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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01화 (101/337)

나 혼자만 마탑주 101화

성기사단의 습격을 무사히 물리치고, 나는 다시 마탑으로 돌아왔다.

"오빠야다!"

은솔이 반겨주었다.

쪼르르 다가온 그녀가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내가 비닐봉지를 흔들자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은솔에게 비닐봉지를 쥐여주고는 로비의 편안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탑주!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빛무리와 함께 에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괜찮아. 그보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건?

"막 보고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파라오 메네스와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알아냈습니다."

"오오! 빠른데."

역시 에아의 해킹 능력은 대단했다. 나는 바로 에아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데?"

하지만 통화 연결음만 반복해서 들릴 뿐, 연결은 되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그렇담 이번에는 묘지기 측 매니저와 연락할 수단을 찾아 보겠습니다."

"부탁해."

안전하게 판을 깔려면 성기사단과 묘지기, 두 세력 모두가 필요했다.

* * *

깊은 밤.

한 남자가 아차산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짐승처럼 몸을 낮추고 두 손과 발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이 산에서 냄새가 난다.'

그는 바로, 전 세계의 헌터들이 찾고 있는 연쇄살인마 아르민 발터였다.

'틀림없이 이 산에 있다.'

그의 고유 능력인 '스피릿 체인지' 의 부가적인 힘으로, 그는 한번 맡은 영혼의 냄새를 기억할 수 있었다. 사냥감이 세상 어디에 있든,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는 한 번 '그릇'으로 정한 상대는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100%. 그의 타깃이 된 그릇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악명을 떨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틀림없이 이 산에 있다.'

아르민 발터는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흠.'

걸음을 멈춘 그의 눈동자가 파충류처럼 데구루루 굴러 갔다. 틀림없이 영혼의 냄새는 이 앞에서 난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위기로부터 몇 번이고 구한 이 예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오늘은 포기해야겠군.'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그 그릇을 탐하고 있으면서도, 아르민 발터는 몸을 뺐다. 그가 등을 돌려 돌아가려는 그때.

쉬이이이이익!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아르민 발터가 자세를 낮추며 회피 동작을 취했다.

콰콰콰콰쾅!

쿠우우우우우웅!

뒤이어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전자 지뢰들이 폭발한다. 그의 몸이 연기에 뒤덮이고 그 사이로 무수히 많은 화살과 화기들이 쏟아진다.

"큭!"

다급히 연기 속을 빠져나온 아르민 발터가 산 절벽을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등과 다리에는 깊게 박힌 화살은 헌팅 디바이스가 아니라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함정이었군. 묘지기인가.'

산에 숨어 있던 헌터들이 뒤쫓아오는 게 느껴진다. 그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신속히 산에서 내려왔다.

20년 동안 전 헌터계가 쫓고 있음에도 아직도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 괴물. 그의 움직임은 기민했고, 판단은 신속했다.

빼곡한 나무들과 지형지물을 이용해 열댓 명이 넘는 헌터들을 단번에 따돌렸다.

'돌아가서 다시 작전을…….'

그의 감각이 예민하게 경고 반응을 일으켰다. 발터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그 즉시 누군가의 발이 부딪쳤다.

쩌억!

발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는 피를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고, 그의 앞에 황금 갑주와 이집트풍 지팡이를 든 여인이 내려왔다.

"찾았구나, 쥐새끼."

3대 파라오, 메네스가 거만하게 웃었다.

"…… 어떻게 내 위치를 알았지?"

"홍. 사냥꾼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나? 아니지. 우리가 보내준 거야. 거기서 네놈을 붙잡으면 망할 바티칸 놈들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지니까."

쿵!

메네스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에 갑자기 거대한 석상들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지팡이를 횡으로 휘둘렀다. 그녀의 등 뒤로 드높은 모래 장벽이 펼쳐졌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순순히 항복하거라."

"……크흐흐!"

발터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풋내기 파라오."

"뭐?"

"너는 결코 날 잡지 못해."

아르민 발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것은 결코, 궁지에 몰린 쥐의 눈은 아니었다.

* * *

다음 날.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나는 한적한 카페의 2층을 통째로 빌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제일 먼저 계단을 올라온 사람은 아크 비숍 마르첼로였다. 그는 여전히 빙그레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유신 헌터."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워후.'

살벌했다.

마르첼로는 당연히 혼자 오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열 명이 넘는 성기사단 일원들이 굳게 버티고 서 있었다. 나한테 맞아서 나가떨어졌던 그 덜떨어진 두 명도 보였다.

"이야, 이야.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카페를 한번 둘러보던 마르첼로가 환하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르민 발터 용의자가 먼저 자리까지 마련해서 보자고 제안하다니. 저는 이게 웬 떡이야 했다니까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절 의심하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아르민 발터를 상대로는 일말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으니까요."

"그쪽 말마따나 내가 발터라면 당신과 마주하는 이런 리스크를 감수했을까요?"

