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19화
"28조 들어오세요."
척! 척! 척!
면접장으로 들어오는 다섯 명의 지원자 중 유난히 튀는 사람이 있었다.
우람한 몸집에 어깨가 쩍 벌어진 헬스장 마니아 같은 스타일의 남자였다.
"오오오오옥! 이건 진짜다! 실물이야!"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냅다 튀어나와서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아, 상당히 부담스럽다.
"드디어 귀하신 분의 존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 사나이 나대용! 김유신 헌터의 크나 큰 은혜 덕분에 어둠뿐이던 미래에 한 줄기 희망을 움켜잡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천년만년 갚아도 모자랄 빚을 졌습니다!"
……그래, 면접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지.
좀 튀어 보이려고 대뜸 율동을 춘다거나, 이상한 개인기를 한다거나, 이렇게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사람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력서를 넘겼다. 일단 이 사람부터 해야겠다.
"나대용 씨?"
"예!"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모두의 어깨가 흠칫한다. 나는 위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위에는 아직 업무 중입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이력서를 살피던 나는 어느 지점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유하신 특성 중에 흥미로운 게 있네요."
[과몰입 Lv1]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특성 때문에 힘든 적 없었어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일상생활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마나에 집중할 때는 어때요?"
"마나에 집중한다는 말씀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몸에 마나가 물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오긴 했습니다!"
오호. 이 정도면 퍽 만족스럽다.
"그럼 준비해 온 마법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예!"
그가 준비해 온 마법은 건틀릿과 마나 에로우. 마나 에로우의 완성도는 형편없었지만 건틀릿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정서진의 압박 질문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잘 대답했다.
"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단정한 스타일의 안경 쓴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차분하게 서술하는 자기소개를 듣고 있으려니, 아까 나대용의 임팩트와는 정반대라서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게 들렸다.
"그럼 소심희 씨. 준비해 온 마법시전을 부탁드립니다."
"……네."
그녀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려 쉴드를 일으켰다.
'무슨 완성도가…….'
수식에 빈틈이 없었다. 나는 바로 마나 에로우를 만들어 날려보았다.
터엉!
심사용으로 던지는 마나 에로우는 항상 위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지원자들의 쉴드들은 깨지거나, 금이 가거나, 너무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통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단한데.'
그녀의 쉴드는 튼튼했고, 심지어 금도 가지 않았다. 컨트롤이 정밀하다는 증거.
"좋네요. 다음은 마나 에로우를 부탁드립니다."
"……네."
그녀가 허공에 마나 에로우를 그리기 시작했다. 정확도와 속도의 비율은 8:2. 속도가 좀 느리긴 해도, 정확도가 워낙 좋아서 커버할 수 있을 정도다.
"아……!"
그런데 너무 긴장을 했는지 수식이 삐끗하며 다른 수식을 건드리고 말았다. 생태계가 순식간에 붕괴되며 마법진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며, 내가 계속 면접장에서 보던 바로 그 표정이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창가를 바라보려는 것을 힘들게 참아냈다.
"천천히 다시 해보세요."
"……아,네."
모든 지원자들에게 기회는 충분히 주고 있다. 소심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다시 서클을 가동하고 베이스를 깔았다.
하지만 벌써 멘탈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멘탈은 마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착실해 보이던 기본기가 흔들리고, 서클마저 반듯한 고리의 형태에서 번잡한 것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가락은 연이어 허공을 헛돈다.
내가 처음에 예고 했던 것처럼, 최소 기본기를 다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박탈된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지나치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아쉽네.'
마법진의 완성도만 보면 그녀가 지원자들 중 최고였다. 평소라면 훨씬 더 잘 했을 테지만, 룰은 룰이다.
멘탈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것도 마법사로서는 결점. 아쉽지만, 여기선 어쩔 수 없이 불합격을…….
"언니야! 힘내!"
그때, 은솔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모두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본다. 소심희도 넋을 놓은 표정으로 은솔을 보았다. 은솔은 아무 사심도 걱정도 없는, 순진무구하게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할 수 있어!"
입술을 파르르 떨던 소심희는, 마침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응. 고마워."
스륵. 스륵.
평정을 되찾았다. 베이스. 룬어. 수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쭉쭉 그어낸다. 모두가 입을 벌리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 봐라.'
내가 영상에서 제시한 수식에 그녀나름의 어시스트, 합산 수식을 추가로 더 했다.
우웅!
완성된 마나 에로우가 쏜살같이 날아가 내가 만든 쉴드에 부딪혔다.
"……."
소심희가 고개 숙여 우리에게 인사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 하고 섰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방금 마나 에로우에 추가한 합산수식."
소심희가 움찔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설마 모를 줄 알았나?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그렇게 하면 수식량이 너무 늘어나고 시전속도가 현저히 떨어져요. 원래 소심희 씨는 시전속도가 느린 편인데 이렇게 되면 현장에서 쓰기 힘들어지겠죠?"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진보라와 정서진도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잘 했어요. 자신만의 스타일 구축하려 시도했다는 건 높게 평가합니다. 이렇게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새로운 마법은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아."
쉴드는 정석 중의 정석. 마나 에로우는 변형 수식.
그녀는 양쪽 모두 다 해냈다. 솔직히 말해선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서클 마법사들 중에서는 아마도 그녀가 가장 '오리지널 마법'에 근접한 플레이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대용과 소심희가 속한 조가 밖으로 나갔다. 나와 진보라는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심희 씨. 마음에 드시죠?"
