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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64화 (64/337)

나 혼자만 마탑주 064화

대한민국은 완전한 패닉에 빠졌다.

계엄령과 최고 단계의 전투준비태세가 연이 어떨어지고, 육군이 움직였다.

서울과 전남 지방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해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상황을 지켜보며 집에서 버티고 있던 사람들도 전남으로 향할 준비를 했고, 한국의 교통 마비는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전남은 현재 피난민들로 발 디딜틈도 없을 정도였다. 초코파이 하나에 5만 원, 라면은 20만 원이 넘는 괴이한 물가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국군이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을 때, 플레이어들은 현장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계엄령까지 떨어진 이상, 나라에 이름을 올린 플레이어라면 누구든지 징집 대상이 됐다.

파티 등록을 하지 않아 '공략조'에 속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호남에서는 플레이어들을 찾아 내 파티를 만들게 하고, 강제로 던전 공략에 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경찰들은 도로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하늘엔 마나 감시 장비가 떠다녔다.

'니들한테 들어가는 세금이 얼만데 이럴 때만 숨어 있냐! 당장 나가 싸워라!'

'내가 플레이어 각성하고 싶어서 각성했냐? 이건 중대한 인권 침해다!'

여유가 사라진 사람들에겐 이젠 악만 남았다.

"……이거 다 실화죠?"

휴대폰으로 뉴스를 훑어보고 있던 진보라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던전에만 있다 보니까 현실감각 다 죽은 것 같아요."

"부모님 연락은 됐어?"

"네. 이제 호남고속도로 타셨대요. 얼마나 막히는지 찔끔찔끔 움직이고 있나 봐요."

"별일 없으실 거야."

우리는 여전히 경북지방을 돌며 던전을 클리어하고 있었다. 그렇게 던전이 생성되는 족족 제압하고 다녔는데, 아직도 포탈을 찾아 내지 못했다.

이번엔 마탑의 정보가 틀린 걸까?

우리조차도 우리 정보에 대해 긴가 민가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경북에 보스존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스는 진작에 뿌려놨지만, 워낙에 미궁 던전에 대한 소문과 허위정보가 많아서 큰 의미는 없었다.

일단은 재앙의 보스존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라도, 피로가 쌓인 정서진은 먼저 마탑으로 복귀시켜서 자료를 더 모으도록 했다.

은솔도 많이 지쳐 있어서 함께 데려갔다. 형상 기억 합금으로 만들어진 마탑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리라.

두 사람이 떠나고, 차 안에는 나와 진보라, 그리고 5급 두 명이 남은 상태였다.

양희종은 관계자에게서 온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전국의 플레이어들이 쥐잡듯이 뒤지고 있는데 5일이 넘도록 못 찾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다.

일단 미궁 던전 범위는 남한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전라도 일부를 포함하지 않고 북한의 강원도 일부를 포함한다.

그래서 북한 쪽에 보스존이 나타났지만, 남한의 파괴를 위해 일부러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설이 나돌았다.

물론 나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남한이 몬스터랜드화가 되면 자연히 북한도 위험해진다. 공존을 위해서라도 그런 짓은 말이 안된다.

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설은 허위보고된 던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던전 게이트의 수가 워낙 많아서 정부에서는 공인 헌터들뿐만 아니라 가면허 플레이어들까지 대거 활용해서 탐색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중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클리어했다고 허위보고를 한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증 절차가 단일화되지 않아서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악용될 여지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나온 마정석을 확인하는 건데, 지금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파티마다 일일이 검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협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신나라 대표가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공인헌터들을 풀어서 '던전 클리어'가 의심되는 던전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도 한계는 명확하다. 공인 헌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이 순간에도 새로운 던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해서 포탈이 있는 던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새로 생겨나는 던전의 제압과, 이미 클리어된 던전의 확인.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협회장 그 아줌마도 답답하겠네.'

이런 물량 공세의 재앙에는 1급이나 2급 같은 최상위급 헌터들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들도 직접 던전에 들어가서 일일이 포탈을 찾아야만 했다. 클리어속도에 차이가 날지언정 수고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도착했습니다!"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벌써 다음 던전에 도착했다. 나는 진보라를 챙겼고 양희종은 조윤지를 깨웠다.

"윤지 씨. 일어나."

"……으음."

조윤지는 퀭한 얼굴로 눈을 비볐다. 화장이고 단장이고 씻을 시간도 없이 던전을 구르는 바람에 그녀의 모습은 초췌함 그 자체였다. 좀비처럼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며 그녀가 투덜거렸다.

"……하아아, 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결국 이렇게 빡세게 마정석 벌어도 한국이 멸망하면 답 안 나오는 거잖아."

진보라가 그 말을 받았다.

"마정석 잔뜩 챙겨서 뗏목 만들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튀죠 뭐."

"……너 바보지?"

"헤헤."

