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111화 (111/337)

나 혼자만 마탑주 111화

협회장은 내게 식사자리를 제의했다.

뭐, 당장 헌터 협회로 소환하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큰일같지 않아 보여서 다행이다.

나는 다시 탑으로 돌아왔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왔다.

다만 이번 일은 여러 가지로 내 멘탈을 뒤흔들어 놓아서 후유증이 좀 길었다.

'깔끔하게 안 되네.'

허공에 마법진을 펼쳐놓고 연습하는데 자꾸 이전에 없던 미스가 생기고 있다. 내 정신이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 어딘가 다른 걸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

과몰입 특성의 단점이 바로 이거다. 모든 일이 다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뒤끝처럼 묘한 여파가 남아 있다.

'그렇게 충격받은 표정만 짓지 말고 제대로 덤벼. 안 그럼 내가 변한 이유가 없잖아?'

마인이 된 한윤정의 목소리가.

'너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자위하면서. 웃기지 마라! 그건 위선이고 회피다.'

한윤정의 몸을 차지한 아르민 발터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면서 나를 괴롭힌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곧 마법 시전에도 무리가 온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몰입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길어진다.

내가 가진 유일한 리스크.

과몰입 특성이 어느 수준까지 높아지니, 이제는 나 자신에게 떳떳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괜히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해결해야 했고, 그게 힘들다면 자기 합리화라도 해야 했다.

'이번엔 뭐가 문제일까.'

사색하며 고민해본 결과,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비단 한윤정의 마인화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만은 아니었다.

"보라야."

"네에, 선배님!"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포션 재료를 손질하고 있던 진보라가 얼른 뛰어왔다.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녀는 노트북을 펼치고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접속해 학생회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마우스를 달칵거리며 정보를 검색하던 그녀가 '아!' 하고 운을 띄웠다.

"여기 있어요! 올해 비전투계 능력자들의 졸업률!"

"얼마나 되는데?"

"합격률 3.5%네요."

고작 0.5% 올랐나.

1랭크 사냥터를 비전투계들에게 풀어주고, 미궁 던전 이슈까지 있었는데도 겨우 0.5%.

"……."

이제 확실히 알았다.

이 찜찜함의 정체가 뭔지.

"에아. 있어?"

-네. 탑주.

"서진이랑 솔이 좀 불러 와. 할 이야기가 있어."

잠시 후 내 관리자들이 모두 1층 로비에 집합했다. 진보라는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고, 은솔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정서진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셋 다 아무 마법이나 한번 써볼래?"

"네!"

갑작스러운 관리자들의 마법 시연이 시작됐다.

정서진은 조금 어설프긴 했지만 여전히 건틀릿을 만들어 냈고, 은솔은 짧고 몽땅한 불량 마나 에로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진보라는…….

파창!

이번에도 베이스 까는 것부터 실패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아니, 아니, 혼내려는 게 아니야."

"……?"

"이제 막 마법을 배우는 입장에서 느낀 점이나 어려운 점.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뭐든지 말해줬으면 좋겠어."

이제야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세사람은 각자 마법에 대해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저는 그냥 감도 못 잡겠어요. 마나를 뭉쳐서 펼치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워요."

진보라가 말했다.

"헌터들에게도 마나 기술은 있지만, 마법은 그 근본부터가 다른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유동성이 심한 마나로 반듯한 원을 그리는 것과, 룬어를 작성하는 부분이 특히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정서진이 말했다.

"수식에 집중하면 필드가 흩어지고, 필드에 집중하면 수식이 이상해져!"

은솔이 말했다.

……으음.

자랑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마탑에 들어온 뒤 한 번에 건틀릿 제작에 성공했고, 나흘 만에 3대 기초 마법진에 도장법까지 익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첫 마법을 익힐때를 떠올리자면, 그래. 분명히 마법진 작업은 처음이었지만 내 손가락은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처럼 과감하게 움직여 마법의 정석에 나와 있는 형태와 똑같이 그려냈다.

나는 남들과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러니 눈높이를 정말로 확 낮춰야했다.

