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70화
[전부 뒈져라아아아아아!]
홍연은 재빨리 붉은 마력을 실크처럼 짜내 몸을 감쌌고 유신 또한 에아와 함께 쉴드의 벽을 수십 겹씩 쌓아 올렸다.
뒤이어 천장과 벽에서 떨어진 보랏빛 구체가 폭발하며, 막대한 섬광과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으……"
공격 일변도 스타일인 유신에게 있어 방어 마법은 가장 취약한 파트였다.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간 유신의 몸이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쿨럭!"
-탑주! 괜찮으십니까?
유신의 몸이 벽을 타고 아래로 주르륵 떨어졌다. 폐부가 찢어질 것 같은 격통이었지만, 유신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억지로 벽을 붙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는 그때, 유신의 눈으로 벽의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음?'
일순간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볼 때마다 느껴지는 두통 때문에 피했었지만, 지금 유신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움직이는 문자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틀림없어.'
유신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벽을 살피다가 천장으로 넘어갔고, 이내 보스존 전체를 훑었다.
'에렌델어는 아니지만, 틀림없는 마법 수식이다.'
던전의 모든 곳에서 마법 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흐…… 흐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전율했다.
"홍연!"
폭발이 걷히고 홍연은 다시 마인과 검을 맞대고 있었다. 다시 어깨에 일격을 허용한 그녀가 상처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쳤다.
"왜 그러십니까! 빨리 도와……!"
"5분! 딱 5분만 버텨줘."
홍연이 미간을 좁혔다.
이 사람은 또 알 수 없는 소리인가.
하지만 지금껏 그의 행보와 성과를 생각해 본다면,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그 정도의 신뢰는 줄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홍연이 기합을 내지르며 마인에게 덤벼들었고, 유신은 등을 돌려 수식을 살폈다.
현인의 눈이 부릅떠지며 마나의 흐름을 읽어나갔다. 그의 두뇌는 맹렬히 회전하여 수식을 잇는 규칙을 찾아냈다.
'이건 변환 수식이야.'
'이건 저항 수식이고.'
현인의 눈은 새로운 언어체계를 해석해서 유신의 머릿속으로 때려 박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문자는 의미를 이루고, 의미는 질서를 구성해.'
새로운 규칙성을 찾아 낼 때마다 짜릿한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 들었다.
믿기 힘들지만, 이 보스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이나 다름없었다.
두통이 치밀었던 것도 이유도 있었다. '현인의 눈'이 마법 수식을 보고 주목했지만, 하필 수식이 제3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기존 지식의 불일치로 두뇌가 받아들이지 못해 과부하가 걸리며 두통이 생긴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우연이야? 아니, 우연이 아닌가?'
유신은 벽에 손바닥을 짚고 눈을 감았다.
'하긴, 마법은 마나를 다루는 핵심코드. 이걸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였어.'
벽을 짚은 유신의 오른손에서 마나가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던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마법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세계의 불가사의한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낸 탐험가였다.
'뭘 하려는 거지?'
마인의 눈동자가 유신 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정신이 돌아버린 건지, 저 남자는 갑자기 던전 벽을 짚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곳은 몬스터의 영역이다.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다.
하지만.
'찜찜하군.'
마인이 유신을 향해 다가가려 했지만, 홍연이 온몸에 붉은 마력을 두르고 끈질기게 검을 휘둘러 왔다.
[미안하지만 아가씨는 이제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하아아아앗!"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며 불똥을 튀겨냈다. 홍연의 팔은 물리법칙에 의해 뒤로 밀려났지만 마인은 팔은 꽈배기처럼 꼬이더니, 탄성에 의해 본디의 팔 모양으로 돌아오며 역공을 가했다.
변칙으로 만든 완벽한 카운터 어택.
'죽어라!'
터업!
이때 홍연은 오른발을 들어 내려오는 마인의 팔을 옆으로 차 냈다.
'……뭐?'
마인이 다시 검을 휘두르자 홍연은 허리를 젖히고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게 숙였다.
상대의 반격에 발동하는 변칙 기술이었으나, 홍연은 그저 흘려보내는 것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홍연은 무릎을 세우며 검을 대각선으로 쳐올렸다.
까앙!
마인은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뭔가 이상하다.'
이어지는 검격도 홍연은 독특한 방법으로 저항해내기 시작했다. 축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인간의 검술이 아니다.
