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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63화 (63/337)

나 혼자만 마탑주 063화

"조윤지 선배."

양희종을 태운 다음, 세상 다 산것처럼 멍해 있는 조윤지에게 다가갔다.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배님?"

"끼야아아아악!"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왜 저래?

"자,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내가 막 원래 이렇게 꼬인 성격은 아닌데 돈 더 받을 생각 같은 건 없었는데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 봐요! 막 신나라 대표님이 어린 놈한테 굽신거리고 잘 봐달라고 그러니까 그게 그냥 쫌 그랬어요! 질투 났어요! 단체 톡방에서 이야기하니까 다들 막 버릇 좀 고쳐주라고 해서, 그래서 조금 튕겼을 뿐인데 양희종 헌터가 이상하게 대화를 꼬아버리면서 일이 그렇게 된 거예요! 내가 미쳤지 진짜 아!"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까지 술술 꺼내고 있는 그녀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 아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내가 뭔 나쁜 짓이라도 한데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 참. 나 한 번 저질렀었지.

통계에 의하면, 던전에서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공포스럽다고 대답한 플레이어들의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보상 문제나 아이템 루팅 등에 의견이 조금 갈리는 순간, 함께 고난을 헤쳐온 사람들끼리도 피바람 불기가 부지기수다.

헌터들은 그래서 민감하다. 소속된 팀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이런 매니지먼트에서 용병처럼 뛰고 있는 헌터들은 더더욱.

그래도 조윤지는 정도가 좀 심한 편이었다.

뭔가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래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번 미궁 던전 이벤트를 포기하고 돌아갈 것인지. 우리와 계속 같이 다닐 것인지.

"나가시고 싶으시면 나가셔도 괜찮아요."

근데 저런 발작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면, 미궁 던전이고 뭐고 일단은 파티에서 나가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때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그맣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네?"

"신나라 대표님이 부탁하셨으니까……"

으음.

나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서 더 캐보면 뭔가 깊은 사생활 쪽으로 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냥 선을 긋기로 했다.

"믿을지 말지는 선배 자유지만, 계속 저희랑 같이 다니실 거면 다신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제야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도로 너머 경관을 바라보았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그녀가 자조적인 투로 말했다.

"으으, 진짜 후배한테 못 볼 꼴을…… 미안해요. 제가 좀 멘탈이 깨져 버리면 맛탱이가 확 가서."

"……하하."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직된 분위기도 풀 겸, 나는 차로 향하던 길에 말했다.

"선배."

"네."

"옷 안 갈아입어도 괜찮아요?"

그녀가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사타구니 쪽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확인했다. 뒤늦게 고개를 돌렸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조윤지의 얼굴이 더 할 수 없을 만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으아아앙! 역시 콱 죽어버릴 거야아아아!"

나는 도로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그녀를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했다.

* * *

이런 저런 해프닝이 있었던 미궁 던전 첫날.

우리는 협회 지시로 4랭크 던전두 개에 3랭크 던전 세 개. 2랭크 던전 하나를 맡아서 처리했다.

도합 6개 던전 클리어.

마지막 던전은 새벽 5시에 끝났다.

다행히 가람 매니지먼트에서 센스있게 근처에 숙소를 잡아둬서 이동거리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으으, 몸이야. 삭신이야."

차에서 진보라가 앓는 소리를 냈다. 옆에는 은솔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선배님! 들어가면 씻을 거예요?"

"아니. 바로 자야겠다."

물론 나도 미친 듯이 피곤했다. 마탑의 시련이 굵직굵직했다면, 이번 미궁 던전의 순회공연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정서진도 피로한 얼굴이었고, 공인 5급 두 사람도 지쳐서 눈만 끔뻑끔뻑 뜬 채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헌터님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지친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

"여러부운!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숙소 앞에는 신나라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헐레벌떡 차 앞까지 뛰어나온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인사하며 안부와 몸 상태를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대표님이 왜 여기 있어요?"

"그, 그으, 너무 죄송해서요! 유신씨 매니저 하기로 했는데 너무 바빠서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고……!"

"하하, 이렇게라도 와주셨으니 감사하네요."

그녀는 우리가 지쳐 있는 걸 알고 긴말 없이 숙소로 안내했다. 방은 뜨끈하게 데워져 있었고 샤워와 식사 준비도 되어 있었다. 물론 죽어도 씻어야겠다는 진보라 외에는 다들 침대로 직행했다.

"유신 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팀원 간의 불화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마음 쓰지 마세요. 이미 우리끼리 잘 해결했어요."

신나라는 이미 우리 일에 대해 이미 보고 들은 뒤였다. 그녀의 시선이 뒤쪽의 조윤지에게로 향했다.

"조 헌터님은 나 좀 봐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조윤지는 금방이라도 무릎부터 꿇을 기세였다. 신나라가 그녀를 데리고 나가고, 잠이 조금 깬 나는 샤워실로 향했다.

뜨끈한 욕조에 들어가자 피로가 싹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녹이면서 스마트폰을 켰다.

[단독, 재앙 첫째 날,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 발견 실패.]

[성공적인 첫째 날. 마정석 수입만 수천억대 추정.]

[집계된 사망자 수 32명…… 일반던전보다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 많아.]

[사망자나 부상자는 가면허 플레이어가 대부분…… 마음만 앞선 가면허 플레이어들이 너무 서두르려는 경향 보여.]

[한국 아카데미 오연희 교수, 둘째날은 더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 "던전은 충분하니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공략해 주세요"……]

'첫째 날엔 아무도 못 발견했구나.'

