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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03화 (103/337)

나 혼자만 마탑주 103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붉은 비는 내리지 않지만, 하늘의 먹구름은 뭉치고 뭉쳐서 거대한 문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저기서 몬스터들이 떨어질 것이다.

게이트 아래의 지상에는 무장한 군대가 대기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조준한 화포와 미사일 무기들이 흉흉한 위압감을 뽐내고 있다.

그 외에도 마력 소총을 든 군인들, 가면허 플레이들과 공인 5급 정도의 헌터들이 파티를 만들어 대기 중이다.

화력 세례를 받고도 살아남아 지상으로 오는 놈들을 제거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이 전력들을 '수비조'라고 총칭한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수 많은 헬기들이 대기하고 있다.

마정석 엔진을 돌려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군용 헬기. 그 안에는 최소 공인 4급 이상의 베테랑들이 타고 있다.

이들을 '돌입조'라고 부른다.

돌입조는 직접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입구 근처의 최전선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막고, 이계를 헤집고 다니면서 재앙의 보스 몬스터를 찾아 죽이는 게 목표다.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잠시 후 군산시 전체가 재앙 '클래식 게이트'의 범위에 들어올 예정이오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위험 구역을 벗어나 인근 도시의 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다시 한번 알립니다!

아까부터 부지런하게 경고 방송이 울려 퍼진다. 총을 든 병사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군산을 빠져나가는 도로에는 여전히 피난민들의 차량 행렬로 막혀 있다.

차를 포기하고 보도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머니들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있고, 남편들은 자신의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묵묵히 걷고 있다.

재앙은 이렇게 간단히 세계에 공포를 퍼뜨리고, 인류를 좀 먹는다. 멀리서 이 모든 걸 바라보는 신이 인류를 가지고 노는 것만 같다.

이렇게 해도 안 멸망해?

잘 하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가증스럽다. 인류의 멸망이 예정되어 막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노아의 홍수나, 대빙하시대처럼 그냥 확 보내버리던가.

끄적끄적 몬스터를 내보내서 인간이 대처할 시간과 자원을 주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지고 놀 듯 천천히 죽여나간다.

이 모두가 최악의 재앙, '네메시스' 가 오기 전까지의 유흥이라는 걸까?

"야.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냐?"

옆자리에서 헬기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한윤정이 물었다.

"……그냥."

"싱겁긴."

그녀는 긴장 풀라는 듯 내 팔꿈치를 툭 쳤다.

"너야말로 진짜 괜찮겠어?"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고,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한윤정을 데리고 헬기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모두 안전벨트를 매자, 마르첼로도 앞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시작이군요."

전쟁을 앞둔 상황에도 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사람도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성기사단에서 탈취한 군용 무전기에서 음성이 들린다.

-게이트 오픈 20분 전! 모든 돌입조 발진!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지상의 군용 마력 헬기들이 일제히 하늘로 떠오른다.

"그럼 우리도 출발해 볼까요?"

마르첼로가 또 다른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여기는 성기사단. 발진합니다."

-여기는 묘지기. 발진한다.

타다다다다다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성기사단이 입고 있는 성의처럼, 순백의 헬기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동시에 묘지기들을 태운 금빛 헬기 여덟 대도 비상한다.

나와 한윤정은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꾹 잡았다. 상당한 진동이 느껴지는 만큼 속도도 빨랐다.

도합 열여섯 기의 헬기는 순식간에 한국군 헬기들을 추월하여 제일 높은 상공에 떠올랐다.

-작전에 등록되지 않은 헬기 16대 부양! 본부는 확인 바람!

군용 무전기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헬기에서 직접 경고 방송이 들린다.

-여기는 재앙 비상 대책 위원회본부! 경고! 경고합니다! 당신들은 본국의 영공과 작전 지역을 무단침범했습니다! 소속을 밝히고 작전 지역에서 이탈하십시오! 본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발포하겠습니다!

마르첼로는 씩 웃으며 군용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성기사단의 마르첼로. '세계 헌터 연맹' 협정에 따라 가맹국 한국의 재앙에 참전합니다."

-나는 묘지기의 파라오다. 지금 누가 누굴 쏜다고? 재밌네, 한번 해봐. 니들부터 싹 쓸어버리고 올라갈테니까.

……하하. 이 미친 놈들.

이게 세계 길드의 자신감인가? 두 사람의 반응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식겁한 정부 쪽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듯했다.

-여, 여기는 재앙 비상 대책 위원회 본…….

치직!

-임남진입니다.

목소리가 바뀌었다.

-아크 비숍, 파라오. 두 분 모두 이번 작전에 참여해 주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임남진 헌터. 이전에 밝혔듯 작전 공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지시를 받지 않고 단독 작전을 수행합니다."

-우리는 우리 대로 움직여. 뭐, 방해하지 않는다면 가는 길에 잡몹 정리 정도는 해줄게.

무전기에서 침묵이 흘렀다.

사전 협의도 없이 작전 지역에 무단 침입. 상당히 무례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치직!

-두 분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한 국 헌터 협회는 두 분의 단독 작전을 지지합니다.

