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94화
"네가 어떻게 연쇄살인마를 알아?"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은솔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우리 마을에 연쇄살인마 아저씨 세 명 정도는 있었는 걸! 맨날 솔이랑 솔이 친구들한테 콱 죽여 버린다고 그랬어!"
나도 모르게 나무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망할 새끼들. 역시 그때 다 조져 버렸어야 했는데.
"……아, 하하! 말 나온 김에 뉴스나 한번 틀어볼까요?"
진보라가 애써 분위기를 밝게 하며 인터넷 뉴스를 실행시켰다.
-연쇄살인마 '아르민 발터(48)'가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집행부와 함께 합동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밝혔습니다.
-아르민 발터의 출현 소식에 인접국인 중국, 일본, 북한도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각국 언론에서도 이소식을 일면으로 보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와 선박의 검열 인원을 평소의 다섯 배 이상으로 늘렸다고 밝혔습니다.
난리가 나긴 했나 보다. 어떤 채널을 보든 간에 그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슈뿐이었다.
-합수부에서는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쇄살인마가 가장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새벽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선배니임."
"왜?"
고개를 돌리자 진보라가 겁먹은 척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저 무서워요."
……또 시작이네. 이 녀석.
평소라면 무심하게 대꾸했겠지만, 최근 그녀에게 지은 죄가 많았던 나는 작게 한숨 쉬며 대답했다.
"밤에 귀가할 때는 데려다줄게."
"아싸아!"
"서진아. 너도 퇴근 시간 맞으면 우리 포션 능력자님 좀 태워다줘."
다 같이 떡볶이를 먹는 와중에도 계약서를 끄적거리던 정서진이 퀭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불 가져오겠습니다."
"응? 갑자기 웬 이불?"
"연쇄살인마가 잡힐 때까지는 탑에서 철야 하려고요."
"……아우! 말을 해도 꼭 저렇게 밉상으로 한다니까! 됐네요! 내가 더러워서 면허 딴다!"
"2종 보통 기능시험만 여섯 번 떨어진 기적의 드라이버가 말입니까?"
"야! 너 진짜 나랑 해보잔 거지?"
두 동갑내기가 또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아르민 발터라는 인물을 다룬 기사를 읽어보았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300명 이상,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플레이어및 공인 헌터. 아르민 발터 본인만 공인 2급 정도의 실력자로 예상.]
살벌한 놈이었다. 이런 놈이 지금 서울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오싹했다.
그때 마침 뉴스에서 속보 방송이 나왔다.
-속보입니다! 바티칸의 '성기사단' 이 아르민 발터의 체포를 위해 방한 합니다. 성기사단을 이끄는 리더는 아크 비숍 마르첼로라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아르민 발터 체포를 위한 '묘지기' 부대가 국내에 파견되었습니다. 제3대 파라오 메네스를 포함한 공인 헌터들로 이루어진 전력입니다.
어우야.
연쇄살인마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긴 한 모양이다. 그 콧대 높은 외부헌터 세력들까지 들어온다고?
대충 기사를 읽어 보니, 바티칸과 이집트 두 쪽 모두 아르민 발터를 잡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같았다. 놈이 한국에 떴다는 소리에 지체없이 움직였다.
"……무섭네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뭐, 별일이야 있겠어?"
내가 떡볶이 소스를 묻힌 소시지를 포크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경찰에, 집행부에, 외부 세력 지원까지. 오래 못 가고 잡힐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 * *
다음 날. 인천 공항.
집행부의 수장 임남진과 요원들은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그들이 맞이하게 될 '손님'들은 수속 절차를 밟고 공항 뒤편으로 빠져나오게 되어 있었다.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던 임남진이 허브 향의 연기를 뿜으며 픽 웃었다.
"떨리나?"
"아, 아닙니다!"
옆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요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임남진은 전자담배를 집어넣고 말했다.
"외부 인사라고 쫄 거 없다. 이야기한 대로만 하면 돼."
"네!"
