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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08화 (108/337)

나 혼자만 마탑주 108화

'진정하자. 저건 한윤정이 아니야.'

어떻게든 여기서 놈을 잡는다. 유신이 하늘에 연달아 마법진을 일으키며 공격준비를 했다.

[나는 바뀐 몸의 기억을 읽을 수있다.]

아르민 발터가 한윤정의 목소리로 말했다.

[영혼과 신체는 별개가 아닌 하나. 너를 볼 때마다 이 아이의 슬픔, 괴로움, 고통이 느껴지는구나.]

유신이 뿌득 이를 갈았다.

"그 입으로 지껄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내겐 의문이 있었다. 한윤정은 그 누구보다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의 의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발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이렇게 고고한 영혼을 가진 아이가 왜 마인이 됐을까?]

유신은 듣지 않고 마법을 발사했다. 아이스 자벨린과 파이어 캐논이 연달아 쏟아졌지만, 발터는 빠르게 제자리에서 마탄을 발사해 가뿐히 상쇄시켰다.

[마인화는 인간의 정신이 약해졌을 때, 그 마이너스 감정을 좀 먹으며 자란다. 성녀와도 같은 정신을 가진 한윤정이 마인이 된 건 순전히 김유신, 네놈 때문이다.]

"입 다물어!"

[함께 지내던 친구가 공인 헌터가 됐을 때, 그녀가 느꼈을 무력감과 소외감을 단 한 번이라도 덜어주려고 노력했느냐? 이해는 했겠지. 하지만 너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자위하면서. 웃기지 마라! 그건 위선이고 회피다.]

"닥치라고!"

화아아아아아악!

공중에서 스무 개가 넘는 파이어 캐논이 발터의 몸을 덮쳤다. 그러나 발터는 한쪽 날개에 보랏빛 마력을 끌어모아 휘두르는 것으로 파훼했다.

[그녀는 너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짝사랑 하던 네 앞에서는 떳떳하려고 했지. 그래, 우정이든 사랑이든 대등한 관계에서 가능한 법.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는 언젠가 무너지고 종속되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노력했다.]

처음엔 남의 이야기를 하듯 중얼거리던 아르민 발터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감정이 섞이고 있다.

[항상 그랬듯 낡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던 그녀는, TV에서 네 모습을 봤다. 너는 행사에 참여한 모든 헌터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공인 4급으로 진급하고 있었다. 네 옆에는 함께 상을 받은 홍연이라는 최고 유망주가 있었지. 너는 공인 자격을 받고 그녀를 쳐다보더구나. 그녀도 너를 쳐다보았지. 아아.]

유신의 파이어 캐논의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출 것도 못 맞히고 허공에 펼쳐진 마법진의 수식이 엉켜나간다.

[너무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닌가? 한윤정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TV에서 눈을 떼면, 낡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운동하는 초라한 자신의 현실이 보였다. 그때 그녀가 느꼈을 절망감을, 네놈은 이해하느냐?]

유신이 설치한 마법진들이 멈춘다.

사출된 마법도 허공을 가른다. 아무리 마법진의 수를 늘려도 계속해서 오작동이 일어난다.

[이제 알겠어?]

아르민 발터는 눈물범벅이 된 한윤정의 얼굴로, 더 없이 고통스럽게 말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너야.]

유신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다.

동공은 죄책감에 젖어져 풀려 버리고, 벌어진 입에서는 공허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력화된 유신을 향해, 아르민 발터가 최고속도로 돌진한다.

'이겼다.'

인간은 약하고, 진실은 강하다.

발터가 하는 말은 기만인 동시에 전부 진실이었다. 메네스와의 전투에서도 이것으로 우위를 점했다.

2대 파라오의 죽음에 메네스가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극비였다. 그리고 발터는 묘지기 멤버의 몸을 한 번 거쳐서 알고 있었다.

발터가 승리를 예감하며 날아가는 순간.

"……."

유신의 눈이 번뜩이며 초점이 잡혔다.

<결계감옥 디 아이븐>

유신과 발터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진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선이 그어진다.

아르민 발터가 뒤늦게 속도를 낮췄지만 한발 늦었다. 고밀도의 공간고정 결계에 의해 아르민 발터의 움직임이 멈춰선다.

