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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67화 (67/337)

나 혼자만 마탑주 067화

투콰아아아앙!

오른발로부터 파생된 칠흑의 마력이 웅덩이를 파고 들어갔다.

그 위력에 웅덩이가 통째로 뒤집히며 그 안에서 끔찍한 장기나 창자 같은 것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압력도 사라졌다.

"효인아아아아!"

동료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차진구가 들이닥쳤다. 그의 몸은 어느새 절반 가까이 몬스터화 되어 있었다.

반은 사람의 얼굴, 나머지 반은 해골이다.

터어어어어어엉!

에아가 펼친 쉴드와 차진구의 배틀액스가 부딪치며 굉음을 뿜어낸다.

나는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인들도 지 동료 목숨은 아깝나봐?"

"넌 어떻게든 여기서 쳐죽인다!"

그의 눈에 실핏줄이 터지며 핏물이 철철 흘러나온다. 나는 쉴드를 더 겹쳐 쌓으며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너네도 인간이면서 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거야?"

-그극! 그그그그극!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변조됐다. 이내 반남은 인간의 형태도 사라지며 완전히 언데드화된 얼굴이 드러난다.

역시 마인과는 대화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인간 형태일 때 이야기를 시도해 봐도 정신이 일그러져 궤변만 늘어놓는 놈들이라고 하니까.

나는 검지를 치켜세웠다.

<어스 클레이모어>

숙련도 100%의 지면검이 솟아 나와 녀석의 가슴을 찢었다. 차진구는 바로 방향을 틀어서 돌진하려고 했지만, 녀석의 진행 방향 앞으로 다시 지면검을 일으켰다.

'경쾌하게.'

내 손가락이 지휘자의 봉처럼 사뿐사뿐 춤을 춘다. 그때마다 집요하게 솟구쳐 오르는 지면검이 녀석의 몸뚱이를 찢고 갈라놓았다.

-기기기기직!

다리에 깊은 상처가 난 녀석이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나는 빠르게 라이트 데바스타를 준비해오른발에 장착한 후 거리를 쟀다.

'에아. 데바스타의 사거리 표시를 부탁해.'

-예. 출력합니다.

에아가 마법진의 수식을 프로그램처럼 변환해 내가 사거리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현인의 눈에 띄워주었다.

허공에 데바스타의 거리가 검은색줄로 표시된다.

데바스타는 공간 도약이 가능한 기술. 최대 사정거리까지 이동하면 운동량이 0이 되며 후속 동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대 사정거리에 도달하기 전에 중간에 다른 물체가 있다면?

나는 차진구의 뒤까지 최대 사정거리를 늘린 다음, 데바스타를 발동시켰다.

투콰악!

검은 연기와 함께 전진한 내 무릎이 정확한 각도로 차진구의 안면에 틀어박힌다.

녀석은 허공에서 회전하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바닥에 착지하는 즉시 검지를 치켜세웠다.

콰득!

녀석의 왼쪽 가슴을 뚫고 지면검이 솟구쳐올랐다.

-기기기긱! 기기기기기기긱!

언데드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나는 그대로 검지를 몇 번 더 움직였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드득!

지면검이 양 팔다리를 하나씩 꿰뚫는 것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시켰다.

'좋아.'

마법을 발현하면서 함께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건 '커맨드 마법'의 응용이다. 내가 쓰는 파트는 마법진이지만, 시전 속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써먹고 있다.

마탑에서의 연구 성과에 만족하며, 나는 차진구를 향해 걸어갔다.

"말해."

자세를 낮추고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인 파티는 너희가 끝이야? 다른 놈들은?"

-탑주! 위험합니다!

에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 들이닥쳤는지 도마뱀의 모습을 한 마인이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릉.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마인의 몸에 대각선으로 붉은 실선이 그려졌다.

"……."

마인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쩌어어어어억!

그대로 몸이 쩍 벌어지며 반으로 두 동강 났다. 핏물이 비산했고, 그 안으로 보이는 장기들이 생동감 넘치게 꿈틀거렸다.

쿵!

마인의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너머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가 검을 휘두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선배."

……워우.

역시 홍연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나무 괴물은?"

홍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는 옆으로 턱짓 했다. 팔다리가 나무로 변해 있는 임소희는 가슴에 구멍이 휑하니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너 진짜 괜찮아?"

"네."

그녀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마인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모양을 한 괴물을 죽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고통에 버둥거리고 있는 언데드가 된 차진구를 바라보았다.

'놈에게 정보를 얻기도 힘들 것 같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치를 치켜세웠다. 푸슉! 소리와 함께 언데드의 움직임이 멎었다.

털어내듯 한숨을 쉰 나는 홍연에게 말했다.

"가자. 아무래도 이 던전에 포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네."

희망이 생겼다.

가정은 맞아떨어졌다. 마인들은 공략조에 참가해 포탈이 존재하는 이던전을 발견해냈고, 협회에 허위보고 했을 것이다.

그 뒤엔 함정을 파놓고 포탈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침입자들을 제거하려 했다.

이후 수상한 냄새를 맡은 협회가 '던전 재확인' 절차를 시행했지만, 이 던전은 빠르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재확인까지 이루어졌다.