그렇게 틱틱대던 두 사람도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니 꽤 친해져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던전게이트로 향했다.

"갑시다."

"힘내서 한탕 더 하러 가자고요!"

우리는 오늘도 던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재앙, 미궁 던전-여섯 번째 날.

결국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피난선을 다수 운용하여 고립된 사람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의 수는 부족했고, 부자나 권력자들의 가족들이 빠져나가는 수단일 뿐이라는 의혹만 무성해지는 등, 승객 투명성에서 노골적인 비난을 받았다.

협회 또한 결단을 내렸다. 공인 헌터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플레이어들에게 '던전 재확인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건 꽤 큰 의미가 있었다.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우리가 놓친 던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 지휘앱에서 던전은 녹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빨간색은 방금 열린 던전.

노란색은 파티가 투입되어 클리어한 던전.

녹색은 이미 클리어한 던전을 또 다른 파티가 투입해 포탈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던전을 말한다.

협회 지휘부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새로 열린 던전위주로 파견을 보냈지만, 체력 소모가 심한 파티들은 노란색 던전으로 보내 재확인 작업을 시키는 식이었다.

하지만 협회의 움직임을 '쓸데 없는 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직 클리어하지도 못한 던전도 많은데 왜 굳이 일을 만들어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어느 쪽이든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한편.

제주 특별자치도. 비대위 임시 지휘소.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쾅!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양이 탁자를 내리치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 앞에는 헌터협회장 홍율이 불려와 있었다.

"던전 재확인 리스트?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얼마나 말했어! 죽어도 하고 싶다면 협회 인력만으로 비밀스럽게 진행하라고 했지? 근데 그걸 그냥 공식으로 일반에 공개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그녀는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긁어 부스럼을 왜 내! 국민들이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어! 신뢰를 기점으로 전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괜한 논란 만 만들고 말이야! 이거 다 누가 책임질 거야! 어?"

"이, 이보게 협회장! 입이 있으면 뭐라도 대답을 해보게!"

그때였다. 꾸벅꾸벅하던 그녀의 고개가 90도로 푹 내려갔다. 그러다가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더니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아으, 더럽게 시끄럽네."

"혀, 협회장!"

홍율의 황금빛 눈동자가 이채를 발하자 박정양이 움찔한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주위의 비대위의원들이 소리쳤다.

"이게 무슨 무례한 태도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어디긴, 개똥쓰레기들의 폐기물처리장이잖아?"

홍율의 일침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참담한 언사에 역으로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헌터 협회는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조직.

하지만.

홍율 개인은 아니다.

"이딴 같잖은 잡 소리나 하려고 현장에서 뛰는 사람 불렀어? 비대위권위 세우고, 보여주기식 정치질하는 게 인명보다 더 중요해? X발, 답도 없는 빡대가리 새끼들아! 니들 지금 안전한 곳에 있어서 상황파악 안 되는가 본데. 서울에서 제주까지 헬기 타고 오는 시간이면 던전 스무개는 더 돌았어."

"혀, 협회장! 그 무슨 참담한 언……!"

"참담한 건 똥만 든 네 대가리고요. 니들끼리 똥꼬 핥아주면서 잘 살지 왜 남 불러들여 지랄은 지랄이야?"

얼굴이 시뻘게진 비대위 의원은 '이……! 이……!'만 반복했다.

홍율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최강의 헌터다.

그녀를 원하는 나라는 수없이 많다. 만약 그녀가 불만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귀화라도 한다면, 대한민국 헌터계 자체가 붕괴 위기에 처할 정도였다. 그 정도의 영향력을 고작 개인이 갖춘 것이다.

홍율은 픽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니들 헛짓거리 어울릴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는 게 이득이지. 야."

뒤에서 있던 집행부원이 고개를 숙였다.

"예, 협회장님."

"나 몇 시간 잤냐?"

"3시간 주무셨습니다."

"너무 퍼 잤네. 이제 일하러 갑니다."

박정양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 이봐 협회장! 잠깐!"

"3초 낭비. 방금 여섯 명은 더 뒤졌어요."

"……."

"나 놔둬요. 진짜 간다."

"멈추시오. 협회장."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 중, 키가 늘씬한 장년의 한 남자가 일어났다.

홍율이 돌아보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골든 타임에 최고 전력을 불러들여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의 사정이 있소. 명목을 주시오."

"명목?"

"새로운 던전 공략을 미루면서까지 던전 재확인 절차를 강행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명목 말이오."

인간의 실수냐.

아니면 '미궁 던전'의 보스존으로 향하는 던전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 뿐이냐.

이상 현상은 말 그대로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전무한 현상이니 오로지 추측밖에 할 수 없다.

"당연한 거 아녜요? 차장관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보스존으로 향하는 던전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봐도 사람을 죽이는 건 언제나 사람이었는데?"

"……설마."

"새삼스럽게 뭘. 갑니다."

홍율은 그 말만 남기고 비대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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