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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68화 (68/337)

나 혼자만 마탑주 068화

드디어 의견이 일치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서 적을 살폈다.

던전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긁어모았는지 숫자는 500이 조금 넘어 보였다. 이런 현상은 처음 본다.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데 누군가의 의도로 몬스터들이 모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 근처에 다른 마인 파티는 보이지 않았다.

-검색 결과. 2랭크와 3랭크 위주의 몬스터들이며 4랭크 몬스터들은 후열에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에아의 브리핑을 들으며 주위의 지형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날로 먹을 방법은 없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개체 다수 발견. 암벽을 타거나 쉴드로 공중을 뛰어가는 방법은 불가합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는 건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병력을 동원해야겠다.

'남은 수량 전부 다 털어야겠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양 팔뚝에 달린 기기를 작동시켰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골렘볼들이 주르륵 쏟아져 절벽 아래로 대굴대굴 굴러 가기 시작했다.

"…… 뭘 하시는 거죠?"

"보면 알아."

등 뒤에 착용한 장치까지 빼서 탈탈 털었다. 100개가 넘는 골렘볼들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일제 발동.'

골렘볼들이 열리며 주위에 진흙을 흩뿌렸다. 골렘 도면과 마정석을 기점으로 머드 골렘의 살이 붙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백 마리의 골렘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순식간에 군대가 완성됐다. 몬스터들도 골렘들을 발견하고 으르릉거렸다.

-골렘 컨트롤을 시작합니다.

에아의 목소리가 들리기 끝나기 무섭게, 머드 골렘들이 절벽을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뭐 해?"

나는 넋을 놓고 있는 홍연을 보며 말했다.

"가자."

"아,네."

우리도 골렘들의 뒤를 따라 절벽을 내려갔다.

두 세력 간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몬스터들 또한 괴성을 내지르며 골렘 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어서 두 병력의 선두가 황야에서 마주했고.

콰콰콰콰콰콰콰쾅!

격돌했다.

중세시대의 기창부대처럼, 머드골렘들의 돌진에 2랭크 몬스터들이 볼링핀처럼 튕겨 나갔다.

돌진을 마친 골렘들은 전면의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자비 없는 일격에 괴수의 피와 뇌수가 정신없이 튀어 올랐다.

"…… 대단하네요. 이런 헌터 장비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전황을 지켜보던 홍연이 감탄하며 말했다.

"게다가 던전에서의 통신까지 가능하다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죠?"

"에헤이."

골렘들이 처치한 시체를 밟으며, 나는 두 팔을 세웠다. 파이어 캐논마법진이 개화하는 꽃처럼 하늘에 펼쳐진다.

"내 장사 밑천을 그렇게 쉽게 가르쳐 줄 것 같아?"

팔을 휘두르자 쏜살같이 날아간 화염구들이 몬스터들의 밀집 대형에 쏟아져 내린다.

순식간에 대형이 균일이 생기고, 그 틈으로 골렘들이 돌파하며 진형을 붕괴시킨다.

골렘과 마법사의 조합은 클래식하지만, 막강하다.

몬스터들의 비명이 창공에 울려 퍼진다. 팔다리가 찢겨나가고 몸뚱이는 화염에 불타 사라진다.

-돌진 진형을 재구축합니다.

-포탈까지 남은 거리 400M.

-골렘 12기 중파. 후방으로 이동 후 복구작업 개시.

-측면으로 파고든 들어온 3랭크 하이디우스 4기 제압.

에아 또한 신들린듯한 골렘 컨트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포탈의 모습이 보인다.

밀려드는 몬스터들의 파도도 머드골렘의 공세에 부서져 바닥에 깔린다. 전장은 온통 피로 질척였다.

이대로만 가면……!

쿠쿠쿵!

지면에서 솟구친 4랭크 샌드웜에 의해 전면의 진형이 붕괴됐다. 위에서 있던 골렘들의 몸뚱이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콰쾅!

오른편에서도 3랭크 대형 몬스터들의 공격에 머드 골렘들이 육탄전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문제없었지만 4랭크급의 고위 몬스터들은 대부분 후열에 대기하고 있었다.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할 때다. 역시 500기가 넘는 몬스터들을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몰살시키는 건 힘들다.

"제가 갈게요."

홍연이 나서려고 하자 나는 팔을 들어가로막았다.

"힘 뺄 필요 없어. 이 정도 거리까지 왔으면 충분하니까 바로 포탈로 들어가자."

"어떻게요?"

어차피 이것들을 다 싹쓸이할 생각으로 돌파한 건 아니다. 후속으로 들어올 헌터들을 위한 배려도 잔챙이들 수를 줄여놓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홍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잠깐만 실례할게."

"……?"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뭐예요 갑자기!"

"8강전 기억나지?"

그 말에 홍연은 내 신발을 바라보았다.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 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아니 잠깐만!"

"꽉 잡아."

"……야!"

내가 자세를 낮추자 그녀도 눈을 질끈 감으며 내 몸을 끌어안는다.

<데바스타>

두 발의 데바스타를 동시에 사용했다.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우리의 몸이 섬광처럼 날아간다.

'크으으!'

빨라지는 상태에 맞추어 현인의 눈이 극한의 몰입 상태로 몰고 간다.

몬스터들이 뻗어 오는 팔과 촉수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왔지만 아슬아슬하게 내 몸에 닿지 못하고 빗겨나갔다.

우리들의 몸은 몬스터들을 지나 그대로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아우. 머리야."

깨질듯한 두통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낯선 천장도 아니고 그냥 뻥뚫린 밤하늘이 보인다. 비슷한 시점에 홍연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발 착지에 신경 써주세요."