자세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타이밍에서든 검을 휘둘렀다. 검을 주고 받을수록 마인의 이마에는 점점 식은 땀이 흘렀다.
'설마……!'
마인은 온몸에서 소름이 오도도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변칙마저도……!'
[특성<검술 파훼 Lv3>가 새로운 특성으로 바뀌었습니다 - <마검술 파훼 Lv3>]
홍연은 패턴화를 마쳐 버린 것이다.
인간과는 다른 관절, 다른 근육, 다른 팔의 개수에 적응을 마친 홍연은 기어코 검술이라는 항목에 마인까지 쳐넣어 버렸다.
[……이!]
있을 수 없다.
입을 앙다물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이 작은 여자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 마인에게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정신 나간 괴물 같은 게에에에에에!]
이렇게 된 이상 초 변칙으로 승부한다. 더 과한 수 싸움으로! 더 과한 변칙으로!
마인의 팔 관절이 일곱 개로 분할된다. 손가락 마디까지 분할된다. 도합 열세 개의 관절이 기묘한 밸런스를 유지해 상대의 검을 흘려내고 그파동을 역분할해…….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그 모든 계산을 끊어내는 것은.
단순한 횡베기였다.
마인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홍연의 검격이 그의 몸에 깊은 검상을 냈고 피가 수도꼭지처럼 콸콸 솟구친다.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아!"
홍연이 씹어먹듯 소리쳤다.
그녀는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마인은 연달아 상처를 입으며 물러나야 했다.
[감히이이이이이익!]
흥분한 마인이 발을 크게 굴렀다.
발에서부터 뻗어 나간 혈관들이 보스존 전체로 파고들며 보랏빛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힘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신념도. 가족도. 미래도.
그리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 그자체조차도.
그런데.
그런데도 희생의 '희' 자도 모를 이런 풋내기들조차 이기지 못한단 말인가!
[끄아아아아아아아!]
마인은 신체 붕괴를 각오하고 최대 출력을 일으켰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마력양이었다.
마력의 파장에 휘말린 홍연의 발이 공중에 떠올라 밀려날 정도였다.
[끄으윽! 끄으으으으으!]
마인이 두 팔을 벌렸다. 보스존 전체에서 보랏빛 마력 구체가 모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수다.
홍연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세웠다. 마침내 모든 마력 구체의 크기가 팽창했다.
[모조리 사라져라아아아아!!]
격렬한 광소와 함께 마인이 두 팔을 휘둘렀다.
"……."
그러나.
"……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인과 홍연 모두 멍하니 있는 가운데.
"너 뭐 하냐?"
뒤에서 하염없이 벽을 짚고 있던 유신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황해하는 마인을 보며, 유신은 말했다.
"이 던전은 이제 내 거야."
마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개소리를!"
마인이 힘껏 발을 굴렀다. 보스존은 잠잠했다. 다시 한번, 몇 번이고 발을 굴렀지만 보스존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
'……이건! 이럴 수는……! 여긴 몬스터의 영역이고 재앙의 핵심이다! 컴퓨터도 아니고 해킹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어!'
절망에 빠진 마인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설마 네놈도 마인이냐!"
"그럴 리가."
유신은 씩 웃으며 다시 벽을 짚었다. 손바닥으로 흘러나간 마나가 보스존 전체로 뻗어 나갔다.
-동조화 완료. 미궁 던전을 장악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탑주.
유신은 눈을 감았다.
미궁 던전의 시스템. 100% 이해한건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재앙의 '완전 개방'을 위해서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바깥 던전과 미궁이 서로 연결되어야 했다.
아까 마인은 미궁으로 통하는 입구를 다른 던전으로 바꿔버렸다. 최소한 하나의 던전과 연결된 거니까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유신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굳이 통로를 하나만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보스존 전체가 뒤흔들린다.
마나에 스파크가 튀며 보스존 전체가 과부하된다.
"네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마인의 절규에도 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한반도에 열려 있는 수천 개의 던전 게이트가 모두 이곳으로 연동되기 시작한다.
마인이 유신을 막으려 했지만 홍연이 악착같이 검을 휘두르며 막아섰다. 잠시 후 그들의 주위로 수천 개의 포탈이 동시에 펼쳐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열린 포탈 안에서.
"……음?"
한 헌터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타난다.
"여긴 어디야?"
다른 포탈에서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전역의 공인 헌터들, 지금껏 도망치지 않고 던전을 돌고 있던 가면허 플레이어들까지. 하나둘씩 이 미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해, 해냈어! 우리가 미궁 던전을 발견했다!"
