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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81화 (81/337)

나 혼자만 마탑주 081화

강서구의 한 빌딩 앞.

"도착했습니다. 탑주님."

정서진이 갓길에 주차를 마치고 말했다.

"정말로 직접 가실 겁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가야지."

나는 정서진이 챙겨준 플라스틱USB를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물론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맞지만, 저 지긋지긋한 거머리들을 쳐내려면 확실히 결정타가 필요해."

"…… 알겠습니다."

정서진은 운전석에서 서류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드론이 들어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드론과 노트북을 연동했다.

"이것도 솔이가 손본 거 맞지?"

"예. 현대 장비에 마법 회로를 입력했다고 하더군요."

"햐, 대단한데."

"당장 디바이스 공장에서 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돕니다."

나는 드론 몸체에 그려진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푸른 빛을 일으켰다.

"좋아. 준비 끝! 그럼 다녀올게."

"조심하십시오."

"걱정 마."

나는 당당히 힐러연합의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리셉션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내원이 비즈니스 스마일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힐러연합 본부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는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나도 마주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위에 그렇게 알리세요."

"……네?"

당황한 안내원은 말을 멈추고 찬찬히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아직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슨 소릴하는가 싶은 모양이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용무가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주셔야……"

탕!

나는 손바닥으로 리셉션 테이블을 가볍게 치고는 말했다.

"제가 할 말은 그것뿐이네요."

"……."

당황해서 눈알을 굴리던 안내원이 테이블 아래의 경호 스위치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잘 판단해요."

"……."

"나는 당장에라도 돌아가도 상관없지만, 이대로 날 보내면 당신은 퇴사 정도로는 안 끝나."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된 건지, 완전히 표정이 굳어진 안내원은 다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잠시 후.

1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고위 간부로 보이는 장년의 남자와 경호원 두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김유신 헌터님!"

남자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귀한 시간을 빼앗아서 송구스럽습니다. 미리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하하, 저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돌발적으로 온 거라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휴, 물론입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 자, 이쪽으로……."

남자가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그와 동시에 리셉션 안내원을 살벌하게 노려보더니 선임자에게 턱짓 했다.

저건 좀 불쌍한데.

"너무 혼내진 마세요. 저분은 메뉴얼 대로 하신 거니까요."

커버쳐주기로 했다. 남자는 굽신거리며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귀빈 대접을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렸다. 건장한 덩치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 두 명이 열중쉬어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보안 권한이 낮아서 이 층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제 경호원들의 안내를 따라주시면 됩니다."

"그러죠."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남자는 문이 닫힐 때까지 허리 숙여 인사했다. 두 덩치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공인 4급 김유신 헌터님. 혹시 헌팅 디바이스나 전자 기기를 소지하시고 계십니까?"

"휴대폰이랑 여기 용무 있는 USB요."

"여기서부터는 1급 보안 구역입니다. 잠시 보안상 확인을 하겠습니다."

경비원은 탐지봉을 들고 내 몸 주위를 이리저리 훑었다.

'철저하네.'

결국 휴대폰을 보관함에 넣고 나서야 경호원은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을 비서라고 밝힌 여성이 다가와서 직접 나를 안내해 주었다.

"회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하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비서가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사무실이었다. 수 많은 트로피와 상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구야. 어서 오세요 김유신 대표!"

서글서글한 인상의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40대 초반의 남자가 손을 건넸다. 그는 힐러연합의 회장 오봉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 자, 어서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이 남자가 바로 공인 3급 헌터 오봉규. 썩은 연합의 총수치고는, 겉보기엔 참 멀쩡하게 생겼다.

푹신한 고급 소파에 앉자 비서가 한방차를 내왔다. 직접 주전자를 들고 와서 우리에게 한 잔씩 따라주었다.

"드시지요."

"네."

나는 별 의심 없이 한방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았다.

"하하하! 이렇게 미궁 던전의 영웅과 대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첫커리어에 그 정도의 활약이라니!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대헌터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별말씀을. 저야말로 힐러연합의 총수님을 이렇게 보게 되어서 영광이네요."

"하하하하! 사실은 저번 행사장에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몰려서 인사를 못 드렸었습니다."

"아, 그때 회장님도 있으셨군요."

우리는 이런 저런 덕담을 주고 받으며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자, 그건 그렇고 미궁 던전의 영웅께서 저희 연합엔 어떤 용무로 방문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오봉규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최근 뒤숭숭한 소문 때문에 상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웃고 있는 오봉규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실은 제가 재미있는 영상을 입수해서요."

"영상…… 말씀이십니까?"

"더 설명할 것도 없이 그냥 보여드릴게요. 이거 써도 되죠?"

나는 오봉규의 책상에 있는 빔 프로젝트를 작동시키고는 가져온 USB를 연결했다.

