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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58화 (58/337)

나 혼자만 마탑주 058화

나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인데, 이미 마탑이라는 소속 길드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탑에서의 활동이 주가 되고, 던전 헌팅은 어디까지 나부다.

마탑은 전부 다 갖춰져 있다.'시련'이라는 내 개인 던전도 있고, 새로운 마법의 습득 및 연구도 전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실전 경험이나 마법 숙련도, 아이템 획득과 각종 희귀 재료 수집등의 문제가 남아 있기에 몬스터 헌팅은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매니지먼트를 생각하고 있다. 길드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며 합숙하는 건 좀 그렇고, 프리랜서처럼 내가 원할 때마다 원하는 시간대에 움직일 수 있는 계약이 좋아 보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진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은 누가 뭐래도 s급 유망주잖아요! 매니지먼트라면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으실 거예요."

"그 매니지먼트도 요즘은 너무 많아서 고민이야. 좀 큰 곳에 들어가면 간섭이 많으려나?"

"에이, 아니죠! 매니지먼트는 무조건 큰 곳에 들어가는 게 좋아요! 어차피 프리랜서 활동인데 던전 잘 잡아주고, 파티 조인 잘 되고, 일거리 잘 물어와 주는 곳이 좋다고요!"

"……뭔가 좀 잘 아네?"

"헤헤, 실은 저도 헌터가 되면 길드보다는 매니지먼트를 생각하고 있어서 이래저래 알아봤죠."

의외다. 진보라라면 당연히 돈 많이 주는 길드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 길드지, 거긴 군대나 다름없잖아요. 연예도, SNS도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요."

그렇구나. 바로 납득했다. SNS를 못하게 하는 곳이야말로 그녀에겐 지옥이겠지.

"무엇보다 길드 소속 헌터들은 의무 차출도 자주 당하잖아요? 저번에 말레이시아에서 고위험 재앙 터졌을 때 정부에서 차출된 헌터들 대부분이 못 돌아오기도 했고."

"그건 그래."

매니지먼트 소속 헌터들도 그런 국가적, 세계적 재난에 의한 차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길드에 비해서는 책임이 적은 편이긴 했다.

"으으, 부럽다! 나도 빨리 졸업해서 돈 벌고 싶다아아!"

"공인 5급 시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준비해 봐."

그녀와 수다를 떠는 사이 솥의 내용물이 걸쭉하게 변했다. 다시 진보라가 맡아서 작업했고 나는 소파로 돌아왔다.

'매니지먼트라. 이제 아카데미 던전 출장도 못가니까 빨리 직장을 구하긴 해야겠는데.'

다시 스마트폰 메신저에 접속해 보았다. 길드는 물론이고, 매니저먼트에서의 연락도 상당히 많이 와 있었다.

"어디가 좋으려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내 직장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었다.

'첫 취업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네.'

나는 끌끌 웃으며 메시지를 하나열었다.

[안녕하세요? 김유신 씨. 저는 가람 매니지먼트의 신나라 대표라고 합니다.]

* * *

며칠 후.

"끼야아아아아아악!"

나는 진보라보다 텐션이 높을 수 있는 여자는 처음 만나본다고 생각했다.

"정말 꿈만 같아요! 아니, 진짜 김유신 씨 맞죠? 김유신 씨가 우리 회사에? 끼야아아악!"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가람 매니지먼트의 '신나라' 대표. 상당한 동안이었다.

"모시게 되어서 진짜 영광이에요! 사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메시지 보낸 거였거든요! 유신 씨 같은 경우는 '스노우' 행이 가장 유력하다고 업계에 소문이 쫙나 있었고 다른 대형 길드들도 노리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설마! 설마 아아! 우리 회사에에에엑!"

동시에 상당히 말이 많았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개인적으로도 진짜 팬이거든요! 초면에 진짜 죄송하지만, 아니 막유신 씨를 의심하는 건 아닌데 현실감을 되찾자는 의미에서 혹시 그거 보여주실 수 있어요?"

"그거라쇼?"

"그거요 그거! 블랙킥!"

