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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24화 (124/337)

나 혼자만 마탑주 124화

[네노오오옴! 똑바로 나를 상대해라!]

"네, 기다려요. 이것만 좀 보고요."

수호병이 격분하여 재차 언월도를 휘둘렀다.

[나를!]

횡 베기.

[제대로!]

자세 캔슬 후 찌르기.

[상대하란 말이다!]

도망치는 궤적보고 역베기.

유신은 모든 계산을 마친 뒤였다.

스물여섯 시간 동안 하나의 보스랑 죽도록 싸운 유신은 이제, 이전 행동을 보고 다음 행동을 예언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사실 노하우만 캐치한다면 쉬웠다.

자세히 보면 수호병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원이 그어져 있는데 수호병은 저 원을 벗어나지 않고 제자리에서 언월도만 휘둘렀다.

다른 변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오로지 언월도만 보면 된다.

심지어는 좀 더 안전한 회피를 위해, 언월도 위에는 유신이 몰래 박아놓은 계산 마법진들이 붙어 있었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는 것이, 유신은 계산 마법진에서 출력하는 궤도를 보고 피하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악!]

수호병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호구 잡혀도 이렇게까지 잡힐 수 있단 말인가! 놈은 전혀 자신을 상대할 의지가 없었다.

수호병은 다리를 벌리고 모든 마력을 언월도에 끝에 모았다.

스릉!

다른 동작의 낌새 없이, 소름 끼치는 속도로 뻗어 나간 언월도가 유신이 피하기도 전에 그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드디어!]

그러나 반으로 갈라진 유신의 몸은 물로 변해 바닥에 떨어지고, 반대쪽 벽면에 있던 유신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새로운 화염계 마법 GET!"

[이 미친 놈이이이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수호병은 눈물은 나오지 않는 몸이었다.

[이봐! 도굴꾼!]

"네에, 말씀하세요."

뷔페에 와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유신은 느긋하게 다음으로 카피할 마법진을 골랐다.

[흠흠,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이 시련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건데요?"

유신이 관심을 가지자 수호병은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이 시련의 핵심 키워드는 욕망과 현실의 균형이다! 비행 마법으로 내 공격을 피하면서 마법진을 도굴하는 건 맞아! 하지만 너무 마법진에 정신이 팔려 버리면 마나도 바닥나서 자연스레 위기가 닥치지! 반면에 나를 바로 쓰러뜨린다면 이곳의 유물을 도굴하지 못하고 끝난다. 그 미묘한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아하."

[아하는 얼어 죽을! 네놈은 이곳의 유물을 죄다 도굴할 생각이냐! 이제 그만 하고 진지하게 덤벼라!]

"싫어요."

[크으으! 대체! 왜 네놈은 왜 마나가 안 떨어지냐는 거냐!]

유신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 알랴줌."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신은 이 보스룸의 모든 비밀을 알아차렸다. 수호병이 말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는 마나가 무한이 아니다.

그런데 저 수호병은 막대한 마나를 언월도에 담아 휘두르면서 24시간 내내 지친 기색도 없다.

이상하다 싶어서 조사해 보니 중요한 비밀을 알아냈다. 알고 보니 수호병이 나오지 않는 저 원 안. 저 범위만큼은 일반적인 시련처럼 무한의 마나가 유지되는 필드였다.

이에 유신은 저 필드에 '세이브 마법진'을 설치하고 물의 장막으로 숨겼다. 그리고 몸의 마나가 슬슬 부족해질 즈음에는 바닥의 마법진을 베끼는 척하며 '마나 드레인'으로 세이브 마법진의 마나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마법진을 도굴하는 것을 무한 반복. 어느새 26시간째다.

[크아아아아아!]

수호병이 울부짖으며 언월도를 휘두른다. 유신은 데바의 눈에 출력된 좌표를 본다.

'횡 베기네.'

유신은 돌아보지 않고 몸을 띄워 피해낸다. 그러고는 흥얼흥얼 독도는 우리 땅 가사를 각색한 노래를 머릿속으로 따라 부른다.

'횡 베기, 찌르기, 보고 베는 연속기. 안 찌르면 검격기, 변수 파동기.'

[으아아아악! 왜 이리 잘 피하냐고 이 미친 놈이!]

