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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92화 (92/337)

나 혼자만 마탑주 092화

드디어 본격적으로 ' 프로젝트 오라클'을 가동할 때가 됐다.

한동안 2층 대서재에 틀어박혀 밤을 새워가면서 책을 뒤진 덕분에, 우리는 향후 5년간 일어날 재앙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정서진의 '마나 좌표법'만으로는 모든 재앙을 지구에 적용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위험성과 좌표 신뢰성이 높은 던전들을 위주로 정리 했다.

자료가 나왔으니 이제 움직일 차례다.

이번 프로젝트 오라클의 핵심인 예언 능력자의 주체는 '에아'다.

다시 상기하는 거지만 수년 동안 탑에 틀어박혀서 세상의 온갖 정보를 수집해 온 그녀의 해킹 기술은 경이로운 수준에 도달해 있다.

심지어 통신계 마법까지 활용하는 그녀가 뚫지 못하는 현대의 보안체계는 거의 없다.

우선 메일이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에아가 약간의 실력 발휘를 해줬다.

먼저 99% 이상의 적중률로 곧 일어날 예정인 12개 재앙 리스트를 세계 헌터 연맹과, 재앙을 겪을 각국 헌터협회에 보냈다.

-나는 오라클(Oracle). 예언 능력자다. 지금부터 그대들의 영토에 일어날 재앙에 대해서 예언하겠다.

파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오라클'이라고 밝힌 인물은 비공개된 주요 인사들의 직통 주소와 기관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반반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시했고, 어떤 사람들은 움직였다.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 주, 재앙 '글레시스' 발생. 7개 도시에 빙하지형 던전화 시작. <일치>

-중국 쓰촨성 청두시, 재앙 '블랙아웃' 발생. 대규모 정전 이후 도시상공 균열에서 전기 속성 5랭크 몬스터 다수 출현. <일치>

-네덜란드 로테르담, 재앙 '대범람' 발생. 다수의 홍수피해와 7랭크 몬스터 냉기거룡 및 하위 몬스터 200기 출현. <일치>

12개 재앙 전부 맞아떨어졌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고, 각국에서는 앞다투어 오라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귀하의 예언 능력은 인류의 축복이자 열쇠입니다. 부디 세계 헌터연맹에 오셔서 인류를 위해 힘 써주실 것을 간곡히 간청합니다.

-미합중국 국방부장관 루이스러벳입니다. 우리는 타국이 제시하는 어떤 조건이든 그 세 배를 지급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모든 절차는 철저한 보안이 유지될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통화나 메일도 상관없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영도인께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예언 능력자 오라클의 화려한 데뷔였다. 전 세계가 나서서 이 유례가 없는 예언 능력자를 데려가려고 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탑주."

에아가 물었다. 로비의 황금 소파에 기대어 있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답변은 이렇게 보내자."

에아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적어서 정상들에게 보냈다.

[나 오라클은 내 힘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나는 어떤 조직에도 몸담지 않을 것이며, 인류 전체의 공익을 위해 철저한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내가 알아낸 미래의 일들은 기꺼이 모두에게 공유하겠다.]

오라클 프로젝트는 그 어떤 권력과 힘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침범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이것으로, 마탑이 헌터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또 한 번 커졌다.

"우와아. 저 재수 없는 표정."

지나가던 진보라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나는 갑자기 밀려드는 민망함에 허리를 폈다.

"선배님, 선배님. 방금 뭐예요? 이제 세계는 내 손안에 있다! 하는 그런 표정이었는데."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냉수를 한 모금 마셨다.

"심취해서 폼 잡고 있으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가 줘."

"오호호! 각국 정상들이 이런 중2병 청년 한 명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반응이 어떨까요? 아, 궁금하다!"

"……야."

그때 마침 마법진 엘리베이터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정서진과 은솔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야!"

언제나 그렇듯 은솔은 내려오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다.

"읏차차! 우리 솔이 배가 빵빵하네. 아침은 먹었어?"

"응! 에아 언니가 가져다줬어!"

