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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13화 (113/337)

나 혼자만 마탑주 113화

"아……"

얼떨떨했다. 한윤정을 영웅으로 만들고 내 공적은 아무것도 쌓지 못했는데, 이렇게 또 3급이 되다니.

"후후후. 좋냐? 좋아?"

그녀가 장난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 좀 놀라긴 했지만…… 하하, 기분은 좋네요."

으하하! 기분 째진다! 땡큐합니다, 마르첼로! 고맙다 윤정아!

"내 입장에서도 네가 4급으로 뒤처져 있으면 곤란해. 넌 계속 연이의 벽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연이랑 같은 수준 유지해 줘야지. 안 그래?"

"옙!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요란하게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머리를 빗질하고 옷까지 잘 차려 입은 홍연이 우리 앞으로 들이닥쳤다.

"언니!"

"응. 우리 연이 왔니?"

"어쩜 저한테 말한번 안 해주실수가 있어요?"

"뭐가?"

천연덕스러운 언니의 반응에, 홍연은 숫제 귀까지 빨개졌다.

"선배가 우리 집에 온다는 거요!"

"어, 내가 말 안 했나? 깜빡했어."

홍연이 찌릿 노려보았지만, 협회장은 그 시선을 귀엽다는 듯 받아내며 붕대를 감은 상체 위에 겉옷을 하나걸쳤다.

"자, 그럼 연이도 왔으니 같이 밥이나 먹을까?"

"……하아."

홍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식탁을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언니. 음식 준비는요?"

"응? 준비는 무슨 준비야. 그냥 같이라면 끓여 먹을 생각이었는데."

홍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손님이 왔는데 라면은 무슨 라면이에요! 말을 해주셨으면 제가……!"

"라면 좋지, 유신아?"

어쩐지 압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저는 뭐든 좋습니다! 라면도 괜찮은……!"

"언니는 이게 문제에요!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너무 없어요! 지켜보는 제가 부끄럽다고요!"

협회장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턱에 손을 올렸다.

"이 내가 남을 배려해야 할 위치에 있는 건 아니잖니?"

아아.

아주 찰나의 잠깐이지만 반할 뻔했습니다. 누님.

그야말로 실존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닐까.

"아, 언니이!"

그리고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여동생까지.

두 자매가 열심히 싸우는 동안 나는 뒤에서 병풍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대충 홍연이 화를 내고, 협회장이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툭툭 튕기는 레퍼토리였다.

"라면은 절대로 용납 못 해요!"

홍연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럼 어쩌자고?"

"외식! 외식이라도 가요!"

"오, 그거 좋네! 자주 가는 뷔페라도 갈까? 괜찮지 유신아?"

"아, 넵! 저는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 * *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정신을 차리니 나는 마력 엔진 헬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외식하러 간다길래 적당히 자가용타고 갈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갑자기 나를 건물 옥상의 헬기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상공 수천미터였다. 내 옆자리엔 홍연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협회장이 좌우로 팔을 쭉 뻗은 채 다리를 꼬고 껌을 쫙쫙 씹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선배. 언니가 민폐라서."

그래. 적어도 동생 쪽은 정상인…….

"바깥 호텔 식당에 가는데 꼭 저렇게 이상한 의상을……"

드레스코드가 문제가 아니잖아!

"그럼 뭐 붕대 두른 몸 위에 드레스라도 걸쳐주랴? 앙?"

협회장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줄무늬 정장 바지를 입고 붕대 위에 그대로 정장 재킷만 걸친 모습이었다.

"셔츠라도 입으시면 되잖아요!"

"아, 붕대 위에 딴 거 껴입으면 땀차서 덥다고! 통풍 몰라? 통풍?"

그녀가 가슴에 두른 붕대를 늘리는 시늉을 했고, 그 모습을 본 홍연은 또 기겁하며 체면 어쩌고 품위 어쩌고 하는 잔소리를 해댔다.

제발 누가 여기서 날 좀 꺼내줘.

"협회장님."

헬기 운전사가 말했다.

"자주 가시던 맛집 호텔 상공에 도착했습니다."

"응, 그래. 수고했어."

협회장이 씩 웃으며 헬기 문을 열어젖혔다.