"바로 그런 기만이 그의 수법 중 하나니까요. 아르민 발터는 타인의 몸을 취하고 타인의 흉내를 내며 모두를 속여넘기죠.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합니다."

분명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섬뜩하게 보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저희 형제 두 명을 제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공인4급 둘이었는데 그렇게 간단히 제압했다라."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는 건가.

"여러모로 김유신 헌터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는 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죠, 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메뉴판을 들었다.

"일단 커피나 시킵시다. 저는 아메리카노요."

"앗! 사주시는 겁니까?"

마르첼로의 표정이 단번에 환하게 변했다. 나는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르민 발터가 쏘는 커피 마시고 싶어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는 신이 나서 메뉴판을 살폈다.

"뭐로 할까요? 와, 이거 맛있겠네요. 블루베리 요거트 플랫치노.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판을 받았다. 그리고 뒤에서 목상처럼 서 있는 성기사단들에게도 메뉴판을 내밀었다.

"우리만 먹으면 미안하니까 여러분도 하나씩 주문하세요. 커피."

"……."

분명히 코어 통역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눈동자 한 번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목상이 된 것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김유신 헌터는 상냥하시군요."

마르첼로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에 들려 있던 메뉴판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성기사단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메뉴판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서 커피를 고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온도 차이는.

게다가 시키는 메뉴도 카페모카, 녹차라떼, 파인애플 슬러시 등등 입맛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결국, 메뉴가 너무 많아서 직원이 직접 와서 주문을 받고 갔다.

처처척!

메뉴만 고르고는 다시 목상으로 돌아오는 성기사단이었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르첼로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아르민 발터를 찾아 낼 방법을 알고 있으시다고요?"

"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

마침 딱 맞춰왔다.

1층에서 딸랑 거리는 종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무수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후 계단을 올라오는 자들을 본성기사단 모두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이건 예상 못했군요."

마르첼로도 혀를 내둘렀다.

이집트의 묘지기들이 2층 카페로 올라오고 있었다. 성기사단들은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대며 살기를 뿜어댔다. 묘지기들도 물러서지 않고 도발적인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여기 있었나, 마르첼로."

이집트의 3대 파라오인 메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온 그녀는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 앉아 두 다리를 턱 올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 곳곳에 밴드같은 것을 붙이고 있었다.

"이집트도 덥지만, 한국도 만만치않군. 시원한 것 좀 시켜 보거라."

"당연히 시켜드려야죠. 직접 골라보시겠어요?"

메네스가 메뉴판을 보고 있는 사이, 마르첼로가 이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 제가 불렀어요. 아르민 발터를 잡기 위해선 두 분 모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건, 조금은 아쉬운 판단이군요. 아르민 발터는 저희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김유신 헌터도 보셨지 않습니까? 두 세력이 함께 움직였다간 충돌이 일어나 효율이 떨어질 뿐입니다."

나는 슬쩍 미소 지었다.

"아크 비숍께서 저를 못 믿는 것처럼, 저도 아직은 성기사단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해두고 싶네요."

"와하하하하!"

옆에서 메네스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한국 헌터들도 알건 아는군! 이런 원론주의자들이 영 행동력은 굼뜨지!"

"에이, 묘지기도 남 말 할 처지는 못 되는데요."

"……뭐야?"

그녀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수년째 아르민 발터를 쫓고 있다면서요. 그런데 아직도 성과는 전무. 한국에서도 발터가 2주째 서울을 활보하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꼴이지 않습니까."

메네스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이번엔 마르첼로가 미소 지었다. 그가 흔히 하는 빙그레지만 보통 때보다 입꼬리가 더 올라가 있었다.

"저들과 같은 취급하지 마라! 우리는 바로 어제만 해도 아르민 발터를 찾아 내 급습했다!"

"후후후. 결국 성과는 없었으니 이자리에 나타났겠지만 말입니다. 그 얼굴 상처는 어쩌다 난 겁니까?"

"네놈! 혓바닥을 뽑아버리겠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좋군, 좋아.

바로 이런 그림을 원했다.

아직 나로서는 세계 길드를 휘두를 힘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해 주면, 아르민 발터를 찾을 열쇠를 가진 내 주가는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슬슬 운을 떼 볼까.

"이번 사태. 여론이 무척 나쁜 건 아시죠?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외신에서도요."

으르렁거리던 그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번 사태는 두 사람에게도 뼈아픈 실책이었다. 서로를 견제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아르민 발터를 놓쳤으니, 본국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지휘는 아직 확고하다고 볼 수 없었다.

메네스는 2대가 죽고 신인 파라오로서 권력 기반을 완전히 닦지 못했고, 마르첼로 또한 어린 나이에 아크 비숍까지 도달했지만 성기사단의 일인자가 된 건 아니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자신의 지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아르민 발터를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 다 벼랑 끝에 선 상황.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기회에 어떻게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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