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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07화 (107/337)

나 혼자만 마탑주 107화

마르첼로의 신성력 폭격이 뭉쳐있던 수 천기의 몬스터들이 싹 날려버렸지만, 아직 잔당 몇몇이 남아 있었다.

-탑주! 전방에 적 개체 7기가 보입니다!

'일일이 격추할 시간 없어. 고속비행으로 돌파한다!'

나는 날개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나를 태우며 더 빠른 속도로 윙골렘이 작동한다. 몬스터들의 공세를 가볍게 우회 비행으로 피해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몸에 마나 장벽을 둘러도 맞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비행으로 소모되는 마나보다, 몸에 두른 마나 장벽으로 소모되는 마나가 더 많이 들 정도다.

-탑주! 전방에 마력탄이 옵니다!

'상관없어!'

나는 비행속도를 더 올렸다. 데바의 눈으로 투사체의 진행 방향을 계산하고 전진. 그대로 쏟아지는 보랏빛 마력탄 세례를 향해 뛰어들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최대로 몰입한다. 데바의 눈이 세상을 한없이 느려지게 하고 투사체의 방향을 모조리 계산해내 앞으로 출력해낸다. 이 무수한 마력탄 속에서도, 길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저 그 길을 따라 비행할 뿐이다.

마치 탄막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 내 몸을 스치고 지나는 마탄 한 발 한 발에 심장이 철렁했지만, 단 한 발도 나를 맞추지 못한다. 긴장감이 사라지고, 짜릿한 속도감이 전신을 내달린다.

[과몰입 특성이 Lv.9에 도달했습니다.]

[에측 회피 특성이 Lv.5에 도달했습니다.]

화아악!

드디어 지독한 마탄 세례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나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탑주! 이번엔 적 개체 247기 확인!

'……몇 기라고?'

산 넘어 산. 더 많은 몬스터들이 내 앞을 비행하며 가로막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윤정의 몸을 한 아르민 발터가 몬스터들을 지휘하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죽어도 안 놓쳐.'

비행 속도를 높였다. 윙 골렘에 마나가 타들어가며 점점 더 가속이 붙는다. 대형 몬스터들이 휘두르는 팔을 연달아 묘기 부리듯 피해냈다.

컨트롤.

오로지 컨트롤이다.

데바의 눈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은 볼 수 있다. 모든 역량을 비행 컨트롤에 집중한다.

어느 정도의 마나를 태우면 얼마만큼 날아가고.

언제 브레이크를 걸고.

언제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는지.

서서히 감이 온다.

날개가 몸이 하나가 된 감각으로.

이 모든 게 내 몸처럼 익숙해져야 한다.

'좋아.'

몰입 상태는 좋다.

이렇게 세계과 완벽히 일체화되었을 때, 내가 무리하는 만큼, 그리고 내가 도전하는 만큼 세계는 답을 내어준다.

[비행 특성을 얻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 100% 회피는 불가능하다. 너무 큰 공격이 아니라면 내 주위의 쉴드를 펼쳐 받아내며 전진했다.

아르민 발터와의 거리 고작 3.5km.

이제 조금만 더……!

꽈아앙!

바로 근처에서 들린 폭음과 함께 몸이 흔들린다.

'뭐야? 피했는데?'

-오른쪽 윙 골렘 파손!

마나 구조가 얽히며 한쪽 날개의 부유력이 떨어진다. 덩달아 대형 몬스터의 주먹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못 피한다.

나는 최대한 하강 비행을 하며 전면에 쉴드를 펼쳤다.

뻐어억!

몬스터의 주먹에 맞은 내 몸이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지면에 내려오는 동시에 흙이 튀어 오르며 입에도 왕창들어갔다.

-탑주!

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퉤엣! 난 괜찮으니까 얼른 윙 골렘을 복구해!"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아르민 발터가 다시 멀어지고 있다.

잡는다.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는다.

-캬아아악!

-키리릭!

주위를 포위한 몬스터들이 새까맣게 밀려 들었다. 이에 대응하여나는 전 마력을 개방했다.

그래 와라. 오는 족족 다 죽여주마.

휘이이이이!

모래바람이 불었다.

'음?'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거센 모래바람에 부딪혀 뒤로 밀려난다.

"……!"

휘오오오오오오오!

사방에서 모래 소용돌이가 일어나 몬스터들의 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모래에 뒤섞인 몬스터들의 팔과 머리가 분리된다.

'이게 무슨……!'

"야!"

나는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었다.

모래를 타고 있는 한 여인이 씩 웃으며 내 쪽으로 팔을 뻗고 있었다.

"잡아!"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모래 위로 올라탔다.

파라오 메네스.

아니, 이제는 아닌가.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맺히는 이질의 모래들이 공습을 시작한다. 압도적인 물량과 속도의 향연.

범위에 들어오는 몬스터들은 모조리 갈려나가거나 짓이겨진다.

집중하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팔을 뻗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물었다.

"……너 한윤정 맞지?"

그녀가 나를 슥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퍽!

내 옆구리를 힘껏 때렸다.

"으아악!"

"야 이 미친 놈아! 네가 세운 계획이란 게 날 이 여자의 몸에 집어넣는 거였어? 이거 완전 개또라이 새끼 아냐 진짜!"

나는 옆구리를 붙잡고 모래 위를 대굴대굴 굴러다녔다.

엄청 아프다.

"……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한번 마인이 되면 절대로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 그것도 재앙의 주체라면, 네 최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죽음뿐이야."

"……."

"그런 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정해진 운명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어."

메네스는 죽었다. 아르민 발터의 몸으로 강제 전이 된 뒤, 다른 피해자들처럼 입막음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 아르민 발터가 한윤정에게 들어오면, 메네스의 몸은 주인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메네스에겐 미안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너."