"우왁!"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닥친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유신아. 저어기 보이냐?"

"어, 어디요?"

"저기 저 큰 빌딩 옥상 테라스."

"아, 넵."

"저기로 와."

"네?"

협회장은 그 말만 남기고는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몸이 시뻘건 혜성이 되어 일직선으로 호텔의 루프탑을 향해 돌진했다.

'너무 빠르잖아!'

그녀의 화력을 생각해 본다면 호텔옥상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후우웅!

혜성이 옥상 테라스에 닿는 순간, 충돌 없이 깔끔하게 그녀의 몸으로 돌아오며 붉은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맹렬한 바람이 불어닥치며 옥상 테라스의 식물들이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소름이 끼칠만큼 정교한 컨트롤이다.

"하여간 언니는 정말……!"

홍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드레스자락을 붙잡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그녀 또한 붉은 마력을 몸에 둘렀지만, 협회장처럼 곧장 일직선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 하늘에서 좌우로 선회하며 가속도를 줄여나가다 천장테라스에 사뿐히 안착했다. 그녀가 바닥에 내려 올 때도 붉은 마력이 충격파처럼 휘몰아쳤다.

"하아, 어쩌다가 내가……"

"형씨, 괜찮겠어요?"

헬기 운전사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괴물 자매에 무리해서 어울릴 필요 없습니다. 호텔 근처까지 가줄까요? 사다리도 있는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그래도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나는 헬기에서 힘차게 뛰어내렸다.

후우우우우웅!

거친 맞바람이 휘몰아친다.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윙 골렘 같은 건 안차고 왔지만 상관없다. 나는 양팔을 교차하고 눈을 감는다.

<아이올로스>

마법진이 펼쳐지며 이제 이 하늘의 대기는 내 것이 된다. 나는 대기를 몸에 두른 채로 호텔 옥상을 향해 날아간다.

옥상에 충돌하기 직전에 최고 속도가 되는 순간, 나는 통제하에 들어와 있는 모든 대기를 넓게 퍼뜨렸다.

대기가 쿠션의 역할을 하며 내 몸이 옥상에 가볍게 안착했다. 불어닥치는 바람에 홍연은 드레스를 자락과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몸을 웅크렸다.

협회장이 깔깔 웃으며 외쳤다.

"제법인데 김유신! 이래야 내 새끼지!"

"……그냥 민폐일 뿐이라고요 언니."

홍연은 잔소리를 하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 배고프다! 빨리 가자!"

협회장이 다가와서 내게 팔짱을 꼈다.

"레이디들을 에스코트할 기회를 줄게. 좋지?"

팔꿈치 끝에 붕대가 닿자 아찔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닿다 못해 그녀는 힘을 꽉 주어 누르고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여, 영광입니다!"

그리고 홍연이 얼굴을 붉힌 채우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을 꾹 감고는 파르르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렸다.

……설마 너도?

톡.

그러고는 힘겹게 내 소맷자락을 붙잡은 채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늘어뜨렸다.

그래, 애 많이 썼다.

"그럼 출발할까? 저기 엘리베이터타면 돼."

"넵."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이 있는 층으로 내려왔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호텔 내부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뭐,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놀라운 장면이다. 내 오른쪽에는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가, 왼쪽에는 최고 유망주가 있다. 두 사람의 향기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나는 양쪽에 아름다운 두 꽃을 대동한 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서양인 웨이터가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를 맞이했다.

"세 분이십니까?"

"네."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적당한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웨이터는 식당의 안내사항에 대해 가볍게 설명한 다음, 주문하시겠느냐고 물어왔다.

딱히 예약을 한 건 아니었다. 두 여성은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고 웨이터는 나를 보고 있다. 협회장이 나더러 에스코트 해보라 했으니 여기선 내가 적당히 대답해야 하는 그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식당은 전채로 Fritti(프라이 요리)를 드리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주천하는 메뉴로는 Zeppoline(김 등의 해초를 갈아 넣고 튀긴 빵)와 Frittatina(오믈렛과 비슷한 이탈리아 요리)가 있습니다."

아, 시작됐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고, 두 여자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기다리고 있다.

원래는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버버했겠지만, 마탑주가 된 나는 이제 다르다.

'준비됐지 에아?'