"아니 잠깐, 근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한 재앙의 보스존이라는 곳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채워지게 됐다. 마인에게는 보금자리가 처형장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도, 도망쳐야……!'
그때 마인의 옆에 열린 게이트에서도 긴 코트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를 알아본 마인의 표정이 더 없이 굳어진다.
집행부 공인 2급 임남진.
이제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강자들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자, 여러분."
짝. 짝.
모두를 불러모으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완전 개방까지 앞으로 10분 남았습니다."
남은 요금제 알려주듯 태평히 중얼거리는 유신의 말에 전국의 헌터들이 그를 바라본다. 유신은 손가락을 뻗어 마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 보이는 저 마인이 이 미궁 던전의 보스입니다."
"……뭐?"
헌터들의 눈빛이 급변한다.
"이런 씹……!"
마인이 재빨리 도망치려고 하는 순간, 그의 상체와 하체가 서걱! 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옆에서 있던 한 헌터가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끄아아아아아악! 끄윽!"
하지만 마인은 집요했다. 상체만 남은 그의 몸뚱이가 불룩 솟구치더니 살덩어리 그대로 쏘아져 나가 근처의 가장 가까운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공간을 통과해 포탈을 빠져나오자 황무지 지형 던전이 펼쳐졌다. 마인의 살덩이가 꿀렁거리며 날개 같은 것이 솟구쳤다. 그는 비행형 몬스터가 되어 날았다.
"허어억! 허억! 이 수모는 절대 잊지 않겠다! 나는 반드시 돌아오……"
쩌어억!
마인의 턱이 돌아가며 박살 난 치아가 하늘로 비산했다.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흔들린다.
"돌아올 일 없는데."
데바스타로 뒤쫓아온 유신이 픽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네 무덤이야."
"네노오오오오오오오옴! 끝까지이이이이!"
유신은 문답무용으로 건틀릿을 두른 오른손을 내질렀다. 황무지를 비상하던 마인의 몸이 다시 지면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우우우우쿵!
뒤이어 느긋하게 지면으로 내려온 유신이 쓰러진 마인을 향해 걸어갔다.
'끄으으으으!'
바닥에 처박힌 마인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적어도 저놈만큼은 길동무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느새 석화 능력자인 임남진이 따라붙어 마인의 몸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자네. 이름은?"
임남진이 일어나 유신에게 물었다.
"김유신입니다."
"정말 큰일을 해줬네."
어느새 마인과 유신의 주위를 대한민국 수백 명의 헌터와 플레이어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임남진은 등뒤에 매고 있던 검을 유신에게 내밀었다.
"빌려주지."
"감사합니다."
보스를 마무리하는 영광을 기꺼이 넘겨준 것이다. 유신은 고개를 숙이며 그의 헌팅 디바이스를 붙잡았다.
"우우웁! 우우우아아아아!"
마인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바라보던 유신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수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끝이다.'
망설임은 없었다.
유신은 마인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꽈드드득! 마인의 심장 대신 들어 있던 보스의 코어가 박살 났다.
[재앙을 클리어했습니다.]
[재앙 - 미궁 던전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분석 특성이 Lv.4에 도달했습니다.]
[분석 특성이 Lv.5에 도달했습니다.]
[이동 시전 특성이 Lv.3에 도달했습니다.]
[예측 회피 특성이 Lv.2에 도달했습니다.]
[지능이 10 올랐습니다.]
[순발이 10 올랐습니다.]
…….
정신없이 시야를 채우는 플레이어메시지들. 동시에 사방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잘했다! 신입!"
모두가 유신의 첫 실적을 축하했다.
"저 친구 데뷔전 한번 큰 무대에서 치르네."
"원래 레전드들이 뉴비 시절에 저런 커리어 쌓잖아. 될 놈이야."
"김유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어디 길드래?"
유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뒤따라 포탈을 넘어 따라온 홍연도 보였고, 마지막까지 헌팅을 했는지 진보라와 양희종, 조윤지의 모습까지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한마디 하지 않겠나?"
임남진이 말했다. 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유신이 픽 웃으며 말했다.
"이제 눈 좀 붙이러 갑시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한마디를 통해 느꼈고.
"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환호했다.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될 뻔한 대한민국의 제3차 미궁 던전.
완전 개방 5분 전에 극적으로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