한윤정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너는 진짜 답도 없는 또라이 병신 사이코패스야."

"……생명의 은인한테 그게 맞는 태도야?"

나는 투덜거리며 몬스터가 모래에 갈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곤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

"뭐가?"

"이렇게, 계속 살아 숨 쉬면서 너랑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몸을 한 차례 홅었다.

"그것뿐이겠어? 예전에 비하면 몸매도……"

"야! 뒤질래? 넌 진짜 진지해지다가도 꼭 그렇게…… 하, 내가 말을 말지! 말을!"

"팩트라 할 말 없지?"

"너 진짜 나중에 보자."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아르민 발터를 쫓았다. 저 멀리 날개 달린 아르민 발터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한윤정이 킥 웃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게 참 기구하지 않냐?"

"왜?"

"내가 남이 되어서 나를 쫓고 있는 거잖아."

"흔히 못 해볼 경험이긴 하지."

그녀는 피식 하고 싱거운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이 몸의 마나는 거의 바닥났어. 이렇게 쫓는 것도 슬슬 한계야."

"뒤는 내게 맡겨."

"날개는 회복됐어?"

"대충."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약속했지?"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네 흑역사 몸매를 이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줄게."

"……너 진짜 죽는다."

지금의 그녀는 나를 그렇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게 무섭다.

그녀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는 데바스타를 양발에 하나하나 장착하고 날개를 수리했다.

어차피 다른 재료가 아닌 마나로 이루어진 날개라 어깨에 장착한 장비가 직접 손상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다.

한윤정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처음 사용하는 몸에, 처음 사용하는 능력일 텐데, 이렇게나 잘 해주는 게 놀랍다.

하지만 체력과 마나에 한계가 오는 듯 모래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한다.

"난 여기까지야."

그녀가 말했다.

"이제가. 이 지긋지긋한 재앙을 끝내."

"오케이."

나는 그녀와 하이파이브 하고는 등을 돌렸다.

<데바스타>

흑빛 섬광과 함께 내 몸이 솟구쳐 나간다.

* * *

"집중해! 자리 지켜!"

"B구역에서 지원요청 왔습니다!"

"화력파티 다 자냐!"

몬스터들이 지구로 떨어지는 재앙의 입구.

최전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한 헌터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는 지구로 향하는 뻥 뚫린 구멍이 있었다. 구멍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광경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높은 곳에서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B구역 밀립니다!"

"버겁다고 흘려보내지 마! 여기서 다 잡는 생각으로 임해!"

예비병력 같은 건 없었다. 돌입조의 전 인원이 현장에 뛰어들었고, 온몸에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며 악착같이 싸우고 있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들의 공세에 베테랑 헌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바로 그때.

후우우우우웅!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내려온 무언가가 그대로 구멍 속으로 빠져나갔다.

바로 앞의 몬스터와 검을 맞대고 있던 헌터들은 미처 그것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바, 방금 뭐야?"

"사람처럼 보였는데."

화아아아아아악!

뒤이어 빛나는 날개를 단 남자가 쇄도하여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모두들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에이 씨! 거기 뭐해! 잔챙이 한두놈 가지고 신경 쓰지 말고 앞을 막아! 앞!"

"D구역 계속 몹들 흘린다! 담당 누구야?"

현장의 헌터들이 신경 쓰기엔, 당장 눈앞에 있는 수백 수천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더 급했다.

* * *

유신은 아르민 발터를 쫓아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계속 재앙 속에서 도망 다닐 줄만 알았는데, 아르민 발터의 선택은 의외로 '밖'이었다. 혼령비수에 맞은 이후 재앙을 이용한 회복기를 쓰지 못하게 된 게 주요한 것 같다.

'오우야.'

그렇게 놈을 쫓아서 밖으로 나온 건 좋은데, 수천 미터 상공의 높이를 실감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바람에 머리카락과 옷이 정신없이 휘날리고 있다.

-탑주! 고도가 너무 높습니다! 이 높이에서의 비행은 마나 장벽으로도 버티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유신은 품에서 마나 포션을 한 병꺼내 들이켜고는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아이올로스>

4공정의 풍속성 마법이 그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 유신은 이 상태에서 자세를 잡고 윙 골렘을 작동시켰다.

'훨씬 낫네! 진작 이럴걸.'

이렇게 하니 고속 비행에도 맞바람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유신의 몸을 감싼 대기가 바람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저항이 줄어들며 속도도 한 층 빨라졌다.

유신은 날아가며 앞을 응시했다.

한윤정의 몸을 한 아르민 발터가 커다란 박쥐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복부에 박힌 단검을 부여잡고 있었다. 뭔가 조치를 한 건지 처음 같은 고통스러운 반응은 없었지만, 여전히 저 단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였다.

[끈질긴……!]

아르민 발터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공중에서 보랏빛 마력탄이 연이어 날아왔다.

-타깃 범위 예측 완료.

-쉴드를 발동합니다.

유신은 고속 비행으로 마력탄들을 따돌렸다. 폭발로 인한 충격은 에아가 쉴드로 직접 상쇄시켰다.

생각보다 유신의 회피 기동이 뛰어나자, 아르민 발터는 제자리에서 정지 비행을 했다.

유신 또한 윙 골렘의 마나를 조절하며 하늘에 멈춰섰다.

"포기했냐?"

[그럴 리가.]

아르민 발터가 기습적으로 마탄을 발사했다. 고속 비행으로 가뿐히 피해낸 유신이 정면을 응시한 순간, 어느새 아르민 발터의 얼굴 껍질이 벗겨지며 한윤정의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저 자식이……!'

유신이 이를 빠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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