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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73화 (73/337)

나 혼자만 마탑주 073화

마지막 일정은 헌터협회에서 주체하는 수상식으로, 간단히 말해 미궁던전 공치사 하는 자리다.

물론 최고 공로자인 나도 그 행사에 초대받았고, 마탑 멤버들도 동반입장이 허락됐다.

우리는 파주와 헌터 거리를 지나 행사장소에 도착했다.

상암동 호텔 옥상에 위치한 야외홀은 무척 넓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며 안부를 주고 받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겁먹은 건지 은솔은 내손을 꼭 잡았다.

"오빠야."

"왜?"

"보라 언니야는 어딨어?"

"그러게. 먼저 와 있다고 했는데……"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이 녀석은 혹시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봐 가발에 수염까지 붙여 변장한 모습이다.

"한번 쭉 둘러보죠."

우리는 테이블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많아서 겁먹은 듯하던 은솔의 경계는 금방 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푸딩이다!"

테이블에 음식이 엄청 많았다. 은솔은 걸으면서도 좀 처럼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라는 내가 찾아 볼 테니까 솔이 데리고 먹을 것 좀 챙겨줘."

"알겠습니다."

은솔은 정서진에게 맡기고, 나는 혼자서 연회장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유신 씨이! 여기에요!"

드레스 차림의 신나라 대표가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대표님도 여기 계셨네요."

"그럼요!"

그녀는 잠시 나를 보고 멈칫하더니 위아래로 슥 훑어보며 팔짱을 꼈다.

"오올. 수트빨 좀 받는데요? 머리올리니까 인상도 훤한 게 나쁘지 않아. 혹시 프로모션 쪽에도 관심 있어요?"

"하하. 생각해 본 적 없네요. 대표님도 드레스 잘 어울리세요."

"어머나아, 유신 씨도 참."

그녀가 뺨을 감싸며 다른 손은 휘휘 저어 보였다.

"이번에 유신 씨에겐 신세 진짜 많이 졌어요."

"제가요?"

"네! 우리 매니지먼트에서 재앙 최고 공로자가 나오다니! 그것만으로 대단한 홍보효과라고요! 오늘만 해도 업계 사람들한테 김유신 어떻게 영입했냐는 질문만 몇 번 받는지 모르겠어요."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신나라가 요조숙녀처럼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말도 참 예쁘게 한다니깐. 뭐 보너스로 받고 싶은 거 없어요? 아! 실은 제가 근사한 이태리 레스토랑 아는데 거기서……."

"선배니임!"

귀에 익은 달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계셨었네요? 계속 찾았잖아요!"

"어, 보라야. 어디 있었……"

고개를 돌린 나는,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옷이 날개란 소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보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았다.

연한 아이보리 컬러에 오프숄더 롱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평소의 발랄한 모습과는 달리 우아하고 세련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같이 파주도 안 가고 혼자 뭐하나 했더니.'

내가 보는 눈이 없긴 하지만 엄청나게 신경 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근처의 다른 남자들도 '쟤누구야?' 하는 눈으로 진보라를 힐긋힐긋 쳐다보고 있었다.

"대표님도 여기 계셨네요."

"오랜만이네요, 보라 씨."

두 사람은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물론 제 헌터는 제가 챙겨야 하니까 같이 다니고 있었죠. 어머, 드레스 너무 예쁘다. 어디서 빌렸어요?"

"오호호! 이거 제 드레스인데요? 요즘 애들은 스튜디오 연동해서 하이켓드레스 직구로 되게 싸게 구하거든요. 아, 대표님은 잘 모르시려나."

"호호호! 굳이 상품에 하자 있을지도 모르는 해외 직구 같은 거 할 필요 있나요."

뭐지? 일상적인 대화 같은데 왜 불똥이 튀는 것 같냐.

"거, 신 대표! 대표들 모이라니까 어딜 또 혼자 싸돌아다녀?"

누군가가 신나라를 부르는 목소리에 진보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가보셔야 하는 거 아녜요?"

"……윽."

신나라는 자신을 부른 남자를 찌릿 째려보았다. 남자는 움찔하며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유신 씨. 매니지먼트 대표들끼리 회담이 있어서……"

"네, 일 보세요."

"안녕히 가세요!"

