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90화
"김유신 헌터."
나는 창문 하나 없는 심문실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헌터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집행부 요원이 앉아 있었다.
"공인 4급 자격 딴 지 얼마나 됐다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시나."
요원은 사진과 차트들을 내 앞에 툭 던졌다.
힐러연합의 조직원들이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 하는 사진, 오봉규와 싸웠던 건물이 폭삭 주저앉은 사진, 전투의 여파로 도로가 뒤집히고 찌그러진 차들이 서로 얽혀 있는 사진이 보였다.
"상해죄는 물론, 기물파손죄, 교통방해죄, 헌터 특수법 능력 남용죄, 오봉규는 완전히 회생불능으로 만들어 놨더만. 이거 다 어쩔 거예요?"
"협회에서 유례없는 특진까지 줬으면 고맙게 생각하고 조용히 지내야 할 거 아니야. 다짜고짜 사고 치면 우리 입장이 뭐가 됩니까, 예? 언론에서 그쪽 자질 검증 어쩌고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나는 침묵했고 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내 말 무시하지 말고 변명이나 한 번 해봐요."
"아까 말씀드린 게 전분데요."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납치당한 사원 구하러 갔다가 놈들이 덤벼들었고, 그냥 그거 다 때려눕힌 것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때려눕혀! 당신이 경찰이야? 경찰을 부르든가! 아님 헌터가 얽혀 있으니 집행부에 도움을 요청하든가!"
"요원님이라면 도움을 구하겠어요?"
요원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 뭐?"
"다들 힐러연합, 눈감아주고 있었잖아요. 지금까지 놈들이 해온 짓이 얼만데 멀쩡히 잘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제가 뭘 믿고 인질의 목숨을 거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공권력에 도움을 구해요?"
"하, 이거 봐라? 듣자 듣자 하니까 지금 집행부를……!"
철컹!
갑자기 심문실 문이 열리며 코트를 입은 큰 키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본 요원은 기겁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려붙였다. 남자는 경례를 받고는 짤막하게 말했다.
"나가봐."
"예? 지, 지금은 심문 중입니다만…."
"두 번 말 안 한다."
그 말에 요원은 부리나케 심문실을 나서서 공손히 문을 닫았다. 남자는 의자에 털썩 앉아 팔짱을 꼈다.
"또 보는군. 김유신."
"안녕하세요."
집행부의 수장인 공인 2급 임남진이었다.
그는 테이블 놓인 사진과 차트를 바라보더니 옆으로 슥 치웠다.
"생각보다 뒤처리는 깔끔하게 잘 했더군."
"감사합니다."
물론 전부 정서진의 솜씨다. 사건이 일어난 두 곳 모두 인적이 드문 장소라는 것도 주요했다.
"다른 문제는 다 제쳐놓고, 나는 이게 가장 궁금하군."
"뭐가 궁금하신가요?"
임남진이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 대체 협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굳이 말하자면 사제관계인데요. 아카데미 총장과 학생……."
"그런가."
임남진은 골이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그 사람이 자네 풀어주라고 난리도 아닐세. 사무실 찾아와서 책상에 앉아 땡강 부리는데 이쯤 되면 정신병이 걸릴 지경이야."
"……하하."
"뭐, 우리도 이례적으로 공인 4급이 된 자네가 감옥에 들어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네.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해두지. 어차피 힐러연합은 여론이 최악이라 처분해야 할 놈들이었는데 수고도 덜었고."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윗 사람이랑 이야기해야 말이 통한다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뒤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네. 이제 자네는 학생이 아니라 엄연히 공인이야. 모든 행동에 각별히 신경 써주게."
"명심하겠습니다."
임남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번 일은 썩 괜찮았네. 오봉규를 잡아 처넣다니, 내 속이 다 시원하더군."
"감사합니다!"
임남진은 피식 웃으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절차상 자네는 정오까지 여기 있어야 하네. 혹시 공복인가?"
"아, 넵."
"점심이나 같이 한 끼 하지. 나도 오늘 오후 일정이 빡세서 식사를 못할 것 같으니."
그는 손에 들고 온 동네 배달북을 대강 홅어보더니 말했다.