-준비됐습니다. 탑주.

나는 자연스러운 스마일을 유지한 채 말했다.

"전채로 기름진 건 부담스러워서요. 있다면 아란치노로 먹고 싶은데 있나요?"

"예. 있습니다."

"쌀로 만든 이태리식 튀김인데 두분은 어때요?"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터는 빠르게 수첩에 아란치노 셋을 체크했다. 나는 에아가 불러주는 대로 빠르게 대답했다.

"역시 부팔리나보다는 담백한 마르게리타로……."

"프렌치 드레싱으로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콩은 따로 주시겠어요?"

"두 분은 어때요? 저는 카프레제 추천해드려요."

"이쪽 스테이크랑 매치되는 건 레드 와인인데, 가벼운 거로 드시고 싶으면 도멘 뉘당 부르고뉴 피로 누아로. 라이트한 바디감에 꽃향기가 나는 거예요. 네, 그럼 이걸로."

국어책 읽기 느낌이 안 나도록 엄청 노력했다.

마침내 모든 주문을 마치자 웨이터가 떠났다.

성공했나? 성공했지?

"오올."

협회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휘파람을 불었고, 홍연은 다시 봤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유신이. 이런데 자주 오나봐?"

"조, 조금요."

"역시 사업하는 애들은 뭔가 다르다니까? 난 그냥 이런데 오면 니들 알아서 내놔! 하고 마는데."

"……어, 언니!"

"오호호! 왜 그런 눈으로 봐? 너도 멍하니 있었으면서 무슨."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이 자매는 규칙과 양식에 엄격한 그런 귀족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괜히 오버했네.

조금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나는 가볍게 전채요리부터 한 입 먹어 보았다.

'맛있다!'

오랜만에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호화로운 식사였다. 뭣도 모르고 에아가 구글 뒤져서 주문한 메뉴들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다 괜찮았다.

"자, 우리 유신이. 이번 재앙도 수고했어. 아- 해봐."

얼굴이 살짝 붉어진 협회장이 포크로 스테이크 조각을 찍어서 내밀었다. 그렇게 계속 와인을 마시더니……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하하! 협회장님 그건 좀……"

"뭐어? X발 지금 내가 주는 건 먹기 싫다 이거냐?"

이 사람이 갑자기 정색하면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먹고 싶습니다!"

"그럼자, 아-"

나는 입을 벌리고 그녀가 준 스테이크를 받아먹었다.

"아이구, 잘 먹는다. 내 새끼."

협회장이 턱을 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이 기쁘지 않았다. 와인 탓인가? 하긴 이런 미인이 손수 먹여주는데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

'헉!'

이번에는 홍연이 화르륵 불타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총이 따갑다.

이 자매. 번갈아 가면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언니."

다행히 그녀의 시선이 내게서 떠나 협회장에게로 향해 주었다.

"왜애?"

"선배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요즘은 그런 애정 행각 강요하는 거 지양하는 추세에요. 주위에 보는 눈도 많고요."

"신경 쓰이니?"

홍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 신경 쓰이긴 누가!"

"아님 말고. 자유신아 한 입 더. 아-"

협회장은 보란 듯이 한입 더 먹여줬다.

"후훗. 이런 복덩이가 어디서 굴러들어 왔지? 요즘 내가 아카데미 총장으로서도 어깨 좀 편다. 잘 먹고 무럭무럭 커서 당당히 내 옆으로 와야지?"

"그럼요. 그리 오래 안 기다리셔도 될 겁니다."

"오호호! 역시 젊은 애들이 패기 있어서 좋다니까!"

우리 둘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홍연은 살벌한 표정이었다. 입가가 바싹 마른다.

'슬슬 운을 떼볼까.'

이제 식사가 끝내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

"왜애?"

협회장은 연거푸 값비싼 와인을 들이켜고 알딸딸해진 분위기였다.

기분도 좋아 보이고, 승부를 볼 거라면 지금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그래애? 갑자기 분위기 잡고오."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건 좀 뭔가 그렇고.

제 능력을 남들에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좋긴 한데 한 방에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직관적이지 못하다.

역시.

"저, 한국의 비전투계 능력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딸꾹.

와인에 취한 협회장이 딸꾹질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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