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77화
<레피드 에로우>
허공에 수십, 아니 수백 개의 황금빛 화살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나 에로우…… 아니, 다른가? 더 작고 빠르군."
나는 오른팔을 뻗었다.
발사 시작점 따위, 얼마든지 들통나도 상관없다.
'완성된 순서대로 사격 개시.'
그냥 화력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하늘에서 황금빛 화살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언제나 내 마법에 대응해 상위 호환의 마법을 쓰던 안톤이었다.
하지만.
<라운드 쉴드>
이번만큼은 상위 마법이 아니었다.
사방을 커버하는 원형의 쉴드가 수 겹으로 펼쳐졌다.
뒤이어 황금빛 폭우가 쉴드에 닿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화살과 방패의 싸움.
맹렬하게 터져 나오는 황금빛 불똥에 눈에서 피로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야, 14대! 너 그렇게 무모하게 다량의 마법을 운용했다간 마나 역류로 죽어!"
무모하다고?
천만의 말씀.
나는 보란 듯이 수십 개의 레피드 에로우를 더 매달았다.
빠져나갈 곳은 없다.
좌우를 포함한 사방 360도 라운드쉴드의 모든 방향에서 황금빛 섬광이 작렬하고 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크으으!"
안톤이 마력을 쏟아부어 쉴드를 복구했지만 레피드 에로우가 쉴드를 부수는 기세가 더 빠르다. 쉴드에 금이 가며 점점 더 균열이 벌어진다.
그리고 하나의 쉴드가 박살 나며 벗겨진다.
바로 뒤이어 두 개째.
세 개.
네 개.
"으으으으아아아!"
안톤이 악을 지르듯 발악한다. 나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더욱더 공세를 강화한다.
이길 수 있다!
이제 닿을 수 있다!
-탑주! 더 이상 계속 하면 탑주도 위험합니다!
'아니, 계속해! 이번이 유일한 기회야!'
마지막 다섯 번째 쉴드를 공략하고 있는 그때였다.
안톤이 목에 메고 있던 목걸이 하나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눌러깼다.
화아악!
그의 몸에서 푸른 파장이 뻗어 나갔다. 그것은 본인이 펼친 방어막과 레피드 에로우를 강제로 마나 상태로 되돌려 버리고, 주위의 다른 모든 마법진까지 흩어 없애 버렸다.
"……?"
내가 사용했던 마나가 다시 몸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인정, 인정. 아주 잘 했어."
뭉실뭉실.
안톤의 말 밑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띄웠다.
"이제 잘 알았지? 나보다 강한 마법을 쓰는 상대를 깰 방법은 단 하나. '개성'을 극도로 단련하는 것뿐이야. 그럼 이제 다음 레슨으로 넘어갈까?"
쏴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발밑으로 대량의 물이 솟아나와 거대한 해일로 바뀌었다. 해일은 바닥을 쓸며 돌진해 왔다.
'물 속성 마법!'
안톤은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러고는 자신이 타고 있는 해일에 가져다두었다.
움직이는 해일에서 물의 탄환이 기관총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탑주! 조심하십시오! 데이터에 없는 2공정 물 속성 마법입니다!
'네 데이터에 없다는 소린, 안톤의 오리지널이란 거야?'
가드용으로 펼치는 쉴드가 물의 탄환한 방에 깨져나갔다. 위력도 빠르기도 상당하고, 심지어 준비 단계도 없이 해일에서 그냥 막 마법이 쏟아진다.
'이건 따돌려야 해.'
나는 재빨리 리프 부츠를 바닥에 꺼내 밟고 뒤로 날아갔다.
"읏차차!"
해일을 타고 내게 다가오던 안톤이 마치 고삐를 잡아당기듯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해일이 솟구치더니 방향을 바꾸어 나를 추격한다.
이동과 공격이 자유자재. 게다가 다량의 물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차올라 상태를 유지한다.
나는 도망치면서도 현인의 눈으로 저 마법들을 살폈다.
'……와.'
수식을 보는 순간 그저 까마득함을 느꼈다.
저 이상적인 밸런스를 찾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연구했을까.
현인의 눈으로 마법의 구조는 알수 있었지만 따라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안톤만이 쓸 수 있는 오리지널 마법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나는 도망치면서 허공에 다시 한번 레피드 에로우를 쌓아 올렸다. 내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안톤의 시선도 천장 쪽으로 향한다.