"응. 멘탈에 결점이 있어도 재능이 워낙 좋으니까, 웬만하면 데려가고 싶네."
그리고 나는 빼놓지 않고 은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솔아."
"응!"
오전에 인재가 별로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오후는 시작부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많았다. 바로 이어서 다음 조가 들어왔다.
"조용희 씨?"
"네."
머리를 가지런하게 기른 남자가 걸어왔다. 인상이 음침했다. 짙은 다크서클에, 눈을 가릴 듯 말 듯 거슬려보이는 앞머리. 캐주얼한 옷차림에 목에는 헤드셋을 끼고 있다. 철저한 마이웨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인상적인 건.
"……긴장하셨나요?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몸이 주륵주륵 녹아내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에어컨 틀어둬서 실내 온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
동시에 감기에도 걸렸는지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어, 음. 이건 그러니까. 쿨쩍! 긴장한 게 아니라 체질입니다. 고유 능력 부작용 때문에……"
나는 그의 이력서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고유 능력도 있구나. [체액분비]라니.
"저어, 체액이란 건 구체적으로 뭐가 분비되는 건가요?"
진보라가 물었다.
"그러니까 아……. 쿨쩍, 땀 많이 나고 침 많이 흘리고 콧물 많이 나오고 뭐 그런 것들이죠."
"아. 그, 그러시군요."
고유 능력 부작용이라.
플레이어로 각성한다고 해서 전부 좋은 건 아니다. 막대한 리스크를 가진 고유 능력을 얻게 되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거나 평생 고통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준비해 온 마법 보여주세요."
"네."
조용희가 준비해 온 건 마나 에로우와 쉴드. 마법 구사는 평범한 편이었다. 그런데.
"잠깐만요 조용희 씨."
"예."
"……지금 서클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고 있네요?"
마나의 흐름이 달랐다.
"아, 네. 원래 가르쳐 주신대로 했는데, 쿨쩍! 잘 안돼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제 몸에 맞는 스타일로……"
이 녀석은 대체 뭘까.
서클을 반대로 굴려서도 발동이 된다는 건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모든 게 역순.
들숨을 쉴 때 날숨이 나가고, 날숨을 쉴 때 들숨이 나간다. 남들보다 마나 신경이 역으로 구성된 특이케이스다.
개인적으로는 한번 붙잡고 연구해보고 싶은데…… 그건 다른 응시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실력으로 뽑기로 했으니까.
"저어."
그때 조용희가 손을 들었다.
"조금 개인적인 거지만 한 가지만 더 쿨쩍!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개인적인 거? 한번 해보세요."
마법에 대한 개인의 플러스 알파도 평가대상이니까, 나는 기꺼이 허락했다.
"이건 평소엔 안되던 건데…… 서클을 만들고 마법을 배운 뒤로는 되는 거라서……"
조용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짙은 정적이 흘러간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그때.
화악!
"우와앗!"
"꺄악?"
푸른 빛을 띠는 물방울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알고 보니 조용희의 땀방울이다.
심지어 마나가 흘러 들어가 푸른빛을 내고 있다.
면접장에 있는 모두가 입을 벌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순히 고유 능력을 잘 쓰게 된 건 아닌 것 같군요.
에아가 내 머릿속에서 해설했다.
-이건 '마나부여' 현상에 가깝다고 사료됩니다.
'내 생각도 그래.'
조용희가 천천히 눈을 뜨자, 푸른방울들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주위가 땀 천국이 되어버렸다.
"으아아, 죄송! 죄송합니다."
조용희는 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휴지를 꺼내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연구대상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다 닦으셨으면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아, 옙."
조용희 조가 그렇게 빠져나갔다.
이후에도 면접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철우입니다."
면접생 중 처음으로 '도장법'을 쓰던 지원자.
"김사랑 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 잘 부탁드려요!"
처음으로 건틀릿, 마나 에로우, 쉴드 세 가지 마법을 모두 선보인 지원자.
"꼭 김유신 헌터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마나계 고유 능력을 사용해서 쉴드의 크기를 두 배로 늘린 지원자까지.
아직 1서클이고, 3대 기초마법밖에 공개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수 많은 개성의 싹이 보였다.
이들이 더 높은 서클로 올라가고, 원소 마법을 배우고, 전공을 정해서 한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한다면?
마법을 배우는 사람 만큼의 새로운 개성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이 시각 부로 모든 면접을 종료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9시.
드디어 모든 면접이 끝났다. 우리는 완전히 퍼지고 말았다.
"으으, 머릿속에서 마법 수식이 떠나질 않아요!"
"심사하는 것도 진짜 고역이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마탑으로 돌아왔다. 다들 1층의 황금 로비로 오자마자 소파와 쿠션 위에 쓰러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시장하셨을 테니 식사부터 하시지요."
에아가 빙그레 웃으며 모두를 맞이했다. 식탁에는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따뜻한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 에아."
"오빠야! 솔이는 쏘시지 먹을래!"
우리는 저녁을 먹고 다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대로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정서진은 아직 지원자들에 대한 감이 살아 있을 때 가닥을 잡아야 한다며 모두를 끌고 내려왔다.
"편하게 보자."
우린 바닥에 깐 카펫 위에 모든 이력서를 촤르륵 쏟아놓은 다음, 각자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차근차근 이력서를 검토했다.
에아도 함께 이력서를 체크했다.
그녀도 내 눈으로 모든 지원들을 봤기 때문이다.
'자, 그럼 누굴 뽑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