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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86화 (86/337)

나 혼자만 마탑주 086화

"일단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보이라고 해."

그들이 보는 CCTV 화면에서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화면 속의 연합 남자들이 뭐라고 하자, 안으로 들어온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안돼.'

그녀는 좌절감에 몸서리쳤다. 두 사람 다 정말로 유신과 정서진이었다.

오봉규는 무전기를 내리고 진보라쪽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직접 행차할 줄은 몰랐군. 김 대표가 자네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야."

그때 얼굴을 드러내 보인 유신이 다시 마스크를 쓰고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직거리며 무전기에서 조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 인질이 무사한지 확인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흠."

오봉규가 진보라 쪽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입 막아."

중년 남자가 다가와 다시 헝겊으로 진보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가 울먹이며 발버둥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보여 줘."

천장 위의 CCTV가 지잉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그와 동시에 유신쪽에서도 화면이 켜졌다.

"우웁! 웁!"

두 사람은 의자에 묶여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듯 움찔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두 사람 다 흥분해서 격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화면 꺼."

이내 저쪽 스크린에서 진보라의 모습이 사라졌다. 두 남자가 마구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중년 남자가 다시 다가와 그녀의 입을 막은 헝겊을 살짝 풀고는 작게 물었다.

"어때? 보라 씨.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린 감상은?"

진보라는 그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협상 내용을 전달하며 시간을 끌어라. A팀부터 D팀까지는 창고로 이동."

-카피.

"내 신호에 맞춰서 들어간다. 조금의 여지도 주지 말고 제압하도록. 저항이 심하면 사살해도 좋다."

유신의 마력 탐지 반경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물러나 있던 힐러연합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3층에서, 지하에서, 그리고 건물 외부에서 힐러연합의 헌터들이 완벽하게 창고를 포위한 채 다가온다.

'안돼! 함정이야. 제발 도망쳐요!'

진보라는 눈을 꾹 감았다.

알려야 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저곳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서 도망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고민하는 그 순간, 진보라의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

무서워서 다리가 달달 떨렸지만, 그녀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자살 행위라는 건 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녀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발 그만해! 알았어요. 내가 졌어요!"

갑자기 진보라가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전부 다 말할게요."

"……뭐?"

"알케미아와 김유신 선배님. 그리고 우리의 모든 비밀에 대해서요."

갑자기 몸의 마나가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팔뚝에 새겨진 마탑의 문양이 푸른 빛을 발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녀는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우리 아지트에는 호문쿨루스가 있어요. 이름은 에아. 그녀가 모든 기능을 조율해요."

체내의 마나가 위태롭게 들끓기 시작한다. 처음 유신이 그녀의 팔에 문양을 새겼을 때와 같은 이질적인 감각이다.

"아지트는 각 층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포션 능력자와 포션의 개발 방법이 궁금하다고 했죠? 그건 1층에 있어요! 1층의 솥을 이용해 포션을 만들어요!"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야?"

마나가 평소의 역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의 반대급부로 더 강하게 소리쳤다.

"포션뿐이겠어? 2층은 대서재! 3층은 골렘 공방!"

쿨럭!

마침내 그녀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온몸의 장기가 삶아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마나가 역류하며 몸이 망가져 갔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

그녀는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스테스처럼 마탑의 정보들을 내뱉었다.

"왜, 왜 저래? 갑자기 정신이 나갔나?"

"피까지 토하잖아! 인질이 죽으면 문제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그때, 오봉규의 신형이 바람처럼 쏘아져 나가 그녀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재밌군."

오봉규가 웃었다.

"헌터는 이형(異形)과 싸우는 직업이라네. 그래서 딱딱한 현실감각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감이 좋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지."

"우웁! 웁!"

오봉규가 그녀의 턱을 잡고 손에 힘을 주었다. 진보라의 뺨이 입술이 우악스럽게 붙잡힌 채로 뒤로 젖혀졌다.

"그래. 상상력.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내 가정을 들려주겠네. 어떤 키워드를 말하거나 조직의 비밀을 발설하면 죽는다. 뭐 그런 이능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

"그쪽도 참 무서운 조직이군 그래. 하지만 아가씨가 벌써 죽으면 곤란해. 사실 김유신도 손에 들어온 이상 인질의 유무는 아무래도 좋지만……."

오봉규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히죽 웃었다.

"죽더라도 내게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죽어야지? 응? 응?"

"……우읍!"

"함부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쓰나. 그러면 안돼."

오봉규가 손짓하자 연합 직원이 그의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다가왔다.

"잠시 잠들어 있게. 잠시 후 눈을 뜨면 모든 게 끝나고 본적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을 거야."

"우우웁! 우읍!"

섬뜩한 주삿바늘이 그녀의 목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절망했다. 이렇게 붙잡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이 너무나도 분하고 원망스러웠다.

"잘 자게."

진보라가 한없이 절망에 빠져 있는 그 순간.

