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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46화 (46/337)

나 혼자만 마탑주 046화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응. 생각해 둔게 있지."

나는 정서진의 노트북으로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일단은 가볍게 이걸로 시작하자."

내가 연 웹페이지를 본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E-마켓이로군요."

세계 최대의 글로벌 유통업체인 E-마켓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터넷 쇼핑몰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사이버 부산물 거래처다.

이곳에서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오픈 마켓 창업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렇게……"

예전에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헤매지는 않았다.

빠르게 판매자 등록과 상품 등록을 마치고 레드 엘릭서를 매대에 올렸다. 정서진과 함께 상품 사진도 찍었다.

"한 병당 얼마로 잡지?"

"포션의 원가는 얼마 정도 합니까?"

"그 식물 부산물 같은 거 다 합쳐도 3천 원도 안 할걸."

"그럼 일단 병당 30만 원으로 잡고 지켜보시죠."

……100배 이윤? 너무 마진 남기는 거 아닌가?

"헌터 용품이니 이 정도 가격이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좋아. 그럼 등록."

"잠시만요."

정서진이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스토리?"

"예. 이 포션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생소한 상품이니까 고객들이 출처를 궁금해하지 않겠습니까?"

"어, 확실히……"

갑자기 또 고민되네. 마탑에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럼 이거 어때? 포션 능력자."

나는 소설을 써 내려갔다.

포션 능력자라는 새로운 타입의 플레이어가 출현했고, 이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포션을 만들어 판매하려 한다는 것이다.

비공개 정보로 E-마켓에 올리는 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정을 뼈대로 구상했다.

"그럴듯하네요."

정서진은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서 수정하도록 했다. 그렇게 30병 한정의 레드 엘릭서가 E-마켓 홈페이지에 올라갔다.

"이 정도로 반응이 올까?"

"아마 안 오겠죠."

"……."

협조적으로 굴더니 갑자기 또 덤덤하게 구네. 이 자식.

"포션은 기존 헌터계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제가 보증하죠.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홍보, 이미지, 안정성 검증 같은 문제들이 아직 산재해 있습니다."

"으음."

"천천히 생각하시죠. 일단 저는 정식 유통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때 조용히 노트북을 지켜보고 있던 에아가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왜 그래? 에아."

"댓글 달렸습니다."

우당탕!

우리는 앞다투어 노트북 화면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잠이나 자라.

-인증도 없고, 판매자 정보도 전부 비공개네.

-응, 안 사요.

-물에 색소 타서 포션이라고 속이는 거 아님?

"……크윽! 이 개자식들."

내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반면 정서진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롭니다. 그래도 정식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한국 헌터 용품처 인증을 받아서 대형 브랜드에 입점하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음.

하지만 그러기엔 자본금이 너무 부족하다. 정서진이 사비를 쏟아붓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생각을 해보자. 생각. 진짜 무슨 방법 없나?

'……결국은 홍보, 그리고 신뢰성.'

갑자기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파파박 튀었다.

"에아!"

"예, 탑주."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내일부터 있는 고랭크 던전 리스트 모조리 띄워줘."

에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잠시 후 우리의 앞에 홀로그램 화면으로 일정표가 촤르륵 표시되었다. 나는 진지하게 일정표를 살폈다.

"이거다!"

내일은 5위 아일라 길드의 '악몽의 늪'고대 던전의 단독 공략이 예정되어 있었다. 엄청난 촬영진과 인파가 몰릴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던전의 특색은 중독 계열.

"탑주. 여기 악몽의 늪에 대한 세부 정보도 있습니다."

"오, 고마워."

나는 대서재의 서적으로 던전에 대한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와, 이대로 놔두면 길드원들 좀 죽어나겠는데.'

극악의 난이도였다.

던전 중간중간마다 피할 수 없는 늪을 건너야만 하는데, 전부 극독으로 인한 중독 판정이 있었고, 늪 내부에도 상당히 공략하기 까다로운 포이즌 슬라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턱을 짚으며 머리를 굴렸다.

