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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60화 (60/337)

나 혼자만 마탑주 060화

H-D1은 내가 속한 팀 이름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양희종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야, 반가워요! 잠깐만요."

양희종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7번, 9번, 16번 갈아 끼워줘요."

"알겠습니다."

기술자들이 다가와서 슈트에 관 같은 것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푸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슈트의 부품이 떨어져 나갔다.

점검을 모두 마친 양희종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가람 매니지먼트 소속. 공인 5급 헌터 양희종이라고 해요."

"김유신입니다."

"신나라 대표님께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번에 아카데미 조기 졸업했다며? 아, 내가 선배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물론이죠."

양희종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가만 보자. 아카데미 조기 졸업이면 전형적인 엘리트 루트네? 히야, 나는 가면허 출신이라 그런 거만 보면 부러워서. 근데 또 아카데미 출신 애들이 현장에 가면 겁나게 얼을 타요. 아, 물론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소리야. 무슨 말인지 알지? 꼭 몬스터 오는데 선생님 찾는 놈이 있다니깐."

"없진 않죠."

나는 웃는 얼굴로 말을 받아주며 생각했다. 남자 신나라인가? 말이 더럽게 많았다.

"어서 와요."

대화를 나누는 우리 옆으로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슈트에, 웨이브 진 머리를 길게 풀어서 내린 20대 후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커리어우먼 같은 분위기에 똑 부러질 것 같은 인상이다.

"공인 5급 조윤지라고 해요."

나는 그녀와도 악수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유신입니다."

"혼자 오셨어요? 그쪽 팀원도 한 분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이제 곧 올……"

"안녕하세요!"

말하기 무섭게 진보라가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뛰어왔다. 그러곤 우리 모두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카데미 소속 플레이어 진보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카데미?"

조윤지는 그렇게 되묻고는 티 나지 않게 코웃음을 흘렸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런 대. 이미 이야기된 내용일 텐데.

"공인 5급 양희종이라고 해."

양희종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진보라의 차림을 위아래로 홅어보고 있었다.

"어이쿠야, 이렇게 어린 학생이 몬스터를 잡는다고? 걱정돼서 어쩌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찐득한 시선에도 진보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잘도 받아주었다.

다시 내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저희 둘이 고정 멤버고요. 사전에 공지했듯이 게스트가 두 사람 있습니다."

게스트(Guest). 즉 파티의 정규 멤버가 아닌 인원이다.

보통 던전 경험을 쌓기 위한 초보플레이어들, 그리고 짐을 들어주거나 몬스터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는 스케빈저들이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내가 데려왔다는 게스트들은 다름 아닌.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서진과 은솔이다.

두 사람을 본 5급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죠?"

조윤지가 나를 응시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어디 소꿉장난 왔어요? 아무리 게스트라지만 파티 구성이 이게……!"

"워, 워, 윤지 씨. 저쪽에 작은 애가 다 듣겠네. 애 앞에서 막 목소리 높이면 못 써."

양희종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지만, 그 또한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히 말했다.

"게스트 멤버일 뿐인데 뭔가 문제있나요? 이미 대표님을 통해 이야기는 다 된 걸로 아는데요."

파티를 구성하기 전에, 나는 신나라에게 조건을 이야기했다. 아카데미 출신인 나와 진보라는 고정 멤버로, 거기에 더해 게스트로 두 사람을 데려갈 거라고.

신나라는 수용했고, 그 조건을 받아들일 인원을 구했다. 그런데 무려 공인 5급 두 사람이 저 조건을 수용해서 우리 파티에 들어온 것이다.

우수 전력인 저들이 왜 들어왔는지 의문이었지만 신나라는 내게 이런 메시지도 보냈다.

[5급 분들이랑 같은 파티라고 해서 전혀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두분도 이 상황을 감안하시고 들어오는 거예요. 대신 차후 던전 출장에 메리트와 보너스를 받기로 약속했거든요.]

간단히 말하면 이게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신인을 키워주는 방식이다.

이 헌터들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고, 그 대가로 보상도 받는다.

그러면서도 괜히 뻗대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게스트는 누굴 데려오든 문제가 없다.

스케빈저나 짐꾼이 실력 있는 플레이어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루팅권한도 없고 보상도 받지 않는다.

저들이 손해를 보는 건 없다.

추측을 해보자면 파티의 주도권을 잡고 기강을 세우려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이윤을 챙기기 위함이겠지.

서서히 분위기가 과열되려는 그때, 양희종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만, 그만해 윤지 씨. 내가 처리할게. 유신아. 잠깐 형 좀 볼까?"

"그래요."

나는 양희종을 따라갔다. 우리는 트레일러 차 뒤에 섰다.

"유신아. 네가 이 바닥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원래 헌터계가 좀 그런 게 있어. 무슨 말인지 알지? 다 이해해. 사실 형도 처음엔 좀 그랬거든."

양희종이 술술 말을 이어나갔다.

너무나도 뻔한 내용이라 나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다. 요악하자면 관습에 대한 이야기다.

"이게 우리만 이러는 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냥 불편하다거나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원래 다들 이렇게 해."

"게스트가 보상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던전에 들어가면 이게 또 민감한 문제거든. 챙겨줘야 하지 몬스터로부터 지켜줘야 하지. 수고가 두배로 더 들어요. 형이 무슨 말하는지 알지?"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결국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 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마정석 수입 1:1:2가 아니라 1:1:1로 나누잔 거죠?"

순 날강도.