사망자나 피해자도 있었지만, 그거야 대 헌터 시대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니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커뮤니티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광분상태였다.

다들 풍족한 공짜 던전에 눈이 돌아갔다. 그들은 첫날 마정석 수익에 대해 이야기하며 열을 올렸고, 거기에 자극받은 사람들도 둘째 날에 제대로 본전을 뽑겠다며 다짐하고 있었다.

'다들 미쳤구나 미쳤어.'

이번 미궁 던전사태로 한국은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었다.

* * *

재앙, 미궁 던전-둘째 날.

잠은 고작 세 시간 정도밖에 못잤다. 우리는 바로 근처에 열린 던전으로 보내졌고, 그곳을 클리어하자마자 휴식도 없이 다음 던전으로 향했다.

빠듯한 스케쥴에 진보라나 은솔은 물론, 프로인 공인 5급들까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정서진은 '철인' 능력이 있었지만, 철인이라 해도 피로를 없애주는 게 아니라 경감시킬 뿐. 이미 마탑의 격무로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이번 사태까지 겹치니 정서진은 이중으로 힘들어했다.

부족한 잠은 차로 이동하면서 잤다. 다들 던전 하나를 돌고 차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골며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둘째 날 일정을 모두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오늘도 포탈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재앙, 미궁 던전-셋째 날.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확인해 봤는데 역시나 포탈 발견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다.

조금씩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지만, 광기에 빠진 플레이어들의 의욕에 가볍게 묻혀버리고 말았다.

-요즘 너무 행복함. 365일 내내 미궁 던전이었으면 좋겠다.

-정산일만 보고 산다. 그동안 모은 마정석 다 처분하면 얼마를 번 거야?

-마정석 계산기 어플 돌려봐. 링크옆에 있음.

-나도 이번 주지나면 슈트 한 벌마련할 수 있을 듯.

아직도 미궁 던전을 잭팟, 한탕의 기회로 여길 뿐이지, 재앙 자체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재앙, 미궁 던전-넷째 날.

오늘도 미궁 보스존으로 향하는 포탈을 발견하지 못했다. 슬슬 피로로 나가떨어지거나 부상당하는 플레이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서는 '졸음사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급기야 협회의 던전 공략 지시를 거절하는 파티들도 생겼다. 나중에 핸티캡이 들어오건 말건 일단 우리가 살고 보자는 마인드였다.

적지 않은 파티들의 이탈로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파티들에게 가중되고 있었다.

미궁 던전에 빠르게 불타올랐던 만큼, 열기가 식는 것도 빨랐다.

한편 SNS에서는 미궁 던전을 제시간에 클리어하지 못할 시 발생할 사태에 대한 불안이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클리어 실패의 예시는 헌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개발도 상국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미궁 던전은 세계 어디에서 열리든 모두 같은 룰이다. 7일 안에 보스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그동안 열린 모든 던전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해일처럼 밀려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궁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 지역은 하나도 빠짐없이 ' 몬스터 랜드화' 됐다.

전문가들은 7일 차까지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대파란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다.

영토가 황폐화되는 것은 물론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예상 사망자 수는 무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낙관론자들도 적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뭔 재난 영화도 아니고 멸망? 하여간 냄비들이랑 음모른자들이 제일 문제다.

-선동충들한테 낚이지 맙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수. 이게 뭔7~8랭크도 아니고, 고작 4랭크 재앙 하나 못 깬다고 나라가 망하겠냐? 우리 나라 1급, 2급 헌터들은 장식이냐?

-믿을 만한 찌라신데, 사실 협회에서 보스존 찾아냈다고 함. 과격파 플레이어들이랑 중국 헌터들 눈치본다고 발표 안 하는 거.

그리고 재앙, 미궁 던전-다섯째날.

낙관론자들은 사라졌다.

국내의 모든 도로가 마비됐고 질서는 파괴됐다. 마트와 편의점이 털렸고 무법자들이 날뛰었다.

그나마 호남 지역은 미궁 던전의 범위에 벗어난 지점이었기에, 전국민들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안전지대로 향했다.

대통령과 국회를 중심으로 한 '비상 대책 위원히'는 민정 안정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발표한 지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철수해 제주도에 임시 기지를 꾸렸다.

그 사실이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며 파란이 일어났다. 아직도 서울인구가 절반 넘게 남아 있는 상태였고, 정부는 국민을 버렸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대통령과 비대위는 진작에 파견제한을 풀고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라고 밝혔지만, 각국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도와준다고 손 내밀었을 때 내쳤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도움을 요청하냐는 것이었다.

그나마 미국, UN, 유럽연합에서는 즉각 한국에 추가 헌터팀들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소집시간과 비행시간까지 고려하면 조금 늦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가장 빠르게 전력을 파견할 수 있는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 등은 아직 한국 정부에 앙금이 남아 있는지 움직임이 더 몄다.

그들은 '한국이 한번 지원팀을 해산시키는 바람에 소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원론적인 소리만 되풀이했다.

당연히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해외 지원 왜 오냐고 반대했던 냄비들 다 튀어나와라. 니들 때문에 나라 말아먹게 생겼다.

-당장의 이득에 눈멀어서 숲을 못봐요. 한심하다 진짜.

-나라도 괘씸하고 더러워서 지원오기 싫을 듯.

물론 외국 헌터 출입에 대한 비난여론을 형성했던 야당과 언론,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오지 말라고 했다고 진짜로 못 오게 하냐', '대통령의 판단력 부재', '줏대 없이 휘둘리는 갈대 정부' 등 역으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뭐, 그런 거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 말에 책임을지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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