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84화
[메샤라. 메샤라. 메샤라. 메샤라.]
애써 환청을 무시한 나는 현인의 눈으로 안톤의 마법진을 살폈다. 강제 폭주로 과부하를 일으키는 마법진이지만 여전히 이상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내가 먼저 물의 격류에 휘말릴 것이다.
뭔가 방법이 없나?
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폭주가 아니야.'
발상을 전환해 보았다.
저 마법진은 폭주라기보다는 지속시간이 긴 버프 마법 같다. 적어도 안톤에게는 그렇다.
그냥 이쪽에서 부숴버리는 게 어떨까?
마법 시전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마법진이니, 저걸 부수면 꽤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버티기만 하는 거로는 답이 없다.'
나는 데바스타를 장전하고 발동했다. 한 번의 공간 도약으로 수 개의 물의 마법을 피해 안톤과 조금 떨어진 거리까지 왔다.
안톤과의 거리 10m.
[메샤라. 메샤라.]
내가 접근한 걸 본 안톤은 물의 장막을 더 강화했지만, 내 목표는 그가 아니다.
양손에 3공정 '마나 드레인'을 발동했다. 오른발에 장전되어 있는 데바스타로 앞으로 나아가 마법진을 통과하면서 마나 드레인으로 수식를 빨아들여 마법진을 망가뜨릴 생각이었다.
데바스타를 발동하기 직전, 나는 목표물인 폭주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
[메샤라.]
순간적으로 의식이 몽롱해지며,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이건 또 뭐야?'
세상이 멈췄다.
몽롱한 의식의 바다 위에서 유영하고 있는 내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그 하얗고 긴 머리의 존재는 내게로 다가와 슬며시 손을 뻗었다.
[메샤라. 메샤라.]
이 사람이 말하는 거였나.
잘 모르겠지만, 나 또한 분위기에 이끌려 그 손을 맞잡았다.
눈 부신 빛이 흘러나오며 내 시야가 다시 새하얗게 갈라졌다.
-탑주!
어느새 내 몸은 안톤의 마법에 얻어맞아 격추되고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며 격통이 인다.
물에 빠지기 전에 나는 두 다리를 벽에 대고 마찰을 일으키면서, 뻗어 벽에 움푹 나온 곳을 붙잡아 멈춰섰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상대를 코앞에 두고 멍하니 있으시고. 아…!
에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왜 그래? 에아.'
-탑주. 누, 눈이…….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슥슥 쓸어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색 그을음 같은 것들이 묻어 있었다.
오른쪽 현인의 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을음은 계속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통증은 없는데.'
나는 발밑에 쉴드를 펼쳐 딛고는 눈을 닦았다. 눈병 걸린 날 일어난 아침의 눈곱처럼, 푸른 그을음들이 덕지덕지 손에 잡혔다. 나는 신경질 적으로 그것들을 떼어냈다. 그러자 물풀처럼 주욱 주욱 늘어났다.
몇 번이고 그것을 걷어내자.
'……와.'
시야가 확 트인 느낌이 든다.
[고유 능력 현인의 눈이 다음 단계로 성장했습니다. 현인의 눈 → 데바의 눈.]
어느새 안톤도 공격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악독하게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마치 나를 기다려주는 것처럼.
이게 원래 그가 계획한 상황인가?
나는 오른 눈을 붙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
저 멀리 펼쳐져 있는 마법진의 구조가 손에 닿을 듯 선명했다.
십수 년 동안 낡은 아날로그 휴대폰 카메라로 세상을 보다가, 풀 프레임 6, 000만 화소 특수 카메라로 세상을 보게 된 듯한 감각.
마법진의 형태는 물론, 보안 체계를 뚫고 그 안의 세부 수식까지 완전히 읽어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 미궁 던전에서 던전을 장악했을 때와 비슷하다.
'이번에도 제어할 수 있어.'
초점을 잡았다. 안톤의 폭주 마법진 너머로 보이는 수식의 일점에 초점을 잡고 눈에 힘을 주며 집중했다.
신기했다. 계속 초점을 유지하며 집중력 끌어올리자 수식의 일부가 방울처럼 뚝 떨어져나와 또르르 흘러나갔다. 그것은 옆의 다른 수식에 달라붙어 변화를 주었다.