수호병의 말은 가볍게 귓등으로 흘린 유신은 눈을 빛내며 금속계 마법진 수식을 보았다.

신기하다. 놀랍다. 새로운 마법진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날로 먹고 있어서 그런 지배도 고프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이틀은 더 버틸수 있을 것 같다.

-탑주, 옵니다. 페이즈 3입니다.

'그 패턴 오랜만이네.'

유신은 슬쩍 시선을 굴려 언월도의 마법진이 보내주는 좌표와 각도를 확인한다.

페이즈 3은 얼룩 송아지 노래다.

유신은 다시 흥얼거리며 리듬감과 함께 몸을 움직인다. 그가 폴짝폴짝 뛸 때마다 언월도는 연신 허공만 가른다.

[양심이 있으면 한 대는 좀 맞아라!]

"죄송함다. 한 대라도 맞으면 저 죽어요."

이걸로 금속계 마법진까지 익혔다.

그리고 작전타임.

'페이즈 3의 구사 빈도가 잦아졌어. 방심은 금물이니까 대비하자.'

-네.

유신은 바닥에 파이어 캐논을 발사해 연막을 깐다. 그리고 폭발 연기를 뚫고 세 명의 김유신이 뛰쳐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들은 천장, 벽면, 바닥에 붙어서 마법진을 살핀다.

물론 셋 중 둘은 물의 장막으로 인한 가짜다.

[차라리 날 죽여라 이놈아!]

수호병의 처절한 절규가 이어진다.

하지만 유신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 * *

"으아앙."

기다리다 지쳐서 이불 바닥에 엎드려 있던 진보라가 퍼뜩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 또 한 가지 생각났어요! 혹시 이런 게 아닐까요?"

퀭한 얼굴의 두 사람이 진보라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희망을 가지기 위해 '김유신이 왜 이렇게 늦을까'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현재 1위는 '김유신은 시련에 안 갔고 사실이 모든 게 몰래카메라였다.' 라는 것이다.

"선배님이 보스전을 하는데, 갑자기 어디 이상한 데 과몰입해 버린 거예요! 막 보스룸 벽면에서 엿볼수 있는 예술적 철학이라던가, 사연있는 보스 몬스터의 이야기에 꽂혔다거나! 그래서 빨리 나올 수 있는데 막 안 나오는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헤헤."

정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행복회로는 지나친 것 같습니다."

"……."

진보라가 이불 속에 들어가 발버둥을 쳤다.

"으으, 알아요! 안다고요! 말도 안된다는 것쯤은!"

* * *

[이제 그만 하고 좀 싸우자! 응?]

"이것만 좀 보고요."

유신은 마지막까지 알차게 마법진을 챙겼다. 나머지는 너무 고전적이라서 사장됐거나, 비효율적이거나, 유신이 익힐 수 없는 마법들이었다.

'하아, 기분 좋다.'

유신은 행복했다. 이런 혜자 같은 시련이 다 있다니.

'기다려라, 제자들아. 스승님이 간다.'

유신은 등을 돌려 수호병을 바라보았다.

[오……! 드디어 싸울 생각이 들었나!]

"네. 그렇죠 뭐."

그의 오른팔이 뻗어졌다.

"그런데 유적 수호병님. 이 시련에 대해서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뭐?]

"욕망과 현실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면서요? 그런데."

그냥 욕망에만 충실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이 안에 있었다.

상대는 5층 시련의 보스. 패턴을 마스터한 유신에 의해 호구 잡히긴 했지만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낼 수 없었다.

왜 잡으려는 시도를 안 해보았겠는가. 원소 마법으로도, 심지어 데바스타로도 마찬가지. 극단적으로 단단한 몸이다.

"사실 유물 수호병님을 잡을 수 있는 수식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 무슨! 그럴 리가 없다!]

그때 수호병의 등 뒤로 눈부신 마법진이 펼쳐진다.

원격시전으로 차곡차곡,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그려둔 마법진.

이 유적 전체의 마법들 중, 단 하나 유일한 5공정 마법진.

5공정은 특이했다. 4공정은 어떻게든 2:2 비율로 생태계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면 5공정은 마법진을 다섯 개나 써야 하므로 극악의 밸런스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파격적인 가르침이 있었다. 5공정은 절대로 하나의 마법진으로 발동하지 않는다.