"자네는 짜장면, 짬뽕. 어느 쪽인가?"
* * *
그렇게 임남진과 사이 좋게 짜장면도 한 그릇 먹은 후 심문실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정서진이 차를 세워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탑주님. 집행부 심문은 어땠습니까?"
"응, 별일 없었어. 협회장이 힘 좀 써줬나 봐. 임남진도 저번에 미궁던전에서 마주친 이후로 날 좋게 봐주는 모양이고."
"그거 다행이군요."
정서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정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조수석으로 들어갔다. 정서진도 들어와 운전대를 잡았다.
"보라는?"
"이제 막 깨어났다고 연락 왔습니다."
"병원으로 가자."
정서진이 차를 출발시키며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힐러연합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힐러연합 사태에 대한 던전캠 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렇다. 나는 모든 자료를 언론에 풀었다.
힐러연합 측에서 녹음 파일이 조작됐을 거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한 바로 다음 날, 녹음 파일이 아닌 영상원본이 언론에서 공개됐다.
거기에 더해 오봉규와 힐러 당사자가 이 영상을 본 반응까지 곁들어졌다.
-너 이 새끼! 이걸 어디서 구했……!
-원하는 걸 말해.
-저 때는 제가 유물에 눈이 돌아가서 그만…….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
아주 적나라하게 잘 뽑혔다. 일말의 변명의 여지도 없다.
여론의 반응은 들끓다 못해 대폭발했다. 뉴스의 헤드라인과 포털 검색어 순위, 서사 프로그램의 메인 주제로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쥐죽은 채 살고 있던 힐러연합의 피해자들까지 너도나도 들고 일어나 미투 운동을 펼쳤고, 이를 언론이 앞다투어 조명하는 것으로 연합의 악행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 악행들에 더하여, 나는 최근 포션에 대한 악소문 또한 힐러연합의 작품이라는 소식까지 더 해주었다.
-그럼 포션에 부작용 있다는 거 전부 헛소문이란 거네?
"맞아. 포션이 뜨면 자기들 밥줄끊길까 봐 연합에서 작업 친 거래.
-소름 돋네요, 참.
국민들은 이제 '힐러연합'이라는 말만 나오면 치를 떨 정도가 되었다. 이로써 알케미아는 면죄부를 얻었고, 훼손된 이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자, 그럼 니네들은 어쩔래?'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헌터계 쪽반응을 살펴보았다.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튀어버리는 바람에, 힐러연합에 속하지 않은 상위 힐러들도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들의 SNS 댓글과 방명록에는 연신 해명하라는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오피셜] 공인 2급 힐러 안유리. "힐러연합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하인즈 매니지먼트의 힐러 들은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소속 헌터들의 명예와 인격을 훼손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공인 3급 힐러 최일후. 오봉규의 SNS 팔로우 빛의 속도로 해제.
-최은원 힐러의 SNS 계정이 해킹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최은원 본인이 본 사태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점을 확인…….
포스팅을 보다 보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래. 다치기 싫으면 얼른 손절하셔야지.
-성인(聖人) 하수아. "힐러연합은 힐러들을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다. 새로운 체계 만들 것."
힐러연합의 완전 붕괴로, 기존의 힐러들도 어떻게든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탑주님. 도착했습니다."
정신없이 근황을 살피다 보니 진보라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유쾌하던 기분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보라 병실은 몇 층이야?"
"7층 703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도착하자,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간호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조용히 703호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창가 앞으로, 하얀 입원복을 입은 진보라가 은솔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수맥을 꽂고, 몸 곳곳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은솔이 옆에서 '오빠야! 안녕!' 하고 인사를 하자 그제야 나도 한발 늦게 인사했다.
나는 병문안 선물로 가져온 과일바구니를 선반에 올려 두고는, 그녀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은솔 양. 1층에 매점 있던데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살법?"
"먹고 싶살법!"
정서진은 듣도 보도 못한 요즘 애들 유행어를 선보이며 은솔을 데리고 나갔다. 옆자리의 아줌마도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병실에는 이제 우리 둘뿐이다.
"아, 선배님! 이거 봐요!"
