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96화
쏴아아아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낡은 공원.
인적 하나 느껴지지 않는 한산한 길을 한 남자가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었다.
"……."
그가 길을 가는 도중, 길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남자가 다가가 어깨를 흔들어보았지만.
이미 죽어 있었다.
남자는 고통스럽게 부릅뜬 시체의 눈을 감겨주고는 가지런히 바닥에 눕혔다. 그러고는 어깨와 팔을 누르며 독특한 의식을 마친 후 죽은 사람의 손목에 입을 맞췄다.
"……."
그의 시선이 뒤늦게 상처 쪽으로 향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나 있었다.
상처 부위를 더듬던 남자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린다.
"거기 누구냐!"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현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 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고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저, 정지! 움직이면 쏜다!"
"두 손 머리 위로 들어!"
연쇄살인마 경계령으로, 경찰들은 바로 총을 뽑아 겨누었다. 남자는 픽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인가."
총구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음침하게 번뜩였다.
* * *
비가 내린다.
장마 때라 그런지 툭하면 비다.
아카데미는 오늘 휴학이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공포에 떨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조치다. 근처의 중고등학교도 모두 휴학이란다.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 전해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 대량 학살자 '아르민 발터'의 짓이라고 떠들었다.
경찰들도 수사에 들어갔다.
나로서는 차라리 다행이다. 한적할때 졸업장 가지러 가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이런 건 그냥 우편으로 보내주면 어떨까 싶지만, 개인 확인 문제 때문에 반드시 본인이 와서 서명하고 수령해야 한단다.
상계동에서 버스를 탔다. 복작거릴 시간대지만 승객은 기껏해야 나를 포함해서너 명이 전부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거리도 어딘가 텅 빈 것처럼 한산했다. 아마도 해외에서 온 연쇄살인마가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겠지.
몬스터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세상에서도 잘만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연쇄살인마 하나에 이렇게 숨어버리다니. 살인마라는 단어가 주는 파급력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아카데미 캠퍼스에 들어왔다.
학교는 조용했다. 휴무라고는 하지만 학교 내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이나 시험공부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인적이 없지는 않았다.
체육관 쪽은 공인 5급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상 전투기기가 있으니까 감을 잡기에는 제격일 것이다.
나는 차박차박 빗물 고인 땅을 밟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우산 썼는데도 흠뻑 젖었네.'
우산을 털고 문 앞에 비치된 일회용 비닐을 씌운 다음, 다른 길로 샐것도 없이 바로 2층의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혹시 아는 얼굴이라도 있으면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 오라 가라 해놓고 이게 뭐야.'
나는 적당히 소파에 앉아 내가 아는 학생회 간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라야. 학생회에 아무도 없는데.
-어머, 진짜요? 죄송해요. 조교 선생님한테 연락해 볼게요.
그럴 수도 있지.
그냥 기다리면 심심하니까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는데, 내 시선이 저절로 한윤정의 대화창으로 향했다.
쏴아아아아아.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창문을 때리는 빗 소리에 집중하니 잡 생각이 사라지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역시.
그때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
-윤정아.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전송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지만 역시나, 답은 오지 않았다.
'조용하네.'
스마트폰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낀 하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이 기세로 보면 오늘 내내 쏟아질 것만 같다.
비온다고 감성에 젖는 타입은 아니건만, 어쩐지 요즘 내내 기분이 뒤숭숭했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메신저어플을 종료하니 진보라가 한번 해보라며 억지로 내 폰에 깔아둔 모바일 게임 아이콘이 보였다.
'한번 해볼까.'
게임에 접속해 보았다.
뭐 또 귀여운 캐릭터들이 통통 튀어나오고, 같은 그림의 블록을 맞추면 팡팡 터지면서 점수를 얻는 그런 게임인 줄 알았는데.
-삼국지 손책전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훗!"
너 대체 무슨 취향인 거냐 보라야.
-민중을 수탈해 악행을 일삼다니, 절대 용서치 않겠다!
-크억. 내가 밀리다니!
노잼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제거하시겠습니까?]
'Yes' 버튼을 누른 뒤 게임이 삭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조교 선생님이 생각보다 빨리 왔군.
지익. 지익.
……발 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나는 스마트폰 볼륨을 음소거하고, 소리에 집중했다.
지익. 지이익.
누가 저렇게 걷는 거지?
바닥에 발을 질질 끌고 있다.
오늘은 전체 휴강. 학생회실에 올사람은 내게 졸업장을 주러 올 조교선생님밖에 없다.
그런데.
지이이익. 지이익.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은 아닌 것 같다.
느낌이 좋지 않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를 끌어올렸다.
콰르릉!
쏟아지는 빗 소리 사이로 천둥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발을 끄는 소리가 학생회실 앞에서 멈췄다.
긴장감이 달아오른다.
뭐야 대체?
절정이 된 긴장감이 목을 옥죈다.
나는 마나를 일으키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다.
달칵.
문이 열렸다.
난데 없이 시뻘건 뭔가가 눈앞에 휙하고 떨어졌다.
"허억……!"
그것은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이었다.
그녀의 고개가 움직이며 나를 보았다.
