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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55화 (55/337)

나 혼자만 마탑주 055화

나는 울고 불며 달려드는 진보라와 그 새를 틈타 접근하려는 스카우트들을 피해 일단 아카데미 밖으로 도망쳤다.

"……으, 힘들어. 쓰러지겠다."

-제안. 마나가 한계치까지 다다랐습니다. 탑으로 복귀해서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전에 잠깐만,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협회장의 번호였다.

'올 게 왔군.'

발신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대자마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냐.

딱 한 마디만 들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무서운 지 모르겠네.

"이제 집에 가려는데요."

-총장실로 와! 혼자! 지금 당장!

뚝.

그 말만 남기고 통화는 끊어졌다.

뭐,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다시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그리고 10분 거리에 있는 대학 건물의 총장실로 향했다.

똑똑.

"김유신입니다."

들어와, 하는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심호흡을 한 다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셨……"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나는 복부에 5톤 트럭이 받힌 듯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잘 했어! 학생회장! 요 이쁜이! 으하하하하하!"

그녀가 기쁨을 토해내며 내 허리를 껴안았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사, 살려주세요!"

"아, 미안. 미안."

그녀가 엄살 부리지 말라며 내 어깨를 쾅쾅 친 다음 제자리로 돌아갔다. 허리 부상에 어깨 탈골 추가다.

"주간 회의 땡땡이치고 다 지켜보고 있었지. 대단한데?"

"제가 이긴다고 했잖아요."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본인 책상에 앉았다.

"크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아주 잘 했어."

"괜히 막 멘탈이 무너지는 건 아니겠죠? 프라이드 강해 보이던데."

"무너지면 더 좋지."

협회장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무너지고 무너져서 한번 가루가 되어봐야 해. 무너지면 재건할 여지라도 있지. 나태와 자만은 한번 사람의 영혼에 달라붙으면 죽어도 안떨어지거든."

"……."

서랍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서류 하나를 휙 던졌다.

"네가 부탁했던 연구 재단 계약서야."

이게 바로 내가 협회장에게 받을 보상이다.

지금부터 마탑은 헌터 협회를 통째로 등에 업는다.

내 포션 사업은 협회의 연구 재단에 속하게 될 거고, 칼람 같은 양아치들이 낄 틈은 사라지게 된다.

이득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 재단 부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그쪽 보안 시스템을 그대로 쓰는 게 가능하고, 연구 재단의 인증 마크를 포션에 붙이는 것으로 그동안 말이 많았던 신뢰성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무려 협회가 인증한 아이템이란 뜻이니까.

권력과 보안, 상품의 신뢰성과 대중 인지도를 한 번에 해결하는 최고의 한 수다.

"이거 꽤 고생한 거 알지? 나도 형평성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 억지로 자리 마련한 거야."

"……하하."

사실 미션에 비해 보상이 너무 크긴 했다. 형평성을 맞추는 차원에서 나는 그녀의 새로운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앞으로 협회장이 홍연과 관련된 부탁을 할 경우, 웬만해선 들어줄 것. 딱 그 정도로 합의를 봤다.

협회장은 철저히 나를 앞세워 홍연을 컨트롤할 생각인 모양이다.

내가 재단 계약서를 읽고 있는 사이 그녀는 다시 내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아무튼, 졸업 축하한다. 학생회장."

"……아."

"임기는 일주일뿐이었지만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협회장의 말에 비로소 자각했다.

홍연을 꺾고 4강 안에 들었으니, 이후 결과와는 관계없이 조기졸업확정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뭐 할 거냐?"

협회장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계약서를 흔들었다.

"돈 벌어야죠."

"이제 공인 헌터가 됐는데 사업 같은 거나 하려고? 그런 건 은퇴한 뒤에 해도 늦지 않잖아."

"당연히 헌팅도 계속해야죠. 투잡 뛸 겁니다."

"들어갈 길드는 알아봤어?"

"아뇨, 아직."

그녀가 턱을 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유신. 협회에 들어오는 건 어때?"

"……네?"

나는 멍한 표정이 됐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원한다면 집행부에 꽂아줄 생각이야."

집행부는 헌터 잡는 사냥개라고 불린다. 플레이어 관련 범죄를 전담하며, 초월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협회 직속 부서다.

간단히 말하자면, 협회장은 대뜸나를 서울중앙지검에 꽂아주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익을 위해 힘써볼 생각 있어?"

돈보다는 권력에 집중된 진로.