임남진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합리적이다. 지금 한국은 무려 게이트 네 개를 맡고 있는 상황. 개똥도 약이니 바르고 봐야 할 때에 두세계 길드가 선봉으로 나서준다는데, 자존심 때문에 충돌할 필요는 없었다.

무전기에서 입을 뗀 마르첼로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여기까진 당신 말대로 됐군요. 김유신 헌터."

"네. 다행이네요."

"자, 이제부터 쭈욱 올라갑니다. 두분 다 꽉 잡으시길."

순백과 황금의 헬기들이 가장 빠른 속도로 대기를 뚫고 하늘로 접어들었다.

치직!

-게이트 완전 오픈!

구름이 모이며 재앙의 게이트가 아가리를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서 두 눈이 번뜩이며 지상을 내려다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검정 일색에 눈구덩이만 시뻘건 몬스터들.

나는 섬찟한 기분을 느꼈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 아!'

예전에 시련 2층에서 잠깐 본 적이 있었다.'큐브'에 들어가려면 저 끊임없이 달려드는 소악마들을 피해서 도망쳐야 했다.

그 소악마 몬스터와 똑같이 생기긴 했지만 작은 몸집, 큰 몸집. 꼬리가 달린 것 날개가 달린 것 등등 그종류는 천차만별로 다양했다.

-크오오오오오오!

-키이이이!

게이트가 열리자 검은 몬스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기사단, 돌파합니다!

-묘지기, 올라간다!

목걸이의 십자가를 쥔 마르첼로가 뭐라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열여섯 대의 헬기에 백색역장이 방어막처럼 펼쳐졌다.

역장에 부딪힌 몬스터들은 고통에 부르짖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다들 꽉 잡아.

무전기에서 메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헬기에서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모래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데바의 눈으로 이 현상을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상공의 마나가 그대로 모래로 변하고 있다.

-전부대. 내 신호에 맞춰 최고속도로 돌파한다.

하늘에 형성된 모래들이 매서운 속도로 뻗어 나가 그야말로 몬스터들을 삭제해 나갔다. 압도적인 힘. 모래의 파도가 이 탁 트인 범위를 전부 커버하고 있다.

-5, 4, 3.

마치 스노우볼이다. 메네스의 모래는 비행할수록 그 양이 불어난다.

살아 움직이듯 휘날리는 모래들이 낙하하는 몬스터들의 무리를 뚫고 게이트로 향하는 뻥 뚫린 길을 만들어 냈다.

-2, 1. 지금이다!

마력 헬기들이 최고속도로 상승비행했다. 메네스의 능력으로 길을 만들고, 그녀가 놓친 잡다한 몬스터들은 마르첼로의 역장이 막아낸다.

'크으!'

헬기 안에서는 엄청난 압력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보호 헤드셋을 꼈지만, 귀가 먹먹했다.

"꽉 잡으십시오! 이제 곧 돌파합니다!"

마르첼로의 목소리에 우리는 손잡이를 꾹 쥐었다.

헬기는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뚫고 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시야가 격렬히 흔들리며 기체의 흔들림이 최조고가 되었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 잠시 후, 지독한 압력과 속도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16기 모두 게이트 진입 성공.

-고도 안정하.

-모든 통신 장비, 던전 체킹용으로 온라인.

'으으, 속 안 좋아.'

쾌적한 비행은 아니었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의 녹지는 울창한 수풀을 이룩하고 있었고 평지 기반에 언덕이 울퉁불퉁 솟은 지형이었다.

'여기가 재앙의 내부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네.'

겉으로만 보기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몬스터가 바글거린다는 점만 제외해 본다면,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대자연 그 자체였다.

마르첼로가 무전기를 들었다.

-입구 부근은 한국 헌터들이 작전을 실행할 겁니다. 우리는 좀 더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카피.

마르첼로는 무전을 마치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30분 정도 근방을 돌면서 자리를 잡을 테니 두 분 다 쉬어두시지요."

30분이라.

정말 고마운 30분이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나는 보호 헤드셋을 풀고 생수를 들이켰다. 물이 목구멍으로 쏟아지는 청량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 속이 더 안 좋아졌다.

"유신아. 근데 말이야."

물끄러미 창가를 바라보던 한윤정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진짜 여기까지 와도 괜찮아? 아르민 발터를 잡을 거라며? 놈이 이런 곳까지 찾아 올 수는 있는 거야?"

"아, 그건……"

"그 부분은 너무 염려 마십시오."

마르첼로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르민 발터는 한번 '그릇'을 정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오는 놈입니다. 수 많은 과거의 사건 기록들이 설명해 주죠. 놈이 따라올지 말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놈이 왔을 때 확실히 잡을 걱정만 하면 됩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한윤정의 반문을 들은 마르첼로는 한 차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도 좀 있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

"아르민 발터의 몸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는 사실은 두 분도 알고 계시죠?"

나와 한윤정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20번도 넘었다고 했던가.

"지금 아르민 발터가 하고 있는 몸은 사실, 제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표정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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