"에아, 마탑 창고에 있는 포션 재료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진아. 너 혹시 헌터 협회에 인맥 있냐? 유닉스 쪽 라인 쓰는 거 말고."

"우문이로군요, 탑주님."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대한민국의 사업자라면 헌터 협회와의 연줄은 기본입니다.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좋아."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들끓는다.

"오늘 아마 많이 바쁠 거야. 오늘 빡세게 한번 작업해 보자. 보라한테도 연락해 둬."

"네!"

드디어 헌터계에 마탑의 영향력을 뿌리내릴 시간이 왔다.

* * *

"안세현 대표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고대 던전 악몽의 늪 1팀 공략멤버 변동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같은 길드원인 문태영의 스노우 길드 이적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골드윙 길드의 동반 공략제안을 거절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

아일라 길드의 대표 안세현은 표정을 굳히며 이야기했다.

"저희 길드원들 간의 호흡은 완벽합니다. 이미 굳어진 스크럼이 있는데 괜히 다른 변수를 감수할 이유가 없었기에 내린 결정입니다."

"문태영 헌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턱밑까지 마이크를 들이대며 소리지르는 열정적인 기자에 안세현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멘탈 좋고 책임감 있는 친구입니다. 메인 탱킹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안정적인 홀딩 능력으로 탱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태영 헌터의 이적설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최근 아나운서와의 연애설이……!"

제발 던전 이야기 좀 해라.

결국 짜증이 치밀어 오른 안세현은 마이크를 빼앗아 붙들고 말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준비 잘 했고, 눈에 보이는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세현이 마이크를 떨어뜨리며 등을 돌렸지만,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가드들과 몸싸움을 하며 소리쳤다.

"스노우 길드가 문태영 영입을 위해 700억 원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한 말씀 좀!"

"문태영 헌터가 없다면 생각해 두신 플랜 B는……!"

웅성웅성!

안세현은 기자들에게 벗어나 길드원들이 준비하고 있는 대기지역 안으로 돌아왔다.

"오오, 우리 대표. 표정 개썩었네."

주홍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손을 살랑 살랑 흔들며 인사했다.

"태영이 때문에 고역이지?"

"……하, 그놈 이름도 꺼내지 마요. 노이로제 걸릴 것 같으니까."

안세현이 투구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벤치에 앉았다.

"화력 1팀은요?"

"준비 오케이!"

안세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기다리고 있던 슈트점검반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슈트를 조율했다.

"근데 선배. 언제 슈트 바꿨습니까?"

"이번에 독성 던전이라며? 독에 좋다는 갈로스 부산물 덕지덕지 붙은 슈트로 입었지. 어때?"

그녀가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면서 말했다.

녹색의 나무 껍데기 같은 재료로 마감 처리된 슈트였다. 썩 보기 좋은 외형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용 슈트 없으면 선배가 자랑하는 고속 연사 기술 못 쓰는 거 아닙니까?"

"별수 있나.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지."

"……딜링 누락되는 거 팀원들한테 말해놨어요?"

"아 참!"

그녀가 민망하게 웃으며 손뼉을 짝쳤다.

"……1 팀 딜링 계산 다시 짜와서 보고해요. 스킬 하나 비어버리면 팀원들 템포 다 끊어먹는 거 알잖아요."

"미안, 미안."

안세현은 한숨을 쉬며 슈트를 조율했다. 그때 그의 시선에 어떤 박스가 보였다.

"저건 뭡니까?"

"나도 몰라. 아까부터 덩그러니 놓여 있던데?"

그때 옆에서 슈트를 조율하던 직원이 말했다.

"아, 그거 협찬 온 거랍니다. 뭐라더라? 포션?"

"……포션?"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그런 거 받은 적 없는데?"

"아, 오늘 아침에 협회 루트로 들어온 물건이랍니다."

"장비도 아니고 뭘 협찬받은 거야? 거추장스러우니까 갖다 버……."

