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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56화 (56/337)

나 혼자만 마탑주 056화

칼람 길드가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건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무려 길드 전체의 실종. 수사본부에서는 비보고된 던전에서의 사고 정도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소재는 아무도 몰랐다.

'이거 타이밍이…… 설마 진짜로 협회장이 처리한 건 아니겠지?'

잠시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곧고개를 저었다. 아직 협회장과 길드하나를 치워줄 정도의 유대관계를 쌓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니면 협회장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또라이거나.

뭐, 결과적으로는 칼람이 사라졌으니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죽일 놈들 잘 죽었다.', '통쾌하다.', '칼람을 없애준 용사는 누구냐?' 하는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외압이 있기라도 했는지 기자들도 이 난리에 잠잠했다.

정서진은 다시 마탑으로 출근했고, 나 또한 계속 마탑에 남을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일상을 되찾았다.

아카데미에서는 아직 조기 졸업 4강과 결승이 남아 있었지만, 깔끔하게 기권의 뜻을 밝혔다. 명목은 홍연과의 결투에서의 부상.

아, 물론 거짓말이다. 거기서 1등해봐야 돈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스카우터들에게 어필할 이유도 없다.

내 목적은 던전에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공인 헌터 자격뿐이다.

조기졸업 일정이 끝나고 공인 5급 헌터 자격 처리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오늘.

"자, 선배님의 정식 헌터 승격을 위하여!"

"위하여!"

오랜만에 모두가 모여서 마탑에서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다들 탑으로 오기 전에 배달 음식과 술을 사들고 와서 테이블에 펼쳐놓고 먹었다.

"이제는 김 헌터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진보라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기 졸업도 안 끝났는데 무슨. 공인 자격 받는 데까지 또 몇 달 정도 걸린대."

"아무튼! 이제 학생이 아니라 진짜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부럽다아."

"축하드립니다, 탑주님."

"냠냠. 오빠야! 공인이 모야?"

정신없는 파티가 계속 되었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정서진은 서민 음식의 재평가 어쩌고 하면서 이상한 논리를 늘어놓고 있었고.

진보라는 떡볶이 국물에 당면 만두를 찍어서 보여주는 등 에아에게 먹는 방법을 전수해 주고 있었다.

은솔은 자리에 앉아 한 손에는 피자를 다른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번갈아 가며 먹어댔다.

그렇게 슬슬 배도 부르고 파티 분위기도 무르익자, 나는 손뼉을 쳐서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 그럼 관리자 여러분. 다들 모인 김에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서 들어볼까?"

"저부터 하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정서진이 노트북을 펼쳤다.

"우선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획득했던 파주의 '좀비 사냥터' 가 협회 심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해 정식 운영권을 따냈습니다."

"오예! 모두 박수우!"

진보라가 팔을 빙빙 휘두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에아와 은솔도 짝짝박수를 쳤다.

"프로모션은 바이럴 마케팅 위주로 진행했는데 효과가 괜찮았습니다.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문이 쫙 퍼져서 문의 전화와 메일이 빗발쳤고, 벌써 석 달 치 예약이 다찼다고 합니다."

"와, 석 달 치요?"

"다음 달에 들어올 수익이 기대되는데."

"주위에 입점하려는 업체들도 많아서 권리금 수입도 괜찮을 겁니다."

마탑에 정기적인 수입이 생겼다는 건 상당히 큰 의미였다. 베이스가 구축됐으니까 사업 규모를 점점 더 늘려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포션 유통 쪽은 어때?"

"순조롭습니다. 칼람에게 한번 발각됐던 서초구의 더미 공장은 처분했고, 협회연구부지의 시설을 새롭게 임대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서진은 벌써 내가 협회장으로부터 따낸 요소들을 활용해 새롭게 판을 짜고 있었다.

"계속 궁금했는데 말이야."

내가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흠뻑적셔서 은솔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마탑에서 만든 포션을 어떻게 더미 공장으로 옮길 거지? 거기에 대한 플랜은 세워둔 거야?"

"예. 원래는 차량으로 조달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생각을 좀 바꿔봤습니다. 1층 관리자의 아공간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으로요."

"그랬죠! 벌써 시험해 봤다고요!"

진보라가 얼른 말했다. 그녀는 손바닥을 펼쳐 녹색의 아공간을 열어보였다.

