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49화 (49/337)

나 혼자만 마탑주 049화

나는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보았다. 과연, 현인의 눈으로도 마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상공에 조그마한 균열이 열렸다.

비관측 균열에다가 크기도 워낙에 작아서 눈에 잘 안 띌 정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톡 하고 떨어졌다.

'저거구만.'

통칭 포탈 고블린.

가죽 자루를 등에 짊어진 작은 체구의 몬스터는 지구로 나오자마자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겉으론 별거 없어 보이지만 에렌델의 문헌에도 기록된 재앙이다. 번화한 영지 하나를 통째로 끝장낼 뻔한 괴물.

어차피 헌터 협회가 처리할 문제지만, 그렇다고 가만 내버려 두면 도시 한복판에서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한 큐에 죽어라.'

기척을 죽이고 다가간 나는, 준비해 둔 <레피드 에로우>마법진을 즉각 발동시켰다.

허공에서 수십 발의 황금빛 화살이 날아오자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직였다.

휙. 휙. 휙. 휙.

고개가 돌아가고 팔다리가 헤엄치듯 허공을 휘젓는다. 방정맞은 회피동작이었지만 녀석은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이거 쉽게 봐서는 안 되겠는데.

-키시식! 키식!

포탈 고블린이 공격자인 나를 노려보며 짊어진 자루를 뒤적거렸다. 그러곤 컵 받침대 같은 원반을 꺼내던졌다.

빙그르르 날아가던 원반은 부드럽게 바닥에 안착해 포탈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 해바라기를 연상케 하는 식물형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2랭크의 솔라리온.

식물형 몬스터가 꽃잎을 벌리자 씨앗이 산탄처럼 쏟아졌다.

-방어하겠습니다.

에아가 다중 시전으로 내 앞에 빈틈없이 쉴드를 깔았다.

터더더덩!

산탄 씨앗들이 투명한 역장에 부딪혀 후두둑 떨어졌다.

"반격한다."

내가 양손에 파이어 캐논을 일으키자 에아가 바로 전면의 쉴드를 해제했다.

날아간 화염구의 불길이 솔라도스를 집어삼켜 단번에 한 줌의 재로 만들었다.

-키시시식!

내가 솔라도스를 상대하는 사이, 포탈 고블린은 도망쳐서 옥상 난간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고 씩 웃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황급히 달려가서 난간 밑을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녀석은 빌딩을 두발로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안 놓친다!"

<스핀 가이드 에로우>

세 발의 가이드 에로우가 회전하는 궤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초반 좌표 설정에 미스가 있었는지 애꿎은 유리창만 깨고 말았다.

'꺄아아악!' 하는 요란한 비명이 빌딩 안에서 쏟아졌다.

-탑주! 포탈 고블린이 공간 마법을 사용합니다!

고블린은 빌딩 벽에 원반을 붙이고 포탈을 열고 있었다. 이번엔 몬스터를 꺼내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지?'

오른쪽 현인의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대서재의 정보에 따르면 포탈 고블린의 공간 이동 마법은 딜레이가 있고 이동 거리도 짧다.

집중해서 주위를 훑자 바로 옆 건물에 녀석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기다! 바로 쫓겠어."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난간에서 조금 거리를 벌리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에아가 원격 시전으로 난간 끝에 리프 부츠 마법진을 설치했다.

"간다!"

나는 전력으로 달려서 난간의 리프부츠 마법진을 밟았다.

터어엉!

내 몸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옆 건물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할 순 없었지만.

'이제 이런 건 익숙하지!'

나는 발밑으로 쉴드를 넓게 펼치고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파삭!

넓게 만든 쉴드가 충격으로 박살났다. 어차피 이건 쿠션용이다.

내 몸의 속도가 줄어들며 에아가 만든 쉴드를 두 발로 디뎠다. 그리곤 바로 오른발을 허공으로 뻗었다.

<쉴드>

<쉴드>

<쉴드>

쉴드를 디딤대 삼아 허공을 주르륵 연결했다. 하늘길이 열렸다.

얼굴을 강타하는 맞바람에 눈을 뜨기도 제대로 힘들었지만,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와아.'

까마득하다. 빌딩이 장난감처럼 보였고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후우욱! 후욱!"