[…네놈!]

"후우우."

공중전은 아직 유신이 익숙하지 않은 장르였다. 발사지점이 훤히 드러나는 마법진의 투사체로 날아다니는 상대를 격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따로 공중전 특화 마법 같은 것도 익혀두지 않은 상태.

그렇게 상대방의 움직임을 봉쇄할 카드를 고르고 있는 유신에게, 발터는 심리전을 구사해 왔다.

기꺼이 어울려줬다.

이전에 정말로 한번 흔들린 적이 있는 유신이었기에, 상대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유신은 집중력이 떨어진 척 일부러 마법을 빗나가게 하거나 마법진을 오작동시켰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위치에 결계감옥 구성을 위한 마법진을 착실하게 설치하며 기다렸다.

유신은 발터의 위로 날아올랐다.

손가락을 세워 허공을 쿡 하고 찌르자 물이 주르륵 쏟아져 발터의 머리로 떨어졌다.

발터가 고개를 흔들며 시선을 되돌리자, 어느새 하늘에 대형 마법진 네 개가 드러났다. 유신이 허공에 '물의 장막'을 깔아서 숨긴 것이다.

'싸우기 급급한 줄만 알았는데 어느 틈에……!'

아르민 발터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의 설계를 마치고 실행에 옮기다니. 정말 20대의 젊은 헌터가 맞는 건가?

"네가 한 이야기들, 전부 사실인거 알아. 이번 싸움이 끝나면 다시 한번 그 녀석한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거다. 근데 말이야."

유신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제삼자인 네가 그딴 소릴 지껄여?"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대형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온 네개의 화염 거인이 아르민 발터의 몸을 껴안은 채 낙하했다.

그 모습은 마치 혜성이 떨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컨트롤에 특화된 4공정 화염계 마법들은 초고속으로 낙하하는 와중에도, 거센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끊임없이 타올랐다.

"저기 봐! 뭐가 떨어지는데?"

"몬스터 아냐?"

도시의 사람들이 손을 들며 웅성거렸다.

"유, 유성인가?"

"본부에 보고해! 새로운 재앙일 수도 있다!"

군인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혜성은 붉은 꼬리를 남기며 대한민국 영공을 날았다. 수십 킬로미터를 비행한 혜성은 그대로 군산의 바닷가 앞에 떨어졌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중돌로 대지가 뒤집히고 찌르르 흐르는 충격파에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무들이 통째로 뽑혀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 유신이 내려왔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유신은 품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진보라의 신작인 하나에 삼천만 원짜리 인 상급 마나 엘릭서다.

아껴 마시라는 그녀의 당부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끼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뒈진 척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유신이 빈 병을 던지며 말했다.

터업!

크레이터에서 아르민 발터의 손이 지면을 짚었다. 그러곤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온몸이 불에 그을려 보기 흉한 상태였지만 피부와 껍질이 올라오고 있었다.

[……협상을 하지. 젊은 헌터.]

"뭐?"

발터가 한쪽 팔을 들었다. 나머지 팔은 여전히 몸에 찔린 '혼령비수' 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재앙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 목표는 언제나 그랬듯 생존뿐이다. 친구를 구해냈으니 너 또한 목표를 달성했을 터, 여기서 우리가 피를 흘릴 이유는 없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유신이 코웃음쳤다.

"넌 재앙의 주체고, 널 사냥해야 이 재앙이 끝나. 이유가 없긴 왜 없어?"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는구나, 젊은 헌터여. 이건 널 위한 제안이었다.]

발터가 뒤로 팔을 뻗었다.

허공이 쩌억 열리며 균열이 일어났다. 발터가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붙잡았다.

살점에서 쭈욱 짜내어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타액이 뚝뚝 떨어지는 기다란 막대기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몸은, 네 죽음을 원치 않고 있다.]

밖으로 나오던 기다란 막대기가 덜컥거리며 멈췄다. 발터가 팔에 더 힘을 주자 균열의 윗부분이 일자로 갈라지며 위로 솟은 날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낫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후웅. 후웅.

이질적인 보랏빛 낫이 그의 손안에서 춤을 추었다. 마찬가지로 왼손의 균열에서도 옷자락 같은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촤르르륵!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온 그 옷자락은 발터의 목을 두르며 등 뒤에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낫에 이어서 이번에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망토다.