신나라가 떠나자마자 진보라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팔짱을 꼈다.

"오예! 우리 탑주님 온전히 내 차지!"

"……너 자꾸 유치하게 이럴래."

"헤헤헤."

그녀가 애교스럽게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톡 기댔다. 이 요물이 또시작이다.

내가 슬쩍 밀어내자 진보라가 볼을 부풀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제 이 정도 뻔한 행색은 내성이 생겨서 괜찮아졌다.

"선배니임."

그녀가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바이올렛 빛깔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이어서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를 모델처럼 귀뒤로 넘기며 생긋 웃어 보였다.

"저 오늘 어때요?"

음음.

저게 다 뻔한 수작인 걸 알면서도 들뜨는 나 자신이 싫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

"가끔은 그런 드레스 차림도 괜찮은데."

진보라의 얼굴에 발그스름한 홍조가 떠올랐다.

"고마워요!"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애들 기다리고 있어."

"네에."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일행이 있는 테이블에 합류했다. 그 와중에 남자들 몇 명이 진보라에게 먼저 말을 걸 정도로 연회장에서의 그녀는 빛이 났다.

진보라는 익숙하게 그들의 말을 받아주다가도 간단히 밀어내 버렸다.

나는 픽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 눈 높아졌다? 공인 4급 헌터의 에프터를 보기 좋게 차버리고."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제 옆에 누가 있는데, 그런 것들 눈에 들어오겠어요?"

흠흠."

"언니야!"

은솔이 쪼르르 달려왔다.

"와! 언니야 너무 예뻐! 공주님 같아!"

"어머어! 고마워 솔아. 선배님보다 우리 솔이가 더 여자 잘 꼬시겠는데?"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는 사이, 나는 우아하게 포크로 파스타를 두르고 있는 정서진의 옆 자리에 앉았다.

"서진아. 어때?"

"예?"

"오늘 보라 말이야."

무심하게 진보라 쪽을 쳐다본 정서진은 갑자기 넋을 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 설마 이 녀석도 관심이 동하는 건?

"드레스 차림."

"응?"

"에아 님의 드레스 차림을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오늘 숨이 끊어져도 한 점 후회도 없을 겁니다."

……턱도 없구나.

아무튼 연회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냠냠! 이거 마싰어!"

"솔아 그 고기 너무 커! 언니가 잘라 줄게."

은솔의 스테이크를 잘라 주려던 진보라가 멈칫했다.

"아 참, 나이프 안 들고 왔다!"

"앉아 있어. 내가 빈 접시니까 가져 올게."

내가 몸을 일으키자 진보라도 덩달아 일어났다.

"같이 가요! 저도 빈 접시에요."

우리는 식기를 찾아 테이블을 돌아다녔다. 진보라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내 옆에서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 나이프 찾았……"

"선배님 저기 좀 봐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인파들이 몰려든 모습이 보였다.

"유명인 왔나 보다! 우리도 가봐요!"

"어, 야 잠깐!"

"빨리 요오!"

진보라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궁금하다! 누가 온 걸까요? 마유성? 아니면 원더러?"

"그런 바쁜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겠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호기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우리는 인파들 사이로 들어와 상황을 살폈다.

'아하.'

누군가 했더니.

아마 요즘은 프로들보다 더 핫한 플레이어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와인잔을 손에 들고 이야기하는 여자. 레드톤의 머리카락에 심플한 블랙 드레스차림의 그녀는 다름 아닌 홍연이었다.

내 눈엔 귀찮아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성의껏 물음에 답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아."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졌다.

"어어? 선배님. 이쪽으로 와요!"

홍연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좌우로 갈라졌다.

"잠깐 나 좀 봐요."

그러곤 내 손목을 잡아채 끌고 갔다. 얼마나 힘이 센지 내 몸이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파속에서 드문드문 휘파람 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벽뒤까지 와서야, 그녀는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

검은 드레스의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한테 뭐 할 말 없어요?"

"……어, 음. 잘 모르겠는데."

나를 노려보던 그녀의 표정이 어느새 샐쭉하게 변했다.

"왜 제 문자에 답을 안 하시는 거죠."

그 한마디에 몸을 옥죄던 긴장감이 살랑거리며 날아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 그 성의 없는 초성체? 나는 그냥 스팸 문잔 줄 알았지."