마법진은 하나의 생태계. 사소한 변화도 극단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신경 활성화 수식과 마나의 흐름을 역으로 바꿔놓았다.
이 모든 게 연산 기호만 뒤집어놓으면 끝나는 문제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멍하니 있을 거야? 다시 간다!"
안톤 주위의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다시 한번 물의 마법이 쏟아져 내린다.
-탑주. 보이십니까?
'…그래.'
이제 나는 마법진을 훔쳐보고 궤적과 움직임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즉각 오른발의 데바스타를 발동해 반대쪽 벽으로 바짝 붙었고.
쿠콰콰콰콰콰콰!
그 사이로 물의 마법들이 흩뿌려지며 사방에서 물보라와 파도가 발생한다. 상대 마법진의 수식을 읽고 사출 방향을 예측해 회피한다.
"아아아아아아악!"
위에서도 반응이 왔다.
마법을 마구잡이로 쏟아붓고 있던 안톤이 고통스럽게 몸을 뒤튼다. 그가 마법을 난사할 때마다 그의 마나가 엉키며 뒤틀린다.
'이대로!'
나는 안톤의 다른 네 개의 보조마법진까지 제어를 시도했다.
아마도 그의 유일한 약점.
호문쿨루스가 없기에 다수의 보조마법진을 활용한다. 외부시스템이 연산을 대리해 주는 셈이다.
그러나 이 외부시스템은 밖으로 내놓아야만 한다. 대 마법사 전에서는 보안이 취약해져서 해킹의 우려가 있다.
이제야 알았다.
3 페이스에서 안톤의 의도는, 내가 다음 단계의 현인의 눈을 개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명확하게, 대놓고 약점을 떡 하니 보여주고, 이것들을 조작하도록 유도했다.
'단순 힘 싸움으론 날 못 이겨.'
'대놓고 힌트를 알려 줄게. 이거 보이지? 이걸 활용해서 공략해 봐.'
안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머릿속에서 여러 퍼즐들이 맞춰진다.
고개를 드니 안톤은 마나 역류로 자멸하고 있다.
아, 물론.
<라이트 데바스타>
나는 상대가 자멸할 때까지 기다려 줄 만큼 착하지 못하다.
안톤의 코앞까지 방해 없이 날아온 나는 다리를 안톤의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
"어, 어어? 야, 잠깐……!"
<라이트 데바스타>
안톤의 머리를 찍어누른 채로 데바스타가 작렬한다. 그의 몸이 빛의 속도로 아래로 낙하하여 수면을 뚫고 바닥까지 들어가 부딪친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사방으로 물이 터져 나오는 모습에 그간에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확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성격 나쁘군요. 탑주는.
'사람이 한 스무 번쯤 죽다 보면 성격 꼬이게 되어 있어.'
나는 시선을 돌려 플레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마나의 아이 특성이 Lv.3에 도달했습니다.]
[분석 특성이 Lv.6에 도달했습니다.]
[가속 시전이 Lv.6 에 도달했습니다.]
[다중 시전이 Lv.6에 도달했습니다.]
[이동 시전이 Lv.4에 도달했습니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암흑이 5 올랐습니다.]
[순발이 3 올랐습니다.]
[체력이 3 올랐습니다.]
…….
안톤을 쓰러뜨리자 천장까지 올라올 기세였던 물이 빠르게 증발했다.
잠시 후 바닥에 처박혔던 안톤의 모습이 드러났다.
"껄껄껄! 결국 해냈군!"
그는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 충격을 받았음에도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서 있었다.
나도 그의 앞으로 착지해 고개를 숙였다.
"몇 번째 시도였나?"
"22번째였습니다."
"껄껄껄!"
안톤이 갑자기 번쩍 두 팔을 들었다.
"나는 12대를 잡는데 18트라이였지! 내가 이겼네!"
유쾌하게 좋아하는 안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이 먹고도 유치한 게 딱 그 일기장의 안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새로운 눈은 얻은 모양이군."
"네."
"무엇을 봤나?"
나는 눈을 감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흰 머리의 여자였습니다."
"……."
나는 안톤의 얼굴에 경악이 자리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여러 형태로 변했다. 고뇌, 번뇌, 고심의 연속. 나는 이와 똑같은 표정을 본 적이 있다.
내 아버지에게 말기 암 진단을 내리기 직전의 의사가 짓던 표정이다.
