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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25화 (125/337)

나 혼자만 마탑주 125화

"제5층 차원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층 차원관은 벽이라고 부를 만한게 없었다. 별자리가 펼쳐진 듯한 이질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밤하늘을 두른 방과도 같았다.

모든 별자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5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나는 차원관 중앙에 있는 포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던전 게이트와 비슷한 외형이다. 중앙이 뻥 뚫려 있고, 그 중앙은 새까맣게 비어 있다. 겉면은 넘실거리는 고밀도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차원관이라는 소리를 듣고 설마 설마 했지만, 설마 진짜로…….

"이것이 바로 '워프게이트'. 5층은 공간 마법이 가능한 층입니다."

"예쓰!"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드디어,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공간이동을 손에 넣었다!

탑은 9층이나 있으니까 이 중 하나는 틀림없이 공간과 관련된 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보라는 워프게이트 주위를 신기한 듯 기웃거렸다.

"이것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그럼 에아 님.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겁니까?"

이번엔 정서진이 물었다.

"네. 세계 어디에 있든 워프게이트의 연동 마법진을 그리면 이 5층으로 이동하는 포탈을 열 수 있습니다."

'진짜 최곤데.'

나는 눈을 빛내며 워프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마탑의 행동반경이 한국을 넘어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됐다. 알케미아도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해외로 넓힐수 있으리라.

에아는 한쪽 벽면에 있는 도면 케이스들을 뒤적거리다가 그중 하나를 뽑아 내게 내밀었다.

"탑주는 이 마법진을 익혀서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뭐야?"

"가장 기본적인 차원계 마법진인 '연동진'이라고 합니다. 워프게이트의 통로를 잇는 마법이죠."

"아하! 이게 '문'이 되는 거구나."

예를 들어 내가 영국 런던에서 이 마법진을 그리면, 5층 차원관과의 워프가 연결된다. 이후 마나가 다할때까지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만들어도 5층 게이트가 쓸 수 있는 거네요?"

"물론입니다."

에아의 대답을 들은 진보라가 반색을 했다.

"그럼 정말 꿈의 기술이잖아요! 이제 힘들게 아카데미 마탑 통학 안해도 되겠다!"

모두가 연동진을 살펴보러 내 앞으로 몰려 들었다. 세 사람도 이제 서 클 마법사고 마법수식을 볼 수 있겠지만.

"……이게 다 뭐에요?"

"어려워!"

이건 일반적인 마법진 수식이 아니었다. 차원을 움직이는 마법인 만큼, 일반 마법과는 완전히 다른 계열의 지식을 필요로 했다. 거리감으로 비교하자면 같은 과학이라도 화학과 물리학만큼의 차이다.

'음,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는 5층을 공략하고 '워프공학 Lv.5'특성을 손에 넣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연구하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에아. 그럼 우리가 만드는 워프계마법들은 무조건 5층하고만 연결되는 거야?"

"아닙니다. 나중에 5층 관리관이 생기면, 게이트를 다른 장소에 직접 설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게이트끼리는 연동이 가능하죠. 예를 들어, 서울과 뉴욕에 워프게이트를 설치하면 일반인들도 마탑에 들어올 일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나는 돈을 생각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온다고 했던가, 지금 이 바로 그랬다. 새로운 수익 모델이 마구 머릿속에 떠오른다.

단순히 수입을 올린다는 효과 외에도, 네메시스 같은 거대 재앙이 다가올 때 이런 워프가 있으면 전 세계의 헌터계가 더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겠지만, 5층의 기술력이 더 진보하면 차원에 간섭해 던전이나 다른 이계와 연결하는 워프 마법도 가능해집니다."

"이계 이동이라니……"

진보라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에아는 조용히 벽면을 쓸어내리다가 말했다.

"에렌델의 마탑이 이 지구까지 온것도 5층의 기술이겠죠."

"그렇겠네."

그때 은솔이 내 바짓자락을 잡아당겼다.

"오빠야! 오빠야! 그럼 이제 5층 관리자도 뽑을 거야?"

"그럼. 새로 뽑아야지."

5층 관리자도 바로 뽑아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지금 나는 최고 유망주급 마법사를 다섯 명이나 키워두고 있다.

그중 한 명은 4층 기상설계국에, 다른 한 명은 5층 차원관에. 일단 그렇게 하는 게 베스트로 보인다.

"하지만 탑주. 5층 관리자는 상당한 전문 역량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에아는 그렇게 말하며 벽면 쪽으로 걸어갔다.

그 벽에는 손잡이 같은 게 붙어 있었다. 그래, 저게 무슨 용도인지 계속 궁금했는데.

에아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드르르륵! 하고 얇은 판 같은 것이 뽑혀나왔다.

'이건…!'

극도로 난해한 차원 수식에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중앙에는 블랙홀 같은 것이 이글거리며 박혀 있다.

"이게 바로 워프게이트 하나를 만들기 위한 도면입니다."

"……미쳤네."

나는 헛웃음을 흘렸고 다른 세 명은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진짜 차원계의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은 도면이다.

어중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이공간을 계산하는 이론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것이다.

게다가 마법의 정석에 의하면 사고도 워낙 잘 일어나는 게 공간 마법이라고 하니,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상당한 정보와 전문지식이 필요해 보였다.

'5층 관리자는 진짜 제대로 뽑아야겠다.'

에아가 다시 도면을 집어넣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손잡이 달린 판이 완전히 벽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벽면에 멈춰있던 별자리들이 다시 유동을 시작한다.