"어림없지!"
안톤이 말고삐를 쥐어 당기듯 팔을 휘감아 올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해일이 솟구쳤다. 그것은 순식간에 완성 중이던 내 레피드 에로우 마법진을 통과했다. 물살에 마법진의 수식이 쓸려나가며 마법진이 강제 해체됐다.
'그래도. 뭐.'
차악
나는 양발에 라이트 데바스타를 장전했다.
'공중에 뜨게 하는 건 성공이야.'
바닥에 왼발을 딱 붙이고 데바스타를 발동했다. 대기를 가르며 포탄처럼 날아간 내 몸이 해일을 타고 있는 안톤의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놀란 그가 쉴드를 펼치려고 했지만.
<라이트 데바스타>
접촉에 의한 타격이 아닌, 다리와 안톤의 머리를 일직선으로 유지한 상태에서 데바스타를 발동시켰다.
내 발이 검은 연기를 이끌고 나아가 그대로 안톤의 머리에 격중했다.
터어어엉!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격통이 일었다.
'이겼어! 들어갔다!'
진심으로 승리를 장담한 그때.
발차기에 맞은 안톤이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
목이 부러지거나, 충격파에 몸이 튕겨 나가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저 해일 위에서 있다. 대신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뭔가가 와장창 소리와 함께 박살 나고, 두 번째 목걸이도 깨졌다.
"아깝네."
안톤의 팔이 나를 향해 뻗어졌다.
"아니, 이런 건 사실대로 말해줘야하나?"
해일에서 일어난 물보라가 내 몸을 붙들고 혜성처럼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아직 한-참 멀었어."
거대한 낙하음과 함께 다시 내 의식은 끊겼다.
* * *
-비상! 비상! 여기는 중랑구 면목2동! 비관측 균열 사태 발생! 긴급지원을 요청합니다!
-여기는 청담 길드 L-15팀. 상황은?
-5랭크 몬스터 1기 출현! 방위군 병사들과 공인 5급 헌터 파티가 교전 중!
-에이 씨, 무전 치는 거 누구야? 지금 장난해? 5급들이 5랭크 몬스터 하나를 못 잡는다고?
-5랭크긴 한테 겨, 격이 다릅니다! 빠르게 지원을……! 으아아악!
콰직! 꽈득!
길가에 불법 주차된 자동차들을 일그러뜨리며 한 몬스터가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5랭크 몬스터 아우투스.
인간처럼 직립보행을 하며 손에는 한쪽 날이 구부러진 검을 들었다.
얼굴은 곤충처럼 열 개의 작은 눈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여기서 막아! 지하철역으로 보내면 더 큰 사상자가 발생한다!"
"전탄 퍼부어!"
투타다다다다다다!
차단선 너머 군인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아우투스는 한 손에 쥔 방패를 펼쳤다. 마나코어가 작동하고 푸른 역장이 전개되어 총탄을 모조리 튕겨냈다.
"돌아버리겠네! 몬스터한테 방패뺏긴 놈 누구야!"
"아니, 그보다 몬스터가 인간의 방패를 작동시켜서 쓴다는 게 말이 돼요?"
아우투스가 방패를 앞세운 채 돌진 해왔다. 차단선의 병사들은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콰쾅!
차단선이 박살 나며 하늘로 비산했다. 순식간에 진형을 붕괴시킨 아우투스가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간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군인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젊은 헌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팀장님!"
"마음은 알겠지만 지원을 기다려. 이미 5급 파티 하나를 깨트리고 온 놈이야."
그녀는 군인들을 보았다가 팀장을 보았다. 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군인들 쪽을 본 그녀가 결심한 듯 말했다.
"사람들의 죽음을 방치하려고 헌터가 된 게 아닙니다!"
헌터는 그렇게 말하며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공인 5급 지소희. 갑니다!"
"어어? 야, 인마! 돌아와! 함부로 상대하면 위험……!"
지소희는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휘둘렀다. 펄럭거리던 망토가 접히며 도끼의 형상이 되더니, 그대로 아우투스에게 휘둘러 졌다.
터어엉!
아우투스는 검을 들어가드했고 두무기가 부딪치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아우투스는 막기 버거운 듯 팔을 떨더니, 이내 자연스럽게 무게 중심을 옮겨 도끼의 방향을 흘려냈다.