잠시 후 공항 뒤편에서 두 무리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는 백색 일색의 치렁치렁한 슈트를 걸치고, 목에는 십자가를 건 사람들이었다. 검과 망치 등 초고가의 헌팅 디바이스들을 짊어졌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헐벗은 것과 다름없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황금으로 세공된 상.
하의 슈트는 중요 부위만 가렸고, 화려한 장신구들을 몸 곳곳에 걸었다. 특별한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바티칸의 '성기사단'.
왼쪽이 이집트의 '묘지기'들이었다.
임남진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 무리가 걸음을 멈췄고, 대표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아, 한국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성호를 그리며 인사한 사람은 하얗게 머리가 센 젊은 청년이었다. 임남진이 웃는 얼굴로 그와 악수했다.
"방한을 환영합니다. 아크 비숍 마르첼로."
"하하하! 이렇게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할 때 신세를 지게 되는군요. 아르민 발터 건은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체포하겠습니다."
"놀고 있네."
이번에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탄탄한 몸매가 돋보이는 거만한 표정의 여인이 앞으로 나왔다.
"3대 파라오. 메네스다."
"대한민국 집행부 임남진입니다."
임남진이 손을 내밀었지만, 메네스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 여자는 어디 가고 자네가 왔나?"
"협회장님은 출장 중이십니다."
"흠, 위기는 위기로군. 그 여자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나라가 아닌가."
외교적 결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태연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마르첼로를 바라보았다.
"뭐어, 살인마는 살인마고. 벌레는 벌레대로 여기서 정리하고 싶은데."
"여전히 뇌가 꽉 막힌 발언이로군요, 풋내기 파라오."
아크 비숍, 마르첼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동 통역기가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참담한 언사를 필터링 없이 들었다간 구역질 이 차오를 것 같거든요."
"죽여달라는 소릴 길게 하는 재주가 있군? 혓바닥 긴 벌레."
고오오오오오오오!
두 사람의 몸에서 마력이 요동치며 대기가 흔들렸다.
양 측의 헌터들이 기다렸다는 듯 적의를 드러내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메네스는 눈을 부릅뜨며 황금으로 세공된 지팡이를 쥐었고, 마르첼로는 서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두 강자가 순간적으로 충돌하기직전.
"멈춰주십시오."
바람같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온 임남진이 제지했다.
"두 분이 여기서 날뛰면 공항 전체가 폐허가 될 겁니다."
"……."
마르첼로는 빙그레 웃으며 마력을 거두었고 메네스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든 듯 짜증스럽게 등을 돌렸다.
"저 쓰레기들과 1초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기도 싫다. 우리는 먼저 이동하겠다."
임남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메네스와 묘지기들이 떠나려고 한다. 다른 장소에서 식사라도 하며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어쩔 수 없다.
"두 국빈께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
메네스와 마르첼로가 동시에 임남진을 돌아보았다.
"저희 한국 집행부와 합동 수사본부를 꾸릴 것을 제의합니다. 산적해 있는 외교적 문제와 묵은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아르민 발터를 잡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게 어떠신지요? 저희가 가진 모든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메네스가 인상을 썼다.
"저 구더기들과 손을 잡으라고? 불쾌한 제안이구나. 무엇보다 아르민 발터를 잡는 건 우리다. 공을 공유할 생각은 없어."
마르첼로가 빙그레 웃었다.
"저도 거절합니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임남진은 표정관리를 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것들이 진짜.'
마음 같아서는 확 뒤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 다 헌터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인물들.
잘못 건드렸다간 전쟁이 날 수도 있다.
결국 마르첼로와 메네스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임남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우, 성과는 원치도 않으니까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 * *
나는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들렸다.
뭐 대단한 용무가 있는 건 아니고, 조기 졸업 처리됐으니 졸업장이나 받아가라고 해서 왔다.
익숙한 복도, 익숙한 냄새.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방문해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여기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것도 퇴학당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버티던 악바리만 남은 열등생.
