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16화
카메라가 돌아갔고, 나는 대본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공인 3급 헌터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소개로 시작해서, 내 이력을 설명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줄줄 늘어놓고, 비전투계에 대한 사회 비판을 늘어놓다가 이제 마법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도 대본은 검수하긴 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역시 별로 재미는 없다.
'자아, 김 대표님! 촬영은 영감입니다! 생방송도 아니고 편집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좋은 영감이 떠오르면 그냥 바로바로 시도하세요! 막 내뱉으세요! 아셨죠? 저희가 다 살려 내겠습니다!'
마침 최일석 PD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바로바로 시도하라고 했겠다?
나는 촬영이 시작되는 동시에 제자리에서 마력을 일으켰다.
화아아악!
내 주위로 마법진들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무수히 일어났다. 이글거리는 화염구, 서리를 휘날리는 얼음창, 맹렬히 회전하는 바람의 칼날.
카메라를 붙잡고 있던 카메라맨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쳤고 스태프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스탭분이 너무 놀라셔서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이거 상의 안 된 거거든요."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모든 마법진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제야 카메라맨은 달달 떨며 자세를 다잡았다.
"저는 이 힘을 '마법'이라고 부릅니다. 아, 물론 CG 같은 건 아니에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명백히 제가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밝힌다.
내 힘의 정체를.
"저는 한국의 공인 3급 헌터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이 영상을 찍게 된 이유는, 제가 가진 이 마법이라는 힘을 전 세계의 플레이어분들께 공유하고 싶어 섭니다."
취지를 밝힌다.
"저는 비전투계로 시작했고, 마법의 힘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세간에는 마법이 저의 고유 능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건 마력 기술의 일종입니다. 플레이어라면 훈련을 통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힘이죠."
곳곳에서 스태프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마법은 평소에 마나를 활용하지 않았던 분들, 즉 비전투계 여러분들이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기술입니다. 마나는 민감한 힘이거든요. 현역 헌터분들이나 전투계 능력자분들도 마법을 서브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익히는데 노력이 더 들 겁니다."
적어도 이 힘은, 전투계들보다 비전투계들에게 더 유리하다.
이미 전투에서 고유 능력을 펑펑 터뜨리며 싸우던 헌터들은 마법진을 구축하는 게 쉽지 않다. 마나가 너무 고유 능력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마나를 일으키면 마나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지?'. 마치 도장법처럼, 급박한 실전에서 마법을 일으키면 무의식 단계에서 고유 능력 발동으로 넘어가 버린다.
두 힘이 호환이 안 되고 엉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런 미스는 치명적이고, 전투 고유 능력 단련과 마법을 병행하는 건 어지간해서 힘들다고 본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께 마법을 알려드리는 이유는, 헌팅과 성장에 한계를 느낀 분들께 최후의 수단을 제시하는데 있습니다."
미리 경고하는데, 이거 어렵다.
"무른 각오로 덤벼들면 시간만 버리는 꼴입니다. 차라리 그냥 잡던 구르마 계속 패세요. 마법은 새로운 길이지, 편한 길이 아닙니다."
각오가 된 사람, 절실한 사람만 달라붙어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허공에 마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저는 이걸 서클(Circle)이라고 부릅니다. 마법의 기본은 이 서클이라는 걸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심장을 중심으로 마나를 운용하면 마나가 원의 형태로 회전합니다. 이걸 밖으로 끄집어내는 감각으로 서서히 형태화시켜서 굳혀나가는 겁니다. 단, 한두 번 끄적거리는 정도로는 힘듭니다. 수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리 만드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원심고리' 특성과 '마력 제어' 특성이 생깁니다. 특성이 생겼다면 아주 잘 하고 계시는 거예요. 훈련내용이 특성으로서 굳어져 준다면 서클을 운용하기 훨씬 편해집니다.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세요."
"지구의 마나는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서클을 이용해 마나를 굳히는 거죠. 정제된 마나가 마법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입니다."