[마지막 경고다. 물러서라.]

그 말에 유신은 친히 만국 공통의 손짓을 선사했다.

"이거나 잡수세요."

[어리석은.]

두 사람은 전투자세를 취했다.

'나는 한번 이 녀석에게 졌다.'

유신이 오른팔을 일자로 펼치자, 그의 등 뒤로 무수한 마법진들이 떠오르며 이글거리는 화염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힘, 기술, 경험. 어떤 면에서도 놈에게는 안된다. 그런데.'

-탑주! 타깃 설정 완료했습니다.

이번에는 질 것 같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유신의 화염구들이 일제히 전방으로 쏟아졌다.

발터는 제자리에서 낫을 쥔 자세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건 그의 목을 감고 있는 마력 망토.

앞으로 펼쳐지며 전방을 덮는 우산의 형태로 변모했다.

화염구들이 부딪히며 연이어 폭발을 일으켰지만 망토를 뚫지 못했다.

[네 전투에 대한 기억도 이 몸에 남아 있구나. 아주 인상적이군.]

슈슈슉!

그리고 폭발 연기를 넘어, 유신의 몸이 발터의 등 뒤를 점했다. 다리를 들어 발터의 뒤통수를 차려는 순간.

스릉!

유신의 몸에 일자가 그어지며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발터는 완벽한 자세의 휘두르기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그 기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동강 난 유신의 얼굴이 옅은 미소를 그리더니 물로 변해 쏟아졌다.

"네가 대비하리란 건 당연히 예상했지, 멍청아."

콰아아악!

전, 후방으로 시선을 빼놓고, 발밑에서 솟구친 초대형 지면검이 발터의 가슴을 때리며 솟구쳤다.

어찌할 새도 없이 그의 몸이 위로 쳐 올라가고, 공중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이어 캐논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신이 자주 사용하는 공중회피 불능기 콤보다.

'소용없다.'

발터가 목을 터치하자, 뻗어 나간 망토는 발터를 중앙에 둔 고리 형태의 방호벽을 만들었다. 파이어 캐논이 방호벽에 부딪혀 막히는 동시에.

뻐어어억!

이번에는 섬광처럼 솟구친 유신의 발이 발터의 턱을 차올리며 지나갔다.

[네놈!]

뇌가 뒤흔들리는 충격을 버텨낸 발터가 마력탄을 손에 쥐고 하늘로 조준했고, 유신은 검지와 중지를 불이고 마법을 시전했다.

<아이스 자벨린>

쩌저저저저정!

발터의 복부 한복판에 고드름이 솟구쳐 그의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데바스타 마저 페이크. 유신의 본래 목적은 오리지널 마법인 '프로즌하트'를 부착하는 것이었다.

'한 번 더!'

유신이 2차 아이스 자벨린을 준비하는 그 짧은 사이, 프로즌 하트가 붙은 살덩이가 공중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발터의 복부 일부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베테랑. 판단이 빨라.'

유신은 어쩔 수 없이 시전해둔 아이스 자벨린을 단순 사출했고 발터는 낫을 휘둘러 파훼했다. 두 사람의 발이 다시 지면에 닿았다.

'흠.'

발터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다. 공인 4급이고, 3급이고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

컨트롤.

완급조절.

그리고 심리전까지.

하나의 고유 능력과 헌팅 디바이스로 무장한 일반적인 헌터와는 달리, 유신은 가지고 있는 공격수단이 많았고 심지어 그것들을 잘 섞어서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공격이든, 전부 대처한다.

혈기왕성한 20대 젊은 헌터가 아닌 능구렁이 노인을 상대하는 느낌.

이런 류의 헌터는 정말로 보기 드물었다.

[보면 볼수록 죽이기 아깝구나.]

"……뭐?"

[네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자신만의 패턴을 갖춘 헌터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지. 하지만.]

발터의 몸에서 불길한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아직은 날 이기지 못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물러서라.]

"……하아."

유신은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했다. 발끝을 들고 양손으로 신발 밑창을 훑자 검은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뭐라고 입을 털던, 넌 여기서 죽어. 아르민 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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