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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53화 (53/337)

나 혼자만 마탑주 053화

드디어 조기졸업 8강전 당일.

본래 4강전은 되어야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지만, 조기졸업 시험에서 가장 많은 홍행을 예상한 경기라 그런지 장소도 가장 넓은 중앙 체육관으로 변경되었고, 일반인 출입도 허용되었다.

역대 경기중 가장 많은 인파가 아카데미에 찾아왔다. 특히 각 길드에서 파견한 공인 스카우터들만 80명이 넘었다.

"하아아, 제가 다 떨리네요."

선수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상황을 살피던 진보라가 말했다.

"이번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이라 그런가? 사람들 진짜 많이 왔어요!"

"그러게."

유신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하아, 우승 후보인 두 사람이 8강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결국, 한 명은 졸업을 미루고 아카데미에 남아야 할 운명이네요."

"그러게."

"물론 당연히 선배님이 이기시겠지만……"

그녀가 말을 멈추고 유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 괜찮으세요? 긴장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괜히 걱정할까 봐 그녀에겐 아직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상태였다.

유신은 안심시키듯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긴장해서 그래."

요조숙녀처럼 호호 웃던 진보라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조금 걱정이네요."

"뭐가?"

"또 너무 막 몰입하시는 거 아녜요? 막 마나 슈트 게이지가 0인데도 죽자고 달려든다거나, 살수를 마구 가해서 상대를 다치게 하려 한다거나."

"……야.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정도로 심하진 않다니까."

"예전에 드라마 틀어놓고 몰입해서 꺼이꺼이 울던 게 누군데요."

아, 그건 좀 슬펐다.

"원래 드라마는 그렇게 보는 게 제맛이지."

"그거 그냥 의사 드라마였거든요?"

"주인공을 홀로 키운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 도시락을 챙겨줄 때 그 감성을 니가 알아?"

"……거기서 터지신 건가요."

드라마 이야기로 긴장을 풀고 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방송이 들렸다.

-김유신 학생은 지금 바로 중앙체육관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가자."

"넵!"

* * *

"와아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유신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중앙 체육관은 웬만한 스타디움을 방불케 하는 규모였고, 빈 좌석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맞은편 선수 대기실에서도 홍연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호.'

전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듯, 그녀는 제대로 된 갑옷형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순백의 갑주 위로 붉은 머리칼이 휘날린다.

고고하고 압도적인 위용. 그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만민의 위에 서는 자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유신은 생각했다.

"두 선수, 앞으로."

8강전부터는 시설 직원이 아닌 헌터 출신의 교직원이 직접 시합에 나온다.

유신과 홍연은 서로를 향해 걸어왔다.

"또 만났네."

그녀는 가볍게 묵례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준비 많이 했나 봐. 번쩍번쩍한게 장난 아닌데?"

"더 이상 방심은 없습니다."

유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전력으로 당신을 쓰러뜨리겠습니다."

"기세 좋네."

"……그 여유가 얼마나 갈지 지켜 보도록 하죠."

교직원이 악수를 권했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홍연은 악수하자마자 바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럼 두 선수, 준비해 주십시오."

스르릉.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갑주와 같은 은빛이었지만 그녀가 검을 쥐는 순간 붉은 광채가 희뿌옇게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장비에 조예가 없는 유신이 봐도 상당히 좋은 검이라는 것 정도는 알수 있었다.

유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장비는 없었다. 마나 슈트를 안에 입고 그 위에 아카데미에서 빌려온 방호 조끼를 한 장 걸쳤을 뿐이다.

"지금부터 2학년 김유신과 1학년홍연의 8강 공식전을 시작한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함께 유신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스크린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삐이이이이이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버저음이 들리기 무섭게 홍연은 검을 붙잡고 내달렸다.

그녀가 선언했던 대로, 유신이 고위 마법을 시전할 때까지 기다려 주거나 하는 일 따윈 없었다.

<레피드 에로우>

이에 유신은 시작부터 주특기로 맞섰다.

그의 후방에 무수한 마법진들이 펼쳐지더니, 이내 황금빛 화살들이 방출되어 하늘을 노랗게 물들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

홍연은 속도를 늦추며 밀려드는 황금 파도와 맞섰다.

하나씩 하나씩.

붉은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무수한 마나 화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아, 이대로 녀석을 붙잡아둬. 나는 수식만 거들면서 다른 마법을 준비할게.'

-알겠습니다.

에아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원격 시전과 가속 시전의 조합뿐만 아니라 카피 매지컬 포지션을 섞어서 한 번에 다섯 개의 레피드 에로우를 뽑아내 물량전을 가하고 있었다.