우웅! 우우웅!

수호병의 등 뒤의 마법진이 펼쳐지자 동서남북 사방에서 마법진이 펼친다.

5공정 마법의 구조는, 메인 마법진을 중앙에 놓고 서브 마법진 4개로 발동한다. 이 다섯 개의 마법진이 하나다. 에렌델에서는 이것을 '연계법'이라고 불렀다.

위기감을 느낀 수호병이 페이스를 올리며 미친 듯이 언월도를 휘둘렀지만 유신은 능구렁이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그럼……"

유신이 주먹을 꾹 쥐었다.

"잘 가요."

<데스 로즈>

마침내 수호병의 등 뒤의 마법진이 작동하며,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난다.

피처럼 붉은 장미. 그것은 마치 박동하는 심장처럼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리고 장미가 피어나는 순간부터, 수호병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깰 수 없는 몸을 가진 보스 몬스터. 그것을 공략하기 위한 5공정 마법. 데스로즈는 해당 몬스터의 생명력 그 자체를 양분으로 피어오른다.

쿵!

붉은 장미의 몸집이 커지는 반면, 수호병은 쇠약해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붉은 장미의 꽃잎이 완전 확 펼쳐지는 순간.

쿠우우웅!

수호병은 완전히 바닥에 쓰러졌다.

흐드러지게 핀 꽃잎이 바람을 따라 휘날린다. 유신은 팔을 내리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몸 상하는 것도, 멘탈붕괴되는 것도 뭣도 없이, 보상은 보상대로 다받고 5공정 마법 입문까지 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제자들에게, 4원소 마법뿐만 아니라 개성에 맞는 전공 마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게 됐다.

'5층은 내 인생 최고의 던전일 거야.'

난이도가 낮은 건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천운이 따랐다. 가끔은 이렇게 날로 먹는 층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유신은 생각했다.

잠시 후, 시련의 마법으로 유지되던 이 공간 자체가 깨져나갔다.

[축하합니다! 보스룸을 클리어했습니다.]

[마탑 제5층 '차원관'이 해금됩니다.]

['차원지기'의 일부 특성을 획득합니다.]

쨍그랑!

잠시 기다리자 주위가 완전히 깨져나가며 마탑으로 돌아왔다. 유신은 5층으로 향하는 계단 위에 올라서 있었고, 시련의 마법이 사라지며 이제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다들 여기서 다들 뭐 해?"

계단 중간에 관리자들이 이불을 깔고 앉아 있었다. 텅 빈 육개장 컵라면 용기와 나무젓가락들까지 보인다. 뭐지 이 분위기는?

그리고 유신을 본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걸 본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유신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아."

진보라의 말라붙은 눈에 물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은솔도 그렁그렁 한 눈으로 소리쳤다.

"오빠야다!"

"……?"

두 여자가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유신은 그녀들을 받아주려다가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졌다.

"오빠야아!"

"으아어엉! 선배니임!"

"……?"

유신은 어리둥절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반갑다는 의사를 표하는 거라면, 평소보다 반응이 격했다. 이건 뭐 거의 이산가족 상봉하는 분위긴데.

유신은 설명을 요구하듯 뒤따라온 정서진을 바라보았다. 정서진은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탑주님."

정서진도 체면상 가만히 있는 것 같았지만,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유신은 빠르게 분위기 파악을 마쳤다.

그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던전에 있었지만 에아는 24시간도 훌쩍 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두의 환대에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 미안해 애들아! 에아한테 시켜서 보스전 간다는 거 미리 말해놨어야 했……!"

"으어어엉! 괜찮아요!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요!"

"오빠야아아!"

"……."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해서 용서해 줄 분위기였다. 유신은 속으로 안도했다.

'하아, 아무튼 이걸로 5층까지 개방했구나.'

이제 남은 층은 단 세 개뿐.

그리고 13대 마탑주 안톤은 계획된 파멸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빨리 탑을 등반할 것을 요구했다.

'계획된 파멸은 재앙 네메시스 아니었나? 그게 탑 등반이랑 뭔 상관이 있는 거지?'

정보가 제한되어 있으니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뭐, 지금은 일단 즐기자.'

고개를 젖힌 유신의 시선이 5층으로 올라가는 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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