정서진도 에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내게 다가왔다.

"탑주님. 각국 정상들과는 접촉하셨습니까?"

"응. 방금 답변 보낸 참이야."

"최후의 재앙, 네메시스에 대해서는…."

"그건 아직. 오라클이 좀 더 세계의 신뢰를 쌓은 뒤에 공표할 생각이야. 당장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함부로 풀어버리면 혼란이 가중될 지도 모르고."

"예. 현명하십니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했다.

"앞으로도 오라클은 인류 공익을 위한 알리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야. 괜히 다른 의도가 들어가서 중요한 순간에 오라클의 신뢰가 떨어지면 곤란하니까."

정서진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역시 탑주님이십니다."

에아도 거들었다.

"무지몽매한 지구의 백성들도 탑주의 고매한 뜻을 이해해 줄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아이고.

이렇게 띄워줘도 뭐 안 나오는데.

"지금 나만 이 분위기 적응 안 되는 거 아니죠?"

옆에서 진보라가 손으로 '오글오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님! 내일 포션 물량 독점한 카인 길드에서 연락왔어요! 냉기 저항 포션 한 병당 5백에 해주면 안 되냐고……"

"뭐? 그 새끼들 또 저러네! 안 팔아, 안 팔아! 그놈들 거래 끊고 발주금 2위 부른 길드한테 연락해."

진보라가 무안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인류 공익 어쩌고 하신 분 맞으셔요?"

"공익은 공익이고, 장사는 장사지."

오라클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는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렇게 다들 모인 김에, 다 같이 새로운 층에 가볼까?"

"응!"

은솔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빨리 4층 가보고 싶어!"

안톤과의 시련을 클리어해 드디어 4층이 개방됐다.

이제 정말 딱 반 남았다.

제1층 : 포션조제국 / [포션조제관: 진보라]

제2층 : 대서재 / [서기관 : 정서진]

제3층 : 골렘 공방 / [수석 엔지니어 : 은솔]

제4층 : 기상설계국 / [설계국장 :없음] - 직위를 부여해 주십시오.

제5층 : ???

제6층 : ???

제7층 : ???

제8층 : ???

제9층 : 마탑주의 방 / [마탑주 :김유신]

우리는 다 함께 마법진 엘리베이터위로 올라왔다. 4층 버튼을 누르자 발이 붕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주위환경이 바뀌었다.

"제4층, 기상설계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층 개방으로 지식 잠금이 풀린 에아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와아! 이때가 제일 설레요!"

진보라가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호들갑을 떨었다. 은솔도 열심히 휙휙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에아의 안내에 따라 4층 중앙으로 이동했다.

한 문장으로 묘사하자면, 어디 영화나 서브컬쳐에서나 보던 '지구 사령부 작전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지도가 출력되는 스크린형 작전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벽 곳곳에는 홀로그램 지도들이 붙어 있었다.

그밖에도 작전실을 연상케 하는 지휘봉이나 마법 스크린 보드 등 다양한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여긴 뭘 하는 곳일까?"

"기상설계국이라니까 뭔가 기상청같은 느낌이지 않아요? 날씨를 관측하고, 예보하고 뭐 그런 거요! 에렌델에서도 일기 예보는 필요할 테니까요."

"그럴듯한데."

우리는 여러 상상을 하며 대답을 해줄 에아를 바라보았다.

"초기에는 그런 용도로 쓰인 게 맞습니다."

"지금은 달라?"

"예. 현재의 제4층 기상설계국은 '필드 마법'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탑주."

우리는 작전대 앞에 나란히 섰다.

대중 당구대 네 개를 나란히 붙어넣은 정도의 크기였다.

"이건 에렌델의 지도군요."

정서진이 작전대의 지도를 찬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중앙 대륙뿐만 아니라 동부 대륙과 북부 대륙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긍정. 역시 서기관입니다."

에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서진은 평소처럼 덤덤히 안경을 추켜올리는 리액션을 취했지만, 나는 녀석의 반대쪽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에렌델 양식이라, 이대로는 사용할 수 없겠군요."