이 사람들은 이상한 핑계로 진보라의 몫까지 챙겨갈 심산이었다.

"아니, 형이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알지? 원래 다 그렇게 한다니까."

능글능글 안 그런 척하면서 사람신경 긁는 타입이네, 이 녀석.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역시 유신이라면 알아들을 줄 알았어!"

양희종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떠났다.

나도 뒤따라 일행에게 돌아왔다.

공인들의 텃세 때문에 괜히 풀 죽어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솔아! 저기 나무에 열매 열렸다!"

"먹고 싶어!"

"뭐해요? 철인 아저씨 출동!"

멤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놀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자 진보라가 예쁘게 웃는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던전에서 콱 죽여 버릴까요?"

……이 녀석도 은근히 한 성깔 한 다니까.

"괜한 짓 하지 마. 상황보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에. 선배님."

"오빠야."

은솔이 총총 다가와 내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아냐. 별일 없었어."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던전에 가는 거 무섭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무서워!"

은솔은 긴장한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들 착각하는 부분인데, 지금 마탑 멤버들 중에서 가장 많이 몬스터를 죽인 사람은 은솔이다.

수년 동안 할렘가에서 지내며 혼자서 마을 단위의 범위를 몬스터들로부터 커버했다. 웬만한 공인 헌터도 간단히 할 수 없는 일. 경력만으로 따지자면 그녀는 우리 중에서 최고 베테랑이다.

"아, 연락 왔어요!"

진보라의 말에 모두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양희종이 말했다.

"모두 차에 탑승하세요. 시작됐습니다."

쿠르르르르릉!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음침한 모습에 모두가 인상을 굳혔다.

드디어 재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우리는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라디오에서는 미궁 던전에 대한 다양한 소식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 찾아 온 재앙, 미궁 던전이 시작됐습니다! 모든 공인 헌터들과 가면허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재앙을 진압하고 있는데요! 공인 4급 최아람 헌터와 인터뷰를…….

-균열과 던전 등 모든 이상 현상이 미궁 던전 기간 동안 사라집니다.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하시길 바랍니다.

-마정석이 쏟아져 나와 국내 마정석 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방 안으로 정부는…….

나는 가만히 라디오를 듣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늘이 열렸다. 본 적 없는 형광색의 번개가 번쩍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행성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공상 과학에서 볼법한 광경이다. 이 하늘이 보이는 모든 곳에서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왠지 세기말 지구에 온 느낌이네요."

진보라가 말했다.

"자, 자, 여러분! 브리핑하겠습니다."

양희종이 손뼉을 치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5분 후면 우리가 들어갈 던전 스팟에 도착합니다. 협회 지휘부에 따르면 4랭크 던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조윤지가 끼어들었다.

"까놓고 말할게요. 4랭크 던전은 저희 5급 둘이서만 갈까 해요."

"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요는 2랭크 3랭크 던전까지는 자기들이 커버가 가능한데, 4랭크 이상 던전은 게스트 챙기면서 던전을 돌파해 나가는 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정예로 다녀오겠다는 소리다.

"던전에 진입하면 여러분은 입구 근처에서 대기해 주세요."

"네, 그러시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저항이 없자 조윤지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하하! 내가 말했잖아 윤지 씨! 요즘 애들도 잘 말해두면 다 알아듣는 다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음 좋겠어요. 이게 다 여러분 안전을 위해서인 거 알죠? 대신 2랭크나 3랭크는 꼭 다 같이 돕시다. 상황이 안 좋아서 그래요. 다들 던전이 어떤 곳인지 알잖아? 여긴 프로에게 맡겨요."

따발총처럼 말을 내뱉은 양희종이 이번엔 나를 보고 말했다.

"유신이도 갈래? 아카데미 조기 졸업자라면 짐은 안 될 것 같은데."

"하하. 저도 입장이란게 있으니까요. 게스트들 지키면서 입구에 남을게요."

"그럴래? 그럼 그래야지."

양희종도 그 부분은 이해해 주겠다며 넘어갔다.

우리는 던전 포인트에 도착했다.

우우우우우!

도로 한복판에 시커먼 던전 게이트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갔다. 도로 한복판이었지만 주위에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던전 게이트가 하나 보였는데 다른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해 플레이어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럼, 갑시다!"

양희종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우리는 뒤따랐다. 천천히 검은 구덩이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주위가 비틀어지며 환경이 바뀌었다.

이곳은 얼음 지형이었다. 빙하가 있고, 주위는 바다다. 빙판 필드가 곳곳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럼, 금방 클리어하고 올게요."

홀로 걸어 나가는 조윤지를 뒤따르며, 양희종이 말했다.

"근처의 몬스터 사냥 정도는 도전해 봐요. 너무 무리하진 말고."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지자 진보라는 바로 성깔을 드러냈다.

"어후, 재수 없는 새끼들! 뒤통수 빠개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네 진짜 악!"

정서진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텃세 같은 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죠."

"너무 싫어요! 확 주둥이 박음질 해버릴까부다 진짜."

"언니야! 박음질이 뭐야?"

모두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나는 마탑에 있는 에아와 연락하고 있었다.

-탑주. 일치하는 던전을 찾았습니다.

'오케이, 내 앞에 화면으로 좀 띄워줄래?'

에아가 현인의 눈으로만 보이는 홀로그램 화면을 출력했다. 나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애들아, 준비하자."

"어쩌시려고요?"

"그 사람들 따라가야겠어."

모두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뻐근한 팔을 휘휘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가만히 놔뒀다간 그 둘, 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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