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83화
"오늘 물량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단 말씀이십니까?"
정서진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당장 삼십 분 후면 오픈이고 사람들도 줄 쫙 서 있는데 물건이 없으니 불안해서…….
"제가 바로 알아보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정서진은 바로 진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스마트폰 전원은 꺼져 있었다. 정서진은 인상을 굳히며 알케미아 사무실에 전화해 담당 기사로 연결했다.
-제가 지금 공장인데 오늘 물량이 없었습니다. 재료도 창고에 그대로 있고요. 작업이 늦어지나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죠.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심각해진 정서진은 협회 연구 부지의 보안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마침 은솔이 마법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다.
"안경 오빠야!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은솔 양."
정서진은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대답했지만, 눈치가 빠른 은솔은 대번에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출입 기록에도 없었다고요? 음, 알겠습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정서진은 이를 뿌득 갈며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보라 언니야가 없어진 거야?"
정서진은 잠시 은솔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탑주님께서 시련에 가셨을 때 이런 일이……"
정서진은 허공에 큰 소리로 소리쳤다.
"에아 님! 계십니까? 있으면 대답해 주십시오!"
은솔도 따라 불렀다.
"에아 언니야! 에아 언니야 없어?"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유신이 시련을 시작하면, 에아 또한 모든 신경을 유신에게만 쏟는다.
평소처럼 마탑에서 대기하다가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침착하자.'
유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다 해놔야 했다. 우선 그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궁지에 몰린 힐러연합이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
정서진은 겉옷을 챙겨입은 다음, 자신의 두 번째 스마트폰을 은솔에게 건네주었다.
"저는 밖에서 보라 씨를 찾아 보겠습니다. 은솔 양은 여기서 기다리면서 틈틈이 에아 님을 불러주십시오. 에아 님이 응답하거나 탑주님이 돌아오면 바로 제게 통화를 걸면 됩니다."
"응! 알았어!"
정서진은 마탑 밖으로 뛰어나갔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 * *
4층 시련.
22회차.
그동안의 시행착오로 확실하게 알아낸 것들을 한번 정리해 보자면.
첫째, 안톤은 나와의 전투에 대한 기억이 없다.
둘째, 기억은 없지만 내 행동이나 움직임을 보고 지금이 몇 회차 도전인지 대략적으로 추측한다.
셋째, 안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페이즈라는 걸 지키고 있다.
그는 목에 두 개의 목걸이를 차고 있다. 목걸이의 효과는 1회 절대 방어, 혹은 주위 500m 내의 마법 무력화로 추정된다. 한번 사용하면 깨진다.
전투 초반, 두 목걸이가 멀쩡할 때의 안톤은 내가 사용하는 마법의 상위 호환을 가지고 상대한다. 그리고 전투보다는 교육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이때의 공략법은 레피드 에로우를 이용한 물량전이다. 상대가 3공정 마법을 쓰든 4공정 마법을 쓰든 내 특기를 살려 압도적인 물량전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클리어가 가능하다.
그렇게 안톤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 번째 목걸이를 사용한 뒤에는, 자신의 전공 마법인 '물의 마법'으로 나를 상대한다.
이때는 내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론 교육보다는 실전에 집중한다.
두 번째 페이즈의 공략법은 데바스타다. 안톤은 전투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틈을 잘 노려 데바스타로 접근하면 두 번째 목걸이까지 깨트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목걸이가 파괴된 세번째 페이즈가 문제다.
이때의 안톤은 후계자 교육이고 뭐고 그야말로 서슬 퍼런 얼굴로 전력을 발휘해 날 죽이려 든다.
데바스타로 접근해 두 번째 목걸이를 깨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3페이즈로 넘어가 버린 후의 안톤은 극강이다.
게다가 데바스타의 특성상 나는 안톤에게 접근한 채로 3페이지를 치르게 된다. 바로 물에 휘말려 당하기 일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하하하!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14대!"
안톤이 해일을 타고 다니며 물의 포탄을 퍼붓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허공의 쉴드를 밟고 도망치고 있다.