내가 얻은 기연들에 감사하며, 창문 너머로 슬쩍 옆 강의실을 홅어보았다.
'1학년 마나학 수업이네. 저 때 욕 더럽게 많이 먹었지.'
저 강의실에 앉아서 낑낑대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지금의 내가 1학년인 김유신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음, 갑자기 너무 감성적인가?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갈까.'
나는 메신저를 켜서 한윤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여전히 그 시간, 그 자리에 묶여 노력하는 내 친구.
-뭐하냐? 나 지금 학굔데 잠깐 볼래?
잠시 기다려 봤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뭐, 한참 수업 중인 시각이니 그러려니 했다. 나는 다시 원래 목적이었던 학생회 사무실로 향했다.
"……저, 저, 저, 저기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 여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기, 김유신 선배님 맞으시죠?"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내 정체를 확신하고 있는 여학생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어쩔 수 없이 고개만 까닥했다.
"역시! 꺄아아악!"
그녀는 괴이한 비명을 지르다가 본인 입을 탁 틀어막았다. 주위에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을 민망한 웃음으로 넘긴 그녀는 허겁지겁 가방을 뒤져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넵."
쑥스러워하면서도 알 수 없는 박력이 있는 여학생이었다. 거절하면 한 대 맞을 분위기라 나는 얼른 수첩을 받아서 펼쳤다.
"이름이?"
"꺄아아! 최유람이라고 합니다! 저 진짜 선배님 팬이에요!"
"아하하, 감사…… 아니, 고마워."
"졸업하시자마자 바로 공인 4급이라니, 정말 대단해요! 아, 맞아! 저 김유신 공부법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뭐?
김유신 공부법은 또 뭐야?
내가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이거 아시죠?"
"몬스터 도감이네. 나도 저걸로 공부했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기숙사에서 나온 책들이 지금 재조명받고 있어요!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김유신 공부법'이라고 해서 선배님과 똑같이 공부하는 게 대세라구요!"
으악, 미친!
민망하다. 그저 한없이 민망하다.
그거 그냥 돈 없어서 중고 책들 닥치는 대로 주워와서 읽은 건데!
"선배님은 레전드 졸업생이잖아요! 미궁 던전의 영웅이기도 하고요. 다들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서 따라 하는 거예요. 실제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도 꽤 있고요!"
아니야.
그거 그냥 플라세보 효과야.
나는 이 민망한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사인했다.
"다 했는……."
"아, 거기 이름 밑에 '최유람 올해 졸업 파이팅!'까지 적어주세요!"
사인 문구까지 지정해 주는 그녀였다.
"졸업? 올해 조기 졸업 노리나봐?"
"에헤헤, 그러기엔 너무 늦었고요. 졸업 시험 준비죠."
나는 사인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4학년이야?
"서, 선배는 그쪽인…… 아니, 그쪽이신 것 같은데요."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어머, 어머, 아니에요! 헌터들은 기수제랑 등급제잖아요! 아카데미 먼저 온 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공인 될 즈음에는 까마득히 높은 분일 텐데."
그녀는 내가 사인한 노트를 건네받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고마워요, 선배님!"
결국, 끝까지 나를 선배라고 부른 연상의 여학생은 떠났다.
한숨을 돌린 나는 뒤를 바라보았다.
"……."
"……."
약 10명의 사람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 진짜 김유신이다!"
"팬입니다, 형님!"
"저 선배님 가게에서 포션도 샀어요!"
우르르르르르.
소란을 듣고 반대쪽 강의실에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 들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곤란하다. 내가 뭔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 때문에 가볍게 묻혀버린다. 게다가 더 곤란한건 이중의 절반 이상이 남자라는 사실이다.
"학생회장 선배님! 정말 팬이에요!"
……이것도 걸걸한 남자 목소리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그때, 인파 너머에서 한윤정을 발견했다. 마침 그녀도 여기서 수업을 들으려던 모양이다.
"야! 윤……!"
한윤정도 나를 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저 녀석 갑자기.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