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59화
재앙(災映).
헌터 협회에서는 지역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이상 현상' 중에서도,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하는 재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새로운 재앙에 직면해 있다.
바로 미궁 던전.
미궁 던전은 상당히 독특한 형태의 재앙이다. 광범위한 지역에 다수의 던전 게이트가 열리게 되는데, 이것은 일반 던전처럼 보스를 쓰러뜨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남는다.
그리고 이 중에서 단 하나의 던전만이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이 숨겨져 있다.
이 포탈을 타고 미궁 던전의 이레귤러 보스를 처치해야 모든 던전 게이트가 소멸하고 재앙이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시간 내에 미궁 던전의 보스를 처치하지 못하면, 그동안 열린 모든 던전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끔찍한 대학살이 일어나게 된다.
이미 한국은 두 차례의 미궁 던전을 겪었다.
12년 전, 대구시에서 열린 2랭크 미궁 던전.
2일 차 만에 완전히 클리어됐다.
그리고 6년 전,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 열린 3랭크 미궁 던전.
고작 30분 만에 보스존으로 향하는 던전이 발견됐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즉각 공인 헌터를 보내 재앙을 끝내겠다고 밝혔으나, 이때 전국의 플레이어들이 반발하며 들고 일어났다.
한몫 잡으려고 단단히 준비해 왔는데 고작 30분 만에 던전이 닫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소리였다.
플레이어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였고, 결국 정부는 5일 차까지 보스존 공략을 연기해줬다.
그 5일 동안 대란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경기도로 들이닥쳐 그동안 헌팅에 대한 목마름을 씻어내듯 던전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때 성장한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그해 공인 헌터 등록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수 많은 스타급 헌터들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미궁 세대'라고 불렀다.
그 일로 한국 헌터계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 질 좋은 마정석이 대거 시장으로 나왔다.
큰 폭의 수줄 호재를 기록했고 마정석 가공 기술 또한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서며 전 세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대한민국의 헌터계는 한때, 미궁 던전 덕분에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리고 그 미궁 던전이 다시 한번 한국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번엔 최대 4랭크 던전.
남한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범위다.
당연히 전 국민이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궁 던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헌터계의 모든 역량이 이번 재앙 이슈에 집중됐다.
물론 이런 소문난 잔치에 마탑도 빠질 수는 없다.
나는 대서재에서 가져온 책들을 1층 로비에 쭉 펼쳐놓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보드판에는 지도들이 걸려 있고 에아와 진보라가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이 범위는 포함 안 되는 거 아녜요?"
"여긴 좀 더 범위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다들 사뭇 진지한 분위기다. 그때 정서진이 2층에서 노트북을 들고 내려왔다.
"탑주님, 보고드립니다. 그동안의 정보를 취합해서 총정리하겠습니다."
"오, 왔구나!"
모두가 정서진의 노트북 앞으로 몰려 들었다. 정서진이 마우스를 달칵거리며 여러 창을 띄웠다.
"우선 에렌델 대륙의 미궁 던전 사례를 찾아 봤습니다만, 사례가 지나치게 많더군요."
"그렇겠지."
당장 지구만 해도 그렇다. 미궁 던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광범위한 재앙이다.
"에렌델에서 있었던 재앙을 지구에 대입하려 할 때, 아직까지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소스는 '마나 좌표' 하나뿐입니다. 게다가 마나 좌표는 지형에 의해 고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유동성까지 있어서 탐색에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줄줄 설명을 늘어놓던 정서진은 에아의 깻잎 모히토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발생한 다른 재앙들을 기점으로 계산했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바로 이겁니다."
정서진은 에렌델 문헌에 기록된 미궁 재앙의 범위를 계산해 원으로 만들었고, 이것을 그대로 한반도에 대입 했다.
"와……!"
"으음!"
남한 거의 전체를 포함하는 범위.
북한의 강원도 일부와 울릉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전남 아래쪽 지방과 제주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미궁 던전이 확실해 보이네. 헌터 협회에서 밝힌 범위랑 똑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의 위치도 추정할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건 그 포탈이 어느 던전에 있냐는 거잖아."
정서진이 안경을 추어올렸다.
"아쉽게도 에렌델의 기록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영지 카리라스'의 주변이라고 했습니다. 그 범위를 대략적으로 한국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반도에 새로운 빨간 원 범위가 생겼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대충 범위는 경북 쪽이네."
"예. 문경, 안동, 영주, 영덕, 포항, 영천, 구미로 이어지는 라인입니다."
"여기서 더 줄일 수는 없을까?"
"기록에서는 카리라스 영지 일대라고만 표시되어 있어서, 더 줄이는 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담 어쩔 수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은 이 범위로 확정 짓고, 던전을 닥치는 대로 뒤지면서 '포탈' 발견을 노리는 거야"
"아, 그런데 선배님! 그 미궁으로 가는 포탈을 발견하면 포상이 얼마랬죠?"
"직접 클리어하지 않아도 발견 포상금만 100억이라는데."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추정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가 남들보다 몇 걸음은 앞서 있는 건 사실이야. 반드시 찾아 내자고."
"물론이죠! 100억 파이팅!"