현재 유신의 레피드 에로우 숙련도는 30%.

오리지널 마법은 숙련도를 올리기가 까다로웠지만, 숙련도에 따른 성능 증가폭은 컸다.

지금의 유신은 하나의 마법진에 레피드 에로우를 다섯 발까지 장전한 채로 꺼낼 수 있었다.

레피드 에로우는 난사에 특화된 마법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리고 이런 유신과 능력을 공유하는 에아가 제대로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가랑 비 젖듯 한 방 두 방 허용하기 시작하다가 템포가 끊기며 다수의 피해를 입히는 게 유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였으나.

'……쟤는 뭐 인간미가 없네.'

홍연은 경쾌하게 스탭을 밟으며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쳐내고 있었다.

유신이 보기에 그녀의 집중력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적중한 화살은 0개.

레피드 에로우의 화력에 밀려 좌우를 겉돌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앞으로 내달리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챙! 챙!

그 짧은 사이에 공격 패턴에 대한 적응을 마쳤다. 속도를 내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피드 에로우는 단 한 발도 그녀의 몸에 닿지 못했다.

단순히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가 딛는 한 발짝 한 발짝이 신의 한 수와도 같았고, 팔의 각도 무릎의 위치, 허리의 방향까지 그 모든 것이 상황에 녹아들듯 완벽했다.

이 정도면 레피드 에로우가 그녀를 일부러 피해 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얼이 빠질 정도로 잘 한다.'

그녀의 검무는 지극히 아름다웠다.

저런 걸 단순히 인간이 쇳덩이를 휘두르는 동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검의 궤적 하나하나가 대자연이 빚어낸 소름 끼치는 운명과 우연의 연속이었다.

홍연은 기적을 휘두르고 있다.

-레피드 에로우의 수식 변경을 시작합니다.

그때 에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사출 패턴을 변경합니다.

-급소와 신체 위주의 공략에서 공간 위주의 공략으로 변경.

-수식 변경 후 재사출 시작.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에아는 바로 패턴을 바꿔 버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역시 에아!'

유의미한 변화였다. 허벅지 쪽에 몇 방을 허용한 홍연이 다시 전진을 멈추며 방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출 패턴을 변경합니다.

-사출 패턴을 변경합니다.

-사출 패턴을 변경합니다.

에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따라와 버리는 괴물을 상대로 계속 패턴을 바꿔가며 상대하고 있었지만, 홍연의 적응력은 가공할만 했다.

이제는 변경하는 패턴마저도 그녀쪽에서 예측, 공략하는 것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지켜보던 유신은 질린다는 듯 혀를 찼다.

-패턴의 변경으로도 공략 불가!

레피드 에로우 마법 자체가 완전히 공략당했습니다!

'준비됐으니까 그냥 들여보내.'

에아가 멈출 것도 없이 홍연은 스스로의 힘으로 레피드 에로우를 완전돌파했다.

다리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날아오른 그녀가 붉은 마력을 한데 모아검을 세워 들었다.

이에 유신은 손가락을 치켜들며 바닥에 깔아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어스 클레이모어>

쿠구구구!

그녀에게는 처음 선보이는 2공정 대지계열 마법.

바닥에서 빠르게 솟구친 두 개의 지면검이 유신의 앞에서 X자로 교차하며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이대로!"

X자로 교차한 어스 클레이모어가 엄청난 속도로 솟구쳐 오르더니 그녀를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

그리고 공중으로 올라온 그녀의 사방에는 파이어 캐논 마법진이 이글거리며 화염구를 뱉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큭!'

공중에선 피하지 못한다. 재빨리 발을 딛고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유신이 주먹을 꽉 쥐고 옆으로 젖혔다.

어스 클레이모어 전체가 고운 가루처럼 변해 떨어지며 디딤대가 사라졌다.

그녀는 꼼짝없이 중력에 의해 떨어지고 있었고, 완벽한 타이밍의 파이어 캐논들이 사방에서 짓쳐 들고 있었다.

'잡았다.'

콰아아아아아앙!

화염구들이 폭발했다. 이어서 후속화염구들이 들이닥쳐 2차 폭발을 일으켰다.

유신의 시선이 스크린의 게이지 쪽으로 향했다.

김유신 <1, 000/1, 000>

홍연 <940/1, 000>

'이런 씁! 거의 안 먹혔……!'

"탑주!"

폭발 속에서 한 순간 붉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연기를 뚫고 유신을 향해 내려왔다.

촤아아아아아악!

현인의 눈을 뜨고 제대로 대비했음에도, 적색의 검격이 유신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큭!"