얼른 고개를 되돌렸다. 식은 땀이 흐른다. 내가 대체 몇 층 높이에서 달리고 있는 거야?

열심히 달리다 보니 저기 앞에 에아가 쉴드 앞에 만든 리프 부츠 마법진이 보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위로 올라갔다.

터어엉!

크게 떠오른 내 몸이 마침내 고블린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떨어졌다.

낙법으로 몸을 구르면서 고개를 들자, 대뜸 다가오는 커다란 방망이와 마주해야 했다.

다급히 두 팔을 뻗어 쉴드를 캐스팅 했다.

터어어어어어엉!

퍼즐처럼 펼쳐진 장막에 후두둑 금이 갔다. 나는 쉴드에 마력을 집중한 채 고개를 들었다.

3랭크 몬스터 홉고블린 (Hobgoblins).

비쩍 마른 체구의 보통 고블린과는 달리 뚱뚱하고 살집이 있었다. 두손엔 가시가 삐쭉삐쭉 돋친 나무방망이를 들었다.

-반격합니다.

나와 홉고블린이 쉴드와 방망이를 맞대고 대치하는 사이, 에아가 내 옆구리 쪽으로 아이스 자벨린을 영창했다.

두 손을 모두 공격에 쓰고 있던 홉고블린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까드드드득!

서리의 창에 옆구리가 꿰뚫린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 들었다. 오른손에 건틀릿을 펼쳐 착용하고는 놈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투콰아아앙!

푸른 불똥이 멋들어지게 튀어 오르며, 녀석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포탈 고블린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녀석은 건물 옥상의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저게 감히 사람을 비웃어?

<파이어 캐논>

바로 두 개의 파이어 캐논을 꺼내서 날려 보내는데, 포탈 고블린의 양옆으로 방패를 든 커다란 홉고블린들이 끼어들었다.

"…?!"

퍼어엉!

화염구는 놈들의 방패에 부딪히며 소멸했다. 제길, 이번엔 방패병이냐.

-키시시시식!

포탈 고블린은 비웃음을 흘리고는 도망쳤다.

당장 쫓아야 했지만 내 앞으로 방패를 든 홉고블린 둘이 걸어왔다.

거기에 좌우에도 한 마리씩 나타나 총 네 마리에게 포위당했다.

"이것들 일일이 상대할 시간 없어. 골렘을 쓴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손목에서 찰칵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페인트 볼 같은 것들이 바닥을 구르며 나아갔다.

'잘 쓸게, 솔아.'

통칭 골렘볼.

3층 골렘 공방의 마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두 개의 골렘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지더니 바닥에 대량의 진흙을 뿌렸고 그 위로 골렘 도면이 펼쳐졌다.

우우웅!

골렘 도면이 찬란한 푸른 빛을 내뿜자, 진흙들이 일어나 빠르게 머드골렘의 형태를 맞춰 나갔다.

-머드 골렘의 제어권 획득. 적을 공격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체부터 완성된 머드 골렘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홉고블린들이 거칠게 나가떨어지며 포위망이 무너졌다. 나는 그 틈으로 뛰어나갔다.

쓰러진 홉고블린 하나가 재빨리 반응하며 나를 쫓으려고 했지만 머드골렘이 녀석의 발목을 낚아채서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좋아! 실전에서도 완벽한데!"

사실 골렘을 이렇게 빨리 쓸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골렘 마법에 대한 '마법의 정석'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본 서적에서 골렘 마법은 기본기 외에 다루지 않음을 알린다. 골렘마법은 막대한 마나와 전문 기술을 요구하고, 무엇보다 소환 시간이 너무 길다. 일생 골렘 마법만을 익히는 전문 골렘 마법사가 아닌 이상 골렘 마법은 추천하지 않는 바이다.』

결론은 노력 대비 성능이 별로니까 비추천이라는 것. 나도 몇 번 시도 해 보다가 포기했다.

그래서 보통의 마법사들은 골렘을 소환하는 마법 대신, 골렘 도면을 이용해 마공학 골렘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이 '골렘볼' 또한 재료와 골렘 도면을 간편한 케이스에 압축 마법으로 담아놨다가 비상시에 펼쳐서 사용하는 것으로, 골렘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여기서 은솔의 '원격 조종'능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그녀의 원격 조정은 트리거를 맞춰놓고 후속 발동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몬스터가 접근하면 해당 총이 발포한다.'