"잠깐."

안세현이 직접 다가가서 포션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녹색의 액체가든 병이었다. 그는 동봉된 문서를 보았다.

"해독 포션? 중독 상태 이상에 걸렸을 때 복용하라고 되어 있군."

"헹, 사기네! 그런 거 함부로 받지마. 스노우나 다른 길드 새끼들이 이상한 약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그래?"

협회 루트로 들어온 거라면 어느 정도 품질은 보장됐다는 의미다. 안세현은 발신인을 살펴보았다.

E-마켓의 '알케미아'라는 사업체였다.

"유 팀장."

"예."

"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세요. 공간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유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끙끙거리며 포션을 옮겼다.

"대표님! 팀원들 전부 집결시켰습니다!"

"어, 간다."

안세현이 턱짓하자 그녀가 의자에서 내려와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의외네? 너 원래 이런 외부 협찬같은 거 잘 안 받잖아."

"이번 원정. 상태 이상 효과에 대한 대책이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쓰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한번 가지고 가보죠."

* * *

야망은 클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내가 설정한 포션 파트의 최종 목표는 '포션의 세계화'다.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들이 마탑에서 만든 포션을 사용하고, 모두의 일상에 포션이 깊숙하게 침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돈은 물론이고, 내 손짓 한 번에 헌터계를 들었다놨다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런 대업을 위해선 포션의 대량생산 준비와 유통라인 구축이 선결과제다.

정서진이 지금 이 파트를 맡고 있지만, 현재는 자금 부족이라는 벽에 막혀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방안을 짜냈다.

레드 엘릭서를 파는 건 포기한다.

대신 열기 저항 포션, 냉기 저항 포션, 중독 저항 포션 등 '상태 이상저항' 효과를 가진 특수 포션들을 판매하기로 했다.

조제 난이도가 높고 재룟값도 비쌌지만, 던전에 따라서 상태 이상 저항 능력의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판매는 E-마켓에서 시행하며, 판매 방식은 한국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다. 바로 예약 경매.

상태 이상 포션은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제작하며 수량은 딱 20병으로만 한정했다.

이후 포션이 필요한 개인, 기업, 길드 등에서 경매에 참여하여 가장 많은 값을 지불한 쪽이 가져가는 식이다. 최소 입찰가는 50만 원으로 설정했다.

예약이 들어오면 진보라가 포션을 만들고, 배송은 발신인의 정체가 드러날 일 없는 편의점의 E-마켓 택배나 퀵배송을 쓴다.

이런 내 아이디어에 더 해, 정서진은 브랜드 네이밍 어쩌고 하면서 열을 올리더니 마케팅 업체에 달려가 스티커까지 제작해서 왔다. 그리고 포션 병마다 이 스티커를 부착했다.

스티커에 들어갈 브랜드 네이밍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다. 대담하게 '마탑'으로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정서진은 반대의견을 냈다.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포션 능력자와 더미 공장이라는 페이크가 있지만, 마탑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쓰면 사람들이 마탑의 위치를 이곳 상계동의 버려진 탑으로 추정할 우려가 있다는 소리였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선배님! 그럼 산뜻하게 '끌라르떼 에빠끄라 데 쥬'는 어때요?"

"……그건 뭔 외계어냐? 작명은 그냥 직관적인 게 최고야. 포션이니까 심플하게 연금술사로 가자."

"상표 검색해 보니까 이미 있습니다. 차라리 라틴어로……"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우리의 포션사업체 이름은 '알케미아'로 정했다.

뜬금없이 프랑스어에 꽂혀 버린 진보라가 이름에 반드시 이름에 끌라르떼인가 뭔가를 넣어야 한다며 우겼지만, 뜯어말렸다.

그렇게 E-마켓에서의 오픈 첫날.

당연히 아무런 인증도 없는 개당 50만 원의 포션을 사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선배님! 선배님! 드디어 나왔어요! 아일라 길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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