그리고 USB 안의 영상을 실행시켰다.

스크린에서 지직거리는 다소 불안정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루팅이 포지션 룰이었다고? 나는 들은 적 없는데?

"이, 이건……!"

오봉규가 입을 쩍 벌렸다. 나는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에서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린 후, 다시 영상을 실행시켰다.

-이건 약속이 다르잖소! 마정석 비율 두 배에 인센티브까지 받고 왔으면서 유물까지 가져가겠다는 소립니까!

-아, 꼰대가 더럽게 꽥꽥 시끄럽게구네.

그렇다. 지금 나오는 영상이 우리가 언론에 발표한 녹음 파일이 아닌, 진짜 영상 파일이다.

'많이 놀랐나 보네.'

내가 녹음 파일만 푼 상황에서, 힐러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둘뿐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부인하거나, 혹은 인정하거나.

이번에도 침묵하는 선택지를 고르기에는 여론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수사 요구가 쇄도 할 테고 경찰 조직이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이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지금까지 힐러연합이 해왔던 대처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가 부인이었다. 기록이 말해준다.

여기에 더해서, 나는 그들이 부인하는 입장 표명을 하게끔 유도 했다.

녹음 파일도 일부러 음질을 떨어뜨리고, 최대한 지직거리는 걸 키워서 언론사에 뿌렸다. 이 일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들어도 조작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정도다.

당연히 책임 회피하기 좋아하는 연합에서는 조작 타령을 했고.

그렇게 보기 좋게 함정에 걸려 들었다.

처음부터 모든 패를 공개하지 않고, 녹음 파일만 내서 놈들의 입장표명을 유도한 다음에 진짜 영상 파일을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러면 힐러연합은 또 거짓말쟁이가 된다. 대중을 기만한 역적이 되는 것이다.

모든 신뢰가 사라지게 되고, 그동안 녹음이 조작된 걸지도 모른다며 중립기어를 밟던 사람들도 전부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마침 영상 속 힐러가 다른 파티원들을 부추기는 모습이 보였다.

-은수 씨. 천영 씨. 빨리 이 새끼밟아요.

-그, 그럴 수는……!

-아 말귀 더럽게 못 알아듣네. 당신들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한 파티에 있을 거야? 천영 씨는 공인헌터 시험도 치른다며? 그럼 빨리 썩은 과거는 청산하고 빛나는 미래를 잡아야지.

-하, 하지만…….

-잘 생각해. 헌터계에서 밥 벌어먹기 싫어?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유창식에게 들었던 대로 결국 그는 동료들에게 제압당한다.

던전캠이 바닥에 투둑 떨어진다.

우리가 보는 영상의 시점도 빙그르르 회전하다가 하늘로 향한다.

-이놈 봐라. 같잖은 수작 부리네.

던전캠의 시야가 신발에 가려진다.

이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직거리며 영상은 끝난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오봉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온몸에서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어때요."

누가 봐도, 꼬리 밟힌 개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회장님이 봐도 쓰레기 같죠?"

결국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너 이 새끼! 이걸 어디서 구했……!"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죠."

오봉규가 씹어먹을 듯 나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 뭘 원하나?"

"일단 당사자부터 데려오세요. 이야기는 그다음입니다."

오봉규는 이를 빠득 갈며 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안내원을 불렀다.

그렇게 잠시 후.

문제의 그 힐러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는 바닥에 박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나는 대답 없이 차를 한잔 들이켰다.

"사과는 제게 하실 필요 없고요. 고개 들어요."

힐러 가 엎드린 자세에서 고개만 들어 나를 보았다.

"저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어요?"

"……예?"

나는 현인의 눈으로 놈을 응시하며 살벌하게 말했다.

"두 번 안 물어봅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대답해."

표정이 굳은 힐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 저 때는 제가 유물에 눈이 돌아가서 그만…….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

"야, 잠깐!"

유창식이 다급히 소리쳤다.

감 좋네. 이 아저씨.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신체검사 좀 했다고 안심하면 이꼴 난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 이걸로 진술까지 확보했습니다."

"……!"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진다. 창가에서 3공정 마법 '카모플라쥬 (Camouflage)' 상태로 대기하고 있던 드론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물론 카메라로 모든 상황이 녹화되고 있었다.

"이제 진짜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네요."

얼굴이 붉어진 채 부들부들 떨던 유창식의 눈동자가 PC에 꽂힌 USB로 향했다.

"아 참, 절 제압하고 USB를 확보하셔도 소용없는 거 아시죠? 저건 무수히 많은 복사본 중 하나니까요."

오봉규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졌다.

"……이보게 김 대표.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건가?"

나는 히죽 웃었다.

"네, 물론이죠. 당신들 목숨줄 쥐고 흔드는 중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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