홍연을 꺾고 내 몸값은 미친 듯이 솟구쳤다.

길드에 들어가면 막대한 계약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집행부에 들어가면 초월적 권한을 가지게 된다. 공인 5급이라도 집행부 소속이면 길드마스터 급들도 빌빌 긴다.

고민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할게요."

스노우에 들어가는 것도, 협회장의 라인으로 들어가는 것도, 집행부에 들어가는 것도 전부 거절했던 이유.

내게는 마탑이 있다.

그리고 좀 더 큰 야망이 있다.

집행부의 권력이란 것도 나로부터 파생되는 게 아니라 그냥 조직의 힘이다.

사냥개가 강하다고 해서 내가 사냥개 신세라는 건 변하지 않고, 황금목줄을 차도 개 목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헌터 협회에 들어가게 되면 공무원이 되는 건데, 사적인 사업 같은 건 불가능해지고 모든 활동에 제한이 생기게 된다.

역시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지.

포션 사업을 버릴 만큼 집행부원이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다.

"네 생각이 그렇담 어쩔 수 없지."

협회장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나는 주섬주섬 계약서를 챙겨 넣었다.

"근데 굳이 우리 재단의 유통 루트를 쓰려는 이유가 뭐냐?"

"파급력이 대단한 사업이라서요. 다른 세력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협회장에게는 이미 포션 사업에 대해 밝혔다. 물론 마탑에나 포션 능력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 선에서.

포션 능력자와 단독 계약을 하고 내가 유통을 맡았다는 설정을 고수했다.

그녀는 팔짱을 꼈다.

"보기보다 철저하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하는 거야?"

"실은 벌써 한 길드가 달라붙어서 고통받고 있거든요."

"어디?"

그녀는 그렇게만 물었고.

"칼람이요."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그녀는 턱을 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 * *

유신이 총장실을 나간 뒤, 협회장은 소파 등받이에 깊게 몸을 기대며 전화를 걸었다.

"응, 찌질아. 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용무를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칼람 길드. 오늘 내로 청소해서 보고 해."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어."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히죽 웃었다.

"걔들이 내 새끼 건드렸어."

* * *

양평동. 마단 저택.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값비싼 음식들과 양주로 가득한 방. 남자들은 고풍스러운 소파에 둘러앉아 웃으며 잔을 나누고 있었다.

"일 처리는 어때?"

"순조롭습니다, 형님."

가운데에 앉은 올백 머리의 남자가 까닥거리며 술잔을 비웠다.

칼람의 길드 마스터 김길태.

오버레이 사태 이전에는 조폭의 말단에 불과했지만, 플레이어가 된 뒤로는 음지의 실력자들을 끌어모아 파벌을 형성했고 이제는 하나의 길드까지 세운 남자였다.

다른 길드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손을 더럽히는 일도, 김길태는 했다.

몬스터 사냥보다는 인간 사냥에 주력했고, 마정석 사업보다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거나 마약상들을 굴려부를 축적해 왔다.

"아, 아. 그러고 보니."

김길태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옆의 남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건은 어떻게 돼가나? 그, 어…… 뭐라고 하더라?"

"포션입니다, 형님."

"그래, 포션. 제작자는 알아냈나?"

"제작자는 아니지만, 의심 가는 배후를 몇 명 밝혀냈습니다."

남자가 후보를 추린 서류를 내밀었다. 김길태는 진지한 얼굴로 리스트를 살폈다.

"김유성? 이놈은 또 뭐야?"

"아, 네. 그것이……"

김길태는 굳어진 표정으로 서류를 탁탁 쳤다.

"너네 제대로 짚은 거 맞아? 이놈 로이스 길드잖아! 이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야?"

"걱정 마십시오, 형님."

부하가 재빨리 말했다.

"최근 로이스 길드와 같은 던전의 입장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일정도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게 덮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의해. 괜히 그쪽 길드장이랑 얽히면 귀찮아진다."

"알겠습니다."

김길태는 집요하고 잔혹한 성격이었지만, 동시에 겁이 많고 용의주도 했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낄 때와 빠질 때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자신이 짠 전략과 현재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음, 뭐야? 아카데미에 다니는 꼬맹이도 있어?"

김길태가 새로운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

"던전에서 포션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사용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프로필엔 고유 능력이 '인챈트'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여자가 진짜 포션 제작자는 아니겠지만, 그녀에게 포션을 건네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추적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김길태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서류들을 읽어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싹 다 잡아와."