"아시다시피 아공간을 쓰면 1층 창고의 물건을 마음대로 꺼냈다 뺐다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매일아침 더미공장에 가서 포션 재료는 마탑으로 옮기고, 마탑에서 완성된 포션은 공장에 가져다 놓는 거죠!"

"오오! 그게 된다면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데? 물량은 충분히 옮길 수 있어?"

"창고가 꽉 찰 정도까지는 무리지만,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 같아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마탑에 외부인을 끌어들일 일 없이, 부지의 시설 안에서 포션을 제작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산업 스파이 같은 자들이 협회 시설에 숨어들 수 있다고 한들, 포션 제조의 비밀을 알아차릴수는 없을 것이다.

"제 보고는 여기까지 입니다. 탑주님."

"응, 수고했어. 다음은 보라 차례."

"넵!"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앱을 실행시켰다.

"우선 제가 제조에 성공한 포션 리스트인데요."

그녀는 리스트를 줄줄 홅었다. 우선 중급의 레드 엘릭서와 블루 엘릭서는 90%의 성공률로 조제가 가능하다고 말했으며, 그 외에도 열기, 냉기, 중독 저항 포션 등도 양산 조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했다.

"아!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진보라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포션을 꺼냈다.

"짜잔! 이름하여 자백 포션!"

적나라한 네이밍이었다.

"설마 마시면 비밀을 자백하게 되는 그런 포션은 아니겠지?"

"딩동댕! 정답입니다!"

…진짜냐.

어디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포션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대신 그냥 마시면 효과가 미미해서요! 반드시 제 인챈트를 받은 상태여야 하고 상대가 죄책감에 괴로워 하는 순간에 먹여야 해요. 그리고 상대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정도로 양심 있는 사람이어야하고, 마나를 쓰는 플레이어가 아닌 민간인들에게 주로 통해요.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항마력이 있어서 약효가 잘 안듣거든요. 그리고 또……"

듣다 보니 너무 조건이 많은데?

내 시선을 느낀 진보라가 민망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실은 상대의 자책감을 증폭시켜서 실토하게 만드는 효과라서요. 헤헤."

그냥 마시면 자백하게 되는 건 아니었군. 그렇게 편리한 포션이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사람 심리에 작용하는 포션을 개발한 건 큰 수확이야.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오겠지."

"역시 선배님은 알아주실 줄 알았어요!"

그녀가 포션을 뺨에 대고 눈을 찡긋했다. 하여간 요물이다.

"말 나온 김에 다른 것도 보고드릴게요. 요건 사람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용기 포션이고요. 요건 침착 포션……"

그녀는 가방에서 줄줄이 포션을 꺼내 놓으며 설명했다. 뭔가 대단하긴 한데, 뭔가 쓸모없다. 족발을 먹고 있던 은솔이 문득 물었다.

"그럼 언니야! 사랑 포션도 있어?"

진보라가 흠칫한 표정을 짓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 진짜 있나 보네. 그건 왜 말 안 해?"

"아하하……! 선배님 그게……"

"너 설마 막 음료 같은데 섞어서 먹일 생각은……"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시, 실은 사랑 포션은 아니고요!"

"그럼?"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핑크빛 색깔의 포션을 하나 꺼냈다.

"정욕 포션……"

"푸훕!"

나도 모르게 마시던 맥주를 옆으로 뿜었다. 은솔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빠야, 오빠야. 정욕이 뭐야?"

……네가 알기엔 10년은 일러.

그때 뒤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에아가 무감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정욕이란 이성의 육체에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현상으로 암수가 서로의 몸에 밀착했을 시…… 읍읍!"

다급히 에아의 입을 틀어막은 진보라가 시뻘게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될까 봐 이 자리에선 보고 안 하려 했다고요."

……그래. 네 생각이 옳았다.

나는 얼빠진 눈으로 에아와 정욕포션을 번갈아 보는 정서진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는 말했다.

"그럼 다음은 우리 은솔이 차례네."

"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은솔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흰 천을 붙잡았다.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은솔이 만든 거였구나.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은솔이 힘차게 천을 걷었다.

아니, 힘차게 걷으려고 했지만 은솔은 너무 작고 천은 너무 큰 바람에 한 번에 걷는 데에 실패하며 휘청했다.

"짜안!"

굳이 다시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재시도 했지만, 이번엔 발이 걸려 미끄덩 넘어졌다.

귀여워라.