맹렬한 폭음과 함께 한쪽 콘크리트벽이 터져나갔다.

"우왁!"

"크훕!"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밀어닥쳤다.

주삿바늘을 든 남자는 뒤로 날아갔고 오봉규도 밀려나 바닥을 짚고 버텼다. 진보라는 의자 채로 날아가 가까운 벽에 붙었다.

"포, 폭발?"

"갑자기 뭐야!"

고오오오오오!

한바탕 후폭풍이 몰아닥치고, 박살이 난 건물 외벽에서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후드가 달린 검정 자켓에 양손을 집어넣은 이 남자의 오른쪽 눈은,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며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

진보라는 그저 한없이 눈물을 흘릴뿐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막혀 그럴 수 없었다.

"이건 의외로군."

오봉규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렇담 저건 뭐지?"

화면에 보이던 유신의 몸이 갑자기 물로 변해 주르륵 쏟아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건 유신이 아닌, 가람 매니지먼트의 공인 헌터였다. 사실을 알아챈 오봉규가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드디어 찾았다. 쥐 새끼들."

유신이 악귀처럼 입을 찢었다.

* * *

유신은 가람 매니지먼트의 대표 신나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김유신 헌터님이 위기라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신나라는 가람 매니지먼트의 에이스인 공인 3급 헌터를 지원해 주었다. 20대 후반의 유하영이라는 이름의 헌터였는데, 유신의 사정과 상대가 힐러연합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흔쾌히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놈들의 요구는 김 헌터님과 포션 능력자잖아요. 어쩔 생각이죠? 제가 직접 가면 놈들을 자극하는 꼴이 될 텐데.'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유신이 이번에 안톤에게 보상으로 얻어낸 마법은 '물의 장막'이다. 간단히 말해 물의 마법에 형상을 덧씌우는 환영계 마법의 일종이다.

'환영계'는 유신은 아직 보유하지 못한 계통의 마법이었다. 이전에 몇번 배우려고 시도했지만 환영계는 상당히 세심한 구축작업과 시간을 필요로 했고 거듭 실패를 맛보았다.

그동안 내키는 대로 쾅쾅 마법을 쏴대온 유신은 체질상 맞지 않았다.

일단 유신 본인이 환영계에 적성이 없어서 죽어도 못 쓰는 마법이라는 점, 게다가 숙련도를 쌓는 난이도가 지옥이라는 점.

무엇보다 약점이 많은 빛 속성 환영이 아닌, 안톤만이 가진 오리지널 수속성 환영계라는 희소성까지.

유신은 이번 안톤과의 전투에서 눈속임과 더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에 냉큼 물의 장막을 선택했다.

그렇게 유신은 유하영의 몸에 물의 장막을 씌우고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목소리는 유하영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통신 장비를 사용해 유신이 직접 상황을 보며 말하기로 했다.

에어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전무의 목소리는 입으로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물의 장막이든 통신 장비든 단순 눈속임인 만큼 들키는 건 시간문제.

하지만 유신에겐 딱 시간을 버는 정도면 충분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두 사람을 현장으로 보내고, 유신은 정서진이 발견한 단서를 쫓아 이동했다. 정서진의 인맥으로 CCTV를 확인해 진보라를 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을 찾아낸 것이다.

하치만 발견한 차량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유신은 그 근방을 필사적으로 조사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탑주! 포션 조제관이 금제를 어겼습니다! 그녀의 위치 좌표를 확보했습니다!'

진보라가 승부수를 띄웠다.

금제를 어기면 마나 역류와 함께 대상의 위치 좌표가 마탑으로 전송된다. 진보라는 일부러 금제를 어겨서 자신의 위치를 알린 것이다.

유신은 바로 에아가 알려준 좌표로 이동했다. 위치는 힐러연합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개발 제한 구역의 폐건물. 유신은 망설임 없이 벽을 부수고 돌입해 그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선배님!"

수 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진보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유신은 살의를 거두고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괜찮아?"

그녀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신이 보기엔 그리 괜찮지 않아 보였다.

마나 역류로 속은 뒤집혔을 테고 피도 많이 흘린 것 같았다.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정리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

"결국 왔군, 김유신."

오봉규가 말했다.

"전부 내 실수야."

유신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번들거리는 눈빛에 몇몇 조직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했는데, 괜히 여지를 줬다가 이 꼴이야."

"음, 동의하네. 진흙탕 싸움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네는 바로 자료를 들고 경찰에 들어갔어야 했네."

오봉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젊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하지. 하나 젊음과 실수는 동의어야. 더 많이 실수하게. 그리고 배우게. 모든 것이 삶의 중요한 자산이 될 걸세."

"유언 다 끝났냐? 사람 빡돌게 하지 말고 빨리 덤벼라."

오봉규가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애들아. 뭘 멀뚱히 있냐."

그가 손짓 했다.

"쳐라."

그 한마디에, 아지트에 있는 모든 인원이 유신에게 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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