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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10화 (110/337)

나 혼자만 마탑주 110화

언제나 그렇듯, 재앙이 끝나자 사람들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다.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일이 겹쳐 그 경과가 다소 복잡했다. 우리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마르첼로가 이끄는 성기사단이 한국에서 아르민 발터를 완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이전에 협상한 대로, 아르민 발터 사냥에 대한 업적과 명예는 모두 성기사단이 가져가기로 했다.

사실이 부분은 묘지기단에서 태클을 걸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협상조건으로 건 '아르민 발터의 신병확보'가 무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흘러가는 상황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2대 파라오가 던전에서 전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3대 파라오 메네스가 등극했다.

그 3대 파라오 또한 연쇄살인마 아르민 발터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게 팩트.

이 사실이 공표되면 이집트 헌터계와 묘지기들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고, 자국 내에서는 거의 신과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파라오의 명예가 훼손될 우려까지 있었다.

현 국가 체제가 통째로 흔들릴 사안인 것이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파라오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눈감아주는 대신, 약속대로 발터를 죽였다는 업적을 독차지하기로 했다. 묘지기에서는 이에 동의하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하나 더.

[고(故) 한윤정. 마인이었지만, 마지막은 한 사람의 헌터로서 잠들다.]

세상은 이제 한윤정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다. 비전투계 플레이어였던 그녀는 멘탈이 무너진 틈을 타 재앙에 잠식당해 클래식 게이트의 주체이자 보스 몬스터가 됐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강한 죄의식을 느낀 그녀는 재앙에 올라가 62개의 게이트 중 59개를 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희생이 위험에 빠진 아시아 수십억 인구를 구했다.

무엇보다 대륙급 이상 재앙의 민간인 피해자 '0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 어떤 전투계열 헌터도 달성하지 못했던 업적을 그녀가 이룩한 것이다.

한윤정은 전설이 됐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에게 대단한 울림을 주었다.

물론 마인화에 잠식당해 사람을 죽인 죄는 씻을 수 없고 비난당해 마땅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의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죽인 사람들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구해냈다는 점 덕분에 한윤정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인들에게 퍼져 나갔다.

따뜻한 햇볕.

날씨가 덥다.

장마전선이 끝나고 진짜 더위가 시작됐다.

그래도 이 화창한 날씨가, 눅눅하고 축축했던 장마 때보다는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국립묘지 앞에 와 있다.

[고(故) 한윤정. 공인 5급 헌터.]

한윤정은 죽은 뒤에야 그렇게 염원하던 공인 헌터가 됐다. 전사자 예우 1계급 주서로.

"야."

나는 무덤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 무덤 앞에서 기도하는 심정은 어때?"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 이집트 묘지기의 지도자이자, 3대 파라오.

"그냥 쫌, 싱숭생숭하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사람은 사실 내 친구다.

무당들이 흔히 내뱉는 속설 중에 '육신은 영혼의 모습을 따라간 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지금 그녀의 모습이 딱 그랬다. 눈매나 분위기 같은 게 너무나 한윤정다워졌다.

불과 몇 주 만에 사람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줄이야.

"이제 곧 비행기 시간이네."

"응."

"엄마 얼굴은 봤고?"

"……어."

"말했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못 말하겠어. 아직은 준비가 안 됐고. 이집트 측이랑 맺은 보안계약도 있으니까."

그렇다. 그녀는 이제 정식으로 파라오가 됐다.

한윤정은 묘지기들에게 사실대로 밝혔다. 나는 메네스가 아니고, 그저 영혼이 바뀐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윤정은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고, 결국 묘지기들로부터 정식 파라오로 추대되기까지 이른다.

'파라오는 그 자체로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녀에게 후일담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이집트 상부에서는 메네스든 한윤정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모양이었다.

중요한 건 파라오라는 인물과 그 상징성.

아르민 발터를 붙잡으려던 이유도, 이집트 상층부에서 파라오의 몸에 영혼을 번갈아 가며 넣었다 뺐다 할 계획이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놈들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더해 여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정치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2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3대의 죽음을 공표하고 바로 4대를 뽑아버리는 건 그림이 좋지 않았다.

결국 이집트 상부에서도 한윤정 파라오 체제로 계속 밀고 나가기로 한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이집트에 가면 수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남은 건 모두 그녀하기 나름이다.

한윤정 또한 이 새로운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열정을 가지고 임하려는 것 같다. 코어 통역기가 없어도 말할 수 있도록 아랍어 공부도 하는 중이다.

"나, 살아보려고."

그녀가 말했다.

내게 하는 이야기 같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했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시작해 보고 싶어."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런 인생역전이 또 어딨겠냐? 전력외 플레이어에서 묘지기들을 이끄는 파라오라니.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한번 훑었다.

"왜?"

"아니다."

퍽!

곧장 그녀의 주먹이 내 옆구리에 박힌다.

"……아! 악! 야, 진짜 아파!"