"흐으음 "
결국 마지막에 안톤의 얼굴에 자리한 것은,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미소였다.
"자네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겠군."
안톤은 결국 이게 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 공간에 쩌적 소리를 내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안톤이 말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군. 약속한 대로 나를 꺾었으니 선물을 주겠네."
기다리고 있었다.
"스물두 차례나 싸워봤으니 소년일때의 내가 사용한 마법에 대해선 잘 알 거라고 생각하네."
"물론입니다."
"원하는 마법을 하나만 말해보게.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오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법을 전수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아티팩트에 마법을 담아 그냥 자네에게 주겠네. 숙련도나 익히는 시간도 필요없이, 그대로 자네가 가져가는 걸세."
"……대선배님의 오리지널이라도요?"
"물론! 후배 앞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겠는가. 단 내가 전투에서 쓴 마법만 가능하네."
갑자기 미친 듯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뭘 받아야 하지?
'안톤의 물 속성 공격 마법도 좋지만, 그런 컨트롤을 유지할 자신도 없고 안톤만큼 잘 쓰지도 못할 거야. 여기선……'
나는 고심 끝에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안톤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일세. 그럼……"
안톤이 자켓 주머니에서 또 다른 목걸이를 꺼냈다. 갈색 줄에 조그만 보석 하나가 덩그러니 달린 물건이었다.
"흣! 챠하아!"
안톤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의 주위로 수 많은 마법진들이 펼쳐졌다. 모든 마법진들이 작동하며 작은 보석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저건 6공정 마법이다.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핸디캡 매치가 아니었으면 답도 없었을 것 같다.
잠시 후 모든 작업이 끝났는지 마법진이 사라지고 공중에 둥둥 떠 있던 목걸이 보석도 그의 손바닥으로 들어왔다.
"사용법은 간단하네. 그냥 목에 걸면 되네."
안톤이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겉모습만 보면 아무리 봐도 별거 없는 그냥 목걸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내목에 거는 순간.
"……!"
머릿속으로 지식, 그리고 경험까지 들어온다.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냥 마법 하나가 내 머리를 뚫고 들어와 알아서 자리 잡은 느낌. 원래부터 이 마법을 알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톤은 내 놀란 모습을 보며 끌끌 웃었다.
"그 목걸이에는 한 가지 효과가 더 있네."
"네? 어떤……."
"내가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효과일세. 목걸이를 깨면, 반경 500미터내에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네. 물론 목걸이와 새겨준 마법은 잃게 되겠지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급 상황에 요긴 하게 쓸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작별의 때로구나. 14대."
쿠르르르릉!
안톤의 마나가 다했는지 공간 마법 자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네라면 능히 9층 모두를 손에 넣고 진정한 마탑주가 될 수 있을게야."
"……감사했습니다."
나는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비록나를 스물 한 번 이나 죽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명심하게. 14대."
안톤이 말했다.
"세계의 존속은 자네 하기에 따라달렸어. 최대한 빨리 8층에 도달하게. 그리고 계획된 파멸을 막게."
안톤의 메시지와 함께, 공간 마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시야가 한 차례 바뀌었다.
[축하합니다! 보스룸을 클리어했습니다.]
[마탑 제4층 '기상설계국'이 해금됩니다.]
['설계국장'의 일부 특성을 획득합니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마탑 안이었다.
'……계획된 파멸.'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4층 개방을 축하드립니다. 탑주."
빛무리와 함께 에아가 나타났다.
"응. 이번 시련도 수고했어. 에아."
"이제 마탑 개방의 절반 이상을 해내셨습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들어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시련의 마법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4층에 가보시겠습니까?"
"나중에 애들이랑 다 같이 구경하자. 일단 로비로……"
그때 에아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은솔 님이 1층에서 저를 부르고 있군요."
"가봐. 나도 바로 로비로 내려갈게."
에아가 사라지고 나도 마법진 엘리베이터를 밟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에서는 은솔이 에아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오빠야아아아!"
그녀가 우다다다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무슨 일이야?"
"……언니야가! 보라 언니야가!"
나는 은솔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자세히는 알진 못했지만 진보라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고, 정서진이 그녀를 찾으러 나갔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정서진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물었다.
-탑주님.
착 가라앉은 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힐러연합에서 진보라 씨를 납치한 것 같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