바닥에 착지한 그녀가 바로 등을 회전시키며 후속타를 날리려 했지만, 어느새 유신의 몸은 그녀의 위로 도약해 있었다.

'뒤가 없는 그런 얼치기 회피로 어쩔 셈입니까.'

그녀가 검을 세워 들자 시뻘건 마력이 칼날을 휘감았다.

공중에서 내려 올 상대에게 확실한 결정타를 준비하는 그때, 공중에 뜬 유신의 발밑에 쉴드가 형성됐다.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쉴드를 딛고 두어 발달리기 시작하던 유신이 리프 부츠 마법진을 밟고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당한 거리를 벌려놓았다.

'…당신은 언제나 제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그녀가 검을 내리며 유신을 노려보았다.

바닥에 착지한 유신은 숨을 헐떡이며 입가를 한번 슥 닦았다.

김유신 <710/1, 000>

홍연<960/1, 000>

방금의 공방으로 300 가까이 체력이 내려갔다.

"좋습니다.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그녀의 주위로 마나가 회오리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에아, 다시 준비해.'

-경고. 해당 상대는 더 이상 레피드 에로우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사료됩니다.

'그럼 이번엔 가이드 에로우다.'

유신과 에아가 함께 마법진을 펼치고 있는 그때.

"큭!"

유신의 마력이 홍연에게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왔군.'

마나의 축복을 받은 인간.

이 세계 전체가 아끼는 존재.

그렇게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이 도시의 마나가 그녀를 향해 휘몰아치며 모여들고 있다.

유신이 장악한 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격 시전으로 준비한 마법진의 수식이 마나화되어 빨려 들어가 수식이 꼬이거나, 마법진 자체가 바람에 휘날리듯 뜯겨 나가며 소용돌이의 중심인 홍연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마나에 의존하는 그의 스타일상, 홍연이 존재를 드러내고 제자리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유신의 힘의 원천을 말살한다.

3층 시련에서처럼 마법이 안 통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래서야 마법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탑주. 상대가 의도를 가지고 컨트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지금 이 자체로도 마법의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유신은 허탈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홍연에게 말했다.

"아주 내 밑천까지 탈탈 털 셈이야?"

"의도한 바는 아닙니다만."

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

"이렇게 하면 고유 능력 일색의 능력자에게 치명적이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거 잘못 알고 있었네."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드러나는 순간, 이번엔 유신의 입꼬리가 악귀처럼 벌어졌다.

"나는 달라."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유신의 체내 마력이 일제히 들끓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녀가 검을 세워 들고 달려들려고 했지만.

<스핀 가이드 에로우>

에아가 시전한 궤적을 읽을 수 없이 회전하는 마나 화살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아직도 이런 기술을!"

홍연이 다시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내는 사이, 유신은 전투는 에아에게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나 자신에게 완벽하게 몰입하는 의식.

유신은 몇 번이고 심호흡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세상 모든 것이 푸르게 보였다.

현인의 눈을 가진 마탑주가 보는광경. 마나의 농도가 색깔로 구분되는 세계.

유신은 더 몰입했다.

지금보다 더.

더 깊게.

색과 농도로 이루어진 세계가 이제는 물결처럼 너울거리며 파도 쳤다.

이제는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동과 궤적이 눈에 들어온다.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지상이 아니라 물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다.

지금의 유신은 마나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마나가 가려고 하는 중심에는 홍연이 서 있었다.

마치 이 세계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듯, 그녀의 주변의 마나 파장은 더 없이 복잡하고 짙었다.

유신은 입술을 짓씹었다.

'다들 어딜 보는 거야?'

유신은 체내의 마력을 일제히 개방하여 사방으로 뿜어냈다.

이것은 일종의 무력시위다.

'이 행성의 마탑주는 나다.'

'너희들을 누구보다 제대로 다루는 건 이쪽이다.'

'나를 봐라.'

화아아아아아악!

폭발하는 유신의 마나가 대기에 섞여 희석되었다. 단순한 마나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의 눈에는 보였다.

오래된 고목의 나이테가 일그러지 듯, 마나의 동향과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홍연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유신의 몸에도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소용돌이와 같은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몸에서도 부분적으로 마나가 빠져나가 유신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놀란 그녀가 유신을 바라보았고, 유신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

있을 수 없다.

아직 홍연 본인도 본질을 깨우치지 못한 마나 장악 기술.

특성의 도움도 없이, 순수한 개인의 힘으로 재현했다는 건 이미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부터야."

유신이 팔을 펼치자 주위로 무수히 많은 마법진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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