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93화
나는 다시 모두가 있는 4층으로 되돌아왔다.
"서진아! 저번에 여기 통제구역 운영권 사기로 한 거! 그거 어떻게 됐어?"
"지시하신 대로, 알케미아 이름으로 사뒀습니다."
"잘했어!"
이 신성화 필드 마법을 더 만들어서 마탑 주변에 펼쳐준다면, 이제 마탑 주위의 공간까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내 오랜 꿈이던 부동산 재테크까지 가능해진다!
나는 얼른 작전대의 지도 앞으로 복귀했다.
"에아. 그럼 이 '안개 미로'란 건 뭐야?"
"결계의 일종입니다. 해당 범위에 들어온 대상을 안개로 휩싸이게 해서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마법 입니다."
"오오! 이것도 바로 써야겠는데?"
이번에 나는 안개 결계로 마탑 주위를 빈틈없이 감쌌다. 이제 누군가 통제구역에 침입해 마탑으로 접근하려고 해도, 도달하지 못하고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해당 위치로 확정하시겠습니까? 필드 마법<안개 미로>가 소모됩니다.]
"오케이."
[필드 마법<안개 미로>가 적용되었습니다.]
내가 결계를 설치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진보라가 고개를 들었다.
"에아 씨. 이것들 말고 다른 건 더 없어요?"
"물론 더 있습니다."
에아는 허공에 화면을 띄워 앞으로 제작 가능한 필드 마법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정말로 별의별 효과가 다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형에 직접적용되는 설치, 결계, 환상계열 마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지형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버프, 디버프 마법들도 많았다.
"이거 봐요! 선배님! 비를 내리게 하거나 가뭄을 만드는 마법도 있어요!"
"이건 진짜 기상청 같네."
에아가 부연 설명을 했다.
"원래 이런 날씨 마법으로 기상을 관리하는 게 4층의 전통적인 역할이었습니다. 지금은 필드 마법이 극단적으로 발달해 더 많은 게 가능해졌지만요."
"그러면 에아. 이 시설을 사용하면 필드 마법을 세계 어디에서든 적용할 수 있는 거지?"
"예. 그게 바로 이 기상설계국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에아가 웃었다.
"필드 마법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법도 많지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마법도 있습니다. 그런 특징 덕분에 에렌델에서는 이 4층이 마탑외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외교?"
"예. 가뭄이 난 나라에는 비를, 몬스터가 들끓는 도시에는 결계를. 오로지 마탑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대가로 마탑은 많은 것을 받아내 왔죠. 이 필드마법 덕분에 마탑은 대륙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마탑이 에렌델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들의 강함도 그렇지만, 이 4층의 역할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마탑과 적대하는 세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잠잠하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국경을 넘어오고, 얌전하던 국민들이 불만을 토로 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며, 농작물들은 말라 죽고 강은 메말랐습니다. 그래서 마탑은 앉은 자리에서 세계의 어떤 나라도 공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렇구나."
1층은 자금.
2층은 정보.
3층은 군사력.
4층은 외교.
이건 뭐 거를 타선이 없다. 각 층마다 그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하나같이 세계를 뒤흔들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에아 님."
제작 리스트를 살피던 정서진이 말했다.
"이 필드 마법들. 효과가 지나칠 정도로 좋지 않습니까? 설계 난이도가 상당하겠는데요."
"예. 그 말대로입니다."
에아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필드마법의 제작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작전대 위에 지도가 사라지고, 그 대신 설계도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방금 탑주가 사용했던 '신성화' 필드 마법의 설계도입니다."
"……엄청 복잡해 보이네."
필드 마법은 1공정 2공정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설계도면에 들어가는 룬의 수만 20개가 넘는다. 하지만 20공정 마법이라고 보기에는 또 다르다.
"이게 필드 마법의 특징입니다."
에아가 설명했다.
"다수의 룬을 사용해 '마나 설계도'를 먼저 완성하고, 그것을 마법으로 발현시킨다. 복잡한 이론이 들어가지만 대충은 이런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반 마법과는 구조부터가 다릅니다."
나는 설계도에 들어가는 수식들을 살펴보았다.
그냥 간단히 훑어봐도 키로스 공식, 링크 함수, 저항 변이 수식이 들어간다. 최소 2공정 마법사는 되야 설계에 손이라도 대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4층 관리자는 무조건 마법에 능통한 사람으로 뽑아야겠구나."
"긍정. 관리자의 Lv.10 특성을 부여받는다고 해도, 마법적 지식이 없으면 무의미합니다."
"근데 마법사라고 해도… 지금 지구에 마법사는 나밖에 없지 않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마침 진보라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못 본척 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요 녀석 보게.
"보라야. 너 이제 베이스는 깔 줄 알지?"
"네? 그, 그럼요! 절 뭘로 보시고!"
"그럼 한번 보여줄 수 있을까?"
그녀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음. 지금요?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저 오늘 분량 포션 만들러 가야 하는데."
"……필드 그거 까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포션은 내가 도와줄게."
후후후, 도망칠 생각은 말렴. 씨알도 안 먹히니까.
결국 진보라는 마지못한 얼굴로 벽앞에 섰다. 원년 멤버의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 명색이 내 첫 제자 인데 잘 하겠지.
"다 기억한다고요! 자아, 먼저 마법진을 그리 고자 하는 장소에 다가가서! 평평한 도화지를 펼치는 느낌으로 마력을 넓게 퍼트리는……!"
쨍!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베이스가 깨져 버렸다.
