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87화
아지트에 있는 모든 인원이 유신에게 달려든다.
가면허, 공인 5급, 공인 4급까지.
실력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회복계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다.
힐러가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마나를 몸에 둘러 육탄전을 벌이는 정도야 가능하다.
회복 능력까지 갖춰서 한 방에 잡지 못하면 금방 다시 일어나 버리고. 헌팅 디바이스까지 보유했다면 더더욱 만만치 않다.
"뒈져!"
후우우우웅!
유신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덩치의 주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이 두꺼워서 그런지 더럽게 느렸다.
슬로우모션 처럼 다가오는 남자의 손목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다리를 걷어찼다.
"우왁!"
덩치의 몸이 형편없이 옆으로 내팽개 쳐진다.
'일단은 예열하자.'
연결 동작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한 유신의 몸이 측면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안면을 돌려찼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남자가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지고, 유신은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덩치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뭣……!"
꽈직.
그대로 무릎을 찍어 올리자 덩치의 눈이 회까닥 돌아간다. 놈의 머리채를 놓으며, 바로 옆에서 휘둘러지는 남자의 주먹을 왼손으로 붙잡는다.
그대로 끌어당겨 오른쪽 팔꿈치로 찍었다.
우드득!
"끄아아아악!"
기형적으로 꺾여 덜렁거리는 팔을 부여잡는 조직원을 짓밟아 쓰러뜨리고, 몸을 돌려 뒤에서 달려드는 상대와 맞섰다.
"이 새끼가아아!"
후웅! 후웅!
마력이 실린 주먹이 매섭게 휘둘러 졌지만 유신은 한 손만을 움직여 가볍게 툭툭 쳐냈다. 흥분한 남자가 한꺼번에 마력을 집중시켜 주먹을 내뻗으려는 순간.
빠아아악!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그의 고개가 젖혀지며 피가 튀었다. 어느새 다리를 뻗고 있던 유신이 발을 내리며 바짝 거리를 좁혔다.
으적!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남자의 얼굴이 흐물거리며 저 멀리 날아갔다.
-탑주! 오른쪽입니다!
후웅!
오른쪽에서 휘둘러지는 회칼을 피한 유신이 상대의 거리로 들어가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눈에 찔러 넣었다.
"끄아아악!"
-등 뒤입니다!
고개를 꺾어 주먹을 피한 유신이 건틀릿을 두른 오른손을 놈의 허리에 살짝 가져다 댔다. 그리고 뒤에 보이는 기둥과의 거리를 재고는 마법을 수동 발동했다.
<건틀릿>
터어엉!
터져 나온 건틀릿의 화력이 조직원의 몸뚱이를 밀어내 기둥에 부딪히게 했다. 충격으로 튕겨져 나와 다시 유신의 오른손에 닿는 그사이에, 유신의 손은 다시 푸른 마력이 휩싸여 있었다.
안톤의 조언을 받아들여 손을 넣어 덧씌우는 게 아닌, 위에서 즉각 착용하는 형태의 리메이크 건틀릿이다.
"자, 잠깐……!"
터어어어엉!
조직원의 몸이 꺾인 채 날아가 기둥에 부딪힌다. 이 모든 게 단 수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을 잃은 녀석의 몸뚱이를 이번에는 슬쩍 피하며 에아가 바닥에 만들어 놓은 리프부츠 마법진을 밟았다.
부우웅!
날아가는 유신의 몸은 사방에서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밀집 진형에서 벗어났다. 그대로 공중에서 회전하며 제 자리에서 있는 남자에게 날아차기를 가했다.
"커흡!"
남자의 얼굴을 두 발로 밟으며 착지한 유신이 모두를 향해 손을 치켜 들었다.
"덤벼. 너넨 오늘 사지 멀쩡히 걸어 나갈 생각 마라."
"저 날파리가……!"
"비켜!"
전면에 한 힐러가 검 형태의 헌팅 디바이스를 들고 뛰어왔다.
<쉴드>
유신은 상대가 무기를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내려오는 팔꿈치에 쉴드를 펼쳤다. 휘두르는 동작이 중간에 턱 막히며 검을 놓치는 사이, 안면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탑주! 뒤에서 옵니다!
유신은 쉴드부터 펼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헌팅 디바이스가 불똥을 튀기며 튕겨 나갔다.
"개새끼!"
조직원이 측면으로 기동했지만 그가 움직이는 방향마다 쉴드가 텅 텅 펼쳐졌다. 조직원이 이를 악물고 더 빠르게 내달렸지만.