그녀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원래 착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야. 내가 뭔 에어백도 아니고 네 착지까지 신경 써줄 순 없잖아."

"……얄미워."

조그맣게 불만을 토로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지?"

"미궁 던전의 보스존…… 같아 보입니다만."

이곳은 우주 한복판에 뚝 떨어진 것처럼 사방이 새까맣기만 한 공간이었다. 바닥은 있었는데 유리처럼 아래가 훤히 비치는 타입이라 괜히 아찔했다.

허공을 더듬으며 바닥 끝으로 가보면 투명한 벽 같은 것이 만져졌다.

벽 너머로는 형광빛의 별과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었고 이상한 언어와 포탈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던전 밖에서 보던 하늘과 동일하다.

"선배."

"음?"

"저 포탈…… 던전 게이트 같지 않나요?"

"오호."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정말로 던전게이트였다.

게이트의 중앙에 비치는 풍경은 용암 지형, 빙하지형, 숲 지형 등 전형적인 던전의 형태였다.

아마도 현재 한반도에 출몰한 던전들의 입구인 것 같다. 그리고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이상한 문자들. 계속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움직이자."

"네."

이상한 곳에 오니 덩달아 나도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우주 미아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머릿속으로 몰려드는 막연한 두려움을 애써 비워내며, 우리는 던전을 탐험했다.

미궁이라는 이름처럼 이 공간은 특이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판이 떨어져 나갔다가 다른 곳으로 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고생깨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몬스터는 없었지만 학습이 안 된 지형이라 생소하다.

그나마 나는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현인의 눈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난해한 공간이라도 마나 밀도가 높은 곳을 위주로 조사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홍연. 여기야."

주위에서 단서를 살피고 있던 홍연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몇 번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녀석도 말 잘 듣는다.

내 옆에 선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다시 봐봐."

그녀는 잠깐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아!"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길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해당 지점에 발을 딛고서야 그 너머가 보이는 지점도 있었다. 우리는 혹시나 발판이 사라질까 봐 헐레벌떡 달려서 이동했다.

-탑주. 이 앞에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이제 긴장해. 보스가 있는 곳까지 다 왔나 봐."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장소까지 도달해, 길을 가로막고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서.

쩝쩝.

우적. 우적.

이상한 것과 대면했다.

누군가가 등을 돌린 채 뭔가를 먹고 있었다.

뭘 먹고 있는 거지?

…시체?

-탑주! 저 시체에서 이레귤러 보스 몬스터의 마력 파장이 느껴집니다!

'뭐라고?'

정말이었다. 피투성이였지만 저것은 이 미궁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게 틀림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먹고 있다.

저 사람이 보스를 죽였다는 건가?

그렇담 왜 미궁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는 건데?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이레귤러에게서 생명 반응이 느껴집니다.

에아의 말처럼, 널브러진 잔해물더미가 들썩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그자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인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때 인간이었던 자.

눈은 맛이 간 듯 초점이 없었고 입에는 피와 살점을 뻘겋게 묻히고 있었다.

"……마인!"

홍연이 검을 세워 들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초점 잃은 공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마인은, 갑자기 섬뜩하게 웃었다. 그러곤 손에 든 그 잔해물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꿀꺽.

목구멍을 타고 잔해물이 넘어간다.

동시에 그의 몸에 격렬한 발작이 일어난다. 팔다리와 목이 괴이하게 비틀어진다.

"잡아!"

나는 즉각 아이스 자벨린을 발사했고 홍연도 검격을 날려 보냈지만, 남자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팔에 의해 가볍게 튕겨 나갔다.

그 팔의 외형은 마치 이 지형의 배경처럼, 우주 일부분을 뭉쳐서 형상화 시켜놓은 것만 같다.

"흐하아아아……"

신체 변화가 진행될 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쾌감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에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

-저 마인은 탐식계 능력자입니다. 아무래도 마인이 이레귤러를 먹고 그 힘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당연히 이레귤러를 쓰러뜨리면 끝날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탐식계 마인이라니?

그는 힘에 만취한 표정으로 웃었다.

"결국 포탈을 찾아냈나 보군. 그런데 정말 너희 둘뿐이냐?"

홍연이 이를 악물고 뛰쳐나갔다.

마인은 양팔을 교차해 가슴에 올려놓았다.

팔이 그대로 살에 파묻혀 사라지더니 등과 가슴 복부에 이질적인 팔이 추가로 튀어나온다. 도합 여섯 개의 괴수의 팔이 길게 늘어져 홍연을 향해 휘둘러진다.

"흐읍!"

그녀는 경쾌하게 스텝을 밟으며 팔두 개를 피해냈다. 그러나 마인 쪽이 더럽게 빨랐다. 제3격을 피하지 못한 홍연의 몸이 부웅 날아가 내가 있는 곳까지 굴러왔다.

마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흐흑! 큭! 캬악! 히칙!"

마인의 다리가 바닥에 붙었다. 마치 식물이 뿌리내리듯, 그의 다리로부터 푸른 혈관 같은 것이 이 보스존 전체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심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당신도 한땐 인간이었잖아요!"

홍연의 외침에 마인은 안타깝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니, 안타까워 하는 게 아니다.

놈은 우리를 동정하고 있다.

"종(種)의 한계에 갇힌 안타까운 핏덩이들아. 너희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이 깨우침을 헤아리지도 못하겠지! 나는 재앙의 모든 진리와 실체를 이 몸으로 받아들였다!"

무슨 개소린진 모르겠지만, 놈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미궁 던전의 보스를 죽이고 그 코어를 삼킨 마인.

저 마인이 이제는 재앙의 최종 보스다.

'에아! 미궁 던전의 완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5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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