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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97화 (97/337)

나 혼자만 마탑주 097화

내 마음의 어딘가가 뚝 꺾이는 게 느껴진다.

너무 늦었다는 그녀의 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아팠다.

[헌터가 됐다며? 그럼 지켜봐.]

그녀가 팔을 움직이자, 무너진 파편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체육관 뒤편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체육관으로 들어와 피범벅이된 내부를 들여다본 학생들은 놀라서 그대로 동작이 굳어져 있었다.

-탑주!

'알고 있어!'

나는 이를 악물고 에아가 준비하고 있는 4공정 마법을 마무리했다.

<아이올로스>

내가 꺼낸 마법진을 중심으로 대기 전체가 출렁거렸다.

"크윽!"

"꺄악!"

놀라서 엎드리거나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의 앞으로, 바람의 장막이 그물처럼 펼쳐진다.

투웅. 퉁. 터엉.

날아간 파편들이 모두 대기의 품에 안착했다.

아이올로스는 살상력은 없지만, 한 번 일으킨 바람이라면 세부적인 부분까지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에 100% 올인한 4공정 마법이다.

정신을 차린 학생들이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수 천 개의 파편들이었다.

덜컹! 쿵!

힘을 잃은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놀란 학생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갔다.

"어어? 기, 김유신?"

"다들 여기서 나가!"

내가 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움찔 하기만 할 뿐 도망치지는 않았다.

"모, 몬스터 인가요? 우리도 돕겠어요!"

"나 화염계 능력이야! 도움이 될 거라고!"

아오, 진짜.

아카데미 학생들이 이래서 골치 아프다. 어중간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사태를 해결해 보려 덤빈다.

헌터 입장에선 차라리 그냥 민간인들과 함께 도망쳐 주는 게 훨씬 고맙다.

-탑주! 옵니다!

'쓰읍!'

나는 황급히 한윤정에게로 고개를 되돌렸다.

슈콰앙!

그녀가 쏘아 보낸 무수히 많은 보랏빛 광채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목표는 내가 아닌 학생들. 나는 이를 악물고 몰입했다.

보랏빛 광채가 서서히 느리게 보이면서 데바의 눈이 진행 방향을 계산한다. 앞으로 3초 후 사망 및 중상자 최소 7명 예상.

다시 한번 아이올로스를 발동한다.

마탄의 범위에 들어온 학생들을 아이올로스의 바람을 이용해 옮긴다.

'으윽, 무거워.'

바람으로 다수의 사람을 옮기는 건 힘겹지만 그래도 슬쩍 움직이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폭격의 직격 범위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옮기고, 이제는 무너진 천장에 깔릴 예정인 학생 두 명을 바람으로 밀어내 구한다.

이제 나머지 한 명도 옮기려고 했지만, 아이올로스의 출력이 다 했다.

이 한 명은 내가 직접 뛰어든다.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콰콰콰콰콰콰콰쾅!

마탄이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시커먼 연기가 체육관을 자욱하게 뒤덮는다.

[기분이 어때? 김유신 헌터님.]

쇠를 긁는 듯한 한윤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네가 보는 앞에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죽일 거야. 재미있겠지?]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멈췄다.

아마 이제 그녀도 깨달았을 것이다. 응당 있어야 할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폭발 연기가 걷히며, 보이는 것은 그녀가 기대한 비극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기절한 여학생을 끌어안아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너.]

한윤정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전부 지킨 거야?]

나는 숨을 헐떡이며 옆에 남학생에게 기절한 여학생을 넘겨주었다.

"빨리 가. 이거 재앙이니까 학교에 남아 있는 모든 학생에게 대피하라고 알려. 절대로 맞서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남학생이 그녀를 둘러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헌터를 방해하지 마! 다들 뛰어!"

"으, 응!"

학생들이 체육관 밖으로 도망쳤다.

폭발음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뒤에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방금 도망친 녀석들이 내 지시사항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그녀를 보았다.

"윤정아."

죄책감과 죄의식이 내 몸을 짓눌렀지만, 어떻게든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내 이야기를……."

그때 그녀의 손안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한 남자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목을 죈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는 컥! 소리를 내며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촤아악!

목을 붙잡은 그녀의 팔이 윈드 커터에 의해 날아가고, 리프 부츠로 도약한 내 오른 다리가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다.

터업.

그녀가 가뿐히 팔을 세워 내 신발의 밑창이 닿지 않게끔 받아냈다.

내 발밑으로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식전에서 본 기술이네. 그때의 넌 정말 빛났었는데.]

그녀가 반대쪽 팔을 휘둘렀고 나는 다리를 뒤로 빼며 고개를 틀었다.

그녀의 팔이 내 뺨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허공을 갈랐고 나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돌아오는 내 오른 다리와 한윤정의 왼손이 부딪쳤다.

<데바스타>

투콰아아악!

검은 파장이 튀어나와 그녀의 왼팔을 박살 냈다.

내가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서는 사이, 망가진 그녀의 팔에서는 새살이 돋아나며 재생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봉규는 흉내만 냈을 뿐, 저게 바로 몬스터들의 오리지널 기술인 초재생.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괴물이 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이것들을 지키지?]

그녀가 물었다.

[실력 만능주의라는 학칙을 핑계삼아 우리들을 능멸하고 유린하던 쓰레기들이잖아. 너도 알 텐데?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랏빛 광채에 휩싸인 그녀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곤 순식간에 체육관의 천장까지 뚫고 하늘로 날아갔다.