"성희롱 작작하세요. 김유신 헌터님?"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한 번만 더 지껄여 볼래?"하고 말했다. 스르륵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모래로 이루어진 창들이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오호호! 왜 자꾸 매를 버는지 모르겠네?"

그녀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허공의 창이 모래로 돌아갔다.

뭐랄까, 예전에도 불같은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더 무서워졌다.

"가자."

우리는 한윤정의 묘지에 꽃을 내려놓고 국립묘지 출구를 향해 걸었다.

"……."

그렇게 몇 걸음을 걷던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묘비를 돌아보았다.

"김유신."

"왜?"

깜짝 놀랐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너 왜 우는…… 우왁!"

그녀가 달려들어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

그녀가 무엇을 고맙다고 말하는 건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몸? 파라오로서의 생활?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윤정의 묘지에 적힌 글귀를 보았다.

[고(故) 한윤정.]

[마인이었지만,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잠들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구해냈다.

물론 그녀를 영웅으로 만드느라, 나는 이번 일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있다면 이 절친의 포옹 정도인가.

"……네가 날 구원했어. 정말이야."

그녀가 내 셔츠를 꾹 부여잡고 오열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래.

차고 넘치는 보상이다.

* * *

한윤정은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 마중해 준다고 했지만, 그녀 쪽에서 거절했다. 보는 사람도 많고, 이제 명색이 공인인데 공항에서 얼굴 보면서 헤어지면 진짜 펑펑울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탑주.

"응?"

-그녀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 하지 마."

그 장면을 떠올리면 괜히 내가 다 민망하다.

-차에 올라타면서 '나 아직 너 포기 안 했다?' 라니,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윽, 하지 말라니까!"

-흠흠.

오랜만에 날 놀릴 거리를 잡았는지 에아는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근처의 자판기로 다가갔다.

어, 운이 좋다.

낡은 자판기에는 내가 몹시 좋아하는 음료수 '솔잎의 눈'이 있었다. 당장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고 있는데, 내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멈춰섰다.

달칵.

"여기 계셨군요."

택시에서 내린 마르첼로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아크 비숍도 드실래요? 이거."

"오, 좋죠! 사주시는 겁니까?"

"또 얻어 드시려고요?"

"김유신 헌터는 돈 많다고 들었습니다."

……돈 많은 건 사실이긴 한데.

결국 지폐 한 장을 더 넣고 솔잎의 눈 두 캔을 뽑았다. 망설임 없이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셔본 마르첼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죠 이건?"

"괜찮죠?"

"좋은데요? 동양의 맛이로군요. 자연이 몸속에 퍼지는 느낌입니다."

외국인 중에 이걸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뿌듯함을 느끼며 벽에 등을 기대고 한 모금 더 마셨다.

"무슨 볼일이에요?"

"한국을 떠나기 전에,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 인사는 전에 한 번 받지 않았나요?"

마르첼로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때는 아크 비숍으로서, 이번엔 개인적인 인사입니다. 제 염원을 이루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민망합니다."

사실 이런 감사를 받기엔 좀 찔리는 게 있기도 하고.

마르첼로는 허리를 세우며 빙그레 웃었다.

"이번 재앙. 김유신 헌터가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더군요."

"다 제가 원해서 한 일인데요, 뭘."

마르첼로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십자가 형태의 액세서리였다.

"이게 뭐죠?"

"제 작은 보답입니다."

그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가지고 계시면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겁니다."

"……음. 뭐, 주시니까 일단 가지고 있겠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품속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저도 내일이면 한국을 떠나는군요. 저로서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나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코리안 바비큐 베리굿! 코리안 치킨 나이스! 닭발 최고입니다!"

"한국 사셔도 되겠네."

"하하하!"

마침 마르첼로를 태우러 온 차가 한 대 더 도착했다. 마르첼로는 운전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보았다.

"저와 성기사단은 김유신 헌터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진짜 연락드릴게요. 그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차량으로 걸어가던 마르첼로는 '아참'하며 웃었다.

"세계 길드 진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말 없이 손을 흔들며 그와 헤어졌다.

이렇게 이번 사태에 연관됐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간다.

-탑주.

"응?"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혀, 협회장?'

그녀는 이번에도 단출한 한마디로 의사를 표현했다.

-나 좀 보자.

이름 : 김유신

고유 능력 : 데바의 눈.

개인 특성 : [마나의 아이 Lv.4] [마탑의 주인 Lv.10] [마법 공학Lv.10] [스펠 로드 Lv.10] [과몰입Lv.9] [다중 시전 Lv.6] [가속 시전Lv.6] [원격 시전 Lv.6] [분석 Lv.6] [포션 조제 Lv.5] [정보처리 Lv.5] [골렘 마스터리 Lv.5] [예측 회피Lv.5] [이동 시전 Lv.4] [마나 호흡Lv.2]

기본 능력치 : [마력 249] [순발91] [근력 49] [체력 48]

특수 능력치 : [집중 52] [지능22] [의지 21] [암흑 12] [인내 8]

능력치 총합 : [552]

신규 특성 : New![비행 Lv.1] New![엘리멘탈 마스터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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