쾅!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어머나! 왜 그러세요?"

"……설마 말씀하시는 게 홍연을 잡을 때 썼던……"

"맞아요! 그거 그거!"

"아니, 누가 남의 기술을 그렇게 불러요?"

그녀가 싱긋 웃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동영상 제목에 블랙킥이라고 올라온 게 인터넷 밈화 되어버려서 지금은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던데요?"

'으악. 미친!'

멋진 이름도 많은데 블랙킥이 뭐냐고 블랙킥이.

그럼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막 '블랙킥의 김유신이다!' 라고 부른다는 건가?

아, 자살하고 싶다.

칼람이 달라붙었을 때도 이런 좌절감은 아니었는데, 프로 헌터 생활 초창기부터 단단히 꼬였다.

"……카페에서 블랙킥은 좀 그렇고요."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손바닥위에 레피드 에로우 마법진을 펼쳐 보였다. 황금빛 화살이 나타나자 그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진짜 김유신이야! 끼야아아악!"

그녀는 뺨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아, 옆 테이블 눈치 보인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자, 그건 그렇고."

너무 저쪽의 페이스대로 끌려다닌것 같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드로 돌아와야 할 차례다.

"슬슬 계약 이야기로 들어가시죠."

"좋아요."

그녀의 표정도 싹 바뀌었다. 발랄한 여고생 모드에서 프로다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얼굴은 상당히 동안이지만 그래도 한 매니지먼트의 대표라면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이 아니겠는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저희가 드리는 계약 조건이에요."

그녀가 공손히 계약서를 내밀었다.

"……음."

꼼꼼히 읽어 보니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업계 1위 매니지먼트급 대우는 물론이고, 수 많은 편의 사항까지 고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계약 기간은 최소 4년이었다.

"까놓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나는 계약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그녀 쪽으로 밀었다.

"이런 조건으로는 저 못 잡으시는 거 아시죠?"

조금은 자뻑 같긴 하지만 사실이다. 내가 대형 길드에 들어갈 시에 받는 보상을 생각한다면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궁금하네요."

신나라 또한 주눅 드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저희 쪽에서 해드릴 수 있는 건 업계 최고 대우에 플러스 옵션이에요. 만약 유신 씨가 몸값을 100%다 받으실 생각이라면, 거대 길드에 접촉하거나 시장에 나가서 몸값 경쟁을 부풀리는 게 맞겠죠. 하지만 유신 씨는 저희와 먼저 접촉하셨어요."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길드에 비해 매니지먼트가 자금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왜 유신 씨는 매니지먼트를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헌터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다른 거죠. 저는 제 나름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번엔 내 쪽에서 서류를 내밀었다.

내가 내민 조건은 다음과 같다.

-최소 1년 계약. 자동 갱신.

-계약 해지 조항 : 위약금 없음, 헌터가 원할 때 언제든 자유 해지가능.

-명령 거부 권한.

-스케쥴 조절 권한.

-보안 계약.

등등.

그야말로 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옵션들이었다.

심지어 '해지 조항'은 내가 오늘 계약을 맺고 내일 계약을 해지해도 매니지먼트 측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옵션이다.

이건 헌터가 매니지먼트에 소속되는 계약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갑으로 설정된 파트너쉽 계약.

사실 가람 매니지먼트가 어디 막굴러먹는 작은 회사도 아니고 업계탑급인데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다.

신인 주제에 건방지다며 업계에 소문을 퍼뜨려도 할 말 없을 정도다.

"……유신 씨."

"네."

자, 어떻게 나올까?

"공부 좀 더 하셔야겠는데요?"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오호호! 헌터계에선 역대급 신인이지만 사회생활 쪽은 아직 미숙하네요! 자, 자. 봐요. 이런 옵션을 달면 큰일이에요."

그녀가 펜을 잡고 내 서류 조항에 밑줄을 그었다.

