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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78화 (78/337)

나 혼자만 마탑주 078화

유신이 오른팔을 내리자 수십 발의 화염구 다발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아우투스는 다급히 방패 디바이스를 작동시켜 역장을 펼쳤다.

꽈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화염구를 연신 받아내던 역장이 망가지고 방패는 잿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이후는 화염구의 직격타. 아우투스의 몸이 터지고 그을리며 걸레짝이 됐다.

마법사.

완전히 새로운 힘을 사용하는 인간의 등장에 아우투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뭐해! 학습해 보라고! 너도 똑같이 쏴보라고!"

유신이 소리쳤다. 파이어 캐논은 멈출 기세 없이 계속해서 장전과 발사를 반복했고 주위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아우투스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뒤쪽에서 망치처럼 휘둘러지는 주먹에 부딪혀 쓰러졌다.

덥석.

덥석.

순식간에 양쪽으로 파고든 머드골렘들이 아우투스의 양팔을 붙잡았다. 아우투스가 힘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유신이 주먹을 꾹 쥐었다.

<동상화>

우드드드득!

머드골렘들이 골렘의 형태를 포기하고 그대로 동상처럼 굳어졌다. 은솔이 이번에 머드골렘에 추가한 새로운 효과다.

완전히 움직임을 봉쇄한 유신은 머릿속으로 물었다.

'에아. 저놈 머리 말고 부산물 건질 거 뭐 있는지 말해줘.'

-가격표 업데이트 완료. 아우투스의 갑주 2만 원. 허벅다리 근육 6만 원입니다.

'거지네.'

유신은 팔을 들어 올렸다.

<카피 매지컬 포지션>

<레피드 에로우>

아우투스의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마법진들이 펼쳐졌다.

'닥치고 사출 개시 '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황금빛 폭우가 양팔이 묶인 아우투스에게 쏟아졌다. 몬스터의 몸이 숭숭 구멍이 뚫리다 못해 곤죽이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모두가 입을 벌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5급 파티 하나를 전멸시키고 단독으로 '재앙'으로 발전할 뻔한 몬스터가,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대, 대단하네요."

"4급이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지켜보던 헌터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모두는 몰랐다.

저 젊은 헌터가 불과 일주일 전엔 공인도 아닌 일반 플레이어였다는 사실을.

유신은 마침내 마법을 멈추고 다가갔다.

아우투스는 온몸이 녹아내린 채 연기를 풀풀 흘리고 있었다. 다만 딱 머리 부분만 온전했다. 유신이 일부러 머리를 피해서 쏘게 한 것이다.

<윈드 커터>

그의 손바닥 위로 펼쳐진 바람의 칼날이 아우투스의 목을 베어떨어뜨렸다. 유신은 그것을 챙겨서 매니지먼트에서 지급받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아공간 주머니는 특급 헌터들이나 들고 다닌다는 초고가의 희귀아이템이지만 유신은 이번 재앙 사건의 공로로 신나라에게 지급받았다.

"내가 잡았으니 챙겨도 괜찮죠?"

유신이 헌터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헌터들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추, 충성! 상사 윤창섭입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부사관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넵. 수고하십니다."

"죄송하지만 헌팅 관할 문제 때문에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시간을……"

끼이이익!

검은색 외제 차 한 대가 도로를 미끄러지며 유신과 부사관의 앞에 딱 멈춰섰다. 옆문이 찰칵 열리며 신나라 대표가 나타났다.

"고생하셨어요! 유신 씨."

"네."

신나라가 주위의 군인들을 보며 말했다.

"가람 매니지먼트 신나라 대표예요."

"대, 대표?"

"김 헌터님은 다음 균열에 투입해야 해서요. 차후 이야기는 저희 직원이랑 해요."

마침 차에서 한 매니저가 서류가방을 들고 내리고 있었다. 유신은 바로 그 빈 자리에 탑승했다.

"기사님 출발해 주세요."