"……김유신 선배님?"
아는 얼굴이다. 어제 내 사인을 받아간 그 4학년 여학생. 나는 몸을 낮추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다리를 저는 것만 빼면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옷에 온통 시뻘겋게 묻은 피도 그녀가 흘린 피라기보다는 다른 사람 피가 튄 것 같았다.
"기, 김유신 선배님 맞죠? 도와주세요! 제발! 제바알!"
그녀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부르르 떨렸다. 두 눈은 어떤 악몽을 보고 있는 듯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요.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볼래요?"
"흐읍! 끅! 지윤이가! 끄흑! 제 친구가 다쳐서……!"
"다쳤다고요?"
"누, 누가 사람들을 막 찌르고……! 피, 피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아! 지금 당장 아카데미 지역의 마력 반응을 체크해!'
-알겠습니다!
나는 달려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꼼짝 말고 여기 있어요! 친구분은 내가 반드시 구할 테니까 걱정 말고!"
그녀가 눈물 쏟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복도를 가로질러 달리면서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탑주! 비정상적인 마력 반응을 보이는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전투중인 것 같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해 줘!"
첨벙!
건물 밖으로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이제는 꽤 굵어져 있었다.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운동화에 물이 찼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쏴아아아아!
숨이 찰 만큼 달리는 도중에, 나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안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지?
-탑주! 저 체육관 건물입니다!
나는 다급히 체육관 건물로 들어섰다.
'이건…'
끔찍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건물 입구근처에서 쓰러져 있었다. 그들이 흘린 피가 빗물에 타고 내려가 붉은 강을 이루었다.
나는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체육관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
피바다였다.
체육관의 마룻바닥이 시뻘건 혈흔으로 가득했고 피투성이인 학생들의 몸뚱이가 길가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내 시선이 마룻바닥을 따라 움직인다. 시선이 이동하면서 핏덩이가 된몸뚱이들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 끔찍한 핏덩이들의 중간에서 있는 건.
'……말도 안돼.'
고통스러워 하는 한 학생의 목을 붙잡아 끌어올린 여자.
심지어 내가 아는 얼굴이다.
"……한…… 윤정……?"
그녀의 고개가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돌아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히죽 웃는다.
[왔어? 유신아.]
변조되어 탁한 목소리였지만, 그것이 한윤정의 목소리라는 것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몸뚱이를 가볍게 날렸다. 허공을 붕 날아가 수십 미터넘게 떨어진 벽 끝에 퍽!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피가 한쪽 벽면을 시뻘겋게 물들인다.
한윤정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징그러운 몬스터의 껍질 같은 것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뿔까지 나 있었다.
정신을 그대로 놔 버릴 것만 같은 충격을 견뎌내며,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네가 오길 기다렸어.]
그녀가 자신의 몸을 슥 훑어보고는 미소 지었다.
[근사하지?]
마인화.
육체, 정신, 사상까지 몬스터화되는 재앙의 일종.
나는 느꼈다. 지금 그녀는 내가 아는 한윤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런 상황이지만 확인할 건 해야 했다. 나는 그녀의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한윤정.
고유 능력 : 좌표 계산.
개인 특성 : [마인화 Lv.1] [중력제어 Lv.1] [파멸 Lv.1] [정밀계산Lv.3] [수집가 Lv.1]
기본 능력치 : [마력 146] [근력97] [순발 81] [체력 80]
특수 능력치 : [타락 138] [지능5] [인내 5]
능력치 총합 : [552]
특성에 마인화가 발현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거기에 능력치 총합 100을 넘지 못하던 그녀가 500대의 능력치 총합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한윤정은 몬스터가 된 것이다.
[어때? 나도 이제 강해졌어. 너처럼.]
입술을 깨물자 핏물이 흘러나와 턱으로 흘러내렸다.
마인화는 정신적으로 무너진 플레이어들에게 깃드는 현상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적으로 무너질 만한 이유는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그녀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죽어줄래?]
그녀가 펼친 손가락 사이로 보랏빛광채가 섬광처럼 날아왔다.
몸이 먼저 반응해 침묵에 빠진 내 멘탈을 깨웠다. 에아가 전면에 쉴드를 펼쳐서 섬광의 방향을 비틀었고 나머지는 몸을 움직여 피해냈다.
빗나간 마력 광선이 벽과 바닥에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상당한 위력. 그녀는 정말로 날 죽일 셈이다.
[재미없어라.]
폭발에 의한 연기 속에서, 그녀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렇게 충격받은 표정만 짓지 말고 제대로 덤벼. 안 그럼 내가 변한 이유가 없잖아?]
그녀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사정없이 푹푹 꽂힌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깨져나간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방대한 마력이 느껴지며 내 몸의 털까지 바짝 선다.
그때였다.
"허억 뭐, 뭐야? 이거 다 피잖아!"
"근처에 균열이라도 열린 거 아냐?"
소란을 들었는지 체육관 뒤편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를 보던 한윤정의 시선이, 체육관 뒤편으로 향한다.
위험하다.
"윤정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힘겨웠지만, 나는 쥐어 짜내듯 말했다.
"이제 그만 해. 이야기하자.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