"서클을 완성하셨다면, 다음은 마법진을 구축하는 방법입니다."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촬영과 동시에 돌아간 전자시계는 어느새 세 시간째를 표시하고 있었다.
"컷!"
최 PD가 마침내 컷을 외쳤다. 스태프 모두가 이쪽을 보며 환호했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생수를 들이켰다. 최 PD가 달려왔다.
"대단했습니다, 김 대표! 저는 헌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제가 봐도 이해가 쏙쏙 되던데요?"
"다행이네요."
"히야, 저는 언제나 방송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보고 처음으로 플레이어들이 부러워졌습니다. 좋은 강의였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세트장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정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으으, 힘들어 죽겠네.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
우리는 함께 세트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정서진의 차에 탄 나는 등을 쭉 기대고 발 아픈 구두를 벗어 던졌다. 꽉 조인 넥타이를 풀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탑주님."
"그래?"
"역시 이번 마인 사태에 책임감을 느끼시고 계셨군요."
나는 픽 웃었다.
"에이, 갑자기 뭔 소리야? 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그렇습니까."
차가 출발했다.
우중충한 하늘, 그날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서진아."
"네."
"나나 윤정이는, 어떻게 보면 실패자야."
정서진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우리는 각자 헌터계에 영향력을 끼쳤지만, 그건 비전투계 능력자로서가 아니야. 마탑주의 힘으로, 마인의 힘으로. 어떻게 보면 도망친 거야. 그 굴레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카메라 앨범에서 스크롤을 아래로 쭉 내리다보면 옛날 사진들이 나온다. 한윤정과 함께 훈련했던 트레이닝 센터, 뻔질나게 오르던 아차산, 그리고 헌터 아카데미의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나와 한윤정은 아무런 걱정 없이 환하게 웃으며 함께 V자를 그리고 있다.
"……제2의 한윤정 사태를 막겠다. 마법을 독점하겠다. 몰입을 방해하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겠다. 뭐, 그런 의도도 있지만 말야. 희망사항을 더 하자면 내가 걷지 못한 길을 누군가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해."
"네. 틀림없이 나타날 겁니다."
정서진은 부드러운 코너링으로 한강대교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희망을 준 탑주님을 절대적으로 따르게 되겠죠."
"에이,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그보다 영상 편집은 언제쯤 끝나?"
"오늘 안에 끝납니다. 영상은 언제 발표하시겠습니까?"
"준비되는 대로 바로 올려."
"예."
기대된다. 앞으로 이 헌터계가 어떻게 변할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마탑으로 복귀했다.
* * *
드디어 내 강연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히다 못해 야단법석이 났다.
특별한 홍보 마케팅이나 광고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플레이어의 고유 능력은 한번 정해지만 바뀌지 않지만, 마법은 고유 능력과는 관계없이 누구든지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1세기는 마법 혁명 시대! 헌터계의 새로운 트렌드 '마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처음으로 마법을 발견한 헌터가 한국인? 대마도사 김유신은 대체 누구인가!
-마법사의 미래? 김유신을 보면안다! 비전투계 헌터가 이끌어낸 기적!
어떤 사람들은 열광했고.
-차일호의 작심발언 "김유신 헌터는 비전투계 플레이어들을 두 번 죽였다."
-마법은 허구? 마나는 고유 능력을 통해서만 2차 발현된다는 노벨상 수상자 테드암 차일러 이론에 정면충돌.
-"허공에 그린 그림이 고유 능력이 되지는 않습니다." 안선숙 논평. 마법은 허구 위에 허구를 덧쌓은 것.
-마법 실전성 논란 가속…… "사실상 구르마도 잡기 버거워."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헌터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비판론과 회의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강의를 따라 마법을 시도해 본 수 많은 헌터, 가면허 플레이어들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구의 기술.
시간 낭비.
속지 마라.
마법 발표 당일, 모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를 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는 달리 점점 회의론이 득세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날,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어떤 영상 하나가 올라온다.