"웃지 마십시오!"

우리가 티격태격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그때, 진보라가 슬쩍 옆으로 나와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안녕. 회장."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 같은 학생회였지.

그런데 홍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

진보라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진보라 몰라?"

홍연이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걸 보니 진짜 모르는 모양이다. 진보라가 울컥하며 말했다.

"나도 같은 학생회였거든! 심지어 네가 회장 된 날에 나도 학생회에 들어왔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학교에 자주 가질 않아서……"

홍연은 공손히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진보라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이건 뭐, 뭐라 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자기가 기억 안 난다는데 어쩌겠는가. 홍연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진보라에게 모욕감을 준 셈이 됐다.

그리고 타고난 관심종자인 진보라는 자기는 남을 아는데 남은 자신을 몰라 봐준다는 게 큰 충격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훙, 선배님. 먼저 가요!"

결국 진보라 쪽에서 먼저 떠났다.

나는 여전히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홍연을 보며 킥킥 웃었다.

"아는 척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그러다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되면 곤란하니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하하하!"

그녀는 내 차림을 위아래로 한번 빠르게 훑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헛기침을 한번 했다.

"의외네요."

"뭘?"

"그냥 의외입니다."

"넌 가끔 뭔 소리 하는지 모를 때가 있어."

"조용히 해요."

처음엔 불편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었지만, 한번 같이 생사를 넘고 나서인지 분위기는 많이 편해졌다. 그녀도 전처럼 나를 차갑게 대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카데미에서 나올 생각이라고?"

"네. 이번에 공인 5급 헌터가 되면 학교에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총장인 언니가 들으면 슬퍼하겠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홍연이 눈을 치켜떴다.

"문제는 선배 쪽입니다."

"음?"

"어차피 선배는 아카데미 졸업으로 공인 자격 확정이었잖아요. 그런데 포상으로 또 프로 승급이라니. 이건 너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별로 상관 안 해. 어차피 절차만 몇 달 걸리는 거 이번에 빨리 승급하면 좋지. 포상금도 받고."

"……명예와 권력욕은 별로 없으시군요."

"그건 아닌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거야."

내게는 마탑이라는 강대한 자산이 있다. 명예나 권력? 그거야 당연히 손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지금은 그저 너무 빨리 그것들이 들어와서 계획이 틀어지는 변수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자, 자, 행사 진행하겠습니다."

그때 마침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다.

"내빈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로 이동했다. 나와 홍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

"초성체면 계속 씹을 거야."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등을 돌렸다.

"……얄미워."

뭔가 홍연을 놀리는데 재미가 붙은 것 같다. 나도 그녀와 헤어져 일행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고 기지배 두고 보자!"

진보라는 여전히 이를 갈고 있었다.

행사 식순이 시작됐다. 여타 행사와 다를 거 없이 개화사와 국민의례가 이어졌고, 머리 벗어진 아저씨들이 단상 위로 올라와 축사를 남겼다.

그 이후에 이번 재앙에 큰 공로를 세운 헌터들이 올라와 상을 받았다.

TV로만 보던 유명 헌터들이 직접 나오는 모습에 지켜보는 지루함은 단번에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은 최고 공로자 수상입니다."

내 차례가 왔다.

"오빠야 이제 올라가?"

"꺄아악! 선배님! 긴장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네가 제일 긴장하는 것 같은데.

"최고 공로자 수상에는 홍율 협회장이 수고해 주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예. 긴급 파견으로 이번 행사에는 불참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워낙 바쁘신 분이시라. 하하……."

테이블 곳곳에서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신 이번 수상은 헌터협회 최형식 고문님께서 해주시겠…… 네? 아, 예."

단상 위로 다급히 뛰어 올라온 관계자가 사회자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더니 잠시 행사가 중단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가자기 세차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높은 상공에서 헬기 한 대가 선회하고 있었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고 있는데, 헬기에서 일순간 붉은빛이 번뜩였다.

화악!

그것은 혜성과 같은 속도로 연회장에 내려왔다. 사방에 붉은 파장 같은 곳이 흩어지며 접시와 찻잔들이 덜컹거렸다.

"우와아악!"

"꺄아아아악!"

놀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움츠렸다.