* * *

4층 팀의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신이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마법교육과 던전을 번갈아 가며 했다.

유신이 이론을 정립하고 마법을 가르치면, 다음 날 던전에서 바로 실전으로 써먹는 식이다.

가람의 매니저들은 던전캠으로 영상을 촬영하며 마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담았고, 유신이 직접 영상을 보고 피드백했다.

개인마다 훈련 내용뿐만 아니라 일정도 상이했다.

5급 공인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능력치 합 200'을 맞추기 위해 조용희와 김사랑은 오전에 마법훈련을 마치고, 오후에는 던전을 돌았다. 나머지 멤버들은 마법훈련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식으로 운영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 되었고, 공인 5급 시험날은 점점 다가왔다.

"다들 좋은 아침!"

"대용 씨, 어제 팔은 괜찮아요?"

"끄떡없슴다! 하하하!"

그간의 고생으로 4층 팀원들 간의 팀워크와 협력심도 깊게 쌓여 있었다. 그들은 누구도 못 해보는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는 묘한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4층 팀을 좋게 보는 건 아니었다.

"쟤들이 마법사팀이지? 김유신이 직접 키운다는."

"그러네."

"비전투계들만 모여서 마법을 배운다는데."

가람 매니지먼트 소속의 X-1 팀.

최근 들어서는 길드와 매니지먼트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길드만 기숙팀을 키우는 게 아니었고, 매니지먼트만 던전캐칭 아웃소싱을 제공하는 게 아니게 됐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힘입어, 가람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기숙팀 프로젝트의 핵심. 미궁세대 중에서도 특급 유망주들로 구성된 X-1팀이었다.

팀 전원의 공인 헌터 합격을 목표로 회사의 모든 지원이 집중되고 있었다.

척척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이들은 가람의 미래라는 평가를 들으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사내에서는 김유신이 이끄는 저 비전투계 5인팀에 묘하게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X-1 팀에서는 그 점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에이, 비전투계 애들로 무슨……"

"다른 유망주들도 많은데 비전투계 파티는 진짜 무리수야."

뿌리 깊은 비전투계에 대한 인식.

비전투계들은 헌터계의 암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헌터계 전체로 미루어보면 큰 전력도 아니면서도, 허구한 날 1~4랭크 사냥터에 득실거리며 마정석이나 탐내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

사냥해 놓은 몬스터들의 시체와 마정석을 하이에나처럼 몰래 가로채거나, 의도적으로 루팅 문제를 일으켜 분쟁을 유도하는 등 온갖 추잡스러운 짓에 얽혀 있는 사람들.

이런 크고 작은 이슈들이 쌓여가며 비전투계들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치닫게 됐다.

x-1 팀이나 근처의 다른 팀들도 4층팀을 보며 수군거렸지만, 4층팀 멤버들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기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경멸의 시선, 동정의 시선은 그들에겐 익숙했다.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을 단계는 이미 지났다.

조금 골려주려고 했는데 너무 담백한 반응뿐이자 X-1 팀원들은 약이 올랐다. 들으라는 듯 더욱 소리를 높여 말했다.

"미궁 던전 사태 때 던전을 숨긴 것도 사실 마인이 아니라 비전투계였다면서요?"

"어머, 진짜?"

"근본 없는 애들 오냐 오냐 가르치면 버릇만 나빠질 텐데."

"앞으로가 훤하죠? 실전성 없는 자투리 마법 좀 배웠다고 현장에서 나대다가 사고만 내……"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기겁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응? 진희 씨. 왜 말을 하다 말아요?"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달달 떨며 뒤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본 모두의 표정이 그녀와 똑같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재밌는 이야기들 하고 계시네."

유신이 그들 뒤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 손에는 즐겨 마시는 솔잎의 눈 캔을 들었다.

화악 굳어진 얼굴의 X-1 팀이 차렷자세로 기립했다.

"김유신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러고는 일제히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폴더인사했다.

아무리 회사에서 밀어주는 유망주들이라고 해도, 결국은 가면허 플레이어다. 공인 3급 헌터와는 하늘과 땅 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네에, 네에. 고개 드세요."

느물거리는 유신의 말투에 X-1팀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간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그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들라고."

차차착!

팀원들이 식은 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망했다.'

'3급한테 찍힌 거 아냐?'

'에이 씨! 누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새내기들을 지켜보며, 유신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뭐, 나도 알아요. 비전투계의 인식이 딱 그 정도라는 것쯤은."

그때 X-1 팀의 팀장 추형석의 머리가 파바박 돌아갔다. 그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자, 잘못했습니다! 마법사팀에게 직접 사과할 기회를 주십시오!"

추형석의 행동을 본 나머지 네 명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복창했다.

"기회를 주십시오!"

유신은 조용히 손에 든 솔잎의 눈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고개 들고, 내 말 끊지 말아봐요."

다섯 명이 황급히 허리를 세우며 원위치했다. 오히려 역효과. 팀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팀장 추형석에게 꽂혔고, 추형석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저는 이해해요. 여러분의 심성이 어떻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인식이 그렇고 귀에 들리는 게 그런 것들뿐인데요 뭘. 누굴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고정관념은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생물이니까.

'저 사람은 유대인이야.', '저 사람은 게이야.', '저 사람은 우파야.'

단하나의 유형과 정보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서슴없이 결정하고 인식해 버린다.

"그러니까."

유신이 다 마신 솔잎의 눈 캔을 꽉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이 머릿속에 가졌던 인식을 바꿀 기회를 주십시오."

"네, 네?"

유신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4층팀을 가리켰다.

"한번 붙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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