"네, 대표님."

뒷일은 매니지먼트에 맡긴 채, 유신을 태운 차량은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 * *

"정말 고마워요, 유신 씨!"

옆자리의 신나라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비관측 균열 사태였는데 이렇게 바로 달려 와주셔서요!"

"저도 근처에 있었으니까 겸사겸사왔죠, 뭐."

가람 매니지먼트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5랭크 아우투스의 출현이란다.

나도 알고 있는 놈이었다. 은솔이 그토록 골렘 만드는데 필요하다고 조르던 물건이었으니까. E-마켓에서도 재고가 없어서 돈이 있어도 못사던 물건이었다.

우리 3층 관리자 재료도 구해주고, 나도 분위기 전환이나 할 겸 나왔다.

실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다.

안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유효타도 없이 죽고 또 죽기만 했다.

뭐라도 두들겨 패고 싶었다. 텅 비어 있는 허공에 마법을 날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상대에게 실컷 마법을 꽂아 넣고 싶었다.

"어머, 못 본 사이 엄청 피곤해 보이시네요."

신나라가 내 얼굴의 다크서클을 살피며 말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너무 많이 죽어서 그렇죠, 뭐."

"죽어요?"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그녀가 손뼉을 짝 쳤다.

"아! 지금 게임 이야기하시는 거죠? 저도 좋아해요 게임!"

"그런 건 아닌……"

"뭔지 알겠다! 유신 씨도 저랑 비슷한 컨셉 같은게 있는 거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평소엔 PC방 죽돌이 게임 폐인이지만 지구가 위험해지면 등장하는 정의의 헌터!"

"아니…… 뭐, 음. 그냥 그렇다고 칠게요."

설명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게임에 빠져 사는 헌터들이 그렇게 많잖아요? 조금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니까요. 현실에서도 몬스터 잡고, 게임에서도 몬스터 잡고 싶을까요? 지겨울 것 같은데."

혼자서 열심히 수다를 쏟아내던 신나라가 다시 내 얼굴을 슥 살폈다.

"그런데 그게임이 지겨워졌어요? 아니면 싫증 났어요?"

역시.

이 사람도 예리한 구석이 있다.

"싫증은 아니지만…… 뭐랄까요. 꺾고 싶은 상대가 있어서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며칠 내내 손가락 하나 닿지 못해서요. 아무리 도전을 반복해도 발전하는 느낌이 없으니까 무력감에 빠지네요."

"아하! 무슨 느낌인지 알아요 그거! 저도 애니펑 할 때 친구가 세운 기록 못 넘으면 되게 화나잖아요! 으으, 열 받죠 그거!"

"……."

제대로 이해한 건가?

이해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목표에만 집착하면 사람은 조급해지고 불행해져요."

신나라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목표를 달성할 때의 쾌감은 한 순간 뿐이지만, 과정은 길잖아요. 음, 그래요! 사실 과정이야말로 인생 그자체죠!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보다, 중간중간 쉬면서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꽃 구경도 하고, 나중에 돌이 켜보면 그런 게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고요! 중요한 건 목표가 아니라, 도전하는 행위 그 자체니까요."

나는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 너무 꼰대 같았어요?"

"아뇨. 어른스러워 보이시네요."

"오호호!"

우리는 이것저것 근황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슬쩍 물어봤다.

"대표님. 힐러연합이라고 아세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 그 찐따들이요?"

"……적나라한 평가네요."

"대형 길드나 매니지먼트엔 못 들어가고, 중견에 들어가기엔 자존심 상해서 힐러연합이랍시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 못살게 구는 애들을 찐따라고 부르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요?"

"우리 매니지먼트와는 어떤 관련이 있나 해서요."

갑자기 신나라가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왜 그러세요?"

"다시 말해봐요!"

"네?"

"우리 매니지먼트! 유신 씨가 '우리 매니지먼트'라고 하다니이이!"

"……."