이윽고 흔들림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내놔."

어느새 단상 위에서 있는 붉은 머리의 여인이 사회자의 큐카드를 빼앗았다.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수상 시작한다."

"혀, 협회장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일반인들은 물론, 고위 헌터들이나 길드 대표 같은 점잖은 사람들도 일제히 팔을 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낳은 최강의 헌터.

영웅 중의 영웅.

홍율은 큐카드를 보고는 말했다.

"3회차 재앙 미궁던전의 최고 공로자, 김유신. 그리고 홍연. 앞으로."

박수와 환호 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홍연도 저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단상 위로 올라왔다.

제복을 입은 관계자 두 명이 훈장이 담긴 함을 들고 있었다. 홍율이 내 앞으로 다가와 큐카드를 보며 말했다.

"위 사람은 3차 미궁던전 재앙에서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위해 큰 공헌을 불라불라."

큐카드를 뒤로 휙 던져 버린 그녀가 씩 웃었다.

"잘 했다. 영웅."

"……."

"썩어빠진 밥버러지들 다 제치고, 네가 수천만의 사람들을 구한 거야. 협회의 수장으로서 모두를 대표해 감사를 표한다."

"고, 고맙습니다."

갑자기 홍율이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았다기보다는 헤드록을 걸었다.

"요, 요, 귀여운 놈! 복쟁이! 우하하하!"

으악! 숨 막혀.

"재앙 때 전선 이탈한 새끼들 보고 있냐? 이런 애기들도 나라 구하겠다고 끝까지 싸우는데 니들은 진짜 뭐냐? 앙? 고추 떼고 공인 면허도 반납해라! 깔깔깔깔!"

역시나 참담한 언사들을 쏟아냈다.

협회장의 비서진들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고, 행사고위 관계자는 재빨리 카메라쪽을 바라보며 '컷! 컷!' 을 외치고 있었다. 헌터들은 이제는 익숙한 상황인 듯 자리에서 숨죽여 낄낄거렸다.

결국 고위 관계자가 헐레벌떡 위로 올라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공로상 내용은 끝까지 읽어주셔야 합니다. 전국으로 방송이 나갈 예정이라……"

"앙? 싫어! 귀찮게 씨리."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부탁드립니다! 저 진짜 국장님한테 맞아죽어요! 아시잖아요!"

관중석에서 떠들썩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여동생인 홍연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외면하고 있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하는 표정이다.

"에잉. 어쩔 수 없지."

결국 홍율이 큐카드를 잡고 내 앞에서 공로상 내용을 줄줄 읽었다.

긴장해서일까, 가슴이 벅차서일까.

나는 그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해냈다.

홍율이 직접 내 가슴에 공인 헌터훈장을 달아주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인 헌터 자격을 받는다는 건 더 없는 영광이다.

드디어 나도. 프로가 됐다.

'응?'

나는 그녀가 달아준 훈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생각지도 못한 숫자가 달려 있었다.

'4'

나는 다급히 시선을 내려서 훈장을 살폈다.

공인 4급 헌터 김유신.

머리에 번개가 친 것처럼 충격이 휘몰아쳤다.

아니, 5급은 된 적도 없는데 5급 넘기고 4급이라고? 이럴 수가 있나?

"그렇게 놀란 표정은 처음이네."

홍율이 내 어깨를 두들기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원래 넌 특진 대상이 아닌데, 힘 좀 썼다. 이 정도는 돼야지."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옆에 홍연에게로 갔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거 실화냐.

그녀가 홍연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있을 때도, 나는 여운에서 좀 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같은 최고 공로 자인 홍연 또한 공인 4급이 됐다.

웅성웅성.

모두가 놀라서 웅성거렸다.

전례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홍연에게도 몇 마디 건넨 협회장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뭐, 놀랐어? 성과를 내면 그에 걸 맞은 보상을 준다. 그게 협회의 방침이야. 지금 이 녀석들의 실적과 능력은 5급이라는 그릇에 담기에 부족해."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수천만을 구한 영웅들에게 박수!"

짝짝짝짝짝!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신나라 대표는 행복에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진보라는 눈시울을 붉히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옆자리의 홍연이 나를 보고는 싱긋 웃으며 속삭였다.

"축하해요."

아마도 오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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