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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80화 (80/337)

나 혼자만 마탑주 080화

"유창식 씨. 언론사에 찾아 갔을 때 그 사람들이 이 원본 영상을 보긴 했나요?"

"아니요. 뭘 보여주고 할 틈도 없이 그냥 쫓아내서……"

…으흐흐.

이건 대박이다.

이 정도면 힐러연합에 쌓인 대중들의 울분을 한 방에 폭발시킬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이 자료를 공개해도, 힐러연합은 끝까지 조작이라고 주장할겁니다."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그 말엔 나도 동의해."

일이 잘 풀려도 연합에서는 그 힐러 당사자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꼬리 자르는 정도에서 끝낼 것이다. 결국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그러니 약간의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맡겨주세요. 유창식 씨."

나는 그를 안심시킬 겸 말했다.

"반드시 저희가 억울함을 풀어드릴게요. 더불어 빼앗긴 유물도 놈들이 제 발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유창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물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다 보니 마음이 꺾여서요. 헌터계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아."

"그저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나와 정서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겨주십시오."

그렇게 유창식이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간 뒤, 우리는 남아서 바로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재료가 좋긴 한데, 시작부터 모든 패를 까는 건 위험해. 힐러연합의 반응을 유발한 다음에 쐐기를 박는 게 베스트야."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패를 한 두 장 공개하는 선으로는 대중들의 확실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이슈가 되지 않는다면 놈들도 그냥 숨죽이고 웅크려 버리겠죠."

"……그것도 그러네."

언론사에서 고개를 가로저은 이유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자료를 뿌렸다간 대중에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

일단은 이 사건을 띄워줄 수 있는 언론사부터 찾아야 한다.

"서진아 혹시 개인적으로 연줄 닿는 언론사 있냐?"

"……으음, 전화 돌리다 보면 한 군데 정도는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하려면 적어도 두 군데는 필요한데."

고민하던 정서진이 '아.' 하고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신나라 대표를 조사해 보라고 하셨잖습니까."

"엉. 그게 왜?"

"알아냈습니다. 사실 오래 조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쪽 업계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더군요."

정서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IBN이 있는 비엔그룹 회장의 손녀 입니다."

……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비엔그룹은 한국의 종편채널인 IBN 및 신문사, 연예 매니지먼트, 스포츠와 레저 사업 등을 병행하고 있는 탄탄한 미디어계 그룹이다.

정서진의 유닉스 그룹까지는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곳이다.

그렇다면 일일이 다른 언론사를 찾아 다니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신나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저랑 2년 전속계약 하실래요?"

터져 나오는 신나라의 비명에, 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다.

* * *

신나라의 협조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바로 우리 사무실로 사람을 보내주었다.

"IBN의 김혼다 기자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듯, 중앙이 텅 비어버린 남자였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혹시 일본인이세요?"

"부산 토박입니다."

김혼다가 익숙한 듯 대답했다.

"혼인할 혼에 많을 다자 쓰고 있습니다."

"그 뜻도 뭔가 이상……아, 아닙니다."

"사실 전 독신주의자지만요."

세상의 모든 모순을 안고 사는 듯 한 이 남자는 내 옆 소파 자리에 태연히 앉았다.

"힐러연합을 저격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요."

"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 신문사는 연예계 쪽 기사가 대부분이라서요. 저희 구독자분들이 헌터계 쪽 기사를 많이 봐줄지 모르겠습니다."

"연예계라……"

그럼 오히려 더 좋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엮을 거리 한번 알아보죠, 뭐. 서진아. 힐러연합 외부 일정 좀 띄워줘."

"알겠습니다."

정서진이 노트북을 조작해 40인치 빔스크린에 힐러연합 홈페이지를 띄웠다. 그곳에는 연합의 공개 일정이 나와 있었다.

'이것들 일 안 하네.'

이번 달에는 정기 세미나 외에는 별 행사가 없었다. 적어도 다다음 달까지는 기다려야 큰 행사가 하나 있었다.

"서진아. 지나간 저번 달 일정도 볼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정서진이 캘린더를 과거 일정으로 돌렸다. 나는 스크린을 보다가 무릎을 딱쳤다.

'역시!'

어쩐지 일정이 너무 텅 비어 있더니, 바로 저번 주에 큰 행사가 있었다.

-제7회 '서울국제힐러인적자원개발대전'.

긴 이름만큼 거창한 행사였다. 힐러연합에서 신경 많이 쓴 듯한데 서울에 유명한 강당 건물을 섭외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행사 사진을 보니 고위급 공무원들이나, 유명 인사들도 많이 찾아 온것 같았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사진들을 살폈다.

'뭐 유명 헌터들은 많이 왔는데 연예인이 없네. 제발 연예인, 연예인, 연예인……'

우리가 행사 사진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김혼다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어, 최충연 씨 저기 왔네요."

"네? 누구요?"

"실명 말하면 잘 모르시겠구나. 그룹 오메가의 리드보컬이요."

"아……!"

오메가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밴드 그룹이다. 대표곡은 매년 여름마다 카페에서 질리도록 틀어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확실했다.

"김혼다 기자님."

"그냥 김 기자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김 기자님. 최충연 씨 기사로 써주실 수 있죠?"