"머리 굴리는 거 보니까, 두 번째 목걸이까지는 깼는데 그다음에서 막힌 거지?"
쓰읍, 눈치 빠른 꼬맹…… 아니, 할배 같으니.
이쪽의 패를 들켜버린 건 실수다.
"그런데 뭘 망설여? 들어와 봐!"
안톤이 두 팔을 펼치자 해일이 위로 힘껏 올라왔다. 그러고는 물이 출렁이며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쿠아 캐논>
-탑주! 통상 회피 불가능! 가드 불가능! 초 위험군 마법이 발동됩니다!
나는 거대한 대포로 변해가는 해일을 마주하며 몸을 숙였다. 죽기 싫으니 어쩔 수 없다. 신발 밑창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후우우우우웅!
전방으로 초고속의 수압이 쏘아지는 것보다 빠르게.
내 몸이 안톤의 앞으로 들이닥쳤다. 아쿠아 캐논은 발사되어 방금 내가 있던 자리를 초토화시켰다.
안톤의 놀란 얼굴을 보며 나는 몸통을 회전시켰다.
"……!"
투콰아아아악!
이상적인 자세의 돌려차기가 안톤의 안면에 적중했다.
검은 파장이 작렬하며 주위의 대기를 뒤흔들어 놓았지만, 안톤은 고개만 조금 젖혀졌을 뿐 상처 하나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삭.
두 번째 목걸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암흑 마법? 그런 수가 있었구나."
다행히 아쿠아 캐논에 해일 하나를 통째로 탄환으로 사용해서 전처럼 바로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나는 거리를 벌리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그럼 마지막 레슨이야!"
안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강대한 마력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탑주. 13대가 강제 폭주 마법을 발동했습니다!
-대규모 공세가 예상됩니다!
안톤의 등 뒤로 이질적인 초대형 마법진 하나가 떠오른다.
현인의 눈으로 본 그것의 구조는 특이했다. 에아가 말한 대로 폭주를 위한 마법진.
머리를 열고 마나를 300% 활성화해 시전속도와 마나 운용량을 본래의 능력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비기다.
사실상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양발에 라이트 데바스타를 장착했다.
[메샤라. 메샤라.]
'……응?'
이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왜 그러십니까? 탑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폭주 모드가 된 안톤의 두 동공이 푸른 빛을 내뿜었다.
"머리 굴리고 있을 시간 없어. 14대."
안톤이 말했다.
"살고 싶으면 뛰어."
안톤의 사방으로 대형 마법진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아쿠아 캐논>
<아쿠아 블래스트>
<아쿠아 버스트>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물폭탄이 떨어진다.
전부 3~4공정 이상의 오리지널 마법이라 통상적인 쉴드로는 방어 불가다.
나는 한쪽 발의 데바스타를 사용해 반대편의 벽으로 넘어갔다. 내가 서 있던 반경 수백 미터가 모두 물폭탄에 의해 초토화된다.
쿠구구구구구구!
아찔하다.
소름이 끼친다.
생명체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힘에 대한 공포.
내 몸이 살기 위해 움직인다. 소모한 데바스타를 보충하기 위해 팔과 발밑에 마법진을 준비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수식량이 처리되는 듯 안톤의 머리에 연신 스파크가 튄다. 대형 마법진이 하늘을 어지럽게 가리며 물폭탄이 연달아 떨어진다.
퍼어어어엉!
쏴아아아아아아아!
물의 마법이 떨어질 때마다 시련의 공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바닥에 내려오니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다음 공격들을 피해 움직이며 수위를 살피니 가슴이 간당간당 할 정도까지 차올랐다. 내가 움직일 공간마저 봉쇄당하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심정은 단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이겨!'
데바스타로 접근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엄청나게 운이 따라서 저 물폭탄들을 피해 도달할 수 있다고 해도, 안톤의 몸은 물의 장막 같은 것으로 보호받고 있다.
데바스타 하나를 소모해 올라가 두번째 데바스타를 차서 장막을 파괴하는 정도에서 내 모든 공격은 끝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대방의 컨트롤 악화를 바라며 데바스타로 도망치는 것뿐이다.