또 그 덕질인가 뭔가 하는 게 시작된 모양이다. 신나라는 한참을 호들갑을 떨다가 뒤늦게 체면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전속 힐러들이 있어서 연합과 자주 마주치는 건 아니에요. 가끔 인력 빵꾸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 쓸 때도 있긴 하죠. 근데 그럴 때도 웬만하면 타 길드에서 용병을 구하지 연합 쪽 힐러들은 잘 안 쓰려고 해요."

"왜요?"

"후후, 왜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형 길드들이 포기한 이유가 있다고요. 하나 같이 인성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던전 공략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사람들은 피하는 게 좋아요."

저 신나라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어지간히 대단한 놈들인 모양이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계동에 도착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신나라가 말했다.

"집까지 모셔다드려도 괜찮은데. 모셔다 드리는 김에 유신 씨 집에서 라면도 좀 얻어먹고……."

"……사양할게요."

"농담이에요! 농담! 오늘 긴급 콜 받아주셔서 고마웠어요! 정산 끝내면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들어가세요. 대표님."

그녀와 헤어진 나는 바로 통제구역을 향해 걸었다.

-탑주.

'응.'

-좌우에 두 명. 미행이 붙었습니다.

……이제는 미행까지 붙었다라.

상계동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걸 보니 나에 대한 조사까지 마친 놈들이다.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해 이쪽도 도주로는 봐뒀다. 나는 역 근처에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는 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추적의 룬.'

추적의 룬을 1층 바닥에 깔아둔 다음 3층으로 올라왔다.

이어서 라이트 데바스타를 오른발에 착용하고, 미행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순간, 3층에서 뛰어내리며 데바스타를 발동했다.

후우웅!

내 몸이 철조망을 넘어 단번에 통제구역으로 넘어왔다. 이 거리에서는 카메라에 걸릴 일 없이 바로 다이렉트로 올 수 있다. 그들은 그냥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벌써 미행까지 붙었군요.

'응. 역시 힐러연합이겠지?'

-저도 그렇게 추정합니다.

추적의 룬에 걸렸나 확인해 봤지만 아쉽게도 우회한 모양이다. 나는 바로 마탑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

"오셨습니까."

진보라는 평소처럼 국자로 마법 솥의 내용물을 휘휘 젓고 있었고, 정서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로비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애들아. 나 미행 붙었다."

두 사람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미, 미, 미행이요?"

"그렇군요.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정서진은 덤덤하게 반응하며 내게 노트북 화면을 돌려 기사를 보여주었다.

"……이게 다 뭐야?"

[알케미아 포션 부작용 발견. 구토와 마비, 과다 출혈 증상 유발 우려.]

[포션 피해자 인터뷰. "던전에서 포션을 마셨다가 갑자기 마비 증상이 왔어요."]

[플레이어 생명까지 위협하는 포션에 대한 고찰. 가이드 라인 마련 시급.]

[알케미아. 협회 연구 재단 인증절차 단 이틀 만에 끝나. 아카데미 졸업생 김유신과 협회장의 유착 의혹.]

[내용물의 성분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버젓이 유통되는 포션의 정체는?]

[이화순 교수. "아이템이라는 말에 혹해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한국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기현상."]

[코로라 길드. 포션 부작용으로 파티원 두 명 중상. 알케미아에 고소 준비.]

…….

진보라는 입을 가린 채 덜덜 떨었고, 정서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배후는?"

내가 물었다.

"힐러연합입니다. 확신도 있습니다."

정서진이 자료를 보여주었다.

"힐러연합에서 악성 컨슈머를 다수 고용, 논란을 터뜨린 것 같습니다. 코로라 길드 또한 힐러연합과 유착관계가 있습니다. 던전에서 일어난 일이라 우리가 무죄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 계속 논란을 만들어 나가겠죠."

정서진은 테이블을 짚으며 선언했다.

"이건 힐러연합의 선전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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