"병신."
유신은 그냥 중간의 쉴드를 거두고 조직원의 흉부를 깠다. 그가 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대충 예열은 됐다.'
이번엔 유신 쪽에서 먼저, 우글거리는 적진 한복판으로 몸을 날렸다.
'데바의 눈'에 의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무기와 주먹이 느리게 보인다.
날아차기에 한 명. 스트레이트에 한 명. 좌우로 쉴드를 펼쳐 둘러싸이는 것을 차단하고, 전면의 적의 품속으로 바짝 붙어 턱을 쳐올리고 팔다리를 분질렀다.
데바의 눈.
예측 회피 특성.
그리고 압도적인 마나 컨트롤까지.
마법사의 체술은 결코 약하지 않다. 마나량이 힘이고 질량이 되는 이 세계에 극단적인 마나가 실린 유신의 몸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실전과 근접전투를 도외시하고, 뒤에서 타고난 힘인 회복계만 쓰던 자들이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퍽! 우득! 빡! 꽈득!
유신의 팔과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조직원들은 피를 토하고 뼈가 부러지며 나가떨어진다.
'……선배님!'
진보라는 가슴 졸이며 유신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오 씨! 다들 뭐 영화 찍냐!"
"각개격파 당하지 말고 뭉쳐서 한꺼번에 덤벼!"
조직원들이 우르르 한 쪽에 몰려들자 유신은 피식 웃으며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뭉쳐주면 나야 좋지."
<카피 매지컬 포지션>
<파이어 캐논>×20
화아아아아아아악!
허공에서 무수한 화염구들이 피어올라 발사됐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매캐한 연기가 건물을 뒤덮는다.
"우아악!"
"화, 화염술사다! 피해!"
유신은 연기 속 조직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재차 아이스 자벨린을 꺼내 조준했다.
'예전과는 다르다.'
파이어 캐논이든, 아이스 자벨린이든, 지금까지 유신이 사용한 모든 마법이 안톤의 어드바이스를 받아 개선됐다.
마법 하나하나가 리메이크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좋아졌다.
안톤은 스승을 자처했지만, 결코 유신에게 새로운 마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유신이 이미 보유한 마법, 유신이 이미 가진 스타일에 대해 조언했을 뿐이다. 가끔 유신이 안톤의 마법을 카피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는 정말로 벼락같이 화를 냈다.
'타인의 마법을 베끼며 살면 평생 이류가 될 뿐이야!'
'그딴 쓰레기 같은 마인드가 남아 있다면 당장 버려! 남이 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품은 것들을 극한으로 단련해!'
안톤은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유신을 가르쳤다.
<아이스 자벨린>
서리의 창이 연기 속에 몸을 숨긴 채 어뢰처럼 쏘아져 나가 도망치는 조직원들의 팔과 허벅지, 등과 복부등에 사정없이 꽂혔다.
그리고 상처 부위와 창이 함께 얼어붙으며 신체 일부를 완전히 마비시킨다.
힐러들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며 회복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저 얼음을 녹이고 상처에서 떼어내기 전까지는 회복 마법은 못 쓴다.
"안 되겠다! 여자를 잡아!"
"인질부터 확보해라!"
몇몇 조직원들이 진보라를 찾아 뛰어간다. 유신은 데바의 눈으로 진보라의 방향을 포착하고 팔을 뻗었다.
푸슉! 푸슉!
소매에서 은솔의 신상 골렘볼이 발사됐다. 골렘볼들이 진보라 주위의 콘크리트 벽에 착 달라붙더니, 기둥과 벽의 콘크리트를 자재 삼아 골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 몬스터?"
쩌억
콘크리트 골렘이 휘두르는 주먹에 진보라에게 달려오던 조직원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진다.
'에아. 골렘을 컨트롤해서 보라를 데리고 빠져나가.'
-탑주의 명을 따릅니다.
콘크리트 골렘이 진보라를 의자째로 들어 올려 출구로 뛰었다. 유신은 여전히 연기 속에 몸을 숨긴 채 움직이며 그녀를 쫓으려는 조직원들을 요격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무 명이 넘는 모든 힐러연합의 조직원들이 의식을 잃었거나 바닥을 뒹굴며 고통에 겨워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유신은 고개를 돌렸다.
조무래기들을 보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연합 회장 오봉규는 부지런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주사기들을 꺼내 스스로의 몸에 주사하고 있었다.