아마도 '푸롱푸롱 푸피피'의 한 장면을 재현하고 싶은 것 같은데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결국 에아가 나섰다. 은솔이 천을 잡아당길 때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천이 펄럭이며 천장까지 날아갔다.

"짠!"

"와아아아!"

예상했던 바지만 골렘이었다.

모두가 놀란 척을 하며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재롱잔치 보러온 학부모가 된 기분이다.

"이게 바로 포션을 만드는 골렘이야!"

"오오, 벌써 완성된 거야?"

"응! 보여줄게!"

은솔이 눈을 감고 오른손을 뻗었다. 그녀의 원격 조종 능력에 의해 골렘이 움직이며 솥 앞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맥주와 안줏거리를 들고 몰려가 앞으로 펼쳐질 역사적인 장면을 기다렸다.

"음, 나사의 태양계 중대 발표 예고 때보다 더 긴장되는군요."

정서진이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진보라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그게 왜 긴장돼요?"

"이해가 안 된다면 엑시오 컴백 예고로 바꾸겠습니다."

"야! 너 지금 나 바보 취급했지!"

반응은 다른 곳에서 왔다. 에아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긍정. 엑시오는 정말 훌륭한 보이 그룹입니다."

정서진이 반색하며 물었다.

"에아 님도 엑시오를 좋아하십니까?"

"네."

우연히 얻어걸린 정서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스마트폰을 켰다. 나는 그가 메모장에 '엑시오. 조사. 1순위.' 라고 적는 것을 보았다.

"그럼 시작할게!"

세부 작업을 끝낸 은솔이 뒤로 물러났다.

골렘의 몸에 불이 들어오더니 삐거덕거리며 움직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솥의 마법진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오오!"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는 은솔을 보았다.

"네가 조종하는 거 아니지?"

"응! 능력 안 쓰고 있어!"

은솔이 두 팔을 휙휙 흔들며 말했다. 이번엔 에아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정말로 골렘은 자신의 동력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골렘은 솥 안에 물을 채우고 불을 켰다. 특히 물이 끓기 시작하자 대형 국자를 젓고 휘휘 젓는 모습은 몇 번이나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쩜 좋아!"

진보라가 박수를 치며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역시 천재는 천재로군요."

정서진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잘 나가다가 사고가 났다.

액체가 파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윽! 골렘이 한 재료를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아요!"

진보라가 해설했다.

"그럼 저기선 어떻게 해야 해?"

"불 온도를 낮추고 물을 더 부어야죠."

상황에 따른 대처를 해야 했지만 골렘은 짜인 시스템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내용물이 충분히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 갈아 넣은 흑산을 뿌리자 액체가 큰 거품을 일으키며 마구 부풀어올랐다.

"꺄아악!"

솥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라벽과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서진이 얼른 뛰어나가서 솥의 불을껐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사이, 은솔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솔아."

"미안해 오빠야.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재료도 구해줬는데……."

윽.

갑자기 가슴이 급격히 아려온다.

최근 들어 이 몰입 능력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뭐만 하려고 하면 과하게 몰입하고 동화되는 느낌이라 힘드네.

나는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잘 했어, 솔아. 포션용 골렘을 만들기로 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잖아?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정서진도 옆에서 거들었다.

"마탑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가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시행착오는 당연하죠. 이제 변수를 통제할 방안만 강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진보라도 무릎을 굽히고 은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 온도가 문제였던 것 같아. 언니 동작을 매뉴얼화하면 어렵지 않을 거야. 얼마든지 도와줄게!"

모두의 위로에 은솔은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은솔이 진정되자 우리는 다시 로비로 돌아와 파티를 재개했다. 은솔은 한번 눈물을 쏟아낸 후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에아가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어른들의 파티였다.

간만에 삘 받아서 달리다 보니 결국 소주에 이어서 아껴뒀던 양주까지 따서 마시게 됐다.

"야아아. 좋다아."

알딸딸하게 술기운이 차올랐는지 진보라는 로비 위에 걸터앉아 웃고 있었다.

"너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저는 완전 정상! 100% 멀쩡해요!"

취했네 취했어.

진보라는 말을 멈추고 시선을 움직였다. 화려한 황금빛 로비, 먹고 남은 음식으로 어지러운 테이블, 포션으로 엉망이 된 마법 솥.

여러 곳으로 시선을 던지던 그녀가 마침내 나를 바라보았다.

"꿈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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