"이 녀석들 말고 다른 파티가 하나 더 있을 수도 있어."

홍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겠네요."

그녀가 앞서 걸어가자 나는 손가락으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이쪽이야."

"네?"

"여긴 놈들이 만든 함정이고, 보스존은 이쪽."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단서 타임 때 일부러 말 안 한 단서들이 몇 가지 있었거든. 속아주는 척하느라 여기까지 온 거야."

물론 사실은 에아가 던전을 분석해서 가르쳐준 거지만 말이다.

우리는 언덕을 넘어 빠르게 보스존을 향해 이동했다. 숲 지형의 던전이 흔히 그렇듯, 생각보다 넓었다.

진행은 순조로웠지만 지금까지 단한 마리의 몬스터도 마주하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 불안하긴 했다.

"선배."

그때 홍연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선배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그래. 그건 왜?"

"마인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아서."

마인은 아직도 도시 전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대중에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재앙이다. 그들은 무척 조심스럽고 은밀하며, 감염 재앙과 구분이 쉽지 않다.

홍연 또한 이 상황을 혹시 모르니대비한다는 생각은 가졌겠지만 나처럼 확신은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 마인 사태에 휘말린 적이 있었거든."

"……아."

"그래서 남들보다 좀 잘 아는 것뿐이야."

그녀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가 고맙다. 그리 회상하고 싶은 추억은 아니니까.

"도착했다."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서 고개를 들어 너머를 바라보았다. 깎아내린 듯 한 절벽 너머로 웅장한 협곡이 있고, 그 밑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이 그곳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숲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더니, 여기 다 모여 있었구나."

"선배. 저길 보세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부릅떠졌다.

몬스터 무리의 끝에 암청빛의 포탈이 보였다.

'드디어……!'

드디어 찾아냈다.

이 빌어먹을 재앙을 끝낼 수 있는,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을.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돌파하자."

내 말에 홍연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 둘이서 저 몬스터들을 돌파하고, 포탈에 들어가서 이레귤러 보스까지 잡자는 건가요?"

"바로 그거야."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피차 컨디션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라의 명운이 걸린 문제인 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해요."

"그럼 네 생각을 말해봐."

"일단 입구로 돌아가죠."

홍연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던전 밖으로 나가서 협회에 연락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포탈 발견 사실을 알리고 프로 헌터들을 불러모아야 합니다."

"그러기엔 시간이 문제야. 우리가 되돌아가는 시간, 그리고 프로 헌터들이 도착할 시간까지 고려하면 '완전 개방'은 막을 수 없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거라고."

"여기서 무모하게 덤볐다가 우리가 당한다면요? 이 던전은 발견되지도 못한 채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오겠죠. 모험을 하는 건 좋지만 이번 만큼은 리스크가 지나치게 커요. 완전 개방이 되는 한이 있어도 안전하게 가야 해요."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좋아. 그럼 협회에 연락해서 장소를 알려준 다음에 출발하지 뭐. 불만 없지?"

"……혹시나 해서 상기시켜 드리는 건데, 여기는 던전 내부입니다."

"나는 통신이 가능해."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요?"

"내 능력으로 마나의 주파수를 특정하게 바꾸는 방법인데,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거야."

그녀에겐 그렇게 둘러대고는 눈을 감았다.

'에아.'

-네, 탑주.

'내가 협회장 직통 번호를 알려 줄테니까 서진이한테 연락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직통으로 전화해도 그녀가 정서진을 믿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홍연에게 말했다.

"혹시 언니한테 너 자신을 증명할만한 사연 같은 거 뭐 없어? 너만 아는 비밀이라던가."

그녀가 째릿 노려보았다.

"……선배가 들으면 비밀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 그런 거 따질 때야? 뭐든 괜찮으니까 말해줘."

"정말로 통신은 가능한 거겠죠?"

"진짜라니까. 이 와중에 내가 거짓말하겠냐?"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언니, 아마조네스도 아니고 자기 보다 강한 남자랑 결혼하길 원한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맞선이 들어오면 만나보는 게 어때요? 라고 전해주십시오."

"……너 멀쩡한 얼굴로 되게 잔인하게 말한다."

나는 협회장에게 전달할 정보와 홍연의 메시지까지 에아에게 전달했다. 에아는 정서진에게 그 말을 전달했고, 잠시 후.

-탑주. 협회장이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 협회장이 뭐래?'

-갈아 마셔버리겠다는데요.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갈아 마셔버리겠대."

"……정말로 연락이 된 겁니까? 언니의 반응이 맞네요."

나는 다시 에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협회장이 우리 말을 믿어준 거야?'

-처음엔 아니었지만, 홍연 님의 메시지로 간신히 믿어주는 눈치였습니다. 탑주와 홍연 님이 함께 있고, 포탈을 발견했다는 사실까지 알렸습니다.

'그럼 협회장의 지시는?'

-가용한 프로 헌터 전력을 최대한 빨리 그쪽으로 보내겠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에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시간이 없다. 가능하면 미궁 던전은 너희가 처리해라. 라고 말했습니다.

'뭐, 역시.'

나는 홍연에게도 그 말을 전했다.

"그런 지시가 떨어졌다면 어쩔 수 없군요."

홍연이 절그럭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뚫고 가죠."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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