"보라야."

"아, 네!"

"베이스를 깔 때 뭐가 제일 힘들어?"

"……어, 음. 체내의 마나는 운용이 잘 되는데, 마법진은 이걸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마나가 금방 대기 중에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나는 모두의 이야기를 종합했다.

세 사람 모두 내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현재 마법에 대한 문제점을 떠오르는 대로 계속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문제는 이거네.'

윤곽이 잡혔다. 문제는 마나를 운용해보기도 전에 금방 흩어져 버린다는 것.

헌터들의 마나 기술. 그러니까 마나실 같은 기술들은 모두 마나를 모으고 모아 짜내는 식으로 사용한다.

마법진은 그 반대. 마나를 퍼뜨리는 기술이다. 종이처럼 넓고 얇을수록 좋다. 그러다 보니 불안정한 상태의 마나 형체를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들 협조 고마워."

나는 9층으로 올라가 마법 연구에 몰두했다. 오른쪽에는 마법의 정석을 펼쳐놓고, 왼쪽에는 각종 마법관련 서적들을 쭉 늘어놓았다.

'문제점의 원인부터 파악해야겠지.'

근본부터 들어가자면, 에렌델과 지구의 마나는 성질부터가 달랐다.

에렌델의 마나는 뭉치는 성질이 있고, 지구의 마나는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다.

지구에서는 몸에서 마나를 배출하면 연기처럼 흘러나가지만, 에렌델에서는 불꽃처럼 넘실거리며 한 지점으로 집중된다고 한다.

그냥 본질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에렌델의 이 수 많은 마법 지식의 80~90%는 지구에서 써먹지 못한다.

나야 뭐 마나가 뭉치고 흩어지고 그런 문제에 전혀 구애받지 않아서 몰랐지만, 마법 관련 특성 하나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야 할 사람들은 다르다.

이 정도면 지구에선 그냥 마법을 쓰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럼 지구인이 마법을 제대로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모든 시전 기술을 참조했다. 도장법뿐만 아니라 명상법, 로드액션, 페이스오프, 제국식 마나 심법과 같은 모든 기술을 총망라 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구멍이나 있던 내 마법 관련 지식도 촘촘하게 채워졌다.

어느새 나는 이 새로운 연구에 푹빠져서 몰두하게 됐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마법연구들은 대부분 이미 있던 지식을 학습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업이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에아! 빨리 보라 좀 불러와 줘!"

-네. 탑주.

그리고 이번 마법 연구의 가장 큰도우미는 진보라였다.

"포션조제관 진보라 왔습니다!"

"이것 좀 따라 해볼래?"

왜냐하면 관리자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마법에 재능이 없었으니까. 그말은 그녀가 마법을 익힐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마법을 학습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 이렇게요?"

"좀 더 원을 굴린다는 느낌으로…… 응, 그렇지!"

진보라도 마법을 쓰지 못해 내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었는지, 싫은 소리 한번 없이 열심히 도와줬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어느새 내 9층 집무실은 만남의 광장이 되어 있었다.

에아가 내 책상 위에 자리 잡았고, 은솔도 만들다 만 골렘을 들고 소파 한자리를 차지했다. 마지막엔 정서진마저 노트북과 이불을 들고 와서 작업하고 있었다.

"근데 왜 다들 여기 모인 거야?"

"……."

정서진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올리며 대답했다.

"……이거. 지켜보는 게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음?"

"응! 맞아! 재밌어!"

새로운 마법 학파의 개발.

이제는 모두가 도와주었다. 진보라가 막히면 그보다 좀 더 뛰어난 정서진과 은솔이 시도해 보았다.

정서진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내 목표는 진보라가 마법을 사용하게 하는 것. 이론에 계속 수정을 가했다.

그렇게 일주일.

"어어? 이제 된 것 같지 않아요?"

"좋아. 처음부터 해보자!"

모두의 앞에서 진보라가 자세를 취했다. 다들 숨죽이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우선 심장을 중심으로 고리를 그려."

인체 기관 중 가장 마나가 빠르게, 많이 모이는 곳이 심장이다.