진보라가 활짝 웃으며 색종이로 접은 학을 보여주었다.
"종이학이에요!"
"종이학이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당연한 거라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솔이가 색종이랑 종이접기 책을 가져왔거든요! 그런데 솔이보다 제가 더 푹 빠져 버린 거 있죠."
"하하."
"저, 사실 손재주가 없어서 학교다닐 땐 비행기 접는 게 최선이었어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처음엔 책에 나온 대로 잘 접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막 어려워져요. 뒤집어 펼치고, 접는 선을 따로 만들고, 공감각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나도 강아지 얼굴 접는 게 최선이었어."
내 반응에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그쵸 그쵸? 막 종이학 1, 000개 접어서 빈 통에 넣어놓고 다니는 애들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더라고요. 그런데 나이 먹고 해보니까 또 다른 느낌인 거 있죠?"
그녀가 다시 한번 종이학을 들어서 허공에 날렸다.
"짠! 저도 이제 인생 첫 종이학을 완성했어요! 이거 은근 보람차다고요! 나도 이제 어른이구나! 성장했구나! 뭐 그런 느낌도 들고."
진보라와 있으면 사운드가 빌 틈이 없다. 시답지 않은 종이접기 하나로도 몇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잡담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보라야."
"네에?"
"미안하다. 내 방심 때문에 무서운 일에 휘말리게 해서."
나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종이학을 가지고 노는 시늉을 하던 그녀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 네가 마탑의 관리자로 있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못 해."
힐러연합은 시작이다. 앞으로의 내 계획은 하나같이 헌터계 전체를 뒤흔드는 것뿐이다.
더 많은 사건에 휘말리고 더 많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적도 생길것이고, 언젠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인 유닉스와의 승부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헌터연합 자체가 적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네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아. 다시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으로 지낼 수 있을 거야. 금제는 내가 어떻게든……"
"선배님."
평소처럼 달달하고 애교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는 나를 불렀다.
병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한 그녀는, 평소와 같은 한 줌의 가식도 없이, 분명히 나에게 고 했다.
"제 일상은 여기 있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 마탑에서의 생활이 행복해요. 사람들도 너무 좋고, 포션 만드는 것도 재미있고, 우리가 세계를 바꾸는 일도 가치 있게 느껴져요. 제가 선택했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물론 이번엔 조금 무서운 일이 있었지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만개하는 꽃처럼, 그녀의 얼굴에는 근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결국 선배님이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구해주실거고요. 그럼 뭐가 문제에요?"
어깨를 으쓱하며 반문하는 그녀의 말에, 무릎 위에 올린 주먹에 저절로 힘이 풀렸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오히려 부탁하고 싶은 건 이쪽이에요."
감정이 복받쳤는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 그녀가 내 몸을 끌어안았다.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보라야."
"외로운 건 이제 지긋지긋해요."
셔츠 한쪽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약속할게."
"……그리고 죄송해요. 저 금기를 어겼어요."
"그건 좋은 전략적 선택이었어."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내가 오해했던 것들.
그녀가 오해했던 것들.
나는 섣부른 오판이었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마냥 어리광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이 깊었다.
내가 뭐라고.
다른 이유도 아니고 위험하니까 그만두란 소리는 그녀를 모욕하는 말에 불과했다.
"아."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슥 물러났다. 뒤를 돌아보니 정서진과 은솔이 도착해 있었다.
"어? 언니야 울었어?"
"으으응. 안 울었어."
"눈가가 빨개."
"아프면 원래 이래."
정서진은 끌끌 웃으며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를 들어 올렸다.
"아이스크림 사 왔습니다. 같이 드시죠."
"좋지."
우리는 앞다투어 비닐봉지로 뛰어들었다.
"어우, 서진 씨 센스 없어! 이런 건 좀 골고루 사 왔어야죠!"
"나는 아까 딸기맛! 딸기맛!"
"팥앙금 든 거는 없냐?"
"오호호! 선배님 입맛 되게 어른스러우시네요!"
"너 방금 나 무시한 거지?"
"거기 환자분이랑 보호자분들! 병원에서는 정숙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