김길태가 서류를 툭 던지며 말했다.

"아카데미랑 로이스 길드 쪽은 좀 껄끄럽긴 하네. 공을 들여서 던전사고사로 잘 위장해."

"알겠습니……"

타악, 탁.

그때였다. 갑자기 건물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뭐, 뭐야?"

"정전?"

김길태가 벌떡 일어났다.

"씨X, 정전일 리가 있나! 적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그가 입고 있던 슈트를 조작하자, 빛을 내는 드론이 떠올라 주위를 다시 밝혔다.

"……!"

문 옆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이 번쩍 들어 올려진 채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를 들어 올린 건 복면을 쓰고 검은 코트를 걸친 남성이었다.

"커허억!"

경호원의 몸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지더니 이내 한 줌의 모래로 변해 흩어졌다.

"누가 보낸 놈이냐!"

길드원들이 일제히 총과 헌팅 디바이스를 빼들었다.

그러나 복면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며 조용히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흐라아아아!"

경호원 한 명이 뒤로 돌아가 대검형태의 헌팅 디바이스를 휘둘렀다.

터업.

복면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맨손으로 대검을 붙들었다.

몬스터의 뼈와 부산물을 섞어 만든 아이템이 돌처럼 굳어지며 쩍쩍 갈라졌다. 이내 그가 손에 힘을 주자 까드득! 하는 소리가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

"……집행부 놈이냐."

김길태가 말했다. 그제야 복면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 수준의 석화 능력이면 공인 2급의 임남진이겠지."

남자는 순순히 복면을 벗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능력이 알려지면 피곤하다니까."

임남진이 살기를 뿜어내자 주위의 길드원들이 달려 들었다.

"다물러서!"

김길태가 소리쳤다. 그들이 어쩔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길드원들이 쭈뼛거리며 물러서자 임남진이 픽 웃었다.

"현명하군."

"……이해가 안 되는데. 이제 와서 협회가 왜 우릴 치는 거지?"

임남진은 성큼성큼 걸어가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건 이쪽이 하고 싶은 소리다."

"뭐?"

"칼람은 약자에겐 잔혹하고, 강자는 똥꼬 빨아주고 뭐 그런 컨셉 아니었나?"

"그게 무슨……!"

"너희들."

임남진이 음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체 누굴 건드린 거냐?"

"……!"

김길태는 식은 땀을 흘리며 머리를 굴렸다. 집행부의 일인자가 올 정도의 거물을 건드렸단 건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모두 길드에서 커버 가능한 정도의 일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협회를 자극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때 임남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언했다.

"오늘부로 칼람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파견 나간 칼람의 길드원들도 현재같은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들은 던전 안에서 살해당할 것이다.

그동안 칼림이 해왔던 방식대로, 똑같이 단죄당한다.

덜컹! 덜컹! 덜컹!

갑자기 방에 있던 모든 창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차가운 밤바람이 쌩쌩 불어 들어오자 부하들이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옛날 영화에 유행했던 연출인데. 기억하나?"

임남진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길드원들의 몸이 일제히 회색으로 굳어졌다. 비명 제대로 지를 틈도 없이, 이곳에 있던 여섯 명 모두가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휘날렸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건 김길태뿐이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 미친 새끼들! 명색이 헌터협회가 나라에 정식으로 등록된 길드를 말살해? 제정신이 아니야!"

"우리 협회장이 원래 좀 그렇지. 안부 전해주마."

임남진이 뚜벅뚜벅 김길태에게로 다가왔다.

"크아아아아아아!"

김길태가 팔을 뒤로 쭉 뻗자 슈트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두꺼운 전투 장갑 형태로 변했다.

장갑의 틈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며, 김길태가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임남진은 그저 오른손을 들었다.

터어어어어엉!

이어지는 격돌.

복잡한 형태의 전투 장갑은 임남진의 손바닥이 닿은 부분부터 가루가 되어 휘날리기 시작했다.

김길태가 울부짖으며 전진했지만 그의 장갑의 80%가 모래가 되어 휘날렸고 결국은 맨주먹이 임남진의 손에 붙들렸다.

"그러니까 쓰레기들아."

임남진이 삐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건드릴 사람 제대로 보고 건드리라고."

"끄, 끄허어어억!"

어느새 김길태의 전신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졌다. 결국 그의 몸도 모래로 변해 바람에 휘날리게 되었다.

임남진은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오존-1. 타깃은 모두 정리했다. 흔적 남기지 말고 현장치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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