에아가 스크린에 손을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환경 변화 감지 완료.

-시스템 설정을 변경합니다.

파아앗!

스크린이 바뀌며, 우리가 흔히 보던 바로 지구의 세계지도가 펼쳐졌다.

나는 에아에게 대강의 작동 방식을 듣고는 한반도를 두 번 빠르게 터치해 보았다. 지도가 확대되며 한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번 터치하니 서울, 세 번 터치하니 상계동에 우리가 살고 있는 마탑의 모습까지 드러났다.

"앗, 솔아! 저기 위에서 본다! 손 흔들어줘야지!"

진보라의 말에, 은솔이 꺄르륵 웃으며 천장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언니야! 나 저기서 보여?"

"응응! 잘 보이네!"

"안녕 안녕!"

둘이 잘 노네.

나는 지도를 살피다가 에아를 보았다.

"그런데 지도는 왜 있는 거야?"

"먼저 '필드 마법'에 대해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에아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필드 마법은 영역에 직접 적용되는 '광범위 마법'의 일종이라고 한다.

영역 단위로 마법적 효과가 발휘되는 것으로 현재 존재하는 마법의 종류 중 가장 범위가 넓은 형태다.

가장 넓은 범위는 '행성 전체'.

가장 오래가는 지속시간은 '영구'.

필드 마법은 그야말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 오른쪽 상단을 보시면 마탑이 현재 보유한 필드 마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 진짜네."

-<스킬라의 손짓>: [정신계] [상태이상 '공포' 부여] [범위-중] [지속시간-170시간]

-<안개 미로>: [결계] [안개 미로 설치] [범위-중] [지속시간-3년]

-<신성화>: [던전계] [던전 영역제거] [범위-중]

[지속시간-5년]

"이것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

"그럼 탑주께서 직접 필드 마법을 설치해 보시겠습니까?"

"그럴까?"

나는 먼저 손가락으로 오른쪽 상단에<신성화>를 선택했다. 손가락을 떼지 않고 드래그하듯 지도로 끌어오자 <신성화>아이콘이 녹색의 필드로 바뀌었다. 10x10의 작은 네모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 이제 원하시는 지점에 배치하시면 됩니다."

"이 신성화의 효과는 구체적으로 뭐야?"

"간단히 말해, 던전화된 영역을 제거해서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입니다. 더 이상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도록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진짜? 그게 가능해?"

"네."

잠깐. 그렇다면…….

나는 진지하게 필드 마법 설치를 고심했다. 마탑에서 시작해 상계동 입구까지. 필드 마법을 일직선으로 펼쳐서 쭉 설치해 보았다.

"이렇게 하면 이제……"

"네. 탑주가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나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확정버튼을 눌렀다.

[해당 위치로 확정하시겠습니까? 필드 마법<신성화>가 소모됩니다.]

"확정한다."

[필드 마법<신성화>가 적용되었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신성화>가 사라진 대신, 마탑과 밖으로 향하는 길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표시되었다.

정말 이걸로 적용된 거라고? 이렇게 쉽게?

"나 잠깐만 밖에 나갔다 올게!"

"어어? 선배님!"

나는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마탑 밖으로 나오니 이계수와 식물로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보인다!'

데바의 눈으로 보면, 인위적인 마나의 층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숲 안으로 들어와 보았다.

-구르륵!

통제구역에 사는 구르마 한 마리와 마주쳤다.

1랭크 몬스터지만 공격성은 높은 녀석인데, 나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계속 숲속에서 걸었다. 구르마뿐만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도 나를 봤지만 경계하듯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먼저 공격해 오지 않았다.

통제구역 제1법칙. 통제구역의 몬스터는 자신의 구역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필드 마법이 확실히 적용되고 있다.

'에아의 말이 맞았어!'

이 구역은 이제 끊임없이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땅이 아니다.

다시 온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건 진짜……'

4층은 대박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돈을 벌고자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명예를 얻고자 하면 그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계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 있다.'

떠오른 수 많은 상상들이 좀 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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