같은 식이다. 그녀가 할렘가에 있을 때 주로 사용한 수법이다.

그녀는 이 능력을 골렘볼과 결합시켰다. 골렘볼 안에 원격 조정으로 골렘의 공정을 만드는 기억을 담아둔 것이다.

물론 이론만 쉽지, 원격 조종으로 골렘의 제작 공정을 담는 건 상당히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은솔은 해냈다. 골렘 공학Lv.10을 달자마자 미친 듯한 속도로 골렘 공학을 주파하고 있었고, 마탑주를 지원하는 3층 관리자로서 괄목할 만한 포텐셜을 뽐내고 있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이미 골렘마법을 수준급까지 익힌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절약한 거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그녀를 3층의 관리자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탑주! 9시 방향입니다!

머드 골렘들이 시간을 끌어준 사이 나는 포탈 고블린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녀석은 이번에도 빌딩 난간 위에 올라서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짜증 나게!"

가이드 에로우를 캐스팅한 채로 난 간을 내려다보았지만, 녀석은 없었다. 대신 바로 밑에 창문이 뚫려 있었다.

나도 바로 난간을 붙잡고 깨진 창문 옆으로 몸을 날렸다.

와창창!

유리창이 박살 났고, 나는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면서 일어났다.

"꺄아아아악!"

"허, 허억! 또 뭐야?"

사무실에서 일하던 회사원들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는 사람들 사이로 휙휙 달려나갔다.

"허, 헌터다!"

"근처에 몬스터가 나타났나?"

당황하는 것도 잠시, 직장인들은 환호하거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좀 당황하라고.

역시 요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헌터든 일반인이든 정상이 아니다.

"저기에요! 헌터님! 저기로 갔어요!"

"저쪽! 저쪽입니다!"

이제는 아예 자발적으로 나를 돕기 시작했다. 내가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자 여성 사원이 비명을 지르며 뺨을 부여잡았다.

…… 역시 헌터가 인기 직종이긴 하구나.

나는 빠르게 계단을 내달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 사람들은 더 했다. 그냥 익숙한 상황인 듯, 동네 축구 보듯 나와 고블린의 추격전을 주머니에 손넣고 구경하고 있었다.

'윽,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가 다리에 마나를 모아서 한 번의 도약으로 책상들을 넘어갔다.

대단한 묘기라도 본 듯 사방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저깁니다! 저기!"

넥타이 청년의 외침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깨진 창문이 보였다. 사람들이 주위에 엎어져 있었다.

"아, 헌터다."

"저기로 나갔어요!"

나는 옆에 유리창을 발로 차 깬 다음 뛰쳐나갈 준비를 하며 말했다.

"유리창 값은 협회에 청구해 주세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협회헌터인 척해야겠다.

"꺄아아아악!"

"힘내라! 헌터!"

"응원하고 있어요!"

헌터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포탈 고블린이 빌딩 벽을 내달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내가 쉴드를 딛고 마법을 준비하려는 찰나, 녀석이 주문을 외우더니 다시 포탈을 열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에아!"

-마력 감지 완료. 추적을 개시합니다.

잠시 후 머릿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탐색 완료. 포탈 고블린은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엘리베이터라도 타야 하나?"

-그러면 늦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게 말한 에아가 내 발밑으로 무수히 많은 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었던 쿠션용 쉴드였다.

'바로 응용해서 사용해 준 건 좋은데 말이야.'

몸에서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 대체 얼마나 만드는 거야?

고개를 내리자 내 발밑으로 쿠션용 쉴드가 무수히 소환되고 있었다. 그것은 지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야, 너 설마?"

-쉴드 엘리베이터입니다.

"……하하하하!"

나는 선 자리에서 미친 듯이 웃었다.

"넌 정말 최고의 파트너야."

-감사합니다.

나는 다리를 모으고 두 팔을 교차해 어깨에 올려놓은 다음, 망설임없이 발을 받치고 있던 쉴드를 해제했다.

내 몸이 쿠션용 쉴드들을 깨부수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