"일단 해지 조항부터 볼게요. 사실 계약서란 게 양측 도장 꾸욱 찍는다고 무조건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게 아니거든요. 막 영화에 나오는 신체포기 각서 같은 것도 그렇잖아요. 민법 103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거라 현실적으로는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죠. 자, 만약 유신 씨가 이 2조 조항을 들어 계약을 해지하면 상대 매니지먼트에서는 바로 고소가 들어갈 거예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소요?"

"네! 이거 특수 헌터 관리법 18조 위반이거든요. 이대로는 벌금행에 더 많은 위약금만 떼이게 될 거예요. 여기선 요렇게 해지 사유에 관한 세부 조항을 달아놔야 나중에 탈이 없어요. 그리고 명령 거부 권한 말인데요."

나를 졸지에 계약서 과외를 듣게 됐다. 생각보다 고려 할 사항이 많았다. 내가 간단히 생각했던 것도, 다양한 법률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허술하거나 실속이 없게 되어버리는 부분이 있었다.

"자, 요렇게 수정하시면 되겠죠?"

그녀가 빙긋 웃으며 펜을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알려줘 버리시면……."

"괜찮아요! 이건 계약과는 별개로 팬심으로 해드리는 서비스니까요! 그리고 유신 씨는 이 조건이면 괜찮다는 거 아녜요?"

"뭐, 그렇긴 하죠."

"유신 씨만 좋으시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이 조건을 수용할 생각이에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던전은 편하실 때 연락 주시면 저희가 바로 조인해드려요! 매니지먼트에서 나가시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나가셔도 됩니다! 요는 자유와 비밀보장인 거죠?"

나는 쓰게 웃었다.

"이 조건을 이렇게 간단히 수용해버려도 괜찮아요? 다른 소속 헌터들이 알게 되면 차별이라면서 반발할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제가 다 커버할 수 있어요! 그래봤자 제 회산데요 뭘. 엣헴!"

'흐음.'

이제 대리급밖에 안 될 나이에 대표까지 달고 매니지먼트를 여기까지 키워낸 인물. 이건 감일 뿐이지만, 저 여자도 여러 가지 비밀이 많아보인다.

"그럼, 계약하실 거죠? 네? 네?"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계약을 한다.

리스크가 있는 건 가람이지, 사실 이쪽에서 손해 볼 건 없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순순히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녀도 맞은편에 서명하고는 같이 지장까지 찍었다.

"이걸로 가람 매니지먼트 소속의 식구가 되셨습니다! 김유신 헌터님의 활약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아직 헌터는 아니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타이밍도 좋네요. 요즘 헌터계 대단한 이슈가 있잖아요."

"이슈라면……"

"미궁 던전이요. 이제 곧 한국에 나타난대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글을 많이 보긴 했지만, 그냥 루머인 줄 알았는데요."

그 루머를 매니지먼트 대표의 입에서 듣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신뢰성이 확 올라간다.

"저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재앙의 전조가 점점 확실해지고 있나봐요. 협회에서는 벌써 대책을 준비중이고요.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엠바고 풀리고 정부 공식 발표나면 기사가 미친 듯이 터질 거예요."

"……오."

"당연히 김유신 헌터님도 참여하실거죠?"

그런 빅 이벤트가 있다면 빠질 수야 없지.

"물론 참여해야죠."

"오케이! 그럼 가람 매니지먼트에서의 첫 일정은 미궁 던전 공략에 참가하시는 걸로! 헌팅에 지장 없도록 준비해 둘게요."

"그럼 제 매니저분은 언제 결정되나요?"

"제가 할 건데요?"

마시던 커피가 잠깐 식도를 역행했다.

"콜록! 콜록! 대표님이 직접요?"

"네!"

"바쁘시지 않아요?"

"아무리 바빠도 열정은 막을 수 없죠! 사실이 일을 하는 이유도 헌터덕질때문이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사실 저 꽤 잘 살아요."

'그래 보입니다.'

계속 느끼는 거지만 부잣집 아가씨 느낌이 난다. 취미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건가? 대체 뭐하는 거물인 걸까.

"절대 김유신 헌터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 자부할 수 있어요!"

나는 이때 생각지 못한 아군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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