그녀가 힐끗 내 눈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실수에요 실수! 벽이라서 잘 안 됐나 보다. 헤헤."
이번엔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바닥에 손가락을 댔다. 어느새 다른 멤버들도 자리를 잡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된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평평한 도화지를 펼치는 느낌으로……!"
그녀의 손바닥에 흘러나온 마나가 마법진 베이스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쨍!
또 깨졌다.
"으으!"
진보라는 이제 오기가 생긴 것 같다. 자세를 바꿔서 무릎을 꿇고 양손을 바닥에 댔다. 그러곤 콧김을 뿜으며 마법을 개시했다.
쨍!
3차 시도 실패.
쨍!
4차 시도 실패.
뒤이어 5차, 6차, 7차 시도도 전부 거듭 실패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결국 그녀가 항복을 선언했다.
"저어기 무릎 꿇고 손들고 있을까요?"
"……하아, 됐어. 1층 관리자가 포션만 잘 만들면 되지."
"헤헤! 역시 선배님밖에 없어요!"
진보라가 얼른 내 팔에 달라붙어 귀여운 척을 했다.
우우웅!
그때였다. 옆에서 정서진이 건틀릿 마법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마법이다!"
지켜보던 은솔이 만세를 불렀다.
정서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탑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조금 연습했을 뿐인데 되더군요."
"으하하. 넌 진짜 못하는 게 뭐냐."
아직 엉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법을 구현해냈다는 게 어딘가.
다들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는 가운데, 진보라만 입술을 삐쭉이고 있었다.
'야. 니가 만들면 내가 뭐가 돼?' 하는 표정이다.
"네가 희망이다 서진아! 4층 관리자 해볼래?"
"할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2층 관리자는 누가 합니까?"
……아 참, 그렇지.
정서진은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결국 4층 관리자를 새로 뽑아야 할 것 같은데.
'현대에서 마법에 능통한 사람을 어떻게 찾지?'
정말 좋은 층이 열렸지만, 관리자를 누굴 시킬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 * *
쏴아아아아!
늦은 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전등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길. 한 헌터가 비에 흠뻑 젖은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그의 앞에는 몬스터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되게 고생시키네. 쓰읍."
들고 다니던 무전기가 전투 중에 박살이 났다.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난리 통에 떨어뜨린 건지 휴대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된 게 아무것도 없냐."
얼마나 외진 곳까지 들어온 걸까.
건물 한 채 없는 황량한 거리에는 길 너머 보이는 논밭과 포크레인 몇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전부였다.
쿠르르릉!
이제는 아주 천둥 번개까지 치고 난리가 난 상황. 날씨는 좀 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춥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너무 비를 많이 맞았다. 한기가 느껴지며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골치 아프네. 어디 차라도 한 대안 지나가나?'
번쩍!
번개가 쳤다.
주위가 일순간 하얗게 일변하는 그찰나에, 뭔가가 헌터의 눈에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그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와악! 놀래라. 언제부터 있었어요?"
사람이었다.
까만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사람은 차박차박 물 밟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비옷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헌터에게 내밀었다.
"엇, 빌려주는 거예요? 와 감사합니다! 살았네!"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헌터는 희희낙락하며 번호를 눌렀다. 그러다 010에서 멈추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 씨, 또 까먹었네.'
매니지먼트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래서 번호 저장 기능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옛날에는 윗집 옆집 짜장면집 번호까지 다 외우고 다녔는데.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쉬던 그는, 뒤늦게 우비 입은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어이구, 바쁘실 텐데 미안해요. 급한 대로 경찰에 전화해 볼게요."
그가 112 번호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다시 번개가 쳤다.
주위가 새하얗게 일변하는 순간에 물웅덩이는 한 장면을 비추었다.
우비에서 뻗어 나온 무언가가, 헌터의 몸을 관통했다.
"어……?"
그의 손에서 떨어진 휴대폰이 툭툭 굴러 가다가 빗물에 빠졌다. 헌터의 동공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처롭게 흔들렸다.
-……입니다. 무엇을…… 드립니까?
통화가 걸렸는지 휴대전화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헌터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어, 으? 으겍?"
목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며 목을 더듬거리던 헌터는 이내 피거품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털썩옆으로 쓰러졌다.
-……여보세요? …… 무슨 일이에요? 여보세요?
콰직!
검은 우비가 휴대폰을 발로 밟아부쉈다.
쏴아아아아아!
지독한 정적 속에서 빗 소리만 가득 울렸다. 쏟아지는 빗물이 검은 우비에 튄 피를 씻어내렸다. 헌터의 부릅떠진 눈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시체를 바라보던 검은 우비는,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홀연히 그 자리에서 떠났다.
* * *
"……연쇄살인마?"
내 물음에 진보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가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대요! 사람만 보면 다짜고짜 칼부터 막 휘두른다는데, 어우! 너무 무섭지 않아요? 지금은 서울 어딘가에 숨어 있대요! 바로 어제만 해도 길가에서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됐는데 목에서 시뻘건 피를 콸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 이야길 꼭 떡볶이 먹는 중에 해야 하니."
냄비에 한껏 끓인 떡볶이를 냠냠집어 먹던 은솔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나를 보았다.
"오빠야! 서울에 연쇄살인마 있어?"
"괜찮아. 괜찮아. 마탑 안에 있으면 안전해."
"솔이도 연쇄살인마 알아!"
그녀의 한마디에, 냄비에 둘러앉은 모두가 뜨억한 표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