"김유신. 천운으로 공인 4급 자격을 따낸 풋내기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는데."
또 하나의 주사기를 능숙하게 목아래에 틀어박은 그가 옅게 미소지었다.
"오히려 과소평가 됐군."
유신도 어깨를 문지르며 그에게 다가갔다.
"할 짓이 없어서 내 사람을 건드려? 뒈질 준비는 됐지?"
"푸흐흐. 미안하지만 아직 죽을 생각은 없네."
푸식! 목에 박힌 주삿바늘이 튀어나왔다. 오봉규는 약에 취한 것처럼 한 차례 숨을 들이마셨다.
"자네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힐러에 대한 세간의 평은 적절하지. 회복계 고유 능력이라는 천운을 만나, 개인 전투 능력 없이 파티에 묻혀 실적을 쌓고 등급을 부여받은 자들. 아무리 내가 연합회장이라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우드득! 우득!
그가 입고 있던 셔츠가 찢어지며 비현실적으로 발달한 우락부락한 근육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일세."
호리호리한 체형의 오봉규가 어느새 쩍 벌어진 괴물 같은 상체가 되어 있었다.
"공인 3급들이 출입하는 7랭크 던전은, 힐러도 자기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다면 초 단위로 목이 떨어지는 곳이네. 여기서부터는 인간이길 포기한 수라의 영역이지."
"…… 몬스터의 성분이 들어간 약물인가?"
"정확하네. 급속 증강제 같은 거지. 사용하면 평소의 수 배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네만, 세포 변이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네. 하나……."
후우우웅!
눈 깜짝할 사이에 오봉규의 뒤를 점한 유신이 번개 같은 속도로 발을 차올렸다.
터억!
"……!"
오봉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신의 발목을 잡아챘다.
"나는 조금 다르네."
오봉규가 그대로 반대쪽 주먹을 내질렀고 유신은 에아와 함께 전면에 쉴드를 펼쳤다.
꽈아아아앙!
주먹에 부딪힌 유신의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가 얇은 기둥을 깨부수고도 계속 날아갔다.
맹렬한 굉음이 폐건물에서 메아리쳤다. 허공에서는 쉴드의 파편들이 유리 조각처럼 날아다녔다.
"쿨럭! 큭!"
뿌옇게 올라온 먼지 속에서 유신이 피를 뱉었다.
'……이게 그냥 펀치냐.'
유신이 봐도 오봉규의 몸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끌어올린 전력은 아니겠지만, 그의 능력은 회복계열 중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편에 속하는 '급속 성장'이다. 저 주사를 맞고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으니까 쓴 것이리라.
'힐러 가 지원계 포지션이라지만, 공인 3급쯤 되면 비장의 한 수는 있단 거군.'
괴물이 자세를 낮추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유신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오른팔을 뻗었다.
주먹에 맞는 순간에도, 날아가는 순간에도, 쓰러져 있는 순간에도, 머릿속의 수식은 계속해서 흐른다.
<파이어 캐논>
그의 주위로 펼쳐진 마법진에서 화염구들이 일직선으로 발사된다.
오봉규는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그저 돌진. 파이어 캐논이 그의 몸뚱이에 적중해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지만 화력에 의해 잠시 주춤거리기만 할 뿐 다시 달려 들었다.
<아이스 자벨린>
자욱한 연기 사이로, 힐러에게 확실한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얼음창이 발사됐다.
가슴과 허벅지 등에 연이어 적중해 얼어붙지만, 오봉규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 박힌 얼음창도 살점이 안에서 재생되며 밀려났다.
회복 계열의 고유 능력이라기보다는 몬스터의 초재생에 가까운 힘.
오봉규가 화염과 얼음을 육탄전차처럼 몸으로 뚫고 들어왔다. 유신의 전면에 어스 클레이모어가 일어나 방어벽을 형성했지만.
꽝!
주먹 한 방에 박살이 났다. 그러고는 여전히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유신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퍼억!
유신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그 잔해가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흐음……'
머리 없는 유신의 몸뚱이가 액체처럼 출렁이더니 물로 변하여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바로 뒤에서 연기를 뚫고 날아온 유신의 발이 오봉규의 뺨에 닿는다.
<데바스타>
투콰아아아아악!
검은 파장이 터져 나오며, 오봉규의 거체가 콘크리트 기둥을 몇 개나 박살 내며 날아간다.
"다르긴 뭐가 달라."
공중에서 완벽한 발차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유신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