-탑주! 3초 후에 12시 방향에서 아쿠아 캐논이 연발로 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오른발에 라이트데바스타를 장착해 발동시켰다. 내 몸이 날아가는 동시에 아쿠아 캐논들이 펑펑펑펑 소리를 내며 작렬한다.
수면 위로 떨어지는 물의 마법들이 연신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을 높이고 있다. 어느새 주위는 물바다가 되어 있다.
"허억! 헉!"
데바스타 최대 거리로 진행한 후, 운동량이 0이 되며 떨어졌다. 나는 수면 위에 쉴드를 깔아 안착했다.
고개를 들면 허공엔 물폭탄으로 피할 틈이 없었다. 다시 데바스타를 사용해 빠져나갔다.
데바스타를 이렇게 회피용으로 쓰는 건 처음이다. 동시에 이것밖에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분하기도 했다.
퍼어어어어엉!
"크윽!"
-탑주!
데바스타로 이동한 즉시, 바로 옆의 벽에서 물의 마법 하나가 터진다. 벽이 함몰되어 잔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아찔하다.
저 노인네가……!
나는 이를 악물고 위를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안톤의 모습이 보인다.
폭주한 주제에 예측 사격까지 하다니! 보통 폭주라고 하면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게 보통 아닌가? 어떻게 시전 속도만 증폭되면서 정밀한 컨트롤까지 가능하냐고!
"14대야. 네 호문쿨루스가 이야기 안 해주던? 여기서야 괜찮지만, 실전에선 암흑 마법을 그렇게 난발하면 부작용 온다!"
폭주한 와중에도 잔소리까지.
대체 저 사람은 정체가 뭐야.
-전방에 워터 블래스트 감지!
-전방에 워터 봄 감지!
불평할 틈도 없이 나는 재차 데바스타를 사용해 피하고 또 피했다.
그래도 저렇게 마법을 펑펑 쏴대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틀림없이 한계가 올 것이고 저 말도 안 되는 폭주가 끝난 뒤의 반동을 노리면 승산이 있다.
꾸웅!
바로 그때 데바스타로 이동하고 있던 내 몸이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리며 그대로 물에 빠지고 말았다.
예측 사격에 당한 것이다.
꼬르르르륵!
세상이 온통 물거품투성이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숨을 참았다. 작렬하는 물의 마법 때문에 어느새 수심은 10M를 넘기고 있었다.
천천히 내 몸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출렁이는 물 밖에는 공중에 뜬 안톤이 마법을 쏟아붓는 모습이 보인다.
'……하아. 다 귀찮다.'
물속으로 들어오니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평화롭다.
찰나의 평온이란 이런 걸까.
[메샤라. 메샤라.]
그리고 두통과 함께 들리는 환청까지.
찰나의 평온에 잠긴 내 몸은 거의 바닥까지 내려왔다. 하늘에서는 물의 마법들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그냥 여기 있을까? 여기 있으면 저거 다 맞지는 않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 보면 군인들이 총알을 피하려 물에 뛰어드는 장면을 흔히 볼수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는 물의 밀도는 공기 밀도의 800배 이상이라고 하니, 2미터만 잠수해도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도 안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내 머리를 박살내고 싶어졌다.
워터 블래스트가 물 안으로 들어오자, 주위의 물까지 흡수해 마법의 덩치와 규모가 커졌다.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우는 물의 격류가 내게로 다가왔다.
안톤의 물의 마법은 물속에서 공격범위가 확장되도록 설계된 모양이다.
'대마법사를 상대로 같잖은 잔머리가 통할 리가 없지.'
나는 체념하며 오른발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진행 중인 데바스타 마법진에 양손을 올리고 수식을 덧붙여 완성했다.
<데바스타>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뻗어 나간 칠흑의 파장이 워터 블래스트를 박살 내며 물의 세계에 거대한 구멍을 냈다. 순식간에 물이 갈라지며 하늘이 드러나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나는 데바스타를 사용한 다리를 내려 에아가 설치한 '리프 부츠'를 밟고 날아올랐다.
'생각하자. 생각. 대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