'아차!'

나는 다급히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괴이한 웃음 소리를 내지르며 팔을 벌렸다.

[이 증오스러운 곳을 흔적도 없이 날려주마!]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반대편에 있는 체육관 하나가 통째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체육관은 갈가리 부서지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파편조각으로 갈라졌다. 뒤이어 그녀가 펼쳐놓은 마력의 층을 통과해 살벌한 흉기로 코팅되었다.

"헉! 이게 다 뭐야?"

"몬스터의 공격이다! 다들 도망쳐!"

휴일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던 학생들이 밖으로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내 시선은 한윤정의 눈을 쫓고 있었다.

'에아, 가자.'

-네. 탑주.

<카피 매지컬 포지션>

<아이올로스>

아마도 처음 시도해 보는 4공정 마법의 카피 매지컬 포지션.

나는 세 개의 아이올로스를 꺼내서 동시에 운용했다.

"……윽!"

2공정을 찍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어마어마한 수식량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놀랐지만,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하며 마법을 전개해 나갔다.

아이올로스를 세 개나 운용한 덕분에 이 근방의 대기를 모두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우선 대기를 넓게 도서관 앞에 퍼뜨려놨다.

뒤이어 한윤정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도서관을 향해 한때 체육관이었던 파편을 통째로 던졌다.

"꺄아아아악!"

"앞에 비켜! 제발 좀!"

"오, 온다!"

아직도 도서관 정문 쪽에서 학생들이 울부짖으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집중하자.'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버텼다.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고, 도서관 위로 넓게 퍼뜨려 놓은 아이올로스가 그것을 받았다. 내게도 그 묵직한 압력이 전달되었다.

더럽게 무거웠다. 중력에 더해 마력까지 실린 파편들은 하나하나가 포탄과도 같은 위력이다.

'완전히 받아내는 게 아니라 흘린다는 느낌으로……'

아이올로스는 방패가 아니라 그물.

이를 악물고 컨트롤에 집중했다.

쏟아져 내린 수만 가지 파편들을 아이올로스로 하나하나 붙들어낸 다음 조심스럽게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유도해 미끄러뜨린다.

쿠우웅!

기둥이 분수대에 떨어지고.

터엉!

지붕이 잔디밭에 내려앉으며.

콱! 투둑!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운동장 바닥에 박힌다.

[마력이 15 올랐습니다.]

[의지가 10 올랐습니다.]

[집중이 10 올랐습니다.]

대량 사상자를 낳을 예정이었던 이 거대한 징벌의 공세가, 단순한 쓰레기 더미로 바뀌어 바닥을 굴러다닌다.

"후우우우."

마침내 나는 깊은숨을 토해내며 팔을 내렸다.

어떻게든 지켜냈다.

"……와. 미쳤다."

"저거 김유신이 한 거 맞지?"

나름 티가 안 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주목받은 김에 말하자.

나는 인스턴스 마법진으로 2공정의 확장의 룬을 장착한 마법진을 입에 대고 말했다.

-여러분, 저는 공인 4급 헌터 김유신입니다!

공인 헌터에게는 비상시 현장 지휘권이 있다.

-학교 전체가 재앙의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부상자들을 데리고 신속히 학교에서 빠져나가세요! 재앙의 주체와 만나더라도 맞붙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십시오!

웅성웅성!

나는 방송을 마친 다음 에아에게 물었다.

'한윤정은?'

-그녀의 마력을 탐지했습니다. 현재 과학관으로 이동 중입니다.

'안내 부탁해.'

에아는 목표 지점을 데바의 눈으로 띄우면서도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마인이라고 해도 한때 친구를 사냥하는 건 역시……. 적어도 이번 건은 다른 헌터들을 불러서 조치하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나는 리프 부츠를 밟고 날아올랐다.

'이건 누가 뭐래도 내 문제야.'

* * *

싸움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도로, 공원, 아파트 단지, 주택가.

그녀가 지나는 곳마다 부서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했다.

다만 사상자는 없었다.

그녀가 마탄을 발사하거나 잔해를 던질 때마다, 내가 아이올로스를 깔아서 저지했으니까. 건물이 붕괴하는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어도 최소한 인명피해는 일어나지는 않도록 철저히 막아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한윤정이 물었다.

어느새 우리는 서울 외곽의 공사중인 공터에 들어섰다. 다행히 안부들은 벌써 피신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왜 날 공격하질 않지? 재앙을 막을 생각이 없는 거야?]

"허억! 허억!"

나는 숨이 차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막고… 있잖아… 허억!"

[필사적이네.]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느라 그렇게 필사적인 거야? 공인 헌터가 됐다고 이기적인 네 본질이 바뀌었다고 생각해?]

"……그건 또 뭔 소리야?"

나는 소매로 입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난 여전히 이기적이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은 내게는 딱 조의를 표할 정도의 의미뿐이지. 정의고 의무감이고 그런 거 없어."

[그런데 왜…….]

"너 때문이잖아!"

내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가 대량 인명피해를 내버리면!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뒷감당이 안된다고!"

사람들을 지킨 게 아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 아주 짧은 한순간이나마 동요가 일어났다.

나는 완전히 숨을 가라앉힌 다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뒷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너 진짜 필사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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