나는 데바의 눈으로 진보라의 내부를 보았다. 그녀의 심장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며 하나의 고리가 형성된다.

"……됐어요!"

"고리를 천천히 회전시키면서 공정률을 높여. 좋아! 그다음엔 고리에 마나를 통과시켜서 오른팔로 이동!"

그녀가 오른팔을 척 펼치고 검지를 세웠다. 검지 끝에 마나가 뭉클거리며 한 점의 형태로 모였다.

"그 상태에서 마법진을 그려!"

진보라가 허공에 베이스를 깔고 완만한 원을 그려나갔다. 작업 중인데도 이번에는 마나가 흩어지지 않았다. 체내의 마나를 고리를 통과시켜 정제한 덕분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중앙에 '강타의 룬'을 그려놓고, 그 주위로 보조 수식들까지 완성시켰다.

우웅!

마침내 마법진이 푸른빛을 띠며 작동했다.

"……기, 긴장되네요."

진보라는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 안에 손을 넣어 보았다. 마법진의 마나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며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전구는 제대로 켜졌어. 이제 마지막……!'

나는 그녀의 옆에 물렁물렁한 쉴드하나를 펼쳤다. 그녀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쉴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투콰아앙!

푸른 불똥이 튀어 오르며, 쉴드가 박살이 났다. 그녀의 오른팔에 있던 마력이 사라졌다.

'건틀릿'이 제대로 구현된 것이다.

"아……!"

그녀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배님! 해, 해냈어요!"

"와아아아! 언니야 멋져!"

그녀의 성공에, 이상하게도 내가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이다.

"보라야! 집중력 그대로 유지해! 바로 다음이야!"

그녀도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등을 꼿꼿이 세웠다.

"다시 한번 고리를 움직여! 집중!"

"네!"

"이번엔 고리를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거야."

지구인이 못하는 에렌델의 기술 중 하나.

필드로 써먹을 원을 마나로 바로바로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 이건 정서진도, 은솔도 마찬가지였다.

이론상으로 '완벽한 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보면 차이가 나고, 원자 단위까지 살피면 또 차이가 난다.

그래도 마나가 필드를 타고 잘 흐르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완만한 원'의 구사는 필수적이다.

그냥 도형을 매끄럽게 잘 그리란 소리가 아니다. 마나가 흐르기 위한원. 에렌델의 마나는 뭉치는 성향이 있어서 이 형태를 자연스럽게 만들수 있지만, 지구에서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고안한 방법.

저 '고리'를 그냥 필드 자체로 쓰는 것이다. 고리를 필드 삼아 테두리를 형성하고, 그 안에 룬어와 수식들을 마나로 채워 넣는다.

도장법을 손바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에서 바로 만들어서 뽑아내는 느낌이다.

"갑니다!"

그녀가 오른팔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고리에서 만들어진 마법진이 그대로 팔을 타고 나아가 그녀의 손바닥 앞에 펼쳐진다.

"……!"

정서진이 헝클어진 머리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은솔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에아도 고개를 바짝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 그럼 써볼게요!"

진보라가 달달 떨리는 팔을 건틀릿 안으로 집어넣었다. 푸른빛이 그녀의 오른손을 휘감았고 나는 옆에 쉴드를 깔았다.

"얏!"

그녀가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투콰앙!

건틀릿이 제대로 완성됐음을 증명하는 푸른 불똥이, 9층 집무실에 흐드러지게 튀어 오른다.

완벽했다.

이건.

더할 나위 없는 대성공이다.

"으아아앙! 선배니임!"

"언니야아! 오빠야아!"

"축하드립니다, 탑주님!"

진보라를 필두로 모두가 환호하며 달려왔다.

나도 좀 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어떤 마법을 만들어냈을 때보다도 격렬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탑주."

에아가 다가왔다. 그녀 또한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새로운 마법 학파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이름은 생각해 둔게 있다.

"서클(Circle)이라고 부르겠어."

에렌델이 아닌 지구만의 독자적인 학파.

1서클의 탄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