"탑주님. 포탈을 발견하면 그 안의 보스 몬스터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려고."
2랭크급 용암굴에서 이레귤러 보스를 잡아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진도가 바로 4랭크급 던전의 이레귤러 보스라.
내가 제대로 상대가 될까? 이레귤러는 계량되지 않은 강함을 가진 존재들이라 아직 감이 안 잡혔다.
일단은 던전의 위치만 발견해서 신고해도 이득이니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 대표님 접니다. 네, 네. 파티구성에 대해 문의 좀 드리고 싶은데요."
* * *
국가급 재앙인 만큼 이번 헌팅은 규모 자체가 달랐다.
정부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비상 재앙 대책 위원회'를 출범했다.
헌터 협회에서는 전력외를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플레이어들을 '공략조'에 포함시키는 획기적인 헌팅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상 한반도의 90%가 재앙의 범위에 들어왔기 때문에, 공인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일단은 2랭크 몬스터 이상의 사냥실적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든지 파티를 꾸릴 수 있었다.
가까운 구청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파티를 등록 하면 협회에서 서비스하는 지휘부 웹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협회 지휘부에서는 한반도에 열리는 던전을 관측해 위치와 랭크를 확정하고, 해당 던전 공략에 적합한 파티를 찾아 공략 지시를 내리게 되고.
그렇게 던전에 투입되어 클리어까지 마친 파티는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의 유무를 확인해서 협회에게 전달한다.
공략에 성공할 시 포상금이 누적되며 재앙 종결 이후 수령이 가능하다. 물론, 던전에서 나온 모든 마정석과 부산물은 헌터 본인 몫이다.
헌터계는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 공인 5급을 목표로 하는 가면허 플레이어들은 이번 미궁 던전이 인생에 다시 없을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헌터 용품점은 매진 일색의 호재에 기쁨의 비명을 질러댔고, 길드와 매니지먼트에서는 모든 예비전력을 가용해 플레이어 양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일반인들마저 몬스터의 시체를 처리하거나 보관하는 '스캐빈저'로서 활동해 한몫 챙기려 하고 있었다.
-중국 당국에서 총 209개 헌팅 팀을 국내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유럽 7개국에서 이번 미궁 던전의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여기는 도쿄입니다. 협회 앞에는 한국 파견에 지원하려는 플레이어들이 길고 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세계 헌터 협약으로 인해 이런 국가적 재앙이 발생하면 전 세계에서 지원이 들어온다.
하지만 정부나 협회에서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 먹을 것도 없어 죽겠는데 해외 헌터 지원은 왜 받는 거냐?
-한 발 걸치려는 것들 극혐. 니네 땅에서 헌팅해라.
-국내 헌팅에 외교문제 좀 끌고 오지 마라. 언제까지 중국 눈치만 볼 거냐?
-이거 허가 내면 국민들 등 다 돌림. 내가 다시는 여당 뽑나 봐라.
국내 여론은 외부 헌팅 지원에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자기가 먹을 떡을 남에게 빼앗긴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 그런지, 모두들 신경질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기사 댓글들을 훑어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상 참 희한하게 돌아간다니까.'
사람을 죽이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이상현상 자체가 가치가 되고, 권리가 되는 시대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세상 많이 변했다'라는 말로 이 상황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정부에서는 부정적 여론 때문에 외부 헌팅 인원에 제한을 둔다고 발표했다.
이에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는 강한 유감을 표했다. 헌터 지원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도의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인데 어째서 이해득실에 따라 제한을 걸 수 있냐는 반발이었다.
하지만 내년 선거를 앞둔 정부에서는 민심이 천심. 번복은 없었다.
이런 저런 기사를 살펴보고 있던 나는 스마트폰 위에 떠 있는 시간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슬슬 일어나야겠다.'
나는 지금 문경에 와 있다. 우리 파티는 이곳에서 예천을 돌아 영주, 안동을 거치며 경북 지역을 커버할 생각이었다.
'파티원은 누구랬더라.'
나는 신나라 대표가 보내준 파일을 확인했다.
[공인 5급 양희종.]
[공인 5급 조윤지.]
'……윽, 대표님이 파티 너무 빡세게 잡아줬는데?'
파티 구성은 모두 매니지먼트에 위임하고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설마 공인 5급이 둘이나 조인될 줄은 몰랐다.
'이러면 필연적으로 한마디 들을 수밖에 없겠네.'
나는 어느 정도 각오를 마치고는 약속장소인 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재앙 때문에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간 바람에, 주차장에는 차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어 썰렁했다. 그래서 금방 팀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트레일러 차량 앞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다. 주위에는 기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에게 슈트를 입혀주고 있었다. 남자는 던전 브리핑을 확인하는 듯 서류를 보면서 어딘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중이었다.
"양희종 헌터. 슈트 온오프 기능체크를."
"스피어 오브젝트 기능도 체크를 부탁드립니다."
양희종이라면 리스트에 나온 그 사람이 맞다.
전문 기술팀을 대동하고 다닐 정도면 거의 대형 길드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건데.
그때 슈트의 기능을 점검하던 양희종이 고개를 들었고, 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아, 그쪽도 H-D1 팀원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