"하앗!"
이때 지소희는 도끼를 손에서 놓고 돌진하며 양손을 허리춤에 착 붙이고 내뻗었다. 허리춤에서 흘러나온 손수건이 쌍수단검의 형상이 되어 그녀의 손으로 들어왔다.
챙! 챙! 챙! 챙! 챙!
이어지는 초 근접전. 쌍수단검이 연달아 휘둘러 지며 아우투스의 몸에 여러 상처를 냈다.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가슴에 길게 검상을 입힌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길 수 있어!'
근접전은 이쪽이 우위.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그녀는 집요하게 몬스터를 공략해나갔다.
"오오오!"
젋은 헌터가 몬스터를 밀어붙이고 있다!
주위의 군인들이나 헌터들까지,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차례 검격이 오가며 불똥이 튀어 오른다. 아우투스의 균형이 점점 무너져 간다.
'마무리!'
그녀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가을 낙엽처럼 바람에 팔랑거리며 내려오는 대형 도끼를 붙잡아 휘둘렀다.
터어어엉!
물론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무게와 위력은 진짜로 변했다. 아우투스가 다시 검을 들어 막느라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고, 지소희는 한발 앞서 바닥으로 내려와 아우투스의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퍼억
아우투스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지소희가 뒤로 물러났다.
'밸런스가 무너진 게 아니었어?'
이번엔 아우투스 쪽에서 먼저 검을 쥐고 뛰어들었다.
까앙!
"…?!"
갑자기 몰라보게 바뀌었다.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그녀의 팔이 위태롭게 젖혀진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용했던 페이크 스타일의 검술을 마치 과시하듯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완력에 인간의 기술까지 섞여 버렸다.
'설마 일부러 당해주는 척하면서 내 기술을……!'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스릉!
그녀의 목이 피를 흩뿌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 신입!"
"아아악! 저게 또 일을 초를 쳐!"
"사상자 한 명 추가 발생! 빠른 지원을 요청한다!"
그녀의 파티원들은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아우투스를 공격하지 못했다.
아우투스의 유일한 특성은 '학습'.
인간의 무와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4년전 중동에서 출현한 아우투스는 5랭크로 시작해서 수 많은 전장을 거쳐 단신으로 8랭크까지 도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의 아우투스는 전투 기술은 물론, 반란군과 거래해 금과 식량을 내어주고 헌터 디바이스를 받을 정도로 영리했다고 한다.
아우투스의 공략법은 놈이 학습할 여지 없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녹이는 것.
그런데 괜히 처음 접근한 5급 파티들이 안전하게 잡는답시고 여유 부리다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더 인간의 무를 학습하면 피해가 심각해진다. 어떻게든 여기서 끊어야 해!'
놈이 재앙으로 발전해서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에 제압해야 했다.
-키이잉.
그때 아우투스가 병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훌쩍 뛰어올라 헌터들이 있는 난관까지 뛰어올랐다.
"상대하지 마!"
"물러난다!"
헌터 파티는 바로 거리를 벌렸다.
아우투스는 10개의 눈을 움직여 그들을 스캔했다. 그러곤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사람들이 많은 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팀장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어졌다.
"이놈이……!"
"우리가 어떻게든 역을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되면 막을 수밖에 없다. 팀장이 공격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지직거리며 무전이 왔다.
-여기는 가람 H-1. 참전한다.
팀장이 움찔하며 다급히 무전기를 붙잡았다. 괜히 가면하나 5급 초짜들이 덤비면 큰일이었다.
-누구야! 등급은?
-공인 4급.
터어어어어어엉!
역을 향해 달리고 있던 아우투스가 갑자기 부웅 날아서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흙과 돌파편이 튀어 오르며 주위를 뿌옇게 만들었다.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앞을 보았다.
"……."
한 남자가 부스스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어오고 있었다. 피로에 찌든 표정이었지만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는 오른쪽의 눈빛만큼은 섬뜩할 정도였다.
"누, 누구야? 저 사람은?"
아우투스가 돌파편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신은 자리에 멈춰서 몬스터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네가 뭐 학습하는 몬스터라매?"
-키이이.
유신은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파이어 캐논들이 이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이것도 학습해 봐."
악귀처럼 입꼬리를 올린 유신이 팔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