 파트를 날로 먹는 거니까 말이다.

'파견, 파견이라……'

상황이 어떻게 흘러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마탑의 모든 권능을 총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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