"신 대표님 부탁이니 해드려야죠. 그래도 오메가라면 팬덤이 좀 세서 걱정이긴 하네요. 노골적으로 저격하는 기사는 부담이 많아서……."

"선은 지킬게요. 논란을 키우는 게 목표니까."

나는 미리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최중연 씨.

이 일 모두 끝나면 앨범 전집 살게요.

* * *

알아보니 최충연은 힐러연합 회장이랑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골프 지인이라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겐 별 원한은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

김혼다는 '서울국제힐러인적자원개발대전'에서 최충연의 축사를 참조하여 기사를 IBN 홈페이지 메인에 업로드했다.

<오메가 최충연, 힐러연합은 죄가 없다! 헌터계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사실 최충연이 대단한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귀빈으로 행사에 참가해 덕담 좀 했을 뿐이지만, 기자에게 걸리면 입맛에 맞게 왜곡되는 건 한 순간이다.

메인에 기사를 올린 데다가, 최충연이라는 이름 덕분에 조회수도 꽤 나왔다. 처음에는 별문제 없이 팬들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다.

-최충연 실망이다. 힐러연합을 왜 옹호하냐?

-걔들 쓰레기 아님?

-그냥 개인 발언인데 뭐 문제 될 거 있나요?

-역시 충연맘들 등판. 힐러연합 검색이나 해보고 와라.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진짜.

힐러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댓글이 하나둘씩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최충연의 팬들이 울컥하며 반발했고, 급기야 댓글 전쟁이 일어났다.

댓글 3, 000개가 넘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기사는 순식간에 IBN 메인을 넘어서, 연계 서비스 중이던 유명포털사이트의 '많이 본 연예 뉴스'상위권 항목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이슈화됐다.

기사는 또 다른 기사를 낳는다. 조회수를 뽑아내기 위해 다른 경쟁사들도 이 흐름에 빠르게 올라타기 시작했다.

[경솔 VS 별문제 아니야. 최충연 발언 네티즌 갑론을박.]

[이슈 릴레이, 최충연 SNS 비공개 전환.]

[최충연 힐러연합 옹호 발언.'오메가' 신곡 앨범 앞두고 찬물.]

바로 이때다.

우리는 이 흐름에 순응하는 척 자연스럽게 핵심 기사를 올린다.

[최충연 힐러연합 옹호 발언. 힐러연합은 어떤 곳인가? (영상)]

떡밥 다 깔아놓고 분위기를 띄운 상태에서 관련 기사를 올린 덕분에, 이 기사는 순식간에 조회수 수십만을 기록했다.

그리고 첨부한 영상에는 아나운서의 유창한 설명과 함께 '유창식 사태 영상'의 음성 파일이 들어가 있었다.

유창식의 동료들을 협박해 유창식을 짓밟게 하고, 유물을 챙기는 정황이 전부 들어가 있었다.

-역겹다. 진짜 개쓰레기들이네.

-오메가 팬인데 이건 진짜 쉴드 못 치겠네요.

-소름 돋네. 이건 그냥 인성 문제다.

-이 정도는 대단한 것도 아님. 힐러연합 갑질 썰들은 수도 없이 많음. 걔들 좋게 보는 사람들 아직도 있나?

우리의 의도대로, 사건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최충연에서 힐러연합으로 넘어간다.

연예 뉴스 상위권에서, 뉴스홈 메인, 이제는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힐러연합'이 올라갔다.

불타기 시작한다. 이제는 최초로 일을 벌인 나조차도 막을 수 없다.

힐러연합 건을 불안 붙는 장작 취급했던 언론사들도 뒤늦게 세이브해둔 기사를 풀어서 흐름에 동참한다.

[힐러연합 갑질 파문]

[3랭크 던전에서 5명 사망. 힐러만 무사.]

[갑질 논란 힐러연합. 계약 해지도 '제멋대로'.]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힐러연합 갑질 토크.]

이때다 싶은 언론사들이 창고에 쌓아놨던 장작들을 폭발시키기 시작한다. 총대도 IBN에서 매줬고,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우니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아.

완벽한 그림이다.

나는 심취한 표정으로 마탑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켜놓고 기사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어머, 평소엔 애절한 발라드만 들으시더니 웬일로 밴드 음악이에요?"

포션을 만들고 있던 진보라가 물었다.

"그냥 갑자기 듣고 싶어서."

"아직 여름도 아닌데 오메가 노래들으시네. 아! 혹시 최충연 골로 보낸 게 미안해서 듣는 거 아녜요?"

"……아, 아니야."

"진짜 악당 같아!"

나는 끌끌 웃으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최충연. 경솔한 발언으로 논란 일으켜. 팬들께 사과.]

[축사는 관계자가 준비한 대본을 보고 말했을 뿐, 힐러연합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결국 최충연도 빠르게 힐러연합과 손절을 선언했다. 불타는 곳간에 붙어 있으면 자기도 잿더미가 될 테니까 이쯤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게 현명하다.

아무리 힐러연합이 그동안 무대응 무반응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이번 건은 힘들 것이다.

뉴스룸을 뒤적거리며 힐러연합을 검색하고 있는데,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기사가 떴다.

-[단독] 힐러연합, 목소리 녹음은 전부 조작. 루머는 강경 대응 예고.

"됐다!"

나는 만세를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겉옷을 챙겨입었다.

"어, 선배님 어디 가세요?"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힐러연합 회장님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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