"저는 캐나다의 5년 차 가면허 플레이어입니다. 김유신 헌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상에서 그는 직접 마법진을 펼치고, 마나 에로우를 만들어 발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리고 아직은 위력이 약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실감 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아마도 강의가 공개된 뒤, 공개적으로 마법에 성공했다고 알린 첫 케이스. 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최단 시간 1억 조회수를 기록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헌터계에서 마법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캐나다의 플레이어의 영상 이후, 다른 플레이어들도 앞다투어 마법진을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마법은 대한민국 최고의 화제로 떠올랐다.
-룬어 이렇게 그리는 거 맞냐?
-마린이 첫 서클 만들었어요!
-영상 보면 건틀릿으로 벽돌도 부수던데, 제 건틀릿은 뭐가 문제일까요?
-12년 차 가면허 플레이어입니다. 치킨 장사 때려치우고 마법 입문했습니다.
-김유신은 천재가 맞다.
-뉴비들아. 제발 마법진 잘 그렸냐고 물어보지 말고 서클부터 완성하고 와라.
-김유신이 쓰는 블랙킥은 몇 서클에 쓸 수 있나요?
마법 관련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각종 모임과 온라인 그룹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서로 노하우를 주고 받고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성장해 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진도를 보이는 건 역시나 '비전투계' 플레이어들. 물론 비전투계들이 마법을 익히는데 유리하단 점도 있지만, 이들은 마법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이들에게 마법이란 최후의 수단.
호기심으로, 혹은 한번 해보고 안되면 말고인 전투계 능력자들과는 절실함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비전투계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마법에 매달렸다.
-[오늘의 사회 이슈] 김유신은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취약계층에 유일한 희망을 제시했다.
-[오피셜] 홍율 회장, "마법은 사회적 현상." 사실상 비전투계의 마법 수련을 지지.
-대마도사 김유신의 영향력에 대해.
비전투계 플레이어들에게 김유신이라는 이름은, 거의 신과도 같은 취급을 받으며 숭상되기에 이르렀다.
"탑주님. 슬슬 움직이시죠."
"음?"
"각 길드와 매니지먼트에서 1서클을 완성한 비전투계 영입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벌써?"
그 친구들이 빠르긴 빠르다니까.
혹시 모를 인재들을 잡아두기 위해, 나는 정서진을 시켜 빠르게 공지를 하나 올렸다.
[김유신 직속 마법사 공개 채용.]
김유신 헌터의 휘하에서 마법을 배울 '신인 마법사'를 모집합니다.
모집인원 : 5명.
혜택 : 급여, 마법 교육, 매니지먼트 육성 서비스.
필수사항 : 1서클 완성 및 3대 기초마법 두 개 이상 시전 가능하신 플레이어분.
"어머, 조건이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진보라의 물음에 나는 픽 웃었다.
"너무 높은 거 맞아. 그래도 마탑에 들어오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면접은 한 달 후에 진행된다.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의 마법 재능들이 모이게 될 테고, 그들 중에서도 최고가 내 휘하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른 대형 길드에 들어갈 선택지? 물론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서클을 익히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최고의 패를 가지고 있다.
바로 '원조에게 마법을 배울 기회'.
나는 마법을 독점하고 있다. 내가 마법을 공개해야 대중들도 다음 진도를 뺄 수 있다.
단순한 변천이나 개선이 아니라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마법을 깊이 있게 배우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뽑은 사람들은 마법의 선전을 위해서라도 내가 직접 공들여 키울 거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들을 새로운 마탑 멤버로 만들어서 4층에 보낼 생각이다. 그중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이 4층 관리자가 될 테고.
이들은 마탑의 즉전력이 될 것이며, '필드 마법'을 제작하기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직속 마법사들을 뽑을 것이고, 그들은 바로바로 마탑의 전력이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성과에 주목할 테고, 전 세계에서 마법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들, 더 성장을 갈망하는 자들은 내 밑으로 들어와 마탑의 전력이 